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112년 만 올림픽 무대 오른다

입력 2009.08.13 (22:47) 수정 2009.08.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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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가 2016년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에 골프를 추천하면서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골프도 올림픽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1900년 파리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서 사라졌으니 112년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셈이다.
스코틀랜드 목동들이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돌멩이를 치며 놀았던데서 유래한 골프는 1744년 에든버러골프협회가 개최한 대회를 계기로 스포츠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고 1860년 스코틀랜드에서 제1회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하는 등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후 골프는 캐나다, 미국 등 신대륙으로 전파됐고 1894년에는 미국골프협회(USGA)의 전신인 미국아마추어골프협회가 창립되는 등 골프단체가 속속 들어서면서 1900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아직 근대 올림픽이 틀을 갖추지 못했던 시대였지만 1900년 대회에는 4개국에서 22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남자와 여자 개인전에서 메달을 다퉜다.
2라운드 스트로크 방식으로 열린 남자 개인전에서는 찰스 샌즈(미국)가, 9개홀 스트로크 방식으로 열린 여자 개인전에서는 마거릿 아이브스 애버트(미국)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는 여자부 경기가 제외되고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열렸으며 경기 방식도 스트로크 플레이가 아닌 매치플레이로 바뀌었다.
출전선수는 77명으로 늘었지만 참가 국가는 미국과 캐나다 2개국 뿐이었고 개인전에서 조지 라이언(캐나다)이 금메달을 땄을 뿐 단체전 금메달을 비롯해 모든 메달은 미국이 독식했다.
결국 골프는 아직 대중화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올림픽에서 골프 경기를 볼수 없었다.
더욱이 TV 생중계 시대가 열리면서 프로대회가 활성화되고 1970년대 잭 니클라우스, 1990년대 중반부터 아직까지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타이거 우즈 등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골프와 올림픽은 점점 멀어져 갔다.
이후에도 골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논의가 있었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되다가 8년전 세계아마추어골프연맹(WAGC)이 결성되면서 올림픽 재진입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108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린 WAGC는 이후 국제골프연맹(IGF)로 이름을 바꿨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유럽골프투어(EPGA) 등 프로단체들의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골프를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세웠다.
김동욱 대한골프협회 전무는 "4년전부터 IGF 회원국들이 기금을 모아 올림픽 재진입 운동을 펼친데다 중국을 비롯해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식도 달라졌다"며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으로 골프가 세계화된 스포츠라는 것을 인정받게 됐고 한국골프의 대중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유럽골프의 전설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와 영원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IOC 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니클라우스와 우즈가 지원 발언을 하는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큰 힘이 됐다.
더욱이 우즈와 메이저대회를 세차례 제패한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 등도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히면서 골프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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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 112년 만 올림픽 무대 오른다
    • 입력 2009-08-13 22:46:20
    • 수정2009-08-13 23:29:27
    연합뉴스
13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가 2016년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에 골프를 추천하면서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골프도 올림픽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1900년 파리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서 사라졌으니 112년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 셈이다. 스코틀랜드 목동들이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돌멩이를 치며 놀았던데서 유래한 골프는 1744년 에든버러골프협회가 개최한 대회를 계기로 스포츠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고 1860년 스코틀랜드에서 제1회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하는 등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후 골프는 캐나다, 미국 등 신대륙으로 전파됐고 1894년에는 미국골프협회(USGA)의 전신인 미국아마추어골프협회가 창립되는 등 골프단체가 속속 들어서면서 1900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아직 근대 올림픽이 틀을 갖추지 못했던 시대였지만 1900년 대회에는 4개국에서 22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남자와 여자 개인전에서 메달을 다퉜다. 2라운드 스트로크 방식으로 열린 남자 개인전에서는 찰스 샌즈(미국)가, 9개홀 스트로크 방식으로 열린 여자 개인전에서는 마거릿 아이브스 애버트(미국)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는 여자부 경기가 제외되고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열렸으며 경기 방식도 스트로크 플레이가 아닌 매치플레이로 바뀌었다. 출전선수는 77명으로 늘었지만 참가 국가는 미국과 캐나다 2개국 뿐이었고 개인전에서 조지 라이언(캐나다)이 금메달을 땄을 뿐 단체전 금메달을 비롯해 모든 메달은 미국이 독식했다. 결국 골프는 아직 대중화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올림픽에서 골프 경기를 볼수 없었다. 더욱이 TV 생중계 시대가 열리면서 프로대회가 활성화되고 1970년대 잭 니클라우스, 1990년대 중반부터 아직까지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타이거 우즈 등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골프와 올림픽은 점점 멀어져 갔다. 이후에도 골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논의가 있었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되다가 8년전 세계아마추어골프연맹(WAGC)이 결성되면서 올림픽 재진입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108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린 WAGC는 이후 국제골프연맹(IGF)로 이름을 바꿨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유럽골프투어(EPGA) 등 프로단체들의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골프를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세웠다. 김동욱 대한골프협회 전무는 "4년전부터 IGF 회원국들이 기금을 모아 올림픽 재진입 운동을 펼친데다 중국을 비롯해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식도 달라졌다"며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으로 골프가 세계화된 스포츠라는 것을 인정받게 됐고 한국골프의 대중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유럽골프의 전설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와 영원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IOC 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니클라우스와 우즈가 지원 발언을 하는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큰 힘이 됐다. 더욱이 우즈와 메이저대회를 세차례 제패한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 등도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히면서 골프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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