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교육 마피아’ 밝혀진 사연

입력 2010.06.20 (07:3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서울의 첫 직선 교육감인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주 실형을 선고받았는데요.



뇌물을 받고 부정승진을 지시한 혐의였지요.



이런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육 비리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화과학부 황현택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황 기자? 먼저 지난주에 있었던 법원 선고 내용부터 살펴보죠?



<답변>

네, 지난주 수요일이었습니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징역 4년과 벌금 1억 원 등이 선고됐는데요.



이른바 ’교육 대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교육감이 비리 혐의로 실형을 받은 건 22년 만의 일입니다.



재판부는 고위 간부들로부터 뇌물 1억 4천여만 원을 받아 그 대가로 부정 승진을 지시한 혐의에 대해 죄질이 매우 나쁘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공 전 교육감의 재직 기간은 불과 1년 3개월이었는데요.



물론 1심 선고이긴 하지만, 이대로 혐의가 확정된다면 재직 기간보다 3배나 더 긴 시간을 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질문>

듣자하니 이번 사건이 이른바 ’하이힐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렇습니까?



<답변>

네, 사실 묻힐뻔 했던 인사 비리의 전모는 우연찮은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12월 새벽에 장학사 2명이 서울 노원구의 한 술집에서 말다툼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여성 장학사가 상대인 임 모 장학사의 이마에 하이힐을 벗어 던졌고...



그래도 화가 안 풀리자 경찰서에서 "장학사 시험에 합격시켜 준다고 해서 2천만 원을 건넸다", 이렇게 둘만 알던 사실을 폭로해 버린 겁니다.



검찰이 임 모 장학사를 구속시킨 뒤에 더 조사를 해 보니까 마치 피라미드 형태 조직처럼 교육계에 매관매직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겁니다.



결국 비리의 정점인 공 전 교육감을 비롯해 모두 55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질문>

문제의 여자 장학사, 결국 파면 됐죠?



<답변>

네, 이 장학사에 대해선 ’내부 고발자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던 게 사실인데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공 전 교육감이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같은 날, 폭로의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파면 조치됐습니다.



하이힐에서 비롯된 단순 폭행 사건이 교육계 전체를 뒤흔든 조직적인 인사 비리의 뇌관을 건드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

그런데 2천만 원씩이나 줘가며 굳이 장학사가 되려는 건 왜 그렇죠?



<답변>

네, 교원들이 너도나도 장학사가 되려고 하는 건 교장 승진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픽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예컨대 평교사가 교장이 되려면 아무리 근무성적을 잘 받아도 보통 20년 이상이 걸리거든요.



그런데 교원 전문직, 즉 장학사가 된 뒤에 교육청에서 4,5년 근무하면 교감 자격이 주어지고, 또 4,5년 있으면 교장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그래픽을 보시겠는데요.



지난 2년간 서울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새로 임명된 교장,교감 360여 명 가운데 장학사나 장학관 출신이 28%나 됩니다.



전체 교원 가운데 전문직 비율이 불과 1%에 머물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교감이나 교장으로 가는 길목을 장학사 등 전문직들이 독점해 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학사들은 학교 현장이 아닌 교육청을 전전하기 때문에 특정 학맥이나 인맥에 따라 자기들만의 끈끈한 라인이 생기는 거죠.



이른바 ’교육 마피아’라는 건데요.



이른바 강남 3구의 ’물 좋은 학교’에 교장 발령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장학사가 되어야만 했던 겁니다.



<질문>

보통 인사는 근무평정과 같은 시스템으로 결정되는 거 아닙니까? 왜 이렇게 비리에 취약했던 거죠?



<답변>

네, 예를 들어보죠.



교원 인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근무평정 점수인데요.



가령 ’혁신성’이라는 모호한 항목을 새로 만들어서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승진 대상자를 뒤바꾼 경위가 많았습니다.



실제 아까 말씀드린 문제의 임 모 장학관은 이런 방식으로 2년간 무려 26명의 부당승진에 개입하며 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여기에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현장조사나 면접 배점도 대단히 높아서 실력이 있든, 없든 간에 승진하려면 인사권자에게 뒷돈을 대는 일이 당연시돼 온 겁니다.



<질문>

그래서인지 이번 교육감 선거 때 후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육비리 척결을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답변>

네, 사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교육감 후보들이 한 목소리를 냈던 게 바로 교육 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였습니다.



먼저 당선 직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말, 들어보시죠.



<녹취> 곽노현(서울시교육감 당선인):"부패 비리가 기생하는 음습한 밀실 교육 행정, 학교 행정을 청산하고, 공교육의 새 틀을 마련하라는 소임일 것입니다."



그동안 교육 당국은 막강한 교육감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교장 공모제 100% 확대 등 여러가지 개선 방안을 내놨는데요.



얼마나 실효가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지 않아도 평교사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교육 현장 풍토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세상보기] ‘교육 마피아’ 밝혀진 사연
    • 입력 2010-06-20 07:37:46
    일요뉴스타임
<앵커 멘트>

서울의 첫 직선 교육감인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주 실형을 선고받았는데요.

뇌물을 받고 부정승진을 지시한 혐의였지요.

이런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육 비리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화과학부 황현택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황 기자? 먼저 지난주에 있었던 법원 선고 내용부터 살펴보죠?

<답변>
네, 지난주 수요일이었습니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징역 4년과 벌금 1억 원 등이 선고됐는데요.

이른바 ’교육 대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교육감이 비리 혐의로 실형을 받은 건 22년 만의 일입니다.

재판부는 고위 간부들로부터 뇌물 1억 4천여만 원을 받아 그 대가로 부정 승진을 지시한 혐의에 대해 죄질이 매우 나쁘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공 전 교육감의 재직 기간은 불과 1년 3개월이었는데요.

물론 1심 선고이긴 하지만, 이대로 혐의가 확정된다면 재직 기간보다 3배나 더 긴 시간을 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질문>
듣자하니 이번 사건이 이른바 ’하이힐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렇습니까?

<답변>
네, 사실 묻힐뻔 했던 인사 비리의 전모는 우연찮은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12월 새벽에 장학사 2명이 서울 노원구의 한 술집에서 말다툼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여성 장학사가 상대인 임 모 장학사의 이마에 하이힐을 벗어 던졌고...

그래도 화가 안 풀리자 경찰서에서 "장학사 시험에 합격시켜 준다고 해서 2천만 원을 건넸다", 이렇게 둘만 알던 사실을 폭로해 버린 겁니다.

검찰이 임 모 장학사를 구속시킨 뒤에 더 조사를 해 보니까 마치 피라미드 형태 조직처럼 교육계에 매관매직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겁니다.

결국 비리의 정점인 공 전 교육감을 비롯해 모두 55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질문>
문제의 여자 장학사, 결국 파면 됐죠?

<답변>
네, 이 장학사에 대해선 ’내부 고발자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던 게 사실인데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공 전 교육감이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같은 날, 폭로의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파면 조치됐습니다.

하이힐에서 비롯된 단순 폭행 사건이 교육계 전체를 뒤흔든 조직적인 인사 비리의 뇌관을 건드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
그런데 2천만 원씩이나 줘가며 굳이 장학사가 되려는 건 왜 그렇죠?

<답변>
네, 교원들이 너도나도 장학사가 되려고 하는 건 교장 승진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픽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예컨대 평교사가 교장이 되려면 아무리 근무성적을 잘 받아도 보통 20년 이상이 걸리거든요.

그런데 교원 전문직, 즉 장학사가 된 뒤에 교육청에서 4,5년 근무하면 교감 자격이 주어지고, 또 4,5년 있으면 교장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그래픽을 보시겠는데요.

지난 2년간 서울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새로 임명된 교장,교감 360여 명 가운데 장학사나 장학관 출신이 28%나 됩니다.

전체 교원 가운데 전문직 비율이 불과 1%에 머물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교감이나 교장으로 가는 길목을 장학사 등 전문직들이 독점해 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학사들은 학교 현장이 아닌 교육청을 전전하기 때문에 특정 학맥이나 인맥에 따라 자기들만의 끈끈한 라인이 생기는 거죠.

이른바 ’교육 마피아’라는 건데요.

이른바 강남 3구의 ’물 좋은 학교’에 교장 발령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장학사가 되어야만 했던 겁니다.

<질문>
보통 인사는 근무평정과 같은 시스템으로 결정되는 거 아닙니까? 왜 이렇게 비리에 취약했던 거죠?

<답변>
네, 예를 들어보죠.

교원 인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근무평정 점수인데요.

가령 ’혁신성’이라는 모호한 항목을 새로 만들어서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승진 대상자를 뒤바꾼 경위가 많았습니다.

실제 아까 말씀드린 문제의 임 모 장학관은 이런 방식으로 2년간 무려 26명의 부당승진에 개입하며 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여기에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현장조사나 면접 배점도 대단히 높아서 실력이 있든, 없든 간에 승진하려면 인사권자에게 뒷돈을 대는 일이 당연시돼 온 겁니다.

<질문>
그래서인지 이번 교육감 선거 때 후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육비리 척결을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답변>
네, 사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교육감 후보들이 한 목소리를 냈던 게 바로 교육 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였습니다.

먼저 당선 직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말, 들어보시죠.

<녹취> 곽노현(서울시교육감 당선인):"부패 비리가 기생하는 음습한 밀실 교육 행정, 학교 행정을 청산하고, 공교육의 새 틀을 마련하라는 소임일 것입니다."

그동안 교육 당국은 막강한 교육감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교장 공모제 100% 확대 등 여러가지 개선 방안을 내놨는데요.

얼마나 실효가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지 않아도 평교사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교육 현장 풍토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패럴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