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군단, 12년 만에 한풀이 부활!

입력 2009.10.24 (19:00) 수정 2009.10.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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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을 대표하는 KIA 타이거즈가 마침내 12년 묵은 한(恨)을 풀고 '전통의 명가'를 재건했다.
KIA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SK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9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해 1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KIA는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승을 먼저 올리고 나서 2연패를 당하며 몰렸다가 7차전 9회말에 나지완의 끝내기홈런으로 승부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려 놓는 저력을 보였다.
KIA는 시즌 초 우승후보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반환점을 돌며 탄탄한 선발진과 김상현의 활약 등을 앞세워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 9회 우승에 빛나는 타이거즈는 1997년 모그룹의 부도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2001년 굴지의 자동차 기업인 KIA에 인수되면서 재기의 기틀을 마련했고 결국 올해 풍성한 결실을 거뒀다.

◇천당과 지옥 거친 한국시리즈

KIA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16~17일 홈인 광주구장에서 타선이 터지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2연승을 올리면서 먼저 승기를 잡았다.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에 9차례 나가서 모두 우승한 전통이 있는터라 이번에도 우승은 떼어논 당상으로 여겨졌다.
19일 SK의 홈구장인 문학구장으로 옮기면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상대 투수 게리 글로버, 채병용의 호투와 박정권의 맹타에 밀리면서 2연패해 오히려 심리적으로 쫓기는 처지가 됐다.
더욱이 상대 SK는 2007년에도 먼저 2경기를 내주고 나서 4연승한 관록의 팀. 반면 KIA에서는 이종범, 이대진, 장성호, 김종국 등 일부만이 한국시리즈에서 뛰어 봤고 나머지는 큰 경기 경험이 없는 탓에 선수단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위기의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 아킬리노 로페즈가 '수호신'으로 등장했다. 5차전을 완봉승으로 장식하며 SK의 상승세를 꺾었다.
흐름을 끌어오며 우승까지 1승만 남겨뒀지만 6차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타선이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3 한 점차로 졌다.
7차전에도 먼저 실점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나지완, 안치홍의 홈런과 김원섭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 짜릿하게 SK를 눌렀다.

◇2009 시즌은 '돌풍의 해'

이번 시즌 전만해도 KIA의 돌풍을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2007~2008년 두 해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SK와 두산 등을 우승후보로 꼽을 뿐이었다.
시즌 초에는 전문가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개막전에서 3연패를 당한 KIA는 4월 중순까지 바닥권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5월부터 서서히 힘을 내기 시작했다. 시즌 초 LG에서 영입한 김상현의 방망이가 폭발했다.
경기마다 괴력을 뿜어낸 김상현은 홈런(36개)과 타점(127점) 두 부문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타선을 이끌었다. 그러자 최희섭이 국내 복귀 3년만에 가장 좋은 성적인 33홈런과 100타점을 뽑았고, 나지완(23홈런-73타점), 안치홍(14홈런-38타점) 등도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타선이 동반 상승효과를 봤다.
아울러 KIA가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데는 8개 구단 최강을 자랑하는 선발진의 역할이 컸다. 아킬리노 로페즈(14승5패)와 릭 구톰슨(13승4패) 등 용병 듀오는 27승을 합작하며 KIA 마운드의 기둥이 됐다.
특히 두 투수는 완투형 투수로 등판할 때마다 긴 이닝을 책임졌다. 덕분에 약점으로 거론된 불펜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토종 에이스' 윤석민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했다. 언더핸드 유동훈은 평균 자책점 0.53-22세이브를 작성하며 최고의 소방수로 자리 잡았다.
선수들의 맹활약이 이어지면서 KIA는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후반기에는 파죽의 11연승을 달렸다. 8월2일 SK를 따돌리고 단독 1위로 나섰으며 8월에만 20승4패를 기록해 프로야구 통산 월간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12년 걸린 '부활'

타이거즈는 1980~1990년대를 거치며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한 번 몰락하자 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1997년 우승 이후 12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2001년 시즌 중반 KIA로 명패를 바꾸고 나서 구멍 난 전력을 보강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해태는 심각한 자금난 속에 간판스타인 선동열과 이종범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로 트레이드하는 등 전력에 균열이 심한 상황이었다.
우선 이종범과 삼성에서 뛰던 이강철 등 '프랜차이즈 스타'를 데려와 타이거즈의 구심점을 마련했다. 광주일고 출신 메이저리거인 최희섭과 서재응을 각각 최대 15억5천만원, 15억원에 영입했다.
이처럼 꾸준하게 적극적으로 투자했지만 좀처럼 과거의 영예를 되찾지는 못했다. 큰돈을 주고 마해영, 진필중, 박재홍 등 스타를 모셔왔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국시리즈에는 단 한 차례도 나가지 못했다. 2002~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게 포스트시즌 성적의 전부였다. 2002년 LG에 2승3패, 2003년 SK에 3패로 무릎을 꿇었다.
KIA는 지난해 감독과 단장을 교체하면서 도약을 노렸다. 하지만 이전처럼 과욕은 부리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야구를 실험했다.
조범현 감독은 부임 첫해 6위에 그쳤지만 올해 마운드 운용 등에서 서두르지 않았다. 기본기와 장기적인 안목을 강조하며 꼬박꼬박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줬고 그 결과 마운드는 시즌 후반 강한 힘을 냈다.
조 감독과 비슷한 시기에 KIA에 온 김조호 단장은 구단 운영의 중요한 방향만 제시할 뿐 선수단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성적 등 결과에 대한 책임만 묻겠다며 코칭스태프의 권한을 보장해 줬다.
벤치와 프런트가 조화를 이루자 지난 수년간 KIA가 투자한 밑거름이 올해 위력을 발휘했다. 선수단의 플레이에도 타이거즈 특유의 끈끈하고 강한 정신력이 묻어나면서 우승까지 차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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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 군단, 12년 만에 한풀이 부활!
    • 입력 2009-10-24 19:00:46
    • 수정2009-10-24 19:02:57
    연합뉴스
호남을 대표하는 KIA 타이거즈가 마침내 12년 묵은 한(恨)을 풀고 '전통의 명가'를 재건했다. KIA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SK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9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해 1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KIA는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승을 먼저 올리고 나서 2연패를 당하며 몰렸다가 7차전 9회말에 나지완의 끝내기홈런으로 승부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려 놓는 저력을 보였다. KIA는 시즌 초 우승후보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반환점을 돌며 탄탄한 선발진과 김상현의 활약 등을 앞세워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 9회 우승에 빛나는 타이거즈는 1997년 모그룹의 부도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2001년 굴지의 자동차 기업인 KIA에 인수되면서 재기의 기틀을 마련했고 결국 올해 풍성한 결실을 거뒀다. ◇천당과 지옥 거친 한국시리즈 KIA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16~17일 홈인 광주구장에서 타선이 터지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2연승을 올리면서 먼저 승기를 잡았다.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에 9차례 나가서 모두 우승한 전통이 있는터라 이번에도 우승은 떼어논 당상으로 여겨졌다. 19일 SK의 홈구장인 문학구장으로 옮기면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상대 투수 게리 글로버, 채병용의 호투와 박정권의 맹타에 밀리면서 2연패해 오히려 심리적으로 쫓기는 처지가 됐다. 더욱이 상대 SK는 2007년에도 먼저 2경기를 내주고 나서 4연승한 관록의 팀. 반면 KIA에서는 이종범, 이대진, 장성호, 김종국 등 일부만이 한국시리즈에서 뛰어 봤고 나머지는 큰 경기 경험이 없는 탓에 선수단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위기의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 아킬리노 로페즈가 '수호신'으로 등장했다. 5차전을 완봉승으로 장식하며 SK의 상승세를 꺾었다. 흐름을 끌어오며 우승까지 1승만 남겨뒀지만 6차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타선이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3 한 점차로 졌다. 7차전에도 먼저 실점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나지완, 안치홍의 홈런과 김원섭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 짜릿하게 SK를 눌렀다. ◇2009 시즌은 '돌풍의 해' 이번 시즌 전만해도 KIA의 돌풍을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2007~2008년 두 해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SK와 두산 등을 우승후보로 꼽을 뿐이었다. 시즌 초에는 전문가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개막전에서 3연패를 당한 KIA는 4월 중순까지 바닥권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5월부터 서서히 힘을 내기 시작했다. 시즌 초 LG에서 영입한 김상현의 방망이가 폭발했다. 경기마다 괴력을 뿜어낸 김상현은 홈런(36개)과 타점(127점) 두 부문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타선을 이끌었다. 그러자 최희섭이 국내 복귀 3년만에 가장 좋은 성적인 33홈런과 100타점을 뽑았고, 나지완(23홈런-73타점), 안치홍(14홈런-38타점) 등도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는 등 타선이 동반 상승효과를 봤다. 아울러 KIA가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데는 8개 구단 최강을 자랑하는 선발진의 역할이 컸다. 아킬리노 로페즈(14승5패)와 릭 구톰슨(13승4패) 등 용병 듀오는 27승을 합작하며 KIA 마운드의 기둥이 됐다. 특히 두 투수는 완투형 투수로 등판할 때마다 긴 이닝을 책임졌다. 덕분에 약점으로 거론된 불펜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토종 에이스' 윤석민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했다. 언더핸드 유동훈은 평균 자책점 0.53-22세이브를 작성하며 최고의 소방수로 자리 잡았다. 선수들의 맹활약이 이어지면서 KIA는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후반기에는 파죽의 11연승을 달렸다. 8월2일 SK를 따돌리고 단독 1위로 나섰으며 8월에만 20승4패를 기록해 프로야구 통산 월간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12년 걸린 '부활' 타이거즈는 1980~1990년대를 거치며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한 번 몰락하자 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1997년 우승 이후 12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2001년 시즌 중반 KIA로 명패를 바꾸고 나서 구멍 난 전력을 보강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해태는 심각한 자금난 속에 간판스타인 선동열과 이종범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로 트레이드하는 등 전력에 균열이 심한 상황이었다. 우선 이종범과 삼성에서 뛰던 이강철 등 '프랜차이즈 스타'를 데려와 타이거즈의 구심점을 마련했다. 광주일고 출신 메이저리거인 최희섭과 서재응을 각각 최대 15억5천만원, 15억원에 영입했다. 이처럼 꾸준하게 적극적으로 투자했지만 좀처럼 과거의 영예를 되찾지는 못했다. 큰돈을 주고 마해영, 진필중, 박재홍 등 스타를 모셔왔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국시리즈에는 단 한 차례도 나가지 못했다. 2002~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게 포스트시즌 성적의 전부였다. 2002년 LG에 2승3패, 2003년 SK에 3패로 무릎을 꿇었다. KIA는 지난해 감독과 단장을 교체하면서 도약을 노렸다. 하지만 이전처럼 과욕은 부리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야구를 실험했다. 조범현 감독은 부임 첫해 6위에 그쳤지만 올해 마운드 운용 등에서 서두르지 않았다. 기본기와 장기적인 안목을 강조하며 꼬박꼬박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줬고 그 결과 마운드는 시즌 후반 강한 힘을 냈다. 조 감독과 비슷한 시기에 KIA에 온 김조호 단장은 구단 운영의 중요한 방향만 제시할 뿐 선수단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성적 등 결과에 대한 책임만 묻겠다며 코칭스태프의 권한을 보장해 줬다. 벤치와 프런트가 조화를 이루자 지난 수년간 KIA가 투자한 밑거름이 올해 위력을 발휘했다. 선수단의 플레이에도 타이거즈 특유의 끈끈하고 강한 정신력이 묻어나면서 우승까지 차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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