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장엽 제거’ 지시, 왜 작년 11월인가?

입력 2010.04.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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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 암살 기도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왜 지금인가'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황장엽 살해'를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한 남파간첩들은 작년 11월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의 김영철 총국장(상장)한테 직접 `암살 지시'를 받았다. 현 시점부터 따지면 5개월 전부터 암살 음모가 실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북한이 만 13년 전에 남측으로 망명한 황 전 비서를 왜 이제 와서 제거하려 했을까, 지시가 떨어진 작년 11월에는 어떤 시의성이 있는 것일까 등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1997년 2월 남한에 망명한 황 전 비서는 1923년생으로 올해 87세의 고령이다.

그동안 북한은 황 전 비서의 발언이 남한 언론에 보도되는 등 어떤 계기가 생길 때마다, 선전 매체를 통해 그를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잦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욱이 `신체적 위해'를 염두에 둔 듯한 노골적 위협은 거의 없었다.

예컨대 황 전 비서가 2003년 10월 처음 미국에 가 이런 저런 북한체제 비판을 쏟아냈을 때 북측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황씨 같은 인간폐물이 우리 체제를 헐뜯게 용인할 경우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직접 황씨를 겨냥했다기보다 남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의 온라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4일 황 전 비서의 미국 방문중 발언을 문제삼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격하게 비난한 것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테러나 살해 기도로 볼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3월30일 4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중국이 동맹관계를 끊으면 북한에는 사망선고와 같다", "북한의 현 상황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등 현 강도높은 북한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을 `놈'으로 부르며 "그깟 놈 알아서 뭐하냐"는 식의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어 일본을 방문해 아사히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황 전 비서는 "부친인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김정일)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강하다"면서 김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시점이 서로 뒤엉킨 의미는 없지 않지만 이달 초 `우리민족끼리'가 황 전 비서에게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언사가 결국 `엄포'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왜 작년 11월인가'라는 암살지시의 시점을 놓고는 아무래도 김정은 후계구도 구축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평소에는 `역풍'을 생각해라도 내버려둘 수 있지만 후계구도에 나쁜 영향을 주면 결코 방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황 전 비서의 지난해 활동 내용을 되짚어 보면 특히 하반기 들어 강연 등 외부활동과 언론 노출이 잦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작년 4월에는 자신의 저서 `인간중심철학원론'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6월에는 KAL858기 폭파범인 전 북한공작원 김현희씨를 만났으며, 9월에 다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책을 내 "북중 동맹관계를 끊도록 중국을 상대하는 외교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 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10월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개소식에 참석, 북한 개정헌법의 `공산주의' 삭제에 대해 "공산주의를 내세우면 왕정복고식 (3대)후계세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선군정치를 앞세워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12월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 10주년 행사에서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교포 80만명을 잘 포섭해 북한에 들여보내면 북한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년부터 황 전 비서의 북한체제 비판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고 외부 활동도 활발해지자 `3대 세습' 후계구도의 정당화 논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해 `암살 카드'를 거내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30여개 남한 내 탈북자단체들이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황 전 비서가 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듯하자, 탈북자 전체에 대한 `경고성 암살'을 기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매체들이 북한 내 통신원까지 운영하면서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이것 저것 들춰내자 그런 `경고'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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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황장엽 제거’ 지시, 왜 작년 11월인가?
    • 입력 2010-04-21 13:00:55
    연합뉴스
북한의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 암살 기도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왜 지금인가'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황장엽 살해'를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한 남파간첩들은 작년 11월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의 김영철 총국장(상장)한테 직접 `암살 지시'를 받았다. 현 시점부터 따지면 5개월 전부터 암살 음모가 실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북한이 만 13년 전에 남측으로 망명한 황 전 비서를 왜 이제 와서 제거하려 했을까, 지시가 떨어진 작년 11월에는 어떤 시의성이 있는 것일까 등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1997년 2월 남한에 망명한 황 전 비서는 1923년생으로 올해 87세의 고령이다. 그동안 북한은 황 전 비서의 발언이 남한 언론에 보도되는 등 어떤 계기가 생길 때마다, 선전 매체를 통해 그를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잦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욱이 `신체적 위해'를 염두에 둔 듯한 노골적 위협은 거의 없었다. 예컨대 황 전 비서가 2003년 10월 처음 미국에 가 이런 저런 북한체제 비판을 쏟아냈을 때 북측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황씨 같은 인간폐물이 우리 체제를 헐뜯게 용인할 경우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직접 황씨를 겨냥했다기보다 남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의 온라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4일 황 전 비서의 미국 방문중 발언을 문제삼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격하게 비난한 것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테러나 살해 기도로 볼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3월30일 4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중국이 동맹관계를 끊으면 북한에는 사망선고와 같다", "북한의 현 상황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등 현 강도높은 북한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을 `놈'으로 부르며 "그깟 놈 알아서 뭐하냐"는 식의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어 일본을 방문해 아사히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황 전 비서는 "부친인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김정일)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강하다"면서 김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시점이 서로 뒤엉킨 의미는 없지 않지만 이달 초 `우리민족끼리'가 황 전 비서에게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언사가 결국 `엄포'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왜 작년 11월인가'라는 암살지시의 시점을 놓고는 아무래도 김정은 후계구도 구축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평소에는 `역풍'을 생각해라도 내버려둘 수 있지만 후계구도에 나쁜 영향을 주면 결코 방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황 전 비서의 지난해 활동 내용을 되짚어 보면 특히 하반기 들어 강연 등 외부활동과 언론 노출이 잦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작년 4월에는 자신의 저서 `인간중심철학원론'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6월에는 KAL858기 폭파범인 전 북한공작원 김현희씨를 만났으며, 9월에 다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책을 내 "북중 동맹관계를 끊도록 중국을 상대하는 외교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 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10월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개소식에 참석, 북한 개정헌법의 `공산주의' 삭제에 대해 "공산주의를 내세우면 왕정복고식 (3대)후계세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선군정치를 앞세워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12월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 10주년 행사에서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교포 80만명을 잘 포섭해 북한에 들여보내면 북한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년부터 황 전 비서의 북한체제 비판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고 외부 활동도 활발해지자 `3대 세습' 후계구도의 정당화 논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해 `암살 카드'를 거내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30여개 남한 내 탈북자단체들이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황 전 비서가 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듯하자, 탈북자 전체에 대한 `경고성 암살'을 기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매체들이 북한 내 통신원까지 운영하면서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이것 저것 들춰내자 그런 `경고'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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