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광대’ 배삼룡, 웃음 남기고 하늘로

입력 2010.02.23 (20:35) 수정 2010.02.2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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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비실 비실’, ’개다리춤’, 어수룩한 바보 연기로 온 국민을 웃음짓게 했던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 배삼룡씨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나 없이 힘들고 어렵던 시절을 잠시나마 웃음으로 버틸 수 있게 해줬던 고인의 아름다운 삶을 조성훈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비실 비실 다리만 떨어도... 능청스런 몸짓 하나에도... 모두를 눈물나게 웃음짓게 했던 코미디언 배삼룡.



알듯 모를 듯한 표정만을 남겨두고 영면의 길에 접어든 배삼룡씨, 고인이 떠난 빈 자리엔 이젠 웃음 대신 슬픔만이 가득합니다.



<인터뷰>배동진(장남) : "의식이 있었을 때 걱정마라 무대에 다시 설 것이다, 그 이후론 의식을 잃으셨죠."



<인터뷰> 임하룡(코미디언) :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해방이듬해인 1946년, 스무 살 때부터 시작된 악극 생활...



그리고 이어지는 정식 코미디언 데뷔.



’삼룡’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빙긋 웃음짓게 하고... 비실거리는 이른바 ’개다리춤’은 울던 아이의 울음마저 그치게 할 정도로 사랑을 받으며 전국민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너나 없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한껏 낮춘 어수룩한 바보 연기는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특효약이었습니다.



<녹취> 故 배삼룡(코미디언/2003년) : "나는 당신네들(시청자들)보다 못하다. 모든 면에서, 그런 생각으로 옷도 좀 이상한 옷 입고 그래서 나를 보는 데 아주 편안하게 봐 주십쇼 하는 뜻에서 (바보 연기를 했습니다.)"



흑백TV 시절 6~70년대 최고의 스타가 된 배삼룡씨.



당시 방송사 간에는 그를 섭외하기 위해 납치 소동을 벌일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늘 남을 즐겁게 하는 존재였지만, 80년대 군사 정권의 방송출연금지 조처에다 사업 실패와 이혼 등 말년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2005년 : "(출연정지 이유가) 저질이라고... 내가 옷을 벗고 나온 거도 아닌데 사실 전두환 선생님이 나를 좀 미워하긴 했죠."



하지만 온갖 인생의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무대는 그를 지탱시켜주는 한없는 힘이었습니다.



<인터뷰> 2003년 : "무대에 한번 나갔다 오면 보약을 세 첩 먹은 것 보다도 더 약효, 효험이 있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서고자 했던 고인의 열망은 그러나 병마 앞에서 끝내 스러지고 맙니다.



지난 2007년 시작된 3년여간의 투병생활, 2억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못내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깨어있을 때마다 무대에 다시 서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고인.



<녹취>배주영(삼녀) : "인사 한 번 해 주실 거예요? 손 한 번 흔들어 주실 거야?"



그의 열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행복한 웃음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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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광대’ 배삼룡, 웃음 남기고 하늘로
    • 입력 2010-02-23 20:35:43
    • 수정2010-02-23 20:41:31
    뉴스타임
<앵커 멘트>

’비실 비실’, ’개다리춤’, 어수룩한 바보 연기로 온 국민을 웃음짓게 했던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 배삼룡씨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나 없이 힘들고 어렵던 시절을 잠시나마 웃음으로 버틸 수 있게 해줬던 고인의 아름다운 삶을 조성훈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비실 비실 다리만 떨어도... 능청스런 몸짓 하나에도... 모두를 눈물나게 웃음짓게 했던 코미디언 배삼룡.

알듯 모를 듯한 표정만을 남겨두고 영면의 길에 접어든 배삼룡씨, 고인이 떠난 빈 자리엔 이젠 웃음 대신 슬픔만이 가득합니다.

<인터뷰>배동진(장남) : "의식이 있었을 때 걱정마라 무대에 다시 설 것이다, 그 이후론 의식을 잃으셨죠."

<인터뷰> 임하룡(코미디언) :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해방이듬해인 1946년, 스무 살 때부터 시작된 악극 생활...

그리고 이어지는 정식 코미디언 데뷔.

’삼룡’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빙긋 웃음짓게 하고... 비실거리는 이른바 ’개다리춤’은 울던 아이의 울음마저 그치게 할 정도로 사랑을 받으며 전국민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너나 없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한껏 낮춘 어수룩한 바보 연기는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특효약이었습니다.

<녹취> 故 배삼룡(코미디언/2003년) : "나는 당신네들(시청자들)보다 못하다. 모든 면에서, 그런 생각으로 옷도 좀 이상한 옷 입고 그래서 나를 보는 데 아주 편안하게 봐 주십쇼 하는 뜻에서 (바보 연기를 했습니다.)"

흑백TV 시절 6~70년대 최고의 스타가 된 배삼룡씨.

당시 방송사 간에는 그를 섭외하기 위해 납치 소동을 벌일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늘 남을 즐겁게 하는 존재였지만, 80년대 군사 정권의 방송출연금지 조처에다 사업 실패와 이혼 등 말년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2005년 : "(출연정지 이유가) 저질이라고... 내가 옷을 벗고 나온 거도 아닌데 사실 전두환 선생님이 나를 좀 미워하긴 했죠."

하지만 온갖 인생의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무대는 그를 지탱시켜주는 한없는 힘이었습니다.

<인터뷰> 2003년 : "무대에 한번 나갔다 오면 보약을 세 첩 먹은 것 보다도 더 약효, 효험이 있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서고자 했던 고인의 열망은 그러나 병마 앞에서 끝내 스러지고 맙니다.

지난 2007년 시작된 3년여간의 투병생활, 2억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못내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깨어있을 때마다 무대에 다시 서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고인.

<녹취>배주영(삼녀) : "인사 한 번 해 주실 거예요? 손 한 번 흔들어 주실 거야?"

그의 열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행복한 웃음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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