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효도 관광 갔다 참변…마을 전체 ‘초상집’

입력 2009.12.18 (08:53) 수정 2009.1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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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모처럼 온천 관광을 떠났다가 서른 명의 노인들이 참변을 당한 경주 관광버스 참사. 희생자들 모두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사이라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함께 경로당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웃들을 한꺼번에 잃은 충격이 오죽할까요.



최서희 기자,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고요?



<리포트>



함께 온천여행길에 올랐던 이웃들의 생사가 하루아침에 엇갈렸습니다.



여행을 떠났던 서른 명의 마을 주민 중 사망자만 17명.



날벼락 같은 소식에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던 가족과 주민들은 당시의 참혹한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말을 잇지 못합니다.



<녹취> 부상자 가족 : “사고 났다고 그래서 왔는데 구급차가 막 들어오는 거예요. 환자들이 들어왔다가 30분, 1시간 단위로 나가는 거예요. 영안실로... 장례식장.”



사고 당시 직접 119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던 김 할머니는 지금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요.



<녹취> 김OO(부상자) : “차가 가다가 꿈틀거리더라고. 또 가다가 꿈틀거리데. 두 번 꿈틀거릴 때 아차 해서 의자를 붙잡았거든. 세 번째는 꿈틀거리는 것 없이 우당탕 떨어져서 (버스가) 데굴데굴 굴러가더라. 우리 앞집 아줌마하고 나하고 있는데 앞집 아줌마 보니까 피투성이가 돼서 앉아있고.”



척추와 골반 등이 골절된 할머니는 그나마 부상 정도가 가장 경미한 편, 하지만 할머니는 이마저도 원망스럽습니다.



<녹취> 김OO(부상자) :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죽었지. 앞에 친구 다 친하지. 경로당에서 노는 친구들 다 친하지. 우리 친한 친구가 다 죽었으면 같이 저승 갈 걸 그랬다.”



합동분향소 설치가 늦어지자 일부 유족들은 따로 장례식장을 마련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유족들과 주민들은 몇 걸음 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아 오열합니다.



<현장음> “속만 썩이고... 조금만 참아주지.”



84살의 노모를 떠나보낸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들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 속 한으로 남았는데요.



<녹취> 유가족 : “얼마 전에 우리 아이들이 왔는데 엄마한테 못 데리고 간 것. 엄마가 손자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 자식을 되게 좋아했거든. 그걸 못 보여줬는데 가슴에 멍이 들었어. 그게 제일 안타깝지. 애들 데려갈걸.”



남편 혼자 여행을 보냈다가 홀로 남게 된 할머니는 애통함에 종일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현장음> “밤도 지겹고... 낮도 지겹고...”



일부 주민들은 사고 경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박재환(마을주민) : “어른들 모시고 노인들이 갔는데 왜 좋은 도로로 안 가고 하필 거기로 왔는지 큰 도로 참 잘해놨어요. 거기로 오지 왜 여기로 왔느냐 이거예요.”



사고가 일어난 곳은 왕복 2차선의 좁은 내리막길 도로. 마을 도착까지 불과 8킬로미터 밖에 남지 않았던 곳이라 안타까움이 더욱 컸습니다.



처참하게 부서진 차량과 흙더미에 파묻힌 옷가지와 신발, 사고 시간에 멈춰버린 시계가 추락 당시의 충격을 말해줍니다.



<인터뷰> 교통사고 조사반 : “경사지고 커브길이다 보니까 도로 구조가 이런 데는 열악하거든요.”



이번 사고로 적지 않은 마을 주민을 떠나보낸 유림마을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는 인적이 없어 스산하기까지 합니다.



<녹취> 마을주민 : “(피해자가) 한집 건너 하나씩이니까 남은 몇 집 없잖아요. 진짜 가슴이 턱 내려앉는 게... 동네 할머니들 다 나와서 큰일 났다고 어쩌면 좋냐고... 사망자는 계속 늘고...”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않아 화를 면한 마을 노인들은 안도감보다 오랜 동무를 잃은 비통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데요.



<인터뷰> 마을주민 : “한 80년 친구지. 친구들 다 죽고 혼자 살아서 뭐하나.”



<인터뷰> 마을주민 : “마음이 덜컥거려서 집에 들어앉지도 못하고 왔다갔다하고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못 있겠다니까.”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이웃이기에 이번 참사가 더욱 기막힐 뿐입니다.



<인터뷰> 마을주민 : “고생하고 살다가 이제 살만해지니까 돌아가셔서 그게 얼마나 불쌍하나. 없이 살다가 이제 살 만해지니까... 그래서 불쌍하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오늘부터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장례절차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심신이 약한 고령의 부상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의 추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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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12-18 08:53:30
    • 수정2009-12-1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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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온천 관광을 떠났다가 서른 명의 노인들이 참변을 당한 경주 관광버스 참사. 희생자들 모두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사이라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함께 경로당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웃들을 한꺼번에 잃은 충격이 오죽할까요.

최서희 기자,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고요?

<리포트>

함께 온천여행길에 올랐던 이웃들의 생사가 하루아침에 엇갈렸습니다.

여행을 떠났던 서른 명의 마을 주민 중 사망자만 17명.

날벼락 같은 소식에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던 가족과 주민들은 당시의 참혹한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말을 잇지 못합니다.

<녹취> 부상자 가족 : “사고 났다고 그래서 왔는데 구급차가 막 들어오는 거예요. 환자들이 들어왔다가 30분, 1시간 단위로 나가는 거예요. 영안실로... 장례식장.”

사고 당시 직접 119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던 김 할머니는 지금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요.

<녹취> 김OO(부상자) : “차가 가다가 꿈틀거리더라고. 또 가다가 꿈틀거리데. 두 번 꿈틀거릴 때 아차 해서 의자를 붙잡았거든. 세 번째는 꿈틀거리는 것 없이 우당탕 떨어져서 (버스가) 데굴데굴 굴러가더라. 우리 앞집 아줌마하고 나하고 있는데 앞집 아줌마 보니까 피투성이가 돼서 앉아있고.”

척추와 골반 등이 골절된 할머니는 그나마 부상 정도가 가장 경미한 편, 하지만 할머니는 이마저도 원망스럽습니다.

<녹취> 김OO(부상자) :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죽었지. 앞에 친구 다 친하지. 경로당에서 노는 친구들 다 친하지. 우리 친한 친구가 다 죽었으면 같이 저승 갈 걸 그랬다.”

합동분향소 설치가 늦어지자 일부 유족들은 따로 장례식장을 마련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유족들과 주민들은 몇 걸음 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아 오열합니다.

<현장음> “속만 썩이고... 조금만 참아주지.”

84살의 노모를 떠나보낸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들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 속 한으로 남았는데요.

<녹취> 유가족 : “얼마 전에 우리 아이들이 왔는데 엄마한테 못 데리고 간 것. 엄마가 손자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 자식을 되게 좋아했거든. 그걸 못 보여줬는데 가슴에 멍이 들었어. 그게 제일 안타깝지. 애들 데려갈걸.”

남편 혼자 여행을 보냈다가 홀로 남게 된 할머니는 애통함에 종일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현장음> “밤도 지겹고... 낮도 지겹고...”

일부 주민들은 사고 경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박재환(마을주민) : “어른들 모시고 노인들이 갔는데 왜 좋은 도로로 안 가고 하필 거기로 왔는지 큰 도로 참 잘해놨어요. 거기로 오지 왜 여기로 왔느냐 이거예요.”

사고가 일어난 곳은 왕복 2차선의 좁은 내리막길 도로. 마을 도착까지 불과 8킬로미터 밖에 남지 않았던 곳이라 안타까움이 더욱 컸습니다.

처참하게 부서진 차량과 흙더미에 파묻힌 옷가지와 신발, 사고 시간에 멈춰버린 시계가 추락 당시의 충격을 말해줍니다.

<인터뷰> 교통사고 조사반 : “경사지고 커브길이다 보니까 도로 구조가 이런 데는 열악하거든요.”

이번 사고로 적지 않은 마을 주민을 떠나보낸 유림마을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는 인적이 없어 스산하기까지 합니다.

<녹취> 마을주민 : “(피해자가) 한집 건너 하나씩이니까 남은 몇 집 없잖아요. 진짜 가슴이 턱 내려앉는 게... 동네 할머니들 다 나와서 큰일 났다고 어쩌면 좋냐고... 사망자는 계속 늘고...”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않아 화를 면한 마을 노인들은 안도감보다 오랜 동무를 잃은 비통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데요.

<인터뷰> 마을주민 : “한 80년 친구지. 친구들 다 죽고 혼자 살아서 뭐하나.”

<인터뷰> 마을주민 : “마음이 덜컥거려서 집에 들어앉지도 못하고 왔다갔다하고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못 있겠다니까.”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이웃이기에 이번 참사가 더욱 기막힐 뿐입니다.

<인터뷰> 마을주민 : “고생하고 살다가 이제 살만해지니까 돌아가셔서 그게 얼마나 불쌍하나. 없이 살다가 이제 살 만해지니까... 그래서 불쌍하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오늘부터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장례절차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심신이 약한 고령의 부상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의 추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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