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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성시백 ‘쇼트트랙 2인자 옛말’ 금빛 선두
입력 2010.01.15 (07:06) 수정 2010.01.20 (10:11) 연합뉴스
 항상 그의 앞에는 뛰어넘기 힘겨운 높은 벽들로 가득했다. 안현수(성남시청)와 이호석(고양시청)은 언제나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였고, 태극마크를 향한 조바심에 좌절도 많이 맛봤다.



하지만 ’영원한 2인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은 이제 옛말. 성시백(23.용인시청)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당당히 금메달 텃밭 쇼트트랙의 선두 주자로 화려한 금빛 질주를 꿈꾸고 있다.



성시백이 국내 쇼트트랙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리긴 것은 지난 2002년 3월 치러진 제16회 전국 학생종별종합쇼트트랙선수권대회 1,0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다.



그해 2월 한국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이 우승하고도 판정 시비에 말리면서 아쉽게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에게 금메달을 내줬던 아픔을 겪었다.



TV로 선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성시백은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고, 2002년 12월 전국남녀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종합 3위를 달성하며 마침내 꿈에 그리던 주니어 대표선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헝가리에서 열린 2003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출전, 은메달 2개(1,000m.1,500m)와 동메달(500m)을 목에 걸면서 종합 3위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후 성시백은 주목받는 쇼트트랙 유망주로 국내 대회를 휩쓸면서 태극마크를 향한 도전에 나섰고, 2004-200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에 출전해 계주 금메달을 합작하며 본격적인 대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태극마크의 기쁨도 잠시. 성시백의 성적은 들쭉날쭉했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05년 대표선발전에서 탈락의 아픔을 맛보고 말았다.



이후 ’나홀로’ 훈련을 하며 와신상담한 성시백은 2006년 4월 제21회 전국남녀 종합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500m와 3,000m 슈퍼파이널을 석권하면서 안현수(한국체대), 이호석(경희대) 등을 제치고 남자부 종합 1위에 올라 대표선발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2006년 9월 펼쳐진 창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6위에 머문 성시백은 대표선수 자격을 주는 5위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결국 성시백은 아시안게임 대신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나섰고, ’한풀이 질주’로 토리노를 후끈하게 달군 성시백은 500m와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 5,000m 계주까지 모든 종목 금메달의 신화를 일궈냈다. 성시백의 금메달 질주 덕분에 한국은 국제대회 사상 첫 종합 1위 달성의 기쁨도 맛봤다.



이후 성숙한 기량으로 국내 무대와 국제무대를 섭렵한 성시백은 지난해 4월 제24회 전국남녀 종합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겸 2009-2010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당당히 남자부 종합 1위를 차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면서 4년 전 놓쳤던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뤄냈다.



성시백의 특징은 전 종목을 고르게 잘 한다는 것. 특히 한국 선수들의 취약종목인 500m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어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릴 만 하다.



성시백의 메달 작전은 아웃코스 추월이다. 인코스 추월은 자칫 몸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실격의 위험이 있어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아웃코스 추월을 통해 ’금빛 열매’를 맺겠다는 각오뿐이다.
  • 성시백 ‘쇼트트랙 2인자 옛말’ 금빛 선두
    • 입력 2010-01-15 07:06:28
    • 수정2010-01-20 10:11:18
    연합뉴스
 항상 그의 앞에는 뛰어넘기 힘겨운 높은 벽들로 가득했다. 안현수(성남시청)와 이호석(고양시청)은 언제나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였고, 태극마크를 향한 조바심에 좌절도 많이 맛봤다.



하지만 ’영원한 2인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은 이제 옛말. 성시백(23.용인시청)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당당히 금메달 텃밭 쇼트트랙의 선두 주자로 화려한 금빛 질주를 꿈꾸고 있다.



성시백이 국내 쇼트트랙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리긴 것은 지난 2002년 3월 치러진 제16회 전국 학생종별종합쇼트트랙선수권대회 1,0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다.



그해 2월 한국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이 우승하고도 판정 시비에 말리면서 아쉽게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에게 금메달을 내줬던 아픔을 겪었다.



TV로 선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성시백은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고, 2002년 12월 전국남녀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종합 3위를 달성하며 마침내 꿈에 그리던 주니어 대표선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헝가리에서 열린 2003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출전, 은메달 2개(1,000m.1,500m)와 동메달(500m)을 목에 걸면서 종합 3위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후 성시백은 주목받는 쇼트트랙 유망주로 국내 대회를 휩쓸면서 태극마크를 향한 도전에 나섰고, 2004-200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에 출전해 계주 금메달을 합작하며 본격적인 대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태극마크의 기쁨도 잠시. 성시백의 성적은 들쭉날쭉했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05년 대표선발전에서 탈락의 아픔을 맛보고 말았다.



이후 ’나홀로’ 훈련을 하며 와신상담한 성시백은 2006년 4월 제21회 전국남녀 종합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500m와 3,000m 슈퍼파이널을 석권하면서 안현수(한국체대), 이호석(경희대) 등을 제치고 남자부 종합 1위에 올라 대표선발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2006년 9월 펼쳐진 창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6위에 머문 성시백은 대표선수 자격을 주는 5위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결국 성시백은 아시안게임 대신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나섰고, ’한풀이 질주’로 토리노를 후끈하게 달군 성시백은 500m와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 5,000m 계주까지 모든 종목 금메달의 신화를 일궈냈다. 성시백의 금메달 질주 덕분에 한국은 국제대회 사상 첫 종합 1위 달성의 기쁨도 맛봤다.



이후 성숙한 기량으로 국내 무대와 국제무대를 섭렵한 성시백은 지난해 4월 제24회 전국남녀 종합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겸 2009-2010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당당히 남자부 종합 1위를 차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면서 4년 전 놓쳤던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뤄냈다.



성시백의 특징은 전 종목을 고르게 잘 한다는 것. 특히 한국 선수들의 취약종목인 500m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어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릴 만 하다.



성시백의 메달 작전은 아웃코스 추월이다. 인코스 추월은 자칫 몸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실격의 위험이 있어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아웃코스 추월을 통해 ’금빛 열매’를 맺겠다는 각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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