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의 눈물

입력 2009.11.1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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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 암벽에 새긴 그림인 반구대 암각환데요.

암각화의 훼손된 정도와 그 진행 속도가 당장 사라질지도 모를 만큼 심각합니다.

암각화를 비롯한 우리나라 석조 문화재의 보존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동해로 흘러드는 태화강을 거슬러 오르면 강의 상류, 대곡천이 흐르고 넓고 반반한 절벽이 있는 곳.

문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이곳에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국보 제285호.

높이 3미터, 너비 6미터의 반구대 암각화.

국보로 지정된 이 암각화의 그림은 모두 290여 점으로 바다생물과 육지동물들을 주로 새겨놨습니다.

특히 고래가 떼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은 아주 사실적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 모습도 그렸습니다.

사슴과 호랑이도 등장합니다.

암각화의 제작연대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6000년이나 3000년경.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점도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림에서 보여지는 생물학적인 표현의 세밀함은 더욱 놀랍습니다.

목주름 아래로 짧고 굵은 서너 개의 홈이 파인 형태는 귀신고래 모습 그대롭니다.

위턱이 넓고 평평한 게 특징인 혹등고래.

배에 나 있는 여러 개의 굵고 긴 주름은 얼핏 보기에도 똑같습니다.

턱선이 큰 아-치형을 이루는 긴 수염고래.

머리가 크고 길이에 비해서 몸통이 굵은 이 고래의 특징을 잘 살렸습니다.

고래사냥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

2004년 BBC인터넷 판에 실린 이 기사는 세계 학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사적 가치가 입증된 것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프랑스 고고학지에도 소개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살을 들고서 고래는 겨누는 사람.

작살에 찔린 고래.

고래를 끌고 가는 배.

그야말로 보석과도 같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 한반도 끝자락, 울산 태화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한국미술의 원형이란 생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김호석 미술공예과 교수.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태화강변에서 불교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학교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김 교수는 이 당시의 기록부터 관련 자료를 모아왔고 유라시아지역 암각화까지 하나하나 둘러보고 연구한 국내 최고의 암각화 전문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호석(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교수) :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림이 좀 적을 뿐이지 독자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암각화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사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수렵과 이동과 정착 민족이 어떤 형식으로 살았는가를 이 그림은 얘기하고 있는거죠."

하지만 암각화의 훼손 정도와 진행 속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사진에서 붉게 표시된 곳이 1971년 첫 발견 이후 훼손이 진행 중인 부분입니다.

<인터뷰> 김호석 교수(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교수) : "전체 그림에서 제가 볼 때 최고로 우수한 그림이라고 보는 게 이 그림입니다. 호랑이와 고래가 동시대에 가장 우수한 기법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면이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앞부분도 확 패어 버렸죠. 하단 부분, 이렇게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 보세요. 부서지잖아요. 한 겹 있는 게 떨어져 버렸어요. 이게 떨어지면 이게 또 떨어지는데 그림 있었던 부분이 거북이 있는 부분이거든요. 이게 떨어지고 있는 거예요."

<인터뷰> 김호석 교수(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교수) : "암각화는 무너지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보는 거죠. 지금 시급하게 손을 쓰지 않는다면 지금 한 200군데 떨어져 나갔는데 그림 있는 부분만, 그림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말 할 수 없이 다 변형되어 있죠."

훼손이 심각하다는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둘러봤습니다.

취재가 있었던 지난 11일 반구대 암각화는 수면 밑에 잠겨 있었습니다.

1년 중 8개월은 물속에 잠겨있는 암각화.

1965년 사연 댐이 건설되면서 평상시에는 물 밑에 있다가 물이 마르는 갈수기에 잠깐 모습을 보입니다.

<인터뷰> 이재호(반구대 사랑시민연대 대표) : "육안으로 봐서도 희미하다든지 아니면 백화현상, 또 이끼도 끼고, 물이 항상 차 있다가 겨울 되면 얼음이 업니다. 그럴 때 강한 압력 손상을 많이 받고 탈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 간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노력이 당연히 뒤따랐지만 성과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댐 수위를 낮추는 게 급선무지만 그럴 경우 울산시민에게 공급되는 물의 수질이 나빠진다는 게 문젭니다.

먼저 수위부터 낮추고 식수 문제를 풀자는 문화재청의 입장과는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장한연(울산시청 문화예술 과장) : "문화재청이나 울산시나 그 심각성에 대해서 이견이 없다고 봅니다. 절실히 보존도 해야 되고, 다만 물 문제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수위를 낮추자는 안이 제시됐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울산시민이 먹는 청정수가 유실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국토해양부에서 지난해 10월 이와 관련해 실시한 댐 수위 운영에 대한 타당성 조사 보고섭니다.

댐의 수위를 암각화 하단인 52.5미터보다 2미터 가량을 더 낮춰도 2007년 사용량 기준으로 물 공급량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형식에 불과한 것인지 수위 조절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요원합니다.

<인터뷰> 김성배(문화재청 유형문화재 과장) : "오히려 본질은 문화재 보존이 문제인데 지금 물 문제가 더욱 중요한 것처럼 본질이 호도가 되고 있는 아주 답답한 상황입니다. 저희는 또 물 문제...물에 관한한 정부기관 중 직접 담당이 아니고 해서 저희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난처한 지경에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태화강 줄기에는 또 하나의 국보 암각화,

천전리 각석이 남아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기학학적 문양과 명문이 높이 2.7미터,

너비 9.5미터 크기 암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위나 돌도 시간이 흐르면서 깨지고 부서져 버리기 마련,

앞쪽으로 기운 듯 보이는 천전리 각석의 훼손 정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 기울기를 측정했습니다.

레이저 장비로 측정한 암벽의 데이터를 3차원 영상으로 처리했습니다.

쐐기 형태의 암벽 위로 나무가 자라서 무늬가 새겨진 암벽이 주변 암벽에 비해 4도 정도 더 쏠려 있는 게 확인됩니다.

<인터뷰> 이수곤(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 "나무 때문에 암벽을 깎아 놨을 때 암벽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무너지고 나서 보면 나무뿌리가 들어가 있어요. 나무뿌리 들어가서 쐐기 역할을 하는데 정을 놓고 치는 거거든요. 상당히 생각하는 것보다 세다고요."

<녹취> “오늘 새벽 마애삼존불상을 지탱하고 있던 석축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바위 속에 또 다른 마애불이 천오백년 만에 발견됐습니다.”

지난 2003년 여름 발견된 경북 영주의 마애불상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집중호우로 삼존불상의 왼쪽 앞부분의 암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감춰져 있던 불상이 새롭게 발견된 겁니다.

이때에도 바위틈을 파고든 나무뿌리가 붕괴 원인으로 확인됐습니다.

지금은 삼존불상 오른쪽에 석축을 다시 쌓고 그 위에 새로 발견된 불상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른 아침 경주 남산의 남쪽 산등성이를 올랐습니다.

산 중턱쯤 오르자 석불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습니다.

앞으로 기울어진 각도는 22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 불상을 밑 부분에 놓인 바위가 간신히 떠받치고 있는 모양샙니다.

뒤쪽으로는 바위의 갈라진 틈이 보이고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뿌리를 박고 자랍니다.

보물 제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반달 같은 눈썹과 둥근 얼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불상의 앞모습과 달리 암벽 뒤로는 커다란 틈이 벌어져 있습니다.

갈라진 바위틈은 위로 향할수록 커지고 그 사이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훼손이 심각해 보수가 진행 중인 국보 제201호 불상을 보기 위해 경북 봉화군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불상이 조각된 암벽은 앞으로 쓰러질 듯 서 있고 불상의 목과 어깨 뒤로는 굵은 금이 가 있습니다.

불상 본체는 물론이고 암벽이 갈라지면서 급한 대로 접착제로 메웠지만 반쪽짜리 보숩니다.

<인터뷰> 이수곤(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 "여기는 지금 에폭시(접착제)로 틈새를 다 채웠는데 채우면 물은 안 나오겠지만 그 물이 어디로 가겠어요. 뒤로 차오르거든요.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잘못하면 이 불상 전체를 이루고 있는 돌이 무너질 수가 있어요. 그건 어디서 많이 보냐면 토목 공사하면서 옹벽 해놓고 시멘트 해놓고 배수공을 잘못 뚫어 놓으면 수압이 걸려가지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는 최근 국보 1호 남대문을 잃었습니다.

후손에 물려줄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사라지는 문화재를 보며 북받치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하지만 지금도 달라진 건 별반 없어 보입니다.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문화재청과 울산시에 대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댐 수위부터 낮추자는 국무총리실 중재안이 나온 지도 오늘로 꼭 넉 달째.

아무런 변화는 없고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5~6천 년을 꿋꿋이 버텨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댐 건설로 수장된 지 40여 년 만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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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각화의 눈물
    • 입력 2009-11-15 20:02:49
    취재파일K
<앵커 멘트>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 암벽에 새긴 그림인 반구대 암각환데요. 암각화의 훼손된 정도와 그 진행 속도가 당장 사라질지도 모를 만큼 심각합니다. 암각화를 비롯한 우리나라 석조 문화재의 보존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동해로 흘러드는 태화강을 거슬러 오르면 강의 상류, 대곡천이 흐르고 넓고 반반한 절벽이 있는 곳. 문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이곳에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국보 제285호. 높이 3미터, 너비 6미터의 반구대 암각화. 국보로 지정된 이 암각화의 그림은 모두 290여 점으로 바다생물과 육지동물들을 주로 새겨놨습니다. 특히 고래가 떼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은 아주 사실적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 모습도 그렸습니다. 사슴과 호랑이도 등장합니다. 암각화의 제작연대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6000년이나 3000년경.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점도 놀랄만한 일이지만 그림에서 보여지는 생물학적인 표현의 세밀함은 더욱 놀랍습니다. 목주름 아래로 짧고 굵은 서너 개의 홈이 파인 형태는 귀신고래 모습 그대롭니다. 위턱이 넓고 평평한 게 특징인 혹등고래. 배에 나 있는 여러 개의 굵고 긴 주름은 얼핏 보기에도 똑같습니다. 턱선이 큰 아-치형을 이루는 긴 수염고래. 머리가 크고 길이에 비해서 몸통이 굵은 이 고래의 특징을 잘 살렸습니다. 고래사냥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 2004년 BBC인터넷 판에 실린 이 기사는 세계 학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사적 가치가 입증된 것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프랑스 고고학지에도 소개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살을 들고서 고래는 겨누는 사람. 작살에 찔린 고래. 고래를 끌고 가는 배. 그야말로 보석과도 같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 한반도 끝자락, 울산 태화강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한국미술의 원형이란 생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김호석 미술공예과 교수.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태화강변에서 불교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학교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김 교수는 이 당시의 기록부터 관련 자료를 모아왔고 유라시아지역 암각화까지 하나하나 둘러보고 연구한 국내 최고의 암각화 전문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호석(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교수) :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림이 좀 적을 뿐이지 독자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암각화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사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수렵과 이동과 정착 민족이 어떤 형식으로 살았는가를 이 그림은 얘기하고 있는거죠." 하지만 암각화의 훼손 정도와 진행 속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김 교수의 주장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사진에서 붉게 표시된 곳이 1971년 첫 발견 이후 훼손이 진행 중인 부분입니다. <인터뷰> 김호석 교수(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교수) : "전체 그림에서 제가 볼 때 최고로 우수한 그림이라고 보는 게 이 그림입니다. 호랑이와 고래가 동시대에 가장 우수한 기법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면이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앞부분도 확 패어 버렸죠. 하단 부분, 이렇게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 보세요. 부서지잖아요. 한 겹 있는 게 떨어져 버렸어요. 이게 떨어지면 이게 또 떨어지는데 그림 있었던 부분이 거북이 있는 부분이거든요. 이게 떨어지고 있는 거예요." <인터뷰> 김호석 교수(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교수) : "암각화는 무너지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보는 거죠. 지금 시급하게 손을 쓰지 않는다면 지금 한 200군데 떨어져 나갔는데 그림 있는 부분만, 그림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말 할 수 없이 다 변형되어 있죠." 훼손이 심각하다는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둘러봤습니다. 취재가 있었던 지난 11일 반구대 암각화는 수면 밑에 잠겨 있었습니다. 1년 중 8개월은 물속에 잠겨있는 암각화. 1965년 사연 댐이 건설되면서 평상시에는 물 밑에 있다가 물이 마르는 갈수기에 잠깐 모습을 보입니다. <인터뷰> 이재호(반구대 사랑시민연대 대표) : "육안으로 봐서도 희미하다든지 아니면 백화현상, 또 이끼도 끼고, 물이 항상 차 있다가 겨울 되면 얼음이 업니다. 그럴 때 강한 압력 손상을 많이 받고 탈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 간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노력이 당연히 뒤따랐지만 성과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댐 수위를 낮추는 게 급선무지만 그럴 경우 울산시민에게 공급되는 물의 수질이 나빠진다는 게 문젭니다. 먼저 수위부터 낮추고 식수 문제를 풀자는 문화재청의 입장과는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장한연(울산시청 문화예술 과장) : "문화재청이나 울산시나 그 심각성에 대해서 이견이 없다고 봅니다. 절실히 보존도 해야 되고, 다만 물 문제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수위를 낮추자는 안이 제시됐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울산시민이 먹는 청정수가 유실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국토해양부에서 지난해 10월 이와 관련해 실시한 댐 수위 운영에 대한 타당성 조사 보고섭니다. 댐의 수위를 암각화 하단인 52.5미터보다 2미터 가량을 더 낮춰도 2007년 사용량 기준으로 물 공급량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형식에 불과한 것인지 수위 조절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요원합니다. <인터뷰> 김성배(문화재청 유형문화재 과장) : "오히려 본질은 문화재 보존이 문제인데 지금 물 문제가 더욱 중요한 것처럼 본질이 호도가 되고 있는 아주 답답한 상황입니다. 저희는 또 물 문제...물에 관한한 정부기관 중 직접 담당이 아니고 해서 저희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난처한 지경에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태화강 줄기에는 또 하나의 국보 암각화, 천전리 각석이 남아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기학학적 문양과 명문이 높이 2.7미터, 너비 9.5미터 크기 암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위나 돌도 시간이 흐르면서 깨지고 부서져 버리기 마련, 앞쪽으로 기운 듯 보이는 천전리 각석의 훼손 정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 기울기를 측정했습니다. 레이저 장비로 측정한 암벽의 데이터를 3차원 영상으로 처리했습니다. 쐐기 형태의 암벽 위로 나무가 자라서 무늬가 새겨진 암벽이 주변 암벽에 비해 4도 정도 더 쏠려 있는 게 확인됩니다. <인터뷰> 이수곤(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 "나무 때문에 암벽을 깎아 놨을 때 암벽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무너지고 나서 보면 나무뿌리가 들어가 있어요. 나무뿌리 들어가서 쐐기 역할을 하는데 정을 놓고 치는 거거든요. 상당히 생각하는 것보다 세다고요." <녹취> “오늘 새벽 마애삼존불상을 지탱하고 있던 석축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바위 속에 또 다른 마애불이 천오백년 만에 발견됐습니다.” 지난 2003년 여름 발견된 경북 영주의 마애불상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집중호우로 삼존불상의 왼쪽 앞부분의 암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감춰져 있던 불상이 새롭게 발견된 겁니다. 이때에도 바위틈을 파고든 나무뿌리가 붕괴 원인으로 확인됐습니다. 지금은 삼존불상 오른쪽에 석축을 다시 쌓고 그 위에 새로 발견된 불상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른 아침 경주 남산의 남쪽 산등성이를 올랐습니다. 산 중턱쯤 오르자 석불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습니다. 앞으로 기울어진 각도는 22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 불상을 밑 부분에 놓인 바위가 간신히 떠받치고 있는 모양샙니다. 뒤쪽으로는 바위의 갈라진 틈이 보이고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뿌리를 박고 자랍니다. 보물 제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반달 같은 눈썹과 둥근 얼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불상의 앞모습과 달리 암벽 뒤로는 커다란 틈이 벌어져 있습니다. 갈라진 바위틈은 위로 향할수록 커지고 그 사이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훼손이 심각해 보수가 진행 중인 국보 제201호 불상을 보기 위해 경북 봉화군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불상이 조각된 암벽은 앞으로 쓰러질 듯 서 있고 불상의 목과 어깨 뒤로는 굵은 금이 가 있습니다. 불상 본체는 물론이고 암벽이 갈라지면서 급한 대로 접착제로 메웠지만 반쪽짜리 보숩니다. <인터뷰> 이수곤(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 "여기는 지금 에폭시(접착제)로 틈새를 다 채웠는데 채우면 물은 안 나오겠지만 그 물이 어디로 가겠어요. 뒤로 차오르거든요.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잘못하면 이 불상 전체를 이루고 있는 돌이 무너질 수가 있어요. 그건 어디서 많이 보냐면 토목 공사하면서 옹벽 해놓고 시멘트 해놓고 배수공을 잘못 뚫어 놓으면 수압이 걸려가지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는 최근 국보 1호 남대문을 잃었습니다. 후손에 물려줄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사라지는 문화재를 보며 북받치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하지만 지금도 달라진 건 별반 없어 보입니다.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문화재청과 울산시에 대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댐 수위부터 낮추자는 국무총리실 중재안이 나온 지도 오늘로 꼭 넉 달째. 아무런 변화는 없고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5~6천 년을 꿋꿋이 버텨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댐 건설로 수장된 지 40여 년 만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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