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탈권위 리더십’ 16강 해냈다

입력 2009.10.03 (10:2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나와 직책이 다를 뿐이다. 감독, 코치, 선수로서 제 역할이 있다. 함께 팀을 꾸려가는 데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존중하는 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감독과 선수 간에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200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하는 홍명보(41) 감독의 `탈권위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과 미팅할 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한다. 스무 살이나 어린 선수들을 존대하는 게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지난 3월 사령탑을 맡은 이후 줄곧 지켜왔던 원칙이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2년까지 4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했고 특히 한.일 월드컵에선 스페인과 8강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4강 진출을 확정했다. A매치 135경기에 출전했고 한국과 미국, 일본 프로축구를 두루 경험했다.
선수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7년 아시안컵,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각각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감독,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며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가 청소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주목받은 것도 동년배인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과 함께 차세대 한국 축구를 이끌 지도자 재목이기 때문이다.
감독 경험이 없어 잘해낼까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 축구의 간판 미드필더로 성장한 기성용(20.서울)의 청소년 대표팀 합류 좌절과 프로 선수들의 K-리그 참가에 따른 불규칙한 훈련 일정, 축구팬들과 언론의 무관심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4월 이집트 초청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지난달 수원컵 국제대회에서도 3전 전승 우승을 지휘했다.
홍명보호의 U-20 월드컵 직전까지 국제대회 성적은 9경기 연속 무패(6승3무).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의 금언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 U-20 월드컵에서도 그의 지도력은 빛을 잃지 않았다.
카메룬과 1차전에서 0-2 패배를 당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이 강하게 조련했던 선수들을 굳게 믿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독일과 2차전이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진가를 발휘한 하이라이트였다.
홍 감독은 2차전에선 무려 5명을 베스트 11에서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왼쪽 허리를 다친 김동섭(도쿠시마) 대신 국제대회 경험이 적은 박희성(고려대)에게 원톱 중책을 맡겼다.
또 1차전에 선발로 나섰던 지난해 K-리그 신인왕 이승렬(서울)과 일본파 조영철(니가타)을 대신해 최단신의 김민우(연세대)와 서정진(전북)을 좌우 날개로 배치했다. 이름값을 무시하고 독일의 사이드 공세를 막아내려면 스피드와 수비 가담 능력이 뛰어난 김민우와 서정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1차전 초반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판단 착오를 했던 주전 골키퍼 이범영(부산)을 빼고 과감하게 김승규(울산)를 중용했다. 대회 중 골키퍼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모험이었지만 홍명보 감독의 승부수는 적중했고 독일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엮어냈다. 홍명보 감독의 용병술이 일궈낸 승점 1점 이상의 값진 무승부였다.
홍명보 감독은 미국과 3차전에선 독일과 2차전에서 선전했던 베스트 11을 한 명도 교체하지 않는 세 번째 실험을 했다. 빠른 김민우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김민우 자리에 `왼발 달인' 김보경을 배치하는 등 자리를 바꾼 것 말고는 변화를 주지 않았고 태극전사들은 미국을 맞아 3-0 대승을 만들어냈다.
홍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믿음의 리더십'이 효과를 본 것이다. 1차전 0-2 패배, 2차전 1-1 무승부, 3차전 3-0 승리로 이어지는 극적인 반전은 홍 감독의 빼어난 용병술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선수 시절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서 체력 훈련의 중요성을 배웠다는 그는 아드보카트 감독에게서 팀 운영 및 선수들과 관계 설정 방법을 익혔고 베어벡 감독의 체계적인 훈련법과 업무 분담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는 카메룬과 경기 패배 후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고 독일과 경기 후에는 선수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긍정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1-1 무승부 직후에는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도록 직접 미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틀어주며 격파 해법을 찾았다.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합숙훈련 당시 항상 겸손하고 인사성 바른 태도로 가장 모범적인 연령별 대표팀으로 손꼽혔던 U-20 태극전사들은 스타 의식을 버리고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춘 홍명보 감독이 있었기에 선수 차출의 어려움과 언론의 관심 부족 등 악재를 딛고 16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던 셈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홍명보 ‘탈권위 리더십’ 16강 해냈다
    • 입력 2009-10-03 10:06:48
    연합뉴스
“선수들은 나와 직책이 다를 뿐이다. 감독, 코치, 선수로서 제 역할이 있다. 함께 팀을 꾸려가는 데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존중하는 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감독과 선수 간에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200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하는 홍명보(41) 감독의 `탈권위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과 미팅할 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한다. 스무 살이나 어린 선수들을 존대하는 게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지난 3월 사령탑을 맡은 이후 줄곧 지켜왔던 원칙이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2년까지 4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했고 특히 한.일 월드컵에선 스페인과 8강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4강 진출을 확정했다. A매치 135경기에 출전했고 한국과 미국, 일본 프로축구를 두루 경험했다. 선수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7년 아시안컵,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각각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감독,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며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그가 청소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주목받은 것도 동년배인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과 함께 차세대 한국 축구를 이끌 지도자 재목이기 때문이다. 감독 경험이 없어 잘해낼까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 축구의 간판 미드필더로 성장한 기성용(20.서울)의 청소년 대표팀 합류 좌절과 프로 선수들의 K-리그 참가에 따른 불규칙한 훈련 일정, 축구팬들과 언론의 무관심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4월 이집트 초청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지난달 수원컵 국제대회에서도 3전 전승 우승을 지휘했다. 홍명보호의 U-20 월드컵 직전까지 국제대회 성적은 9경기 연속 무패(6승3무).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의 금언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 U-20 월드컵에서도 그의 지도력은 빛을 잃지 않았다. 카메룬과 1차전에서 0-2 패배를 당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이 강하게 조련했던 선수들을 굳게 믿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독일과 2차전이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진가를 발휘한 하이라이트였다. 홍 감독은 2차전에선 무려 5명을 베스트 11에서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왼쪽 허리를 다친 김동섭(도쿠시마) 대신 국제대회 경험이 적은 박희성(고려대)에게 원톱 중책을 맡겼다. 또 1차전에 선발로 나섰던 지난해 K-리그 신인왕 이승렬(서울)과 일본파 조영철(니가타)을 대신해 최단신의 김민우(연세대)와 서정진(전북)을 좌우 날개로 배치했다. 이름값을 무시하고 독일의 사이드 공세를 막아내려면 스피드와 수비 가담 능력이 뛰어난 김민우와 서정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1차전 초반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판단 착오를 했던 주전 골키퍼 이범영(부산)을 빼고 과감하게 김승규(울산)를 중용했다. 대회 중 골키퍼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모험이었지만 홍명보 감독의 승부수는 적중했고 독일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엮어냈다. 홍명보 감독의 용병술이 일궈낸 승점 1점 이상의 값진 무승부였다. 홍명보 감독은 미국과 3차전에선 독일과 2차전에서 선전했던 베스트 11을 한 명도 교체하지 않는 세 번째 실험을 했다. 빠른 김민우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김민우 자리에 `왼발 달인' 김보경을 배치하는 등 자리를 바꾼 것 말고는 변화를 주지 않았고 태극전사들은 미국을 맞아 3-0 대승을 만들어냈다. 홍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믿음의 리더십'이 효과를 본 것이다. 1차전 0-2 패배, 2차전 1-1 무승부, 3차전 3-0 승리로 이어지는 극적인 반전은 홍 감독의 빼어난 용병술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선수 시절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서 체력 훈련의 중요성을 배웠다는 그는 아드보카트 감독에게서 팀 운영 및 선수들과 관계 설정 방법을 익혔고 베어벡 감독의 체계적인 훈련법과 업무 분담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는 카메룬과 경기 패배 후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고 독일과 경기 후에는 선수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긍정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1-1 무승부 직후에는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도록 직접 미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틀어주며 격파 해법을 찾았다.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합숙훈련 당시 항상 겸손하고 인사성 바른 태도로 가장 모범적인 연령별 대표팀으로 손꼽혔던 U-20 태극전사들은 스타 의식을 버리고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춘 홍명보 감독이 있었기에 선수 차출의 어려움과 언론의 관심 부족 등 악재를 딛고 16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던 셈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