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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 “록밴드 뮤비 찍다 서태지에 낙점됐죠”
입력 2010.05.04 (07:50) 수정 2010.05.04 (19:35) 연합뉴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에 세워진 기타가 맞이했다. 한쪽 벽에는 린킨 파크 등 세계적인 록밴드의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사무실의 주인은 분명 록음악 마니아일 거라고 생각했다.



논현동에 위치한 이곳은 요즘 뮤직비디오계를 평정했다고 이름난 홍원기(35) 감독의 회사 '자니 브로스' 사무실.



그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건 2008년 서태지의 8집 곡 '모아이'와 '줄리엣'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부터다.



영상미와 연출 기법이 독특해 입소문이 난 그는 신승훈, 에픽하이, 휘성, SS501, 포미닛, 비스트 등 장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2008년과 지난해까지 약 150편의 작품을 찍었고 올해만 벌써 20편을 만들었다. 스케줄 보드를 슬쩍 훑자 이승환, 2AM, 린, 거미, 럼블피쉬 등 4-5월 뮤직비디오 촬영 스케줄이 빼곡했다. 지난해에는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상도 수상했다.



이곳에서 만난 홍 감독에게 대뜸 록 음악 마니아냐고 물었다.



"고교부터 서울예대 시절까지 록밴드 '플라워 칠드런' 기타리스트였어요. 부모님이 모두 미대를 나오셨는데 IMF 이후 집안이 어려워져 군 제대 후인 1999년 광고 편집회사에 입사해 영상 장비 기술을 배웠죠. 2002년 친구이자 촬영감독인 김준홍 씨와 자니 브로스를 설립했어요. 현재 조감독 중 한 명은 제가 뮤직비디오를 찍어준 인디밴드 디스코 트럭의 멤버였고, 디자이너도 밴드 바세린의 보컬이었죠."



200만원짜리 컴퓨터 한 대가 창업 자금이었던 그의 첫 작품은 1천200만원을 받고 찍은 레이지본의 '두 잇 유어셀프(Do It Yourself)'. 넬, 피아 등 록밴드의 작품들도 초기작이다.



그는 "내가 밴드를 한데다, 특히 헤비메탈을 좋아했다"며 "준홍 씨와 국내에 존재하는 록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다 찍어보자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서태지까지 찍는 게 목표였다"고 웃었다.



홍 감독의 꿈은 너무 빨리 이뤄졌다. 넬, 피아, 에픽하이 등 그가 찍은 뮤직비디오를 본 서태지가 '러브콜'을 한 것이다.



"서태지 씨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안 믿겼어요. 첫 만남 때 서태지 씨가 '드디어 만날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서태지 씨는 3-4년간 공백기 동안 다양한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우리 작품이 음악을 영상으로 가장 잘 표현했다고 칭찬해줬어요."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이후 그에게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작업을 제안했다. 보통 뮤직비디오 감독 중에는 드라마 형식의 발라드곡을 잘 찍는 사람, 댄스곡을 잘 찍는 사람으로 구분되는데 그는 장르를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 작업이 더 쉬워요. 포인트가 되는 댄스 동작과 외모를 세련되게 포장해주는 게 핵심이죠. 하지만 록밴드는 보컬, 악기, 액션, 노랫말을 모두 영상에 맞춰야 하니 오히려 어려워요. 힙합은 특히 노랫말이 중요하고요. 그러나 장르를 차치하고 공통된 건 가수가 가진 음악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 사고'들이 늘 생겨난다고 말했다.



포미닛 등 아이돌 그룹과의 촬영 때는 과다한 스케줄로 인해 실신하는 멤버가 나오고, 에픽하이의 뮤직비디오 때는 한강 인근 하수처리장에서 찍던 중 갑자기 물이 방류돼 발전기에 전원이 꽂혀 있었더라면 감전될 위험에 처할 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은 칠레 이스터섬에서 서태지의 '모아이' 뮤직비디오를 찍었을 때다.



"모아이 석상을 찍은 곳이 해발 4천600미터 고산지대였어요. 현지 코디네이터가 고산병을 주의시키며 걸어 다니라고 했는데 너무 바빠 모두들 뛰어다녔죠. 5분도 채 안돼 스태프의 동작들이 '슬로 모션'이 되더군요. 또 '모아이' 마지막 장면에 U.F.O가 CG로 등장하는데, 저와 서태지 씨 모두 U.F.O를 좋아해 줄곧 외계인 이야기만 나눴어요."



그는 현실적인 뮤직비디오를 싫어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현실에 살고 있으니 현실을 되뇌어주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심각하기 싫다는 그는 "위트 있는 주성치 식 유머를 영상에 담는 걸 좋아한다"며 "영화를 찍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물 흘러가듯 기회가 닿는다면 피터 잭슨 감독의 '데드 얼라이브',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 같은 호러와 코믹이 결합된 좀비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뮤직비디오 현장에서도 실험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뮤직비디오 평균 제작비가 3천-5천만원이고, 시간에 쫓기며 며칠씩 밤을 새우는 열악한 작업 현실은 아쉽지만 시도해보고 싶은 게 아직 많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의 웹을 통해 우리가 찍는 영상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소통되고 있어요. 올해 LG의 LED월드 해외용 광고를 찍었는데 웹을 통해 널리 호평받는 걸 보고 깨달았죠. 해외에서 소통할 웹 용 영상은 더 자유롭게 실험적인 연출이 가능해요. 세계와 직접 소통한다면,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밴드 메탈리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아무로 나미에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날도 올 수 있을까요?"
  • 홍원기 “록밴드 뮤비 찍다 서태지에 낙점됐죠”
    • 입력 2010-05-04 07:50:52
    • 수정2010-05-04 19:35:37
    연합뉴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에 세워진 기타가 맞이했다. 한쪽 벽에는 린킨 파크 등 세계적인 록밴드의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사무실의 주인은 분명 록음악 마니아일 거라고 생각했다.



논현동에 위치한 이곳은 요즘 뮤직비디오계를 평정했다고 이름난 홍원기(35) 감독의 회사 '자니 브로스' 사무실.



그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건 2008년 서태지의 8집 곡 '모아이'와 '줄리엣'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부터다.



영상미와 연출 기법이 독특해 입소문이 난 그는 신승훈, 에픽하이, 휘성, SS501, 포미닛, 비스트 등 장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2008년과 지난해까지 약 150편의 작품을 찍었고 올해만 벌써 20편을 만들었다. 스케줄 보드를 슬쩍 훑자 이승환, 2AM, 린, 거미, 럼블피쉬 등 4-5월 뮤직비디오 촬영 스케줄이 빼곡했다. 지난해에는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상도 수상했다.



이곳에서 만난 홍 감독에게 대뜸 록 음악 마니아냐고 물었다.



"고교부터 서울예대 시절까지 록밴드 '플라워 칠드런' 기타리스트였어요. 부모님이 모두 미대를 나오셨는데 IMF 이후 집안이 어려워져 군 제대 후인 1999년 광고 편집회사에 입사해 영상 장비 기술을 배웠죠. 2002년 친구이자 촬영감독인 김준홍 씨와 자니 브로스를 설립했어요. 현재 조감독 중 한 명은 제가 뮤직비디오를 찍어준 인디밴드 디스코 트럭의 멤버였고, 디자이너도 밴드 바세린의 보컬이었죠."



200만원짜리 컴퓨터 한 대가 창업 자금이었던 그의 첫 작품은 1천200만원을 받고 찍은 레이지본의 '두 잇 유어셀프(Do It Yourself)'. 넬, 피아 등 록밴드의 작품들도 초기작이다.



그는 "내가 밴드를 한데다, 특히 헤비메탈을 좋아했다"며 "준홍 씨와 국내에 존재하는 록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다 찍어보자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서태지까지 찍는 게 목표였다"고 웃었다.



홍 감독의 꿈은 너무 빨리 이뤄졌다. 넬, 피아, 에픽하이 등 그가 찍은 뮤직비디오를 본 서태지가 '러브콜'을 한 것이다.



"서태지 씨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안 믿겼어요. 첫 만남 때 서태지 씨가 '드디어 만날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서태지 씨는 3-4년간 공백기 동안 다양한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우리 작품이 음악을 영상으로 가장 잘 표현했다고 칭찬해줬어요."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이후 그에게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작업을 제안했다. 보통 뮤직비디오 감독 중에는 드라마 형식의 발라드곡을 잘 찍는 사람, 댄스곡을 잘 찍는 사람으로 구분되는데 그는 장르를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곡 작업이 더 쉬워요. 포인트가 되는 댄스 동작과 외모를 세련되게 포장해주는 게 핵심이죠. 하지만 록밴드는 보컬, 악기, 액션, 노랫말을 모두 영상에 맞춰야 하니 오히려 어려워요. 힙합은 특히 노랫말이 중요하고요. 그러나 장르를 차치하고 공통된 건 가수가 가진 음악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 사고'들이 늘 생겨난다고 말했다.



포미닛 등 아이돌 그룹과의 촬영 때는 과다한 스케줄로 인해 실신하는 멤버가 나오고, 에픽하이의 뮤직비디오 때는 한강 인근 하수처리장에서 찍던 중 갑자기 물이 방류돼 발전기에 전원이 꽂혀 있었더라면 감전될 위험에 처할 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은 칠레 이스터섬에서 서태지의 '모아이' 뮤직비디오를 찍었을 때다.



"모아이 석상을 찍은 곳이 해발 4천600미터 고산지대였어요. 현지 코디네이터가 고산병을 주의시키며 걸어 다니라고 했는데 너무 바빠 모두들 뛰어다녔죠. 5분도 채 안돼 스태프의 동작들이 '슬로 모션'이 되더군요. 또 '모아이' 마지막 장면에 U.F.O가 CG로 등장하는데, 저와 서태지 씨 모두 U.F.O를 좋아해 줄곧 외계인 이야기만 나눴어요."



그는 현실적인 뮤직비디오를 싫어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현실에 살고 있으니 현실을 되뇌어주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심각하기 싫다는 그는 "위트 있는 주성치 식 유머를 영상에 담는 걸 좋아한다"며 "영화를 찍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물 흘러가듯 기회가 닿는다면 피터 잭슨 감독의 '데드 얼라이브',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 같은 호러와 코믹이 결합된 좀비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뮤직비디오 현장에서도 실험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뮤직비디오 평균 제작비가 3천-5천만원이고, 시간에 쫓기며 며칠씩 밤을 새우는 열악한 작업 현실은 아쉽지만 시도해보고 싶은 게 아직 많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의 웹을 통해 우리가 찍는 영상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소통되고 있어요. 올해 LG의 LED월드 해외용 광고를 찍었는데 웹을 통해 널리 호평받는 걸 보고 깨달았죠. 해외에서 소통할 웹 용 영상은 더 자유롭게 실험적인 연출이 가능해요. 세계와 직접 소통한다면,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밴드 메탈리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아무로 나미에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날도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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