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역도 역사에 족적을 남기다

입력 2009.11.28 (21:02) 수정 2009.11.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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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4연패의 위업을 이룬 장미란(26.고양시청)은 여자 최중량급(+75kg급)을 대표하는 역도 스타다.
장미란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당시 세계챔피언 탕궁훙(중국)과 접전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며 국제무대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데 이어 2005년부터 4회 연속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정상 자리를 지켰다.
세계 여자역도 사상 올림픽을 포함해 5년 연속 최고 권위의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장미란이 처음이다. 세계 역도 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낸 것이다.
장미란은 긴 허리와 튼튼한 다리를 타고나 일찌감치 고교 시절부터 한국 여자역도를 이끌어 갈 선수로 평가를 받았다.
키 170cm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안정감과 순간적인 집중력도 다른 역도 선수보다 월등해 고교 때부터 국내에서는 적수가 아예 없었다.
장미란은 상지여중 3학년이던 1998년 10월 역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지도자의 권유로 바벨을 처음 잡았고 다음해 원주공고 시절부터 국내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1999년 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용상 102.5kg, 합계 177.5kg으로 동메달 2개를 따면서 역도계에 이름을 알렸고 2004년 춘계여자대회에서 3관왕이 된 이후로 국내서 한 차례도 정상을 내놓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도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5년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듬해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중이염을 앓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2006년 5월 원주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초청역도대회에서는 합계 318kg을 기록, 한국 여자역도에서 처음으로 세계기록의 주인공도 됐다.
하지만 역도에만 집중하기에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2007년 초 전 소속팀 원주시청과 결별하고 다니던 고려대를 자퇴하는 등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원주시청을 떠난 장미란은 당시 새 둥지를 찾지 못해 한 달여 동안 무적선수로 지내며 대표팀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중등록'이 대회 출전에 걸림돌이 될까 봐 고려대에 등록 신청을 하지 않아 제적 처리됐다.
장미란은 그러나 이중등록 규정이 바뀌어 고려대에 복학을 한 뒤 마음을 다시 잡고 2007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장미란은 종합대회 첫 우승이라는 기쁨도 누렸다.
또 세계선수권에서 최대 맞수 무솽솽을 3회 연속 모두 누르며 '여자 역도의 지존'이 된 장미란은 올해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장미란은 특히 이번 대회 용상에서 187kg을 들어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세계신기록 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을 듯하다.
합계에서도 압도적인 기록차로 세계대회를 4연패하면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전망도 밝게 했다.
앞으로 장미란의 목표는 '꿈의 200kg'이다.
한국 역도계는 장미란이 근력을 더 키우고 좌우 균형을 더 잘 잡는다면 용상에서 200kg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있다. 장미란이 용상에서 200kg을 든다면 세계 여자 역도 사상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이 될 전망이다.
아버지 장호철(55)씨와 어머니 이현자(51)씨 사이의 1남2녀 가운데 맏딸이며 여동생 장미령(24)도 고양시청 소속 역도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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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란, 역도 역사에 족적을 남기다
    • 입력 2009-11-28 21:02:57
    • 수정2009-11-28 22:13:07
    연합뉴스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4연패의 위업을 이룬 장미란(26.고양시청)은 여자 최중량급(+75kg급)을 대표하는 역도 스타다. 장미란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당시 세계챔피언 탕궁훙(중국)과 접전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며 국제무대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데 이어 2005년부터 4회 연속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정상 자리를 지켰다. 세계 여자역도 사상 올림픽을 포함해 5년 연속 최고 권위의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장미란이 처음이다. 세계 역도 사상 보기 드문 기록을 낸 것이다. 장미란은 긴 허리와 튼튼한 다리를 타고나 일찌감치 고교 시절부터 한국 여자역도를 이끌어 갈 선수로 평가를 받았다. 키 170cm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안정감과 순간적인 집중력도 다른 역도 선수보다 월등해 고교 때부터 국내에서는 적수가 아예 없었다. 장미란은 상지여중 3학년이던 1998년 10월 역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지도자의 권유로 바벨을 처음 잡았고 다음해 원주공고 시절부터 국내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1999년 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용상 102.5kg, 합계 177.5kg으로 동메달 2개를 따면서 역도계에 이름을 알렸고 2004년 춘계여자대회에서 3관왕이 된 이후로 국내서 한 차례도 정상을 내놓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도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5년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듬해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중이염을 앓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2006년 5월 원주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초청역도대회에서는 합계 318kg을 기록, 한국 여자역도에서 처음으로 세계기록의 주인공도 됐다. 하지만 역도에만 집중하기에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2007년 초 전 소속팀 원주시청과 결별하고 다니던 고려대를 자퇴하는 등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원주시청을 떠난 장미란은 당시 새 둥지를 찾지 못해 한 달여 동안 무적선수로 지내며 대표팀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중등록'이 대회 출전에 걸림돌이 될까 봐 고려대에 등록 신청을 하지 않아 제적 처리됐다. 장미란은 그러나 이중등록 규정이 바뀌어 고려대에 복학을 한 뒤 마음을 다시 잡고 2007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장미란은 종합대회 첫 우승이라는 기쁨도 누렸다. 또 세계선수권에서 최대 맞수 무솽솽을 3회 연속 모두 누르며 '여자 역도의 지존'이 된 장미란은 올해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장미란은 특히 이번 대회 용상에서 187kg을 들어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세계신기록 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을 듯하다. 합계에서도 압도적인 기록차로 세계대회를 4연패하면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전망도 밝게 했다. 앞으로 장미란의 목표는 '꿈의 200kg'이다. 한국 역도계는 장미란이 근력을 더 키우고 좌우 균형을 더 잘 잡는다면 용상에서 200kg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있다. 장미란이 용상에서 200kg을 든다면 세계 여자 역도 사상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이 될 전망이다. 아버지 장호철(55)씨와 어머니 이현자(51)씨 사이의 1남2녀 가운데 맏딸이며 여동생 장미령(24)도 고양시청 소속 역도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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