클린턴 방북, ‘카터의 반전극’ 재연될까?

입력 2009.08.04 (12:13) 수정 2009.08.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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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은 여러모로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과 닮았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으로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높아지던 때 미국 민주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한 점은 가히 15년만에 돌아온 `역사의 수레바퀴'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한 1994년 6월15일은 1차 북핵 위기의 와중에 북한의 핵연료봉 인출강행,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 등으로 북.미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때였다. 카터의 방북 직전 미 국방부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 김 주석으로부터 핵개발 계획의 동결과 북핵 시설 사찰단원 및 감시장비의 원상복귀 등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로써 전쟁 위기까지 거론되던 한반도에 급한 불을 끈 것은 물론 제1차 북핵위기를 봉합한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 도출에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하는 2009년 8월의 상황도 비록 `군사적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라있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1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북한이 6자회담 탈퇴를 선언한 것은 1994년 카터의 방북 직전 북이 IAEA 탈퇴를 선언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1994년 당시 IAEA 사찰을 거부하는 북한을 향해 국제사회가 제재를 모색했던 것과 유사하게도 현재 국제사회는 북한의 5월25일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근거해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핵역량이 초보적이었던 15년 전과 달리 지금의 북한은 2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자처하고 있어 문제의 시급성은 1994년에 비해 커졌다.
결국 관심은 15년전 카터 전 대통령이 그랬듯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에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에 집중된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중대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와 함께 남북관계에서도 기대밖의 성과물을 갖고 올지도 관심거리다.
비록 김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앞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주석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받아 우리 측에 전달한 바 있다.
`클린턴의 반전 드라마' 실현 여부는 그가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주석을 만났던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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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 방북, ‘카터의 반전극’ 재연될까?
    • 입력 2009-08-04 12:13:38
    • 수정2009-08-04 15:39:18
    연합뉴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은 여러모로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과 닮았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으로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높아지던 때 미국 민주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한 점은 가히 15년만에 돌아온 `역사의 수레바퀴'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한 1994년 6월15일은 1차 북핵 위기의 와중에 북한의 핵연료봉 인출강행,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 등으로 북.미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때였다. 카터의 방북 직전 미 국방부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 김 주석으로부터 핵개발 계획의 동결과 북핵 시설 사찰단원 및 감시장비의 원상복귀 등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로써 전쟁 위기까지 거론되던 한반도에 급한 불을 끈 것은 물론 제1차 북핵위기를 봉합한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 도출에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하는 2009년 8월의 상황도 비록 `군사적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라있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1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북한이 6자회담 탈퇴를 선언한 것은 1994년 카터의 방북 직전 북이 IAEA 탈퇴를 선언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1994년 당시 IAEA 사찰을 거부하는 북한을 향해 국제사회가 제재를 모색했던 것과 유사하게도 현재 국제사회는 북한의 5월25일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근거해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핵역량이 초보적이었던 15년 전과 달리 지금의 북한은 2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자처하고 있어 문제의 시급성은 1994년에 비해 커졌다. 결국 관심은 15년전 카터 전 대통령이 그랬듯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에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에 집중된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중대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와 함께 남북관계에서도 기대밖의 성과물을 갖고 올지도 관심거리다. 비록 김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앞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주석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받아 우리 측에 전달한 바 있다. `클린턴의 반전 드라마' 실현 여부는 그가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주석을 만났던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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