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틴-A 권위자 클리그먼 별세

입력 2010.02.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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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름 치료와 주름 방지에 효능이 있는 레틴-A의 권위자 앨버트 클리그먼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93세.

클리그먼은 지난 9일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슴졌다고 그의 딸 게일 클리그먼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21일 밝혔다.

클리그먼은 햇빛과 주름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규명한 피부병학자로 햇빛에 의한 피부 노화를 가리키는 '포토에이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1967년 여드름 치료약으로 일반적으로 트레티노인으로 알려진 비타민 A 파생물질 레틴-A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이어서 1986년에는 레틴-A가 주름 개선 능력이 있음을 발견해 새로운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실시한 전력에 의해 퇴색됐다. 그는 1951년에서 1974년까지 홈스버그 교도소에서 재소자 수백명을 상대로 진행된 피부 실험을 지휘했다.

클리그먼은 1966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교도소를 방문했던 당시를 회고하며 "내 눈앞에 수 에이커의 피부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비옥한 토지를 처음으로 보고있는 농부였다"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독성 화학물들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향정신성 약품, 다이옥신, "피부 강화제"들의 효능에 대한 실험이 포함됐다. 이 실험들은 대부분 제약사, 화학업체, 화장품 업체, 연방 기구 및 군대와의 계약에 의해 진행됐다.

당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교도소 측은 실험에 참가하는 대가로 사례금을 받았다.

홈스버그 교도소 실험은 터스키지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실험에서 흑인 재소자들이 매독에 걸린 일로1974년 의회 청문회가 열린 가운데 시당국이 실험을 금지하면서 중단됐다.

2000년 홈스버그 교도소 실험 관련 책이 출판된 직후 교도소 출신 약 300명이 클리그먼과 펜실베이니아주, 존슨 앤 존슨, 다우 케미컬을 상대로 실험이 건강악화를 가져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나 재판은 진행되지 않았다.

클리그먼은 실험 대상자들은 어떠한 장기적인 피해도 입지 않았으며 연구가 가져온 과학적 진보들을 생각할 때 연구를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1916년 사우스 필라델피아의 러시아 이민 가정에서 출생한 클리그먼은 어린시절 보이 스카우트 활동이 자신의 성공에 기여한 바 크다고 말해왔다. 스카우트 단원들과의 야외 활동이 식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피부병학 연구에 이르게됐다.

그는 1939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1942년 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진균병에 대한 관심으로 의과대학에 들어가 피부병학을 전공한 뒤 1947년 학위를 취득했다.

2차대전 초 연방정부는 그에게 남미로 가서 태평양에 배치된 병사들을 위한 말라리아 및 모기 퇴치 살충제용 식물 재료를 연구하도록 의뢰했으나 돌연 취소했다. 클리그먼은 자신이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1992년 '아메리칸 헬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그 당시 "지극히 진보적하고 이상주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500편 이상의 연구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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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틴-A 권위자 클리그먼 별세
    • 입력 2010-02-22 09:39:47
    연합뉴스
여드름 치료와 주름 방지에 효능이 있는 레틴-A의 권위자 앨버트 클리그먼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93세. 클리그먼은 지난 9일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슴졌다고 그의 딸 게일 클리그먼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21일 밝혔다. 클리그먼은 햇빛과 주름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규명한 피부병학자로 햇빛에 의한 피부 노화를 가리키는 '포토에이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1967년 여드름 치료약으로 일반적으로 트레티노인으로 알려진 비타민 A 파생물질 레틴-A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이어서 1986년에는 레틴-A가 주름 개선 능력이 있음을 발견해 새로운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실시한 전력에 의해 퇴색됐다. 그는 1951년에서 1974년까지 홈스버그 교도소에서 재소자 수백명을 상대로 진행된 피부 실험을 지휘했다. 클리그먼은 1966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교도소를 방문했던 당시를 회고하며 "내 눈앞에 수 에이커의 피부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비옥한 토지를 처음으로 보고있는 농부였다"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독성 화학물들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향정신성 약품, 다이옥신, "피부 강화제"들의 효능에 대한 실험이 포함됐다. 이 실험들은 대부분 제약사, 화학업체, 화장품 업체, 연방 기구 및 군대와의 계약에 의해 진행됐다. 당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교도소 측은 실험에 참가하는 대가로 사례금을 받았다. 홈스버그 교도소 실험은 터스키지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실험에서 흑인 재소자들이 매독에 걸린 일로1974년 의회 청문회가 열린 가운데 시당국이 실험을 금지하면서 중단됐다. 2000년 홈스버그 교도소 실험 관련 책이 출판된 직후 교도소 출신 약 300명이 클리그먼과 펜실베이니아주, 존슨 앤 존슨, 다우 케미컬을 상대로 실험이 건강악화를 가져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나 재판은 진행되지 않았다. 클리그먼은 실험 대상자들은 어떠한 장기적인 피해도 입지 않았으며 연구가 가져온 과학적 진보들을 생각할 때 연구를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1916년 사우스 필라델피아의 러시아 이민 가정에서 출생한 클리그먼은 어린시절 보이 스카우트 활동이 자신의 성공에 기여한 바 크다고 말해왔다. 스카우트 단원들과의 야외 활동이 식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피부병학 연구에 이르게됐다. 그는 1939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1942년 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진균병에 대한 관심으로 의과대학에 들어가 피부병학을 전공한 뒤 1947년 학위를 취득했다. 2차대전 초 연방정부는 그에게 남미로 가서 태평양에 배치된 병사들을 위한 말라리아 및 모기 퇴치 살충제용 식물 재료를 연구하도록 의뢰했으나 돌연 취소했다. 클리그먼은 자신이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1992년 '아메리칸 헬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그 당시 "지극히 진보적하고 이상주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500편 이상의 연구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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