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우승’ 우루과이, 축구 강국의 추억

입력 2010.06.23 (19:14) 수정 2010.06.2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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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 대륙 동남부 동쪽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우루과이는 상당히 작은 나라다. 국토의 면적이 17만6천200㎢라 남한(약 10만㎢)의 두 배가 되지 않으며 인구는 350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의 1930년 초대 개최국이자 우승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루과이는 역대 월드컵 우승국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나라는 아르헨티나인데 인구는 우루과이의 10배가 넘는 4천만명이다.



첫 우승을 차지할 때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4-2로 꺾은 우루과이는 현대 축구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무렵 잉글랜드와 함께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월드컵이 태동할 때는 대단한 축구 강국이었다.



우루과이는 1950년 브라질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한 번 축구팬의 주목을 받았다. 개최국인 축구 강국 브라질을 결승에서 만나 먼저 한 골을 내준 후 두 골을 연속해서 넣어 2-1로 역전승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광은 사라져갔다. 월드컵 우승은커녕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1970년 대회 4강에 오른 이후 눈에 띄는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1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2무 1패를 당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06년 독일 대회 때는 아예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와 플레이오프에서 져서 본선 티켓을 얻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 때도 2002년, 2006년에 이어 또다시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다. 남미 예선을 5위로 통과한 탓에 플레이오프에서 북중미 4위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1승1무를 거두고 나서야 본선 진출국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우루과이로서는 11번째 본선 진출이었다.



FIFA 랭킹 16위인 우루과이는 앞선 남미 예선에서는 화끈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6승 6무 6패(플레이오프 제외)를 올리는 동안 브라질(33점), 칠레(32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28골을 넣었다.



하지만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실점도 많이 했다. 본선 진출국 가운데 칠레(22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0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약점을 보였던 수비는 월드컵 직전 친선경기와 월드컵 조별리그를 거치면서 크게 나아졌다. 수비진영은 3월 스위스와 경기에서 3-1로 이기고 5월 이스라엘을 4-1로 격파할 때 승리를 뒷받침했다.



특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프랑스, 남아공, 멕시코 등 공격력이 만만찮은 팀과 싸우면서도 1점도 내주지 않았다. 프랑스와 0-0으로 비겼고 남아공과 멕시코에 각각 3골과 1골을 넣는 동안 골문을 열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말수가 적고 듬직한 스타일의 타바레스 감독은 현지 벨라 비스타, 우루과이 20세 이하 대표팀,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이탈리아 AC밀란 등을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4-3-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4-4-2 포메이션도 종종 사용한다. 최전방에는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루이스 수아레스(아약스), 에딘손 카바니(팔레르모)가 돌아가며 삼각편대로 상대 수비 진영을 공략한다.



핵심 선수는 포를란이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2008-2009시즌 32골을 몰아친 포를란은 17일 남아공과 조별리그 2차전에서 두 골을 몰아넣으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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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 우승’ 우루과이, 축구 강국의 추억
    • 입력 2010-06-23 19:14:00
    • 수정2010-06-23 19:32:57
    연합뉴스
 남미 대륙 동남부 동쪽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우루과이는 상당히 작은 나라다. 국토의 면적이 17만6천200㎢라 남한(약 10만㎢)의 두 배가 되지 않으며 인구는 350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의 1930년 초대 개최국이자 우승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루과이는 역대 월드컵 우승국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나라는 아르헨티나인데 인구는 우루과이의 10배가 넘는 4천만명이다.

첫 우승을 차지할 때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4-2로 꺾은 우루과이는 현대 축구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무렵 잉글랜드와 함께 세계 축구계를 호령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월드컵이 태동할 때는 대단한 축구 강국이었다.

우루과이는 1950년 브라질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한 번 축구팬의 주목을 받았다. 개최국인 축구 강국 브라질을 결승에서 만나 먼저 한 골을 내준 후 두 골을 연속해서 넣어 2-1로 역전승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광은 사라져갔다. 월드컵 우승은커녕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1970년 대회 4강에 오른 이후 눈에 띄는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1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2무 1패를 당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06년 독일 대회 때는 아예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와 플레이오프에서 져서 본선 티켓을 얻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 때도 2002년, 2006년에 이어 또다시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다. 남미 예선을 5위로 통과한 탓에 플레이오프에서 북중미 4위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1승1무를 거두고 나서야 본선 진출국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우루과이로서는 11번째 본선 진출이었다.

FIFA 랭킹 16위인 우루과이는 앞선 남미 예선에서는 화끈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6승 6무 6패(플레이오프 제외)를 올리는 동안 브라질(33점), 칠레(32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28골을 넣었다.

하지만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실점도 많이 했다. 본선 진출국 가운데 칠레(22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0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약점을 보였던 수비는 월드컵 직전 친선경기와 월드컵 조별리그를 거치면서 크게 나아졌다. 수비진영은 3월 스위스와 경기에서 3-1로 이기고 5월 이스라엘을 4-1로 격파할 때 승리를 뒷받침했다.

특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프랑스, 남아공, 멕시코 등 공격력이 만만찮은 팀과 싸우면서도 1점도 내주지 않았다. 프랑스와 0-0으로 비겼고 남아공과 멕시코에 각각 3골과 1골을 넣는 동안 골문을 열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말수가 적고 듬직한 스타일의 타바레스 감독은 현지 벨라 비스타, 우루과이 20세 이하 대표팀,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이탈리아 AC밀란 등을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4-3-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4-4-2 포메이션도 종종 사용한다. 최전방에는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루이스 수아레스(아약스), 에딘손 카바니(팔레르모)가 돌아가며 삼각편대로 상대 수비 진영을 공략한다.

핵심 선수는 포를란이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2008-2009시즌 32골을 몰아친 포를란은 17일 남아공과 조별리그 2차전에서 두 골을 몰아넣으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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