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참된 무소유 보여준 분”

입력 2010.03.1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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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은 거창한 장례의식 없이 떠난 마지막 길에서도 참된 무소유와 절제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습니다."

법정스님과 종교를 넘어 교류를 이어온 시인 이해인 수녀는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이 분수에 맞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만난 이 수녀는 "2005년 길상사에서 열린 자선음악회에서 스님을 뵌 게 마지막이었다"며 "이후 스님도 아프고 저도 암 투병 중이어서 문병을 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수녀가 첫 시집 '민들레 영토'(1976)를 출간한 뒤 법정스님을 좋아하는 친구의 권유로 스님에게 자신의 책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법정스님은 이 수녀가 머문 수녀원에, 이 수녀는 스님이 머물던 송광사 불일암에 오가면서 교류를 이어갔다.

"그때 제가 머물던 수녀원 인근에 바닷가가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함께 거닐었고 이후 스님은 달맞이꽃이 필 무렵 저를 암자에 초대했습니다."

이 수녀는 법정스님이 항상 쾌활하고 농담을 잘했다고 회고했다. 스님과 때로는 천주교 용어와 불교 용어를 쓰며 대화했다고 소개했다.
종교가 다른 법정스님과 30년 넘게 인연이 이어져 온 것에 대해 이 수녀는 "편지를 빈번하게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마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의 삶에 대해서는 "지적 욕구나 허영심 등 그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는 점을 보여줬다"며 "스님의 삶을 보면 이제 책도 안써야 하지 않을까, 그게 무소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 수녀는 "저의 경우 책 인세가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수녀원 공동의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기부를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베풂을 통해 얻는 희열마저 포기하는 것, 허영심을 내려놓는 게 참된 무소유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 수녀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기 쉽지만 법정스님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지키려 했고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려 했다고 바라봤다. "흰 눈 쌓인 언덕길의 소나무처럼 자신에게 엄격한 분이었다"다는 것.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 중인 이 수녀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최근 세상을 떠난 문화계 저명인사의 추도 시를 써 왔다.

죽음을 추모하며 자신의 앞날과 죽음을 묵상하기도 한다는 이 수녀는 "추모글을 쓰다 보면 저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게 된다"며 "그래서 더욱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아야 하고, 떠난 분들이 남긴 향기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돌아봤다.

암 투병으로 인해 외부활동마저 접었다는 이 수녀는 "법정스님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여러번 한다"며 "저도 명랑하게 투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수녀는 커피 1잔 마실 돈을 아껴 기부를 하는 등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절제와 참된 나눔의 정신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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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인 수녀 “참된 무소유 보여준 분”
    • 입력 2010-03-15 19:29:20
    연합뉴스
"법정스님은 거창한 장례의식 없이 떠난 마지막 길에서도 참된 무소유와 절제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습니다." 법정스님과 종교를 넘어 교류를 이어온 시인 이해인 수녀는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이 분수에 맞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만난 이 수녀는 "2005년 길상사에서 열린 자선음악회에서 스님을 뵌 게 마지막이었다"며 "이후 스님도 아프고 저도 암 투병 중이어서 문병을 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수녀가 첫 시집 '민들레 영토'(1976)를 출간한 뒤 법정스님을 좋아하는 친구의 권유로 스님에게 자신의 책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법정스님은 이 수녀가 머문 수녀원에, 이 수녀는 스님이 머물던 송광사 불일암에 오가면서 교류를 이어갔다. "그때 제가 머물던 수녀원 인근에 바닷가가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함께 거닐었고 이후 스님은 달맞이꽃이 필 무렵 저를 암자에 초대했습니다." 이 수녀는 법정스님이 항상 쾌활하고 농담을 잘했다고 회고했다. 스님과 때로는 천주교 용어와 불교 용어를 쓰며 대화했다고 소개했다. 종교가 다른 법정스님과 30년 넘게 인연이 이어져 온 것에 대해 이 수녀는 "편지를 빈번하게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마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의 삶에 대해서는 "지적 욕구나 허영심 등 그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는 점을 보여줬다"며 "스님의 삶을 보면 이제 책도 안써야 하지 않을까, 그게 무소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 수녀는 "저의 경우 책 인세가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수녀원 공동의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기부를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베풂을 통해 얻는 희열마저 포기하는 것, 허영심을 내려놓는 게 참된 무소유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 수녀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기 쉽지만 법정스님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지키려 했고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려 했다고 바라봤다. "흰 눈 쌓인 언덕길의 소나무처럼 자신에게 엄격한 분이었다"다는 것.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 중인 이 수녀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최근 세상을 떠난 문화계 저명인사의 추도 시를 써 왔다. 죽음을 추모하며 자신의 앞날과 죽음을 묵상하기도 한다는 이 수녀는 "추모글을 쓰다 보면 저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게 된다"며 "그래서 더욱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아야 하고, 떠난 분들이 남긴 향기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돌아봤다. 암 투병으로 인해 외부활동마저 접었다는 이 수녀는 "법정스님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여러번 한다"며 "저도 명랑하게 투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수녀는 커피 1잔 마실 돈을 아껴 기부를 하는 등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절제와 참된 나눔의 정신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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