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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객원가수 꼬리표? 음악있어 행복했죠”
입력 2010.02.24 (17:26) 연합뉴스
정인(본명 최정인ㆍ30)에게는 ’객원 보컬’, ’피처링 가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다른 가수의 노래에 가미된 그의 음색은 ’포스트 한영애’, ’차세대 윤복희’라는 찬사와 함께 대중에게 각인됐다.



2001년 결성된 밴드 지.플라(G.Fla)에서 보컬로 활동한 정인은 2002년 리쌍 1집의 ’러시(Rush)’에 피처링 참여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리쌍의 ’리쌍 블루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를 비롯해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박선주, 바비킴, MC몽 등의 음반에서 음산하면서도 중량감있는 보컬을 선보였다. 많은 가수가 그의 목소리를 탐냈다.



2007년 지.플라가 해체된 뒤 홀로서기를 결심한 그는 다음달 9일 자기 이름으로 된 첫 솔로음반 ’정인 프롬 안드로메다’를 발표한다.



최근 만난 그는 무대에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던 ’디바’로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체구, 카키색 점퍼에 귀를 덮은 모자를 쓴 앳된 모습이었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PC통신에서 지.플라의 보컬 영입 공지를 보고 오디션을 봤고 그게 가수로서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약 10년을 노래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음반 한장 없었기에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서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자세가 엿보였다.



"해가 넘어갈 때 스트레스받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상관없었어요. 음악하는 환경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거든요. 리쌍 오빠들 행사에 함께 다니며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생각도 안 했고요. 20대여서 그랬을까요? 다행히 집이 월세가 아니라 전세이기도 했고요. 호호."



그는 여러 가수의 음반에 참여하며 인맥도 쌓았고 밴드 시절 비트있는 네오 솔만 고집했는데 다양한 장르에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리쌍의 길이 프로듀싱한 그의 음반은 흑인 음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일렉트로닉 팝과 어쿠스틱 발라드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수록곡이 한번에 나온 게 아니라 길 오빠와 3년에 걸쳐 20여곡을 녹음해 5곡을 추렸다"며 "음악 스타일에 대한 계획보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즉흥적으로 작업했다. 사실 밴드 시절에는 네오 솔을 향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중과 진심이 통할 노래만 담았다"고 말했다.



이적이 작사, 작곡, 편곡한 타이틀곡 ’미워요’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노랫말과 드라마틱한 곡 구성이 돋보이는 발라드다.



또 알렉스의 보컬과 타블로의 랩을 더한 ’쇼(Show)!’, 박정아의 보컬과 쥬얼리 하주연의 랩이 가미된 ’걸스 온 쇼크(Girls On Shock)’에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바탕으로 경쾌한 비트가 실렸다.



정인이 작사, 작곡한 ’고마워’에는 8년간 만난 기타리스트 남자친구가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를 선물했다. 집에서 가이드 녹음을 할 때 심적인 의지가 되준 남자친구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는 수록곡 전반에서 목소리에 힘을 빼고 반주보다 음색 자체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 보컬의 소리에 집중한 건, 사실 음악을 하기에 치명적인 장애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살 때 갑자기 세상의 소리가 안 들렸어요. 병원 진단 결과 왼쪽은 원래 안 들리고, 오른쪽 귀는 당시 중이염이었대요. 서라운드 스테레오에서 나오는 소리의 방향에 둔하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제 소리 자체에 더 집중하는 힘이 길러졌어요."



한영애, 윤복희, 팝스타 메이시 그레이의 음색에 비교되지만 때로는 타고나기 보다 만들어내는 목소리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분들의 음악을 좋아했다"며 "따라부르다보니 지금의 내 목소리가 됐다.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분명 영향은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닮고 싶은 가수는 1970년대 신중현 사단에서 활동한 김정미다.



"김정미씨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3년 전인데 이후 CD와 LP를 사서 열심히 들었어요. 저에게 그분은 전설 같아요. 음악으로 정점을 찍으신 후 미국으로 떠나셔서 사람의 흔적보다 영감을 주는 음악만 남기셨잖아요. 김정미씨 외에도 송창식, 배호 선배님처럼 우리만의 정서를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 정인 “객원가수 꼬리표? 음악있어 행복했죠”
    • 입력 2010-02-24 17:26:07
    연합뉴스
정인(본명 최정인ㆍ30)에게는 ’객원 보컬’, ’피처링 가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다른 가수의 노래에 가미된 그의 음색은 ’포스트 한영애’, ’차세대 윤복희’라는 찬사와 함께 대중에게 각인됐다.



2001년 결성된 밴드 지.플라(G.Fla)에서 보컬로 활동한 정인은 2002년 리쌍 1집의 ’러시(Rush)’에 피처링 참여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리쌍의 ’리쌍 블루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를 비롯해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박선주, 바비킴, MC몽 등의 음반에서 음산하면서도 중량감있는 보컬을 선보였다. 많은 가수가 그의 목소리를 탐냈다.



2007년 지.플라가 해체된 뒤 홀로서기를 결심한 그는 다음달 9일 자기 이름으로 된 첫 솔로음반 ’정인 프롬 안드로메다’를 발표한다.



최근 만난 그는 무대에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던 ’디바’로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체구, 카키색 점퍼에 귀를 덮은 모자를 쓴 앳된 모습이었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PC통신에서 지.플라의 보컬 영입 공지를 보고 오디션을 봤고 그게 가수로서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약 10년을 노래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음반 한장 없었기에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서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자세가 엿보였다.



"해가 넘어갈 때 스트레스받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상관없었어요. 음악하는 환경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거든요. 리쌍 오빠들 행사에 함께 다니며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생각도 안 했고요. 20대여서 그랬을까요? 다행히 집이 월세가 아니라 전세이기도 했고요. 호호."



그는 여러 가수의 음반에 참여하며 인맥도 쌓았고 밴드 시절 비트있는 네오 솔만 고집했는데 다양한 장르에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리쌍의 길이 프로듀싱한 그의 음반은 흑인 음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일렉트로닉 팝과 어쿠스틱 발라드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수록곡이 한번에 나온 게 아니라 길 오빠와 3년에 걸쳐 20여곡을 녹음해 5곡을 추렸다"며 "음악 스타일에 대한 계획보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즉흥적으로 작업했다. 사실 밴드 시절에는 네오 솔을 향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중과 진심이 통할 노래만 담았다"고 말했다.



이적이 작사, 작곡, 편곡한 타이틀곡 ’미워요’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노랫말과 드라마틱한 곡 구성이 돋보이는 발라드다.



또 알렉스의 보컬과 타블로의 랩을 더한 ’쇼(Show)!’, 박정아의 보컬과 쥬얼리 하주연의 랩이 가미된 ’걸스 온 쇼크(Girls On Shock)’에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바탕으로 경쾌한 비트가 실렸다.



정인이 작사, 작곡한 ’고마워’에는 8년간 만난 기타리스트 남자친구가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를 선물했다. 집에서 가이드 녹음을 할 때 심적인 의지가 되준 남자친구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는 수록곡 전반에서 목소리에 힘을 빼고 반주보다 음색 자체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 보컬의 소리에 집중한 건, 사실 음악을 하기에 치명적인 장애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살 때 갑자기 세상의 소리가 안 들렸어요. 병원 진단 결과 왼쪽은 원래 안 들리고, 오른쪽 귀는 당시 중이염이었대요. 서라운드 스테레오에서 나오는 소리의 방향에 둔하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제 소리 자체에 더 집중하는 힘이 길러졌어요."



한영애, 윤복희, 팝스타 메이시 그레이의 음색에 비교되지만 때로는 타고나기 보다 만들어내는 목소리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분들의 음악을 좋아했다"며 "따라부르다보니 지금의 내 목소리가 됐다.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분명 영향은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닮고 싶은 가수는 1970년대 신중현 사단에서 활동한 김정미다.



"김정미씨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3년 전인데 이후 CD와 LP를 사서 열심히 들었어요. 저에게 그분은 전설 같아요. 음악으로 정점을 찍으신 후 미국으로 떠나셔서 사람의 흔적보다 영감을 주는 음악만 남기셨잖아요. 김정미씨 외에도 송창식, 배호 선배님처럼 우리만의 정서를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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