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사형집행관도 울었다!
입력 2010.03.25 (20:30)
수정 2010.03.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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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안중근 의사를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가 안 의사의 사형 당시를 회고한 글을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안 의사의 거룩한 모습에 당시 사형 집행관마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최영은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9년 10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관통시킨 세 발의 총성.
안중근 의사는 이 의거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안 의사는 자서전을 탈고하고,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하고, 수십 점의 유묵을 남겼습니다.
필묵으로 이룬 또 다른 저항이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의연했던 안의사의 모습은 kbs가 최초로 입수한 일본인 변호사의 글에도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사형 집행 직전까지 안 의사를 만났던 변호사 미즈노 키치타로 씨.
1948년에 발행된 남국야화에서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고 회고합니다.
"사형 집행일에 순백의 조선 복을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키치타로 변호사는 또 천국에는 국가가 없고 국경이 없기 때문에 안 의사와 친하게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별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거룩한 안 의사 모습은 당시 간수들조차 결국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시타라 마사즈미:"(당시 간수였던 작은 할아버지는) ’안중근은 멋진 남자 였다’고 술을 마시면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안중근이 위대한 인물인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면서 멋진 남자였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침략의 나라 사람들마저 감동시킨 그의 애국심과 숭고한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 더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영은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가 안 의사의 사형 당시를 회고한 글을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안 의사의 거룩한 모습에 당시 사형 집행관마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최영은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9년 10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관통시킨 세 발의 총성.
안중근 의사는 이 의거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안 의사는 자서전을 탈고하고,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하고, 수십 점의 유묵을 남겼습니다.
필묵으로 이룬 또 다른 저항이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의연했던 안의사의 모습은 kbs가 최초로 입수한 일본인 변호사의 글에도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사형 집행 직전까지 안 의사를 만났던 변호사 미즈노 키치타로 씨.
1948년에 발행된 남국야화에서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고 회고합니다.
"사형 집행일에 순백의 조선 복을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키치타로 변호사는 또 천국에는 국가가 없고 국경이 없기 때문에 안 의사와 친하게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별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거룩한 안 의사 모습은 당시 간수들조차 결국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시타라 마사즈미:"(당시 간수였던 작은 할아버지는) ’안중근은 멋진 남자 였다’고 술을 마시면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안중근이 위대한 인물인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면서 멋진 남자였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침략의 나라 사람들마저 감동시킨 그의 애국심과 숭고한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 더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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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사형집행관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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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3-25 20:30:58
- 수정2010-03-25 22:50:36
<앵커 멘트>
안중근 의사를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가 안 의사의 사형 당시를 회고한 글을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안 의사의 거룩한 모습에 당시 사형 집행관마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최영은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9년 10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관통시킨 세 발의 총성.
안중근 의사는 이 의거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안 의사는 자서전을 탈고하고,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하고, 수십 점의 유묵을 남겼습니다.
필묵으로 이룬 또 다른 저항이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의연했던 안의사의 모습은 kbs가 최초로 입수한 일본인 변호사의 글에도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사형 집행 직전까지 안 의사를 만났던 변호사 미즈노 키치타로 씨.
1948년에 발행된 남국야화에서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고 회고합니다.
"사형 집행일에 순백의 조선 복을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키치타로 변호사는 또 천국에는 국가가 없고 국경이 없기 때문에 안 의사와 친하게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별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거룩한 안 의사 모습은 당시 간수들조차 결국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시타라 마사즈미:"(당시 간수였던 작은 할아버지는) ’안중근은 멋진 남자 였다’고 술을 마시면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안중근이 위대한 인물인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면서 멋진 남자였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침략의 나라 사람들마저 감동시킨 그의 애국심과 숭고한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 더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영은입니다.
안중근 의사를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가 안 의사의 사형 당시를 회고한 글을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안 의사의 거룩한 모습에 당시 사형 집행관마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최영은 기자입니다.
<리포트>
1909년 10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관통시킨 세 발의 총성.
안중근 의사는 이 의거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안 의사는 자서전을 탈고하고,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하고, 수십 점의 유묵을 남겼습니다.
필묵으로 이룬 또 다른 저항이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의연했던 안의사의 모습은 kbs가 최초로 입수한 일본인 변호사의 글에도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사형 집행 직전까지 안 의사를 만났던 변호사 미즈노 키치타로 씨.
1948년에 발행된 남국야화에서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고 회고합니다.
"사형 집행일에 순백의 조선 복을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키치타로 변호사는 또 천국에는 국가가 없고 국경이 없기 때문에 안 의사와 친하게 마음껏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별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거룩한 안 의사 모습은 당시 간수들조차 결국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시타라 마사즈미:"(당시 간수였던 작은 할아버지는) ’안중근은 멋진 남자 였다’고 술을 마시면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안중근이 위대한 인물인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면서 멋진 남자였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침략의 나라 사람들마저 감동시킨 그의 애국심과 숭고한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 더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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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은 기자 imlif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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