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만 말하죠” 김길태 움직인 경찰관

입력 2010.03.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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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말고 꼭 그 분에게만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 수사관님을 불러주세요"

경찰에 붙잡힌지 5일째가 되도록 입을 굳게 닫았던 부산 여중생 살해 피의자 김길태(33)는 14일 오전 거짓말탐지기조사와 뇌파조사를 마친 뒤 프로파일러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신 유기와 관련한 일부였긴 했지만 김 씨가 범행 사실에 대해 최초로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김 씨는 그러나 앞에 있던 프로파일러 대신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줬던 수사본부 박모(49) 경사를 찾았다. 김 씨가 유독 박 경사를 찾은 이유는 뭘까.

경찰에 따르면 박 경사는 4개조로 편성돼 있는 신문조 소속이다. 그러나 박 경사는 김 씨를 조사할 때마다 범죄사실을 털어놓으라고 김 씨를 압박하는 대신 심경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인간적으로' 접근했다.

박 경사는 딸만 2명을 둔 아빠. 그는 김 씨에게 "나도 딸만 둘 있는 아빠다. 너가 딸을 둔 내 심정을 알겠느냐. 너한테 끔찍하게 성폭행당하고 살해될 때 이모(13) 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네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 무참히 살해된 어린 딸을 먼저 보낸 이 양 부모는 얼마나 괴로웠겠느냐"고 말했다.

박 경사가 속한 신문조는 이 양이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는 목포에 사는 외사촌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파악, 김 씨에게 보여주는 등 이 양의 내면과 정서를 김 씨에게 이해시키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 중심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김 씨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워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박 경사가 속한 신문조는 또 김 씨가 좋아하는 자장면을 시켜주고 던힐 담배도 권하며 친근감을 키웠다. 박 경사는 "나도 너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며 김 씨와 비슷한 처지였음을 강조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때마다 김 씨는 심리적으로 몹시 흔들리는 반응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 경사가 이 양의 부검 결과를 말해주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또 김 씨는 박 경사에게만 "죽은 이 양에게 굉장히 미안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자백을 받기 위해 김 씨를 호되게 추궁하기보다는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김 씨의 심경변화를 유도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범행 다음 날인 25일 새벽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 것은 "범행 후 죄책감과 불안함으로 너무 괴로워 힘든 자신의 처지를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21차례나 전화를 걸었으나 한번을 빼곤 상대방이 자신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자 몹시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고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진술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경사는 형사 경력이 20년 넘는 베테랑"이라며 "김 씨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박 경사에게만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괴로운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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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분께만 말하죠” 김길태 움직인 경찰관
    • 입력 2010-03-15 13:43:54
    연합뉴스
"다른 사람 말고 꼭 그 분에게만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 수사관님을 불러주세요" 경찰에 붙잡힌지 5일째가 되도록 입을 굳게 닫았던 부산 여중생 살해 피의자 김길태(33)는 14일 오전 거짓말탐지기조사와 뇌파조사를 마친 뒤 프로파일러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신 유기와 관련한 일부였긴 했지만 김 씨가 범행 사실에 대해 최초로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김 씨는 그러나 앞에 있던 프로파일러 대신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줬던 수사본부 박모(49) 경사를 찾았다. 김 씨가 유독 박 경사를 찾은 이유는 뭘까. 경찰에 따르면 박 경사는 4개조로 편성돼 있는 신문조 소속이다. 그러나 박 경사는 김 씨를 조사할 때마다 범죄사실을 털어놓으라고 김 씨를 압박하는 대신 심경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인간적으로' 접근했다. 박 경사는 딸만 2명을 둔 아빠. 그는 김 씨에게 "나도 딸만 둘 있는 아빠다. 너가 딸을 둔 내 심정을 알겠느냐. 너한테 끔찍하게 성폭행당하고 살해될 때 이모(13) 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네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 무참히 살해된 어린 딸을 먼저 보낸 이 양 부모는 얼마나 괴로웠겠느냐"고 말했다. 박 경사가 속한 신문조는 이 양이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는 목포에 사는 외사촌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파악, 김 씨에게 보여주는 등 이 양의 내면과 정서를 김 씨에게 이해시키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 중심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김 씨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워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박 경사가 속한 신문조는 또 김 씨가 좋아하는 자장면을 시켜주고 던힐 담배도 권하며 친근감을 키웠다. 박 경사는 "나도 너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며 김 씨와 비슷한 처지였음을 강조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때마다 김 씨는 심리적으로 몹시 흔들리는 반응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 경사가 이 양의 부검 결과를 말해주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또 김 씨는 박 경사에게만 "죽은 이 양에게 굉장히 미안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자백을 받기 위해 김 씨를 호되게 추궁하기보다는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김 씨의 심경변화를 유도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범행 다음 날인 25일 새벽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 것은 "범행 후 죄책감과 불안함으로 너무 괴로워 힘든 자신의 처지를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21차례나 전화를 걸었으나 한번을 빼곤 상대방이 자신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자 몹시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고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진술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경사는 형사 경력이 20년 넘는 베테랑"이라며 "김 씨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박 경사에게만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괴로운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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