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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수, 어떻게 할 것인가
입력 2010.02.28 (10:23) 수정 2010.03.07 (10:50) 일요진단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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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은 91번째로 맞이하는 3·1절입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설움을 당한 건 비단 우리 민족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문화재 역시 도굴이나 강탈 등의 수난을 겪었는데요.

이에 대해서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고 최근 국회가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등 강탈당한 문화재에 대한 환수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요진단 오늘은 문화재 환수운동의 의미를 알아보고 우리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 나오신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스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문화재의 상당수가 역사적인 혼란기를 거치면서 해외로 반출됐습니다.

그 가운데 약탈이 분명한 문화재를 중심으로 환수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약탈된 우리 문화재와 관련해 그동안 논란이 돼 있었던 사안을 정리해 봤습니다.

보시고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일본땅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6만점이 넘습니다.

해외로 나간 문화재 10만여 점 가운데 60%를 차지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조선왕조의궤가 관심의 초점입니다.

약탈해 간 사실이 다른 문화재보다 더 객관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에 기증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국장의 조선의 공식기록물들이 반출돼 사실상 일본 왕실이 소장한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궁내청 소장 한국 전적 가운데 있는 국왕의 경연에 쓰인 서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가 환수대상으로 꼽힙니다.

모두 더하면 120종 661책입니다.

민간단체가 나서 환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5년의 한일 협정에 따라 문화재 반환을 모두 마쳤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 문제에 조심스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오찬 때 거론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다만 17대 국회에 이어 18대 국회도 지난 25일 일본에 대해 반환촉구결의안을 채택해 환수운동에 힘을 실었습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가 환수의 좋은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지난 96년에 데라우치 문고, 2005년에 북관대첩비, 2006년의 조선왕조실록 등에 이어 또다시 빼앗긴 문화재가 고국땅을 밟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먼저 혜문스님께 여쭤보겠습니다.

혜문스님은 일본 도쿄대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우리나라로 환수해 오는 데 어떤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난주에 일본에 소장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반환을 위한 촉구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이런 운동을 하시는 분으로서 앞으로 이런 환수활동에 국회의 움직임이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어떻게 보십니까?-이번 18대 국회가 조선왕조의궤 반환촉구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고 또 3·1절을 맞아서 국회가 결의안을 채택한 사실에 대해서 결의안을 송달받는 일본측에서도 상당히 무겁게 이 문제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65년 한일협정으로 우리나라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의궤 반환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국회가 민의를 반영해서 일본 정부에 이러한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맺어가는 데 일본측으로서도 신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님, 최근 일부 언론을 보면 말이죠.

해외에 나가 있는 문화재를 전부 약탈 문화재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그러니까 환수돼야 할 문화재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해외에 있다고 해서 전부 환수대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증을 한 것도 있고 또 문화교류를 통해서 보내준 것도 많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수 대상 문화재라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불법으로 반출된 그런 문화재를 말합니다.

결국 반환 대상은 바로 불법유출된 문화재, 그것에 국한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혜문스님께도 여쭤보고 싶은데 환수되어야 할 문화재, 지금 박 원장님의 정의와 똑같습니까?-대부분의 대중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해외유출된 문화재가 대부분 식민지 시기에 반출됐기 때문에 식민지 시기에 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거의 환수해야 되겠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반환받는, 환수될 수 있는 가능성, 여러 가지 역사, 정치적 상황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면 지금 박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약탈의 성격이 분명한 것.

또 도굴이라든지 반인도적인 형태, 불법적인 형태로 외국에 나간 문화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문제제기가 있어야만 문화재 환수가 좀더 합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환수되어야 될 문화재에 대해서는 두 분이 거의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개념으로 오늘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박 원장님, 그동안 환수에 있어서의 정부의 성과라고 할까요.

어떤 게 있습니까?-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서 문화재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때 1432점을 반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최근 들어와서 1991년도에 영친왕비의 복식 일괄 등 8100여 점을 받았습니다.

-8100여 점을 받았다면 지금 환수된 문화재는 앞으로 전체 환수될 문화재의 비율로 보면 어느 정도 된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일본에 국한시켜본다면 우리가 확실히 환수받을 대상파악이 아직 미진한 상태입니다.

그동안 우리 노력에 의해서 이야기된 것 가운데는 상당량이 환수가 됐다고 봐야 합니다.

-상당수 환수가 됐다.

이미 환수되어야 될 문화재는 환수가 됐다, 지금 박 원장님 말씀은 그런 말씀인데 그 부분에 대한 혜문스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물론 박 원장님께서 그동안 해외 문화재에 대한 깊은 조사연구를 진행하셨고 그 부분에 대해서 정부와 민간, 여러 가지 단체들이 노력을 기울여서 여러 가지 성과를 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엄밀한 의미에서 환수의 의미를 엄밀하게 생각해서 적용하고 싶은데요.

환수운동, 반환운동이라고 한다는 것은 기증이나 매입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약탈된 문화재라는 전제 하에서 일본 혹은 제3국이 우리 문화재를 약탈했다겠다라는 것을 법률적으로 규명하고 유통경로를 추적하고 시민단체가 되었건 정부단체가 되었건 반환에 대한 분명한 반환요청서를 내서 반환운동을 통해서 반환받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반환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쉽게도 지금까지 환수받은 우리 문화재, 환수라는 명칭을 분명히 쓸 수 있었던 것은 2005년도 야스쿠니신사로부터 북관대첩비를 돌려받은 것,또 2006년도에 저희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를 통해서 도쿄대와의 협상 그리고 도쿄대가 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첩을 돌려준 이 두 건을 제외하고는 환수, 반환이라는 의미를 쓰기 어렵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데라우치문고가 귀환했는데요, 한국으로.

데라우치문고에 대한 완전한 사실상 전부가 온 것이 아니라 데라우치문고 중의 약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 경남대에 인도됐다, 혹은 기증됐다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런 것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그래서 이 환수운동은 아직도 조금 미진한 것이 아니냐, 좀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범주 안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기증이나 매입을 통해서 환수가 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우리한테 다시 돌아오는 결과인데 말이죠.

꼭 환수운동을 통한 것만이 엄밀한 의미의 환수라고 규정짓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으십니까?-제가 생각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운동은 문화재 한점한점이 되돌아오는 것, 이 범주를 넘어서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2005년도에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 도쿄대로부터 반환받은 실록이 2000여 책이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도쿄대로부터 오는 47책이 더해진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더 부유하게 되는 것도 사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쿄대가 왜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느냐, 거기에 대한 문제제기.

그럼으로써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부당성을 입증하고 그것을 찾아오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문화재 반환운동, 문화재 환수운동이 지향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실록 반환운동, 의궤반환운동 이런 것이 종이와 먹으로 쓰여진 실록, 한 점의 문화재, 책을 반환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것을 찾아오는 형태로써의 문화재 반환운동, 환수운동이 진행돼야 된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님, 박 원장님은 정부 입장이신데요.

최근에 종교계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해서도 환수운동이 활발하게 진행이 되고 있어요.

어떻게 평가하실 수 있겠습니까?-환수운동이 시민운동이나 민간운동 차원에서 보는 시각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시민들이나 관심 있는 전문가들이 정부에서 앞장서고 좌우에서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되는데 너무 박물관이나 도서관 앞에서 시위를 한다든지,그 열정은 이해가 됩니다마는 그게 과연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나 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은 그 반환 전문 기관이 우리가 있습니다.

외교통상부에서 관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루트를 통해서 반환교섭이 이루어져야 되고 그리고 정부 힘으로 안 되는 그런 것도 많죠.

그런 것은 민간운동 차원에서, 소위 말해서 건전한 우리 문화재찾기 운동에서 시민의식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저는.

-진중하신 입장도 알겠고 염려하시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는 가는데 보다 환수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와 민간단체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지 않나, 그것도 정부의 책임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네, 그렇습니다.

어제도 사실 혜문스님하고 저희들이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환수협의회에 참여를 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민간단체에서 모든 차원에서 정리가 되고 문화적으로 보다 성숙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어제 마무리이야기에서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가 하나의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덜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실태 파악도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저기서 우후죽순격으로 단체들이 결성되고 그런 운동 차원에서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과연 바람직한 면만이 아니다, 그런 우려는 하고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현재 문화재환수운동 가운데서도 국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이죠, 조선왕조의궤와 관련해서 지금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지금부터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혜문 스님, 조선왕조의궤를 일본 가서 직접 보셨나요?-예, 지난 2006년 9월에 일본 궁내청, 그러니까 천황궁 황실도서관입니다.

서릉부에 보관되어 있는데요.

그때 일본 궁내청측과 오랜 교섭 끝에 열람에 대한 허가를 받아서 2006년 9월에 일본 궁내청에서 직접 명성황후의궤를 비롯한, 국장도감을 비롯한 여러 종을 직접 확인하고 열람하게 됐습니다.

-조선왕조의궤는 어떤 경유로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된 겁니까?-2006년 9월에 궁내청 방문이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유통경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게 됐는데요.

그 전까지는 사실상 어떤 경로로 갔는지 여러 구구한 학설,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했습니다마는 직접 열람을 저희가 해 보니까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의 맨 뒤편에 붉은색 주인으로 대정 11년, 1922년입니다.

대정 11년 5월에 조선총독부 기증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 걸 저희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22년에 조선총독부가 일본 황실.

그 당시에는 궁내성이라고 불리는데요.

궁내성에 기증함으로써 조선왕조의궤, 조선왕실의 여러 가지 도서들이 일본 궁내청으로 갔다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몇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 어떠어떠한 것이 있는지 한번만 다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지금 가장 결의안에서 논점이 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라고도 불리는데요.

그것은 72종, 140여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연도서라고 해서 왕실에서 왕세자를 교육할 때 썼던 경연도서.

그리고 제실도서라고 해서 규장각과 대한제국 성립 이후 제실도서관에 있었던 책.

그런 형태의 책이 총 660여 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저희가 추정하고 있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으로부터 대출해 갔다가 돌려주지 않은 책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약 1000여 책으로 보이는데요.

그중의 일부 500여 책은 한일협정 때 돌아왔고 나머지 것들은 아직도 규장각에서 대출도서가 일본 궁내청에 소장돼 있다라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화재가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요.

방금 혜문스님도 쭉 설명을 해 주셨는데 원장님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궁내청에 있는 소장 문화재는 반환 명분이 충분하다고 보십니까?-예, 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 기증인이, 날인이 돼 있고 그리고 제실도서라고 1911년에 날인한 겁니다.

그리고 경연도장.

경연이라는 건 임금의 정치를 돕고 교육시키는 그런 기관입니다.

경연도장이 찍힌 게 또 3종이 있고.

그래서 전체 661책입니다.

661책이 조선왕실에서 소장했던 책이었습니다.

조선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책이 지금 일본 왕실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일협정 당시에는 그런 실태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조사는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조사를 했습니다.

전체 한 4700여 책이 되는데 그중에서 반환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조선왕실에서 소장했던 책이다.

그것은 일본 왕실에서도 돌려줄 수 있는 명분도 된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명분이 되면 돌려받아야 되겠는데요.

이 질문은 혜문 스님한테 해 볼까요.

지금 조선왕조의궤와 관련한 일본측 입장은 어떻습니까?-저는 상당 부분 이 문제가 진전되어 있다라고 평가하고 싶은데요.

저희가 2006년 9월에 조선왕조의궤를 반환받겠다, 환수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할 때에는 거의 불가능한, 거의 0%에 가까운 확률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일본 정부의 변화된 입장이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2007년도에 우리나라 외교부 차관, 조중표 차관과 일본 외무성 야치 차관 사이에서 한일미래전략을 위한 차관회의에서 조선왕조의궤는 한일간의 미래적 발전을 위해서 해결해야 되는 과제다라는 합의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이 문제가 차관급을 넘어서서 진행되기 시작하는데요.

두번째는 2008년도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그리고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유명환 현 외교부 장관님께서 일본을 방문하실 때 일본 외상에게 조선왕조의궤 반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후쿠다 총리가 한국 방송 혹은 신문 특파원들에게 조선왕조 반환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라는 구두설명을 하셨었고요.

이런 발전과정 속에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금년 2010년도를 맞아서,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서 양국관계의 미래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서 이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로는 지난 2010년 1월 30일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기점으로 일본 언론에서 이미 요미우리, 산케이, 이런 대표적인 언론들이 약 40여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를 위해서 이 문제를 돌려달라는 한국측 움직임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라는 기사가 약 40여 개의 일본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고 있고 또 그런 바탕 위에서 2월 11일날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과 일본의 외교부 장관 사이에서도 물론 이 문제가 논의됐다는 것은 상당히 진전됐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의궤가 한일 외교장관 사이에서 공식적인 안건으로 얘기된다라는 아사히신문의 보도 이후에 일본의 외무성 동북아국장인 시마다 동북아국장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발언했냐 하면 한국측으로부터 공식요청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 요청한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시행여부를 검토할 용의가 있다.

이 문제를 돌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을 시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검토할 용의가 있다라는 것을 한국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이 문제는 의궤의 문제가 일본 외무성 내에서도 상당히 활발한 논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고 우리 정부가 좀더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에게 약탈된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1965년 한일협정 때 일단락된 거 아니겠습니까?그런 부분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얘기를 꺼낸다는 부분이 쉽지는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어떻습니까?-1965년 당시 일본에 있는 실태조사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한 결과 궁내청에 우리의 반환 대상이 이 정도 된다는 것도 최근 우리가 밝혀낸 겁니다.

한일회담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그리고 한일회담 당시의 협정에 의하면 차후도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반환을 권유한다는 그런 조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이 불법으로 취득한 것을 반환을 권유한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을 이제는 확인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그것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명분론에서는 밀리지 않는다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한일협정 당시 우리나라에 반환된 문화재들, 어떤 게 있는지 혜문스님은 알고 계십니까?-제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5년도 한일협정 당시의 문서가 전면 공개됐습니다.

그때 문화재 반환과 관련해서 한일협정 당시 우리가 돌려받은 문화재가 1432점인데 그 문화재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재인가,제가 구체적으로 목록과 실물을 대조해서 파악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1432점 중에 국보 124호로 지정돼 있는 한송사석조보살좌상과 같은 국보급 문화재도 포함돼 있지만 1432점에는 다소 황당하지만 체신 관련 문화재라고 해서 우체부의 모자라든지 우체국에서 썼던 이른바 막도장, 일부인이라고 불리우는데요.

우체부 아저씨 배지, 짚신, 소위 말도 안 되는 문화재들이 1432점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석굴암, 다보탑과 같은 일류 국보급 문화재를 식민지 시대에 파괴당하고 약탈당해서 일본에 빼앗겼는데 겨우 돌려받는, 1432점을 돌려받는데 그중에 짚신, 우체국 간판, 이런 것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일종의.

1965년도 한일협정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문제인데요.

그리고 일본 정부도 이런 것들을 자신들이 당시 우월한 외교적 입장에서 이런 협정 사항을 이끌어냈다 할지라도 이것을 두고 저희 문화재청구권이 소멸됐기 때문에 더 이상 궁내청에 소장돼 있는 의궤라든지 이런 것들을 돌려주지 못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도의에 맞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일협정 당시에 혜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체신관계, 민속품 수준의 자료도 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우리가 한일협정이 1958년부터 시작이 됐었는데 그때 시작해서 65년에 체결되기까지 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을 꾸준히 제기하면서 교섭을 했습니다마는 그 당시에는 우리가 실태파악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청구한 게 고고미술품이 3186점이었고요.

그 다음에 전적이 1015점이고 체신 관계 품목이 278점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신청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현황 파악이 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중에 체신박물관에 있던 35점을 돌려받은 겁니다, 우리가.

그중에 우체부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포함돼 있죠.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한일협정 때 받은 게 형편없는 거다, 이렇게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포함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우리 정부에서 최선을 다해서 국보가 그중에서 두 점이 나왔고 보물이 다섯 점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반환 문화재가 엉망은 아니었다, 그 당시로서는 가치성이 높은 유물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혜문스님을 일반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환수받은 문화재를 봤는데 그 속에 짚신이 있었다면 좀 황당하기는 했을 겁니다.

그런 점일 테고.

우리나라에서 그렇다면 1400여 점 가운데 요구는 얼마를 했고 그중에 1400점을 받은 건 파악하고 계십니까?-전체 4300여 점을.

-4300여 점을 요구해서 1400여 점을 환수받았다.

알겠습니다.

혜문스님, 문화재 환수와 관련해서 분쟁이나 분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늘상 우리가 접하는 일인데 말이죠.

국제적으로 어떤 규정이나 법률 같은 게 있습니까?-몇 가지 중요한 법률이 있습니다.

국제법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유네스코에서 만든, 유네스코에서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문화재 불법 반출 및 소유권 양도 금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

1970년대에 발의된 것인데요.

여기에는 우리나라도 가입돼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이것이 국제법상으로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는 가장 많이 인용되는 법률이고 그 이후에도 90년대 유니드로협약이라고 해서 도난과 도굴에 관한 부분까지 아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우리나라나 일본, 미국 이런 나라가 가입하고 있지 않은 형태이기 때문에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또 하나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유네스코의 산하기관입니다.

국제박물관협의회, 아이콤이라고 불리우는데요.

여기에서 원산국의 기원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화재는 원산국으로 반환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라는 이른바 다카의 원칙이라고 불리는데요.

1978년 세네갈 아이콤회의에서 채택한 것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주장하고 있는 국제법적인 협약, 또 아이콤에서 말한 세네갈 다카의원칙에 의해서 원산국의 문화와 기원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원산국으로 돌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이 문화재 반환에 중요한 국제법적인 준거, 인용되고 있는 협약들입니다.

한 가지 더 보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앞에 한일협정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한일협정에 대해서 일본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한일협정에서 일본이 추구한 것들.

첫째가 국유문화재는 돌려주겠다, 두번째가 사유문화재는 반환하지 않는다, 세번째가 정치적인 고려, 문화적인 고려에 의한 인도이지 이것은 문화재의 법률적인 의무에 의한 반환은 아니다라는 이 3개를 일본이 한일협정에서 계속 고집하고 요청해서 그 원칙을 관철시켰는데요.

이런 일본이 제기한 이런 원칙에 의해서도 아까 우리가 얘기한 궁내청에 소장된 조선왕조의 도서는 원칙적으로 국유문화재이기 때문에 돌려받을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되지 않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다카의 원칙, 이런 국제적인 합의 이게 얼마나 강제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갖고 있는 나라가 돌려주지 않는다면 참 받기 어려운 게 문화재인 것 같아요.

특히 조선왕조의궤도 그렇습니다마는 외규장각도서 말이죠.

반환 문제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처음에 등가의 원칙을 적용을 해서 같은 양의 문화재를 상호 임대하는 방식으로 주겠다, 이렇게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동안 한 세 차례 우리가 목록을 보냈습니다마는 그것이 등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해서 결렬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외규장각 도서가 이미 100여 년 동안 중요한 고문서로 자기들이 보관해 온 자기들의 문화유산이다, 이미.

그러니까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해서 우리 문화재를 돌려줄 수 없다, 이런 것도 있는데 사실 프랑스가 놓여진 처지라는 게 해외 문화재를, 약탈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전략이라는 게 결국 우리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드시 찾아와야 된다는 그런 논리이고 그쪽에서는 그것을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게 되면 자국 내에 있는 외국 문화재, 소장 문화재의 행방이 앞으로 묘연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교류라는 것은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상호 신뢰 하에서 단계적으로 새로운 문화교류 차원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외규장각 도서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것이 바로 일방적으로 우리가 내놓으라고 하고 국민들이 불매운동을 펼친다든지 운동차원으로 해서만은 되지 않는다.

고도의 외교적인 기술을 요한다.

-프랑스 정부 같은 경우에는 약탈된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국가 소유라면 반환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이지 않습니까?-그렇습니다.

-아까 혜문스님 말씀에 우리가 한일협정 맺을 때는 일본이 국유문화재에 대해서는 우리한테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 정부의 논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우리가 인정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지금 국민적인 관심, 소위 말해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 중에 가장 증거가 확실한 불법 유출, 약탈 문화재가 바로 외규장각 도서인데 전체 340여 점이 되고 그중에 의궤가 297점입니다.

그런데 그 의궤라는 것은 우리 조선왕실에서 일어난, 역사적으로 치러진 모든 행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왕실문화에 대한 기록물로써 우리 왕실의 모든 정치, 사회, 경제를 알 수 있는 우리의 1차 사료인데 그런 사료는 우리 국민이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는 문화재인데 프랑스에서는 자기들이 100년 이상 가지고 있었으니까 자기들 문화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소도감의궤 상하를 가지고 왔는데 그중에 상권을 돌려준 것으로 인해서 프랑스 하위직 300여 명이 연판장을 돌리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자기들은 어떻게 할 거냐.

우리 문화재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대통령 마음대로 활용해도 되느냐, 그런 공개질의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우리가 감안할 때 프랑스 입장도 고려하면서 그것이 실질적으로 우리가 반환받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영구임대라는 방법으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한 단계에 와 있다고 신문보도에 나왔습니다.

-지금 박 원장님이 말씀하신 방식 말이죠,영구임대방식.

혜문스님 생각으로는 어떻습니까?-일단 우리나라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몇 가지 반환문제에 대해서 합의했던, 사실상 되돌이킬 수 없는 원칙의 하나가 등가의 교환 원칙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 내부 법률의 문제가 자국의 문화재는 해외로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을 굉장히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현실적인 조건에 맞춰서 영구임대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겠죠.

제가 외규장각 도서를 바라보는 문제는 몇 가지 현재 문제와 다른 시각이 존재합니다.

약간 주제에서 벗어날지 모르겠지만 제가 서두에서 반환받은 문화재는 조선왕조의궤와 북관대첩비, 한정해서 엄밀한 의미를 본다면 두 건에 한정할 수 있다는 의미를 드릴 수 있겠는데요.

이것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돌아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남북관계에서 공조가 이루어졌다, 남북이 합의해서 돌려받았다라는 하나의 특이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규장각 도서도 지금 프랑스와 북쪽에서의 수교가 사실상 굉장히 진전돼 있어서 조만간 수교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보도가 있고 또 대북특사로 가고 있는 사람이 자크 랑이라는 사람인데 이분이 미테랑 대통령 당시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휘경원소도감의궤를 우리나라에 전해 주는 이런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람인데 우리나라 정부가 영구임대를 한편으로 추진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는 데 있어서 북과 프랑스의 수교문제를 원활하게 활용한다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을 수 있는 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식의 반환운동, 이런 것도 고려해 봄직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여튼 약탈문화재 환수를 놓고 국가들간에 팽팽해요, 입장차이가.

여러 번 박 원장님이 강조해 주셨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뭐라고 그럴까요, 너무 국수주의적으로, 너무 민족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지금 우리 외교협상으로 반환받을 수밖에 없는데 모든 외교협상에는 서로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는 협상이 되지를 않습니다.

프랑스가 지니고 있는 입장도 우리가 고려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된다는 그런 차원입니다.

그래서 결국 특정한 문화재를 영구 반환받으면서 프랑스에 교환 형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해외에 21개국에 65개 박물관에 한국실 또는 한국코너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재가 전세계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보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거기 한국실이 일본이나 중국실에 비해서 상당히 초라합니다, 대부분이.

그런 걸 보면 결국 우리 문화재가 해외의 유수한 박물관 한국실에서 초라한 모습보다는 풍성하고 삐까뻔쩍한 모습으로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의 국내에 있는 문화재를 프랑스 파리에서도 소개를 하고 그리고 양국의 새로운 문화교류 차원에서 이제는 폭넓게 어떤 형식에 구애되지 말고 그래서 우리 한국 문화를 알리는 첨병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면 비합리적인 반환요구도 많은 것 같아요.

모두에서도 나왔습니다마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우리 것이다라는 인식도 있는데 말이죠.

혜문 스님, 그 부분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그런 부분이 문화재 반환운동에 실제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생떼를 쓰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마는 저는 그래도 생떼 쓰기 전에 늘 박상국 원장님한테 전화를 드려서 앞으로 이런 문화재반환운동을 하는데 많이 조언을 해 주십시오라고 제가 늘 상의를 드리고 시작하는 편입니다마는.

물론 캠페인의 형태이고 실제로 문화재 반환운동에 진입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역시 프랑스에 있는데요.

왕오천축국전을 반환받아야 된다든지 이런 주장, 움직임들이 제기되기도 했었는데요.

오천축국전은 혜초라는 신라 스님이 이른바 천축국, 인도의 가서 천축국을 보고 적은 기행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고 중국 돈황의 막고굴에 있던 것을 프랑스 사람 탐험가가, 사실상 도굴이죠.

도굴을 해서 프랑스로 가져간 문화재인데요.

중국땅에서 도굴당한 책인데 단지 저자가 신라승 혜초라는 이유 때문에 이것을 프랑스로부터 우리나라가 반환받아야 된다 하는 그런 단순한 논리에서의 움직임, 주장 이런 것들이 이른바 문화재 대중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 중의 하나겠죠.

이런 부분을 우리가 지양해서 어느 정도의 합리성, 불법성, 불법 유출 경로에 대한 학술적인 뒷받침, 법률적인 논거 이런 것들을 규명해 가야지만 문화재 반환운동,문화재 제자리찾기운동이 합리적인 사회운동으로써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님, 지금 쭉 말씀해 주셨는데 민간단체의 운동에 대해서 아쉬운 점은 이미 얘기를 해 주셨어요.

그러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줬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가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동안 민간단체에서 소위 말해서 여론을 주도했고 그리고 정부로 하여금 앞장서게 한 그런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됩니다.

결국 정부가 하는 일이 국민을 위한 일이다.

공직자가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관련 정부기관과 민간기관과 하나의 공통점을 도출하고 서로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그런 협의회가 구성이 돼 있습니다.

협의회가 구성이 돼 있고 앞으로 재단법인 설립도 구상을 하고 있는 그런 단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민간단체들이 많은 긍정적인 역할만 있는 게 아니고 그 가운데는 정말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해외에 나가서 우리가 약탈당한 문화재를 우리가 돌려받기 위해서 왔다는 그런 원론적인 애국심에 누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그런 열정과 그런 것을 이제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건전한 민간단체로서 우리의 문화재를 애호하고 사랑하는 성숙된 모습,그런 차원에서 운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박 원장님께서는 민간단체에 바라는 것을 얘기하셨으니까 혜문 스님께서는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문화재 반환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겠죠.

이를테면 외교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든지 또 상대국에 대한 지나친 압박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도 저도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소위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겪었던 격동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서구사회의 유입, 일본의 침략 이런 것들에 대한 국민감정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주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원장님께 하나 드릴게요.

아까 혜문스님께서 잠깐 남북간의 문화재 환수를 위한 공동노력 얘기를 해 주었는데 어떻게 평가하시고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될 것으로 보시는지 짧게 정리해 주십시오.

-남북 불교계 교류를 통해서 그동안 북관대첩비 환수, 원위치의 건립 등을 통해서 사실 남북간의 물꼬를 트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과 일본 수교에 있어서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시행착오.

우리가 한일회담 당시에는 북한에서 출토된 문화재는 우리가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이 이번 남북교류를 통해서 보완책이 될 것 같습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신 두 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화재에는 그 나라와 그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혼이 담겨 있습니다.

특정한 시기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역사와 혼을 되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단체의 체계적인 협력과 노력이 중요하겠습니다.

동시에 우리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함께 국민적인 꾸준한 관심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요진단 오늘 순서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재 환수, 어떻게 할 것인가
    • 입력 2010-02-28 10:23:03
    • 수정2010-03-07 10:50:19
    일요진단 라이브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은 91번째로 맞이하는 3·1절입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설움을 당한 건 비단 우리 민족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문화재 역시 도굴이나 강탈 등의 수난을 겪었는데요.

이에 대해서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고 최근 국회가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등 강탈당한 문화재에 대한 환수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요진단 오늘은 문화재 환수운동의 의미를 알아보고 우리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 나오신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스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문화재의 상당수가 역사적인 혼란기를 거치면서 해외로 반출됐습니다.

그 가운데 약탈이 분명한 문화재를 중심으로 환수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약탈된 우리 문화재와 관련해 그동안 논란이 돼 있었던 사안을 정리해 봤습니다.

보시고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일본땅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6만점이 넘습니다.

해외로 나간 문화재 10만여 점 가운데 60%를 차지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조선왕조의궤가 관심의 초점입니다.

약탈해 간 사실이 다른 문화재보다 더 객관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에 기증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국장의 조선의 공식기록물들이 반출돼 사실상 일본 왕실이 소장한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궁내청 소장 한국 전적 가운데 있는 국왕의 경연에 쓰인 서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가 환수대상으로 꼽힙니다.

모두 더하면 120종 661책입니다.

민간단체가 나서 환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5년의 한일 협정에 따라 문화재 반환을 모두 마쳤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 문제에 조심스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오찬 때 거론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다만 17대 국회에 이어 18대 국회도 지난 25일 일본에 대해 반환촉구결의안을 채택해 환수운동에 힘을 실었습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가 환수의 좋은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지난 96년에 데라우치 문고, 2005년에 북관대첩비, 2006년의 조선왕조실록 등에 이어 또다시 빼앗긴 문화재가 고국땅을 밟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먼저 혜문스님께 여쭤보겠습니다.

혜문스님은 일본 도쿄대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우리나라로 환수해 오는 데 어떤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난주에 일본에 소장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반환을 위한 촉구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이런 운동을 하시는 분으로서 앞으로 이런 환수활동에 국회의 움직임이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어떻게 보십니까?-이번 18대 국회가 조선왕조의궤 반환촉구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고 또 3·1절을 맞아서 국회가 결의안을 채택한 사실에 대해서 결의안을 송달받는 일본측에서도 상당히 무겁게 이 문제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65년 한일협정으로 우리나라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의궤 반환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국회가 민의를 반영해서 일본 정부에 이러한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맺어가는 데 일본측으로서도 신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님, 최근 일부 언론을 보면 말이죠.

해외에 나가 있는 문화재를 전부 약탈 문화재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그러니까 환수돼야 할 문화재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해외에 있다고 해서 전부 환수대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증을 한 것도 있고 또 문화교류를 통해서 보내준 것도 많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수 대상 문화재라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불법으로 반출된 그런 문화재를 말합니다.

결국 반환 대상은 바로 불법유출된 문화재, 그것에 국한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혜문스님께도 여쭤보고 싶은데 환수되어야 할 문화재, 지금 박 원장님의 정의와 똑같습니까?-대부분의 대중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해외유출된 문화재가 대부분 식민지 시기에 반출됐기 때문에 식민지 시기에 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거의 환수해야 되겠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반환받는, 환수될 수 있는 가능성, 여러 가지 역사, 정치적 상황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면 지금 박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약탈의 성격이 분명한 것.

또 도굴이라든지 반인도적인 형태, 불법적인 형태로 외국에 나간 문화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문제제기가 있어야만 문화재 환수가 좀더 합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환수되어야 될 문화재에 대해서는 두 분이 거의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개념으로 오늘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박 원장님, 그동안 환수에 있어서의 정부의 성과라고 할까요.

어떤 게 있습니까?-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서 문화재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때 1432점을 반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최근 들어와서 1991년도에 영친왕비의 복식 일괄 등 8100여 점을 받았습니다.

-8100여 점을 받았다면 지금 환수된 문화재는 앞으로 전체 환수될 문화재의 비율로 보면 어느 정도 된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일본에 국한시켜본다면 우리가 확실히 환수받을 대상파악이 아직 미진한 상태입니다.

그동안 우리 노력에 의해서 이야기된 것 가운데는 상당량이 환수가 됐다고 봐야 합니다.

-상당수 환수가 됐다.

이미 환수되어야 될 문화재는 환수가 됐다, 지금 박 원장님 말씀은 그런 말씀인데 그 부분에 대한 혜문스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물론 박 원장님께서 그동안 해외 문화재에 대한 깊은 조사연구를 진행하셨고 그 부분에 대해서 정부와 민간, 여러 가지 단체들이 노력을 기울여서 여러 가지 성과를 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엄밀한 의미에서 환수의 의미를 엄밀하게 생각해서 적용하고 싶은데요.

환수운동, 반환운동이라고 한다는 것은 기증이나 매입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약탈된 문화재라는 전제 하에서 일본 혹은 제3국이 우리 문화재를 약탈했다겠다라는 것을 법률적으로 규명하고 유통경로를 추적하고 시민단체가 되었건 정부단체가 되었건 반환에 대한 분명한 반환요청서를 내서 반환운동을 통해서 반환받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반환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쉽게도 지금까지 환수받은 우리 문화재, 환수라는 명칭을 분명히 쓸 수 있었던 것은 2005년도 야스쿠니신사로부터 북관대첩비를 돌려받은 것,또 2006년도에 저희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를 통해서 도쿄대와의 협상 그리고 도쿄대가 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첩을 돌려준 이 두 건을 제외하고는 환수, 반환이라는 의미를 쓰기 어렵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데라우치문고가 귀환했는데요, 한국으로.

데라우치문고에 대한 완전한 사실상 전부가 온 것이 아니라 데라우치문고 중의 약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 경남대에 인도됐다, 혹은 기증됐다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런 것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그래서 이 환수운동은 아직도 조금 미진한 것이 아니냐, 좀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범주 안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기증이나 매입을 통해서 환수가 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우리한테 다시 돌아오는 결과인데 말이죠.

꼭 환수운동을 통한 것만이 엄밀한 의미의 환수라고 규정짓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으십니까?-제가 생각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운동은 문화재 한점한점이 되돌아오는 것, 이 범주를 넘어서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2005년도에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 도쿄대로부터 반환받은 실록이 2000여 책이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도쿄대로부터 오는 47책이 더해진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더 부유하게 되는 것도 사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쿄대가 왜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느냐, 거기에 대한 문제제기.

그럼으로써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부당성을 입증하고 그것을 찾아오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문화재 반환운동, 문화재 환수운동이 지향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실록 반환운동, 의궤반환운동 이런 것이 종이와 먹으로 쓰여진 실록, 한 점의 문화재, 책을 반환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것을 찾아오는 형태로써의 문화재 반환운동, 환수운동이 진행돼야 된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님, 박 원장님은 정부 입장이신데요.

최근에 종교계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해서도 환수운동이 활발하게 진행이 되고 있어요.

어떻게 평가하실 수 있겠습니까?-환수운동이 시민운동이나 민간운동 차원에서 보는 시각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시민들이나 관심 있는 전문가들이 정부에서 앞장서고 좌우에서 도와주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되는데 너무 박물관이나 도서관 앞에서 시위를 한다든지,그 열정은 이해가 됩니다마는 그게 과연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나 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은 그 반환 전문 기관이 우리가 있습니다.

외교통상부에서 관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루트를 통해서 반환교섭이 이루어져야 되고 그리고 정부 힘으로 안 되는 그런 것도 많죠.

그런 것은 민간운동 차원에서, 소위 말해서 건전한 우리 문화재찾기 운동에서 시민의식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저는.

-진중하신 입장도 알겠고 염려하시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는 가는데 보다 환수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와 민간단체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지 않나, 그것도 정부의 책임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네, 그렇습니다.

어제도 사실 혜문스님하고 저희들이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환수협의회에 참여를 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민간단체에서 모든 차원에서 정리가 되고 문화적으로 보다 성숙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어제 마무리이야기에서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가 하나의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덜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실태 파악도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저기서 우후죽순격으로 단체들이 결성되고 그런 운동 차원에서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과연 바람직한 면만이 아니다, 그런 우려는 하고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현재 문화재환수운동 가운데서도 국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이죠, 조선왕조의궤와 관련해서 지금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지금부터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혜문 스님, 조선왕조의궤를 일본 가서 직접 보셨나요?-예, 지난 2006년 9월에 일본 궁내청, 그러니까 천황궁 황실도서관입니다.

서릉부에 보관되어 있는데요.

그때 일본 궁내청측과 오랜 교섭 끝에 열람에 대한 허가를 받아서 2006년 9월에 일본 궁내청에서 직접 명성황후의궤를 비롯한, 국장도감을 비롯한 여러 종을 직접 확인하고 열람하게 됐습니다.

-조선왕조의궤는 어떤 경유로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된 겁니까?-2006년 9월에 궁내청 방문이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유통경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게 됐는데요.

그 전까지는 사실상 어떤 경로로 갔는지 여러 구구한 학설,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했습니다마는 직접 열람을 저희가 해 보니까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의 맨 뒤편에 붉은색 주인으로 대정 11년, 1922년입니다.

대정 11년 5월에 조선총독부 기증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 걸 저희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22년에 조선총독부가 일본 황실.

그 당시에는 궁내성이라고 불리는데요.

궁내성에 기증함으로써 조선왕조의궤, 조선왕실의 여러 가지 도서들이 일본 궁내청으로 갔다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몇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 어떠어떠한 것이 있는지 한번만 다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지금 가장 결의안에서 논점이 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라고도 불리는데요.

그것은 72종, 140여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연도서라고 해서 왕실에서 왕세자를 교육할 때 썼던 경연도서.

그리고 제실도서라고 해서 규장각과 대한제국 성립 이후 제실도서관에 있었던 책.

그런 형태의 책이 총 660여 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저희가 추정하고 있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으로부터 대출해 갔다가 돌려주지 않은 책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약 1000여 책으로 보이는데요.

그중의 일부 500여 책은 한일협정 때 돌아왔고 나머지 것들은 아직도 규장각에서 대출도서가 일본 궁내청에 소장돼 있다라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화재가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요.

방금 혜문스님도 쭉 설명을 해 주셨는데 원장님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궁내청에 있는 소장 문화재는 반환 명분이 충분하다고 보십니까?-예, 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 기증인이, 날인이 돼 있고 그리고 제실도서라고 1911년에 날인한 겁니다.

그리고 경연도장.

경연이라는 건 임금의 정치를 돕고 교육시키는 그런 기관입니다.

경연도장이 찍힌 게 또 3종이 있고.

그래서 전체 661책입니다.

661책이 조선왕실에서 소장했던 책이었습니다.

조선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책이 지금 일본 왕실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일협정 당시에는 그런 실태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조사는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조사를 했습니다.

전체 한 4700여 책이 되는데 그중에서 반환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조선왕실에서 소장했던 책이다.

그것은 일본 왕실에서도 돌려줄 수 있는 명분도 된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명분이 되면 돌려받아야 되겠는데요.

이 질문은 혜문 스님한테 해 볼까요.

지금 조선왕조의궤와 관련한 일본측 입장은 어떻습니까?-저는 상당 부분 이 문제가 진전되어 있다라고 평가하고 싶은데요.

저희가 2006년 9월에 조선왕조의궤를 반환받겠다, 환수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할 때에는 거의 불가능한, 거의 0%에 가까운 확률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일본 정부의 변화된 입장이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2007년도에 우리나라 외교부 차관, 조중표 차관과 일본 외무성 야치 차관 사이에서 한일미래전략을 위한 차관회의에서 조선왕조의궤는 한일간의 미래적 발전을 위해서 해결해야 되는 과제다라는 합의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이 문제가 차관급을 넘어서서 진행되기 시작하는데요.

두번째는 2008년도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그리고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유명환 현 외교부 장관님께서 일본을 방문하실 때 일본 외상에게 조선왕조의궤 반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후쿠다 총리가 한국 방송 혹은 신문 특파원들에게 조선왕조 반환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라는 구두설명을 하셨었고요.

이런 발전과정 속에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금년 2010년도를 맞아서,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서 양국관계의 미래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서 이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로는 지난 2010년 1월 30일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기점으로 일본 언론에서 이미 요미우리, 산케이, 이런 대표적인 언론들이 약 40여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를 위해서 이 문제를 돌려달라는 한국측 움직임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라는 기사가 약 40여 개의 일본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고 있고 또 그런 바탕 위에서 2월 11일날 우리나라 외교부 장관과 일본의 외교부 장관 사이에서도 물론 이 문제가 논의됐다는 것은 상당히 진전됐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의궤가 한일 외교장관 사이에서 공식적인 안건으로 얘기된다라는 아사히신문의 보도 이후에 일본의 외무성 동북아국장인 시마다 동북아국장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발언했냐 하면 한국측으로부터 공식요청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 요청한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시행여부를 검토할 용의가 있다.

이 문제를 돌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을 시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검토할 용의가 있다라는 것을 한국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이 문제는 의궤의 문제가 일본 외무성 내에서도 상당히 활발한 논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고 우리 정부가 좀더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본에게 약탈된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1965년 한일협정 때 일단락된 거 아니겠습니까?그런 부분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얘기를 꺼낸다는 부분이 쉽지는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어떻습니까?-1965년 당시 일본에 있는 실태조사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한 결과 궁내청에 우리의 반환 대상이 이 정도 된다는 것도 최근 우리가 밝혀낸 겁니다.

한일회담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그리고 한일회담 당시의 협정에 의하면 차후도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반환을 권유한다는 그런 조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이 불법으로 취득한 것을 반환을 권유한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을 이제는 확인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그것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명분론에서는 밀리지 않는다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한일협정 당시 우리나라에 반환된 문화재들, 어떤 게 있는지 혜문스님은 알고 계십니까?-제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5년도 한일협정 당시의 문서가 전면 공개됐습니다.

그때 문화재 반환과 관련해서 한일협정 당시 우리가 돌려받은 문화재가 1432점인데 그 문화재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재인가,제가 구체적으로 목록과 실물을 대조해서 파악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1432점 중에 국보 124호로 지정돼 있는 한송사석조보살좌상과 같은 국보급 문화재도 포함돼 있지만 1432점에는 다소 황당하지만 체신 관련 문화재라고 해서 우체부의 모자라든지 우체국에서 썼던 이른바 막도장, 일부인이라고 불리우는데요.

우체부 아저씨 배지, 짚신, 소위 말도 안 되는 문화재들이 1432점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석굴암, 다보탑과 같은 일류 국보급 문화재를 식민지 시대에 파괴당하고 약탈당해서 일본에 빼앗겼는데 겨우 돌려받는, 1432점을 돌려받는데 그중에 짚신, 우체국 간판, 이런 것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일종의.

1965년도 한일협정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지만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문제인데요.

그리고 일본 정부도 이런 것들을 자신들이 당시 우월한 외교적 입장에서 이런 협정 사항을 이끌어냈다 할지라도 이것을 두고 저희 문화재청구권이 소멸됐기 때문에 더 이상 궁내청에 소장돼 있는 의궤라든지 이런 것들을 돌려주지 못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도의에 맞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일협정 당시에 혜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체신관계, 민속품 수준의 자료도 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우리가 한일협정이 1958년부터 시작이 됐었는데 그때 시작해서 65년에 체결되기까지 문화재 반환이라는 것을 꾸준히 제기하면서 교섭을 했습니다마는 그 당시에는 우리가 실태파악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청구한 게 고고미술품이 3186점이었고요.

그 다음에 전적이 1015점이고 체신 관계 품목이 278점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신청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현황 파악이 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중에 체신박물관에 있던 35점을 돌려받은 겁니다, 우리가.

그중에 우체부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포함돼 있죠.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한일협정 때 받은 게 형편없는 거다, 이렇게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포함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우리 정부에서 최선을 다해서 국보가 그중에서 두 점이 나왔고 보물이 다섯 점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반환 문화재가 엉망은 아니었다, 그 당시로서는 가치성이 높은 유물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혜문스님을 일반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환수받은 문화재를 봤는데 그 속에 짚신이 있었다면 좀 황당하기는 했을 겁니다.

그런 점일 테고.

우리나라에서 그렇다면 1400여 점 가운데 요구는 얼마를 했고 그중에 1400점을 받은 건 파악하고 계십니까?-전체 4300여 점을.

-4300여 점을 요구해서 1400여 점을 환수받았다.

알겠습니다.

혜문스님, 문화재 환수와 관련해서 분쟁이나 분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늘상 우리가 접하는 일인데 말이죠.

국제적으로 어떤 규정이나 법률 같은 게 있습니까?-몇 가지 중요한 법률이 있습니다.

국제법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유네스코에서 만든, 유네스코에서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문화재 불법 반출 및 소유권 양도 금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

1970년대에 발의된 것인데요.

여기에는 우리나라도 가입돼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이것이 국제법상으로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는 가장 많이 인용되는 법률이고 그 이후에도 90년대 유니드로협약이라고 해서 도난과 도굴에 관한 부분까지 아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우리나라나 일본, 미국 이런 나라가 가입하고 있지 않은 형태이기 때문에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또 하나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유네스코의 산하기관입니다.

국제박물관협의회, 아이콤이라고 불리우는데요.

여기에서 원산국의 기원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화재는 원산국으로 반환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라는 이른바 다카의 원칙이라고 불리는데요.

1978년 세네갈 아이콤회의에서 채택한 것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주장하고 있는 국제법적인 협약, 또 아이콤에서 말한 세네갈 다카의원칙에 의해서 원산국의 문화와 기원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원산국으로 돌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이 문화재 반환에 중요한 국제법적인 준거, 인용되고 있는 협약들입니다.

한 가지 더 보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앞에 한일협정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한일협정에 대해서 일본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한일협정에서 일본이 추구한 것들.

첫째가 국유문화재는 돌려주겠다, 두번째가 사유문화재는 반환하지 않는다, 세번째가 정치적인 고려, 문화적인 고려에 의한 인도이지 이것은 문화재의 법률적인 의무에 의한 반환은 아니다라는 이 3개를 일본이 한일협정에서 계속 고집하고 요청해서 그 원칙을 관철시켰는데요.

이런 일본이 제기한 이런 원칙에 의해서도 아까 우리가 얘기한 궁내청에 소장된 조선왕조의 도서는 원칙적으로 국유문화재이기 때문에 돌려받을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되지 않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다카의 원칙, 이런 국제적인 합의 이게 얼마나 강제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갖고 있는 나라가 돌려주지 않는다면 참 받기 어려운 게 문화재인 것 같아요.

특히 조선왕조의궤도 그렇습니다마는 외규장각도서 말이죠.

반환 문제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처음에 등가의 원칙을 적용을 해서 같은 양의 문화재를 상호 임대하는 방식으로 주겠다, 이렇게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동안 한 세 차례 우리가 목록을 보냈습니다마는 그것이 등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해서 결렬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외규장각 도서가 이미 100여 년 동안 중요한 고문서로 자기들이 보관해 온 자기들의 문화유산이다, 이미.

그러니까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해서 우리 문화재를 돌려줄 수 없다, 이런 것도 있는데 사실 프랑스가 놓여진 처지라는 게 해외 문화재를, 약탈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전략이라는 게 결국 우리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드시 찾아와야 된다는 그런 논리이고 그쪽에서는 그것을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게 되면 자국 내에 있는 외국 문화재, 소장 문화재의 행방이 앞으로 묘연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교류라는 것은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상호 신뢰 하에서 단계적으로 새로운 문화교류 차원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외규장각 도서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것이 바로 일방적으로 우리가 내놓으라고 하고 국민들이 불매운동을 펼친다든지 운동차원으로 해서만은 되지 않는다.

고도의 외교적인 기술을 요한다.

-프랑스 정부 같은 경우에는 약탈된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국가 소유라면 반환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이지 않습니까?-그렇습니다.

-아까 혜문스님 말씀에 우리가 한일협정 맺을 때는 일본이 국유문화재에 대해서는 우리한테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 정부의 논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우리가 인정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지금 국민적인 관심, 소위 말해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 중에 가장 증거가 확실한 불법 유출, 약탈 문화재가 바로 외규장각 도서인데 전체 340여 점이 되고 그중에 의궤가 297점입니다.

그런데 그 의궤라는 것은 우리 조선왕실에서 일어난, 역사적으로 치러진 모든 행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왕실문화에 대한 기록물로써 우리 왕실의 모든 정치, 사회, 경제를 알 수 있는 우리의 1차 사료인데 그런 사료는 우리 국민이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는 문화재인데 프랑스에서는 자기들이 100년 이상 가지고 있었으니까 자기들 문화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소도감의궤 상하를 가지고 왔는데 그중에 상권을 돌려준 것으로 인해서 프랑스 하위직 300여 명이 연판장을 돌리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자기들은 어떻게 할 거냐.

우리 문화재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대통령 마음대로 활용해도 되느냐, 그런 공개질의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우리가 감안할 때 프랑스 입장도 고려하면서 그것이 실질적으로 우리가 반환받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영구임대라는 방법으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한 단계에 와 있다고 신문보도에 나왔습니다.

-지금 박 원장님이 말씀하신 방식 말이죠,영구임대방식.

혜문스님 생각으로는 어떻습니까?-일단 우리나라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몇 가지 반환문제에 대해서 합의했던, 사실상 되돌이킬 수 없는 원칙의 하나가 등가의 교환 원칙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 내부 법률의 문제가 자국의 문화재는 해외로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을 굉장히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현실적인 조건에 맞춰서 영구임대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겠죠.

제가 외규장각 도서를 바라보는 문제는 몇 가지 현재 문제와 다른 시각이 존재합니다.

약간 주제에서 벗어날지 모르겠지만 제가 서두에서 반환받은 문화재는 조선왕조의궤와 북관대첩비, 한정해서 엄밀한 의미를 본다면 두 건에 한정할 수 있다는 의미를 드릴 수 있겠는데요.

이것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돌아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남북관계에서 공조가 이루어졌다, 남북이 합의해서 돌려받았다라는 하나의 특이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규장각 도서도 지금 프랑스와 북쪽에서의 수교가 사실상 굉장히 진전돼 있어서 조만간 수교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보도가 있고 또 대북특사로 가고 있는 사람이 자크 랑이라는 사람인데 이분이 미테랑 대통령 당시에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휘경원소도감의궤를 우리나라에 전해 주는 이런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람인데 우리나라 정부가 영구임대를 한편으로 추진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는 데 있어서 북과 프랑스의 수교문제를 원활하게 활용한다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을 수 있는 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식의 반환운동, 이런 것도 고려해 봄직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여튼 약탈문화재 환수를 놓고 국가들간에 팽팽해요, 입장차이가.

여러 번 박 원장님이 강조해 주셨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뭐라고 그럴까요, 너무 국수주의적으로, 너무 민족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지금 우리 외교협상으로 반환받을 수밖에 없는데 모든 외교협상에는 서로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는 협상이 되지를 않습니다.

프랑스가 지니고 있는 입장도 우리가 고려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된다는 그런 차원입니다.

그래서 결국 특정한 문화재를 영구 반환받으면서 프랑스에 교환 형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해외에 21개국에 65개 박물관에 한국실 또는 한국코너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재가 전세계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보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거기 한국실이 일본이나 중국실에 비해서 상당히 초라합니다, 대부분이.

그런 걸 보면 결국 우리 문화재가 해외의 유수한 박물관 한국실에서 초라한 모습보다는 풍성하고 삐까뻔쩍한 모습으로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의 국내에 있는 문화재를 프랑스 파리에서도 소개를 하고 그리고 양국의 새로운 문화교류 차원에서 이제는 폭넓게 어떤 형식에 구애되지 말고 그래서 우리 한국 문화를 알리는 첨병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면 비합리적인 반환요구도 많은 것 같아요.

모두에서도 나왔습니다마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우리 것이다라는 인식도 있는데 말이죠.

혜문 스님, 그 부분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그런 부분이 문화재 반환운동에 실제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생떼를 쓰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마는 저는 그래도 생떼 쓰기 전에 늘 박상국 원장님한테 전화를 드려서 앞으로 이런 문화재반환운동을 하는데 많이 조언을 해 주십시오라고 제가 늘 상의를 드리고 시작하는 편입니다마는.

물론 캠페인의 형태이고 실제로 문화재 반환운동에 진입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역시 프랑스에 있는데요.

왕오천축국전을 반환받아야 된다든지 이런 주장, 움직임들이 제기되기도 했었는데요.

오천축국전은 혜초라는 신라 스님이 이른바 천축국, 인도의 가서 천축국을 보고 적은 기행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고 중국 돈황의 막고굴에 있던 것을 프랑스 사람 탐험가가, 사실상 도굴이죠.

도굴을 해서 프랑스로 가져간 문화재인데요.

중국땅에서 도굴당한 책인데 단지 저자가 신라승 혜초라는 이유 때문에 이것을 프랑스로부터 우리나라가 반환받아야 된다 하는 그런 단순한 논리에서의 움직임, 주장 이런 것들이 이른바 문화재 대중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 중의 하나겠죠.

이런 부분을 우리가 지양해서 어느 정도의 합리성, 불법성, 불법 유출 경로에 대한 학술적인 뒷받침, 법률적인 논거 이런 것들을 규명해 가야지만 문화재 반환운동,문화재 제자리찾기운동이 합리적인 사회운동으로써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님, 지금 쭉 말씀해 주셨는데 민간단체의 운동에 대해서 아쉬운 점은 이미 얘기를 해 주셨어요.

그러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줬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가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동안 민간단체에서 소위 말해서 여론을 주도했고 그리고 정부로 하여금 앞장서게 한 그런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됩니다.

결국 정부가 하는 일이 국민을 위한 일이다.

공직자가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관련 정부기관과 민간기관과 하나의 공통점을 도출하고 서로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그런 협의회가 구성이 돼 있습니다.

협의회가 구성이 돼 있고 앞으로 재단법인 설립도 구상을 하고 있는 그런 단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민간단체들이 많은 긍정적인 역할만 있는 게 아니고 그 가운데는 정말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해외에 나가서 우리가 약탈당한 문화재를 우리가 돌려받기 위해서 왔다는 그런 원론적인 애국심에 누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그런 열정과 그런 것을 이제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건전한 민간단체로서 우리의 문화재를 애호하고 사랑하는 성숙된 모습,그런 차원에서 운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박 원장님께서는 민간단체에 바라는 것을 얘기하셨으니까 혜문 스님께서는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문화재 반환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겠죠.

이를테면 외교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든지 또 상대국에 대한 지나친 압박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도 저도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소위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겪었던 격동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서구사회의 유입, 일본의 침략 이런 것들에 대한 국민감정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주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원장님께 하나 드릴게요.

아까 혜문스님께서 잠깐 남북간의 문화재 환수를 위한 공동노력 얘기를 해 주었는데 어떻게 평가하시고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될 것으로 보시는지 짧게 정리해 주십시오.

-남북 불교계 교류를 통해서 그동안 북관대첩비 환수, 원위치의 건립 등을 통해서 사실 남북간의 물꼬를 트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과 일본 수교에 있어서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시행착오.

우리가 한일회담 당시에는 북한에서 출토된 문화재는 우리가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이 이번 남북교류를 통해서 보완책이 될 것 같습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신 두 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화재에는 그 나라와 그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혼이 담겨 있습니다.

특정한 시기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역사와 혼을 되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단체의 체계적인 협력과 노력이 중요하겠습니다.

동시에 우리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함께 국민적인 꾸준한 관심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요진단 오늘 순서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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