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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 유해발굴 부대 ‘JPAC’을 가다
입력 2010.06.27 (00:36)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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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여러 행사가 열리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 언론 보도도 많았습니다.



오늘 저희 특파원현장보고도 6.25 60년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전쟁 당시 부상병을 치료해준 덴마크 병원선...남미 유일의 참전국 콜롬비아의 노병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6월 마지막주 특파원 현장보고, 시작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국에 남겨진 과제 중 하나가 전장에서 사망한 자국 군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돌아오지 못한 약 7만명의 미군 유해를 찾는 데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이 일을 책임지고 있는 부대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유해발굴 전담 부대 JAPC을 정연욱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의 한 야산. 6.25 전쟁 당시 미국 전투기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유해 수색 작업이 한창입니다. 흙을 일일이 퍼담아 걸러내는 단순 작업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전사한 선배들의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서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습니다.



<인터뷰>스티브 바살롭(미공군 상사):"계속 이렇게 하다보면 흙이 체에서 걸러지죠. 그리고 체를 좀 더 흔들어 줍니다. 다시 한 번 체 위에 남은 것들을 흩어놓습니다. 이 다음부터가 아주 중요하죠. 이빨이나 뼈가 아주 작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이 소속된 곳은 세계 최초의 유해발굴 부대인 ’미국 전쟁 포로와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 JPAC입니다. 미국 하와이에 있는 JPAC은 지난 2003년 3개의 유해발굴 조직이 통합돼

공식 군사기관으로 출범했습니다. 2차 대전과 베트남전, 6.25전쟁 등에서 실종된 7만여명의 미군을 찾는 것이 임무입니다. 지금까지 500여구의 유해를 찾아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인터뷰>존 설리반(JPAC 부사령관):"우리의 임무 가운데 상당수는 아주 외딴 지역이나 고지대에서 진행됩니다. 그곳에 가는 것 자체가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며, 더위와 비 등 환경 때문에 큰 고난을 겪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헌신적으로 작업에 임하곤 합니다."



JPAC은 현재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는 데 가장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에서 실종된 미군 장병은 공식적으로 8천 백명. 남한에서만 2천3백 여명이 실종됐지만 지금까지 10분의 1도 채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한 해 평균 5차례 한국을 방문해 전국 곳곳을 샅샅이 뒤지다 보니, JPAC의 조사관들은 한국 사람보다 한국 지형을 더 잘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인터뷰>딜로이 미챔(6.25 조사팀장):"가장 힘든 부분은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5~6백 명을 만나 얘기해서 한가지 단서만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얻는 경우는 드물죠."



대부분의 경우 지형이 변하거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발굴 작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 5천여 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에서는 2005년 이후 발굴 작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JPAC은 내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를 찾는데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미국 땅에 묻혀 있는 전사자의 유해들도 JPAC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850여구가 매장돼 있습니다. JPAC은 이곳에 있는 유해들을 모두 꺼내 일일이 신원확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5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JPAC은 하루도 이 작업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6.25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굴 당시 관련 기록이 부족해 신원 확인이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JPAC은 지난해부터 분석 작업을 시작해 2구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터뷰>캐슬린 로이드(JPAC 연구원):"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자랑스러워요. 이들은 해외에서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는데,이것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죠. 날마다 여기서 일하다 보면 이들이 가깝게 느껴져요."



그렇다면 수십년 동안 묻혀 있던 유해의 신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발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원 확인 작업은 JPAC의 핵심 부서인 ’중앙유해신원확인소’에서 이뤄집니다. 세계 각국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예외없이 이곳으로 옮겨져 분석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주로 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하게 되는데, 오래된 뼈 일수록 미토콘드리아 DNA가 잘 보존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캐리 브라운(JPAC 연구원):"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성 유전이기 때문에 모계를 따라 추적이 가능하죠. 실종 장병의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어머니나 이모의 DNA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요."



DNA 분석 기술을 이용하면 작은 뼛조각만 남아 있어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짐 포킨스(JPAC 연구원):"보시다시피 사람의 뼈 몇조각이 있죠. 뼈는 5개에 불과한데 주인은 4명인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뼈 한 조각만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요."



JPAC이 보유한 3D 프린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두개골 단층 촬영 정보를 이 프린터에 입력하면 샘플 두개골이 완성되고, 이 샘플을 통해 현장에서 발굴한 유골의 주인이 생전에 어떤 생김새였나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오드리 미햄(JPAC 연구원):"사진을 샘플 두개골 위에 겹쳐 씌워 이렇게 보는 거에요. 이 사진들을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유해들과 각각 비교해보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습니다. 이 자체만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작업을 위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죠."



때로는 치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신원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발굴되는 단 한개의 이빨에는 DNA 못지 않게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캘 시로마(JPAC 연구원):"치아 비교는 DNA, 지문과 더불어 유해의 신원을 식별할 수 있는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 방사선 사진이나 X-ray, 제대로 된 서면 기록 등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기록들이 치아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죠."



군 부대에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민간 연구원들이 활동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낯선 모습입니다. JPAC에 소속된 유일한 한국인 연구원 진주현씨... 월남한 조부모의 영향으로 6.25에 관심을 갖게 됐다가 이 곳까지 왔습니다. 진씨가 처음에 가장 놀란 것은 JPAC의 방대한 규모와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인터뷰>진주현(JPAC 연구원):"역사학자도 많이 있고 가서 지원해주는 지원병 규모도 굉장히 크고 컴퓨터, IT 지원하는 것도 크고, 인류학자들도 굉장히 수가 많아요. 30명 넘게 있고. 고고학자도 따로 있고 심지어는 물 밑에서 잠수 고고학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규모에 상당히 놀랐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연구원들이 모여있는 JPAC은, 여느 대학교나 연구소 못지 않은 학문적 성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오래된 유골로부터 세부적인 신체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분석 방식을 탐구해온 덕분입니다.



<인터뷰>존 버드(JPAC 과학부국장):"요즘 JPAC에서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것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찍은 X-RAY와 유해의 X-RAY로 방사능 조합을 찾아 체계적으로 비교하는 기술입니다."



JPAC의 연구 성과는 해당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첨단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과 끈기입니다. 한 사람의 유골도 이처럼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각 조각의 DNA를 일일이 분석해 분류해야 합니다. 이 작업만해도 10년 이상 걸릴 수 있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은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JPAC 요원들에게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은 필수적입니다.



<인터뷰>딜로이 미챔(조사팀장):"전투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병들을 찾는 것이 내게 가장 보람된 일이죠. 이것이 내가 남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입니다."



<인터뷰>존 버드(JPAC 과학부국장):"우리는 이 유해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엄청난 도전에 맞서는 이유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날마다 명심해야 합니다."



<인터뷰>짐 로즈(JPAC 연구원):"(신원이 확인된)유해가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집니다. 모든 고된 일이 다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JPAC의 성과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 묻혀있을 실종자들의 유해가 7만구 가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존 설리반(JPAC 부사령관):"JPAC은 실종 장병들을 다 찾을 때까지 이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혹은 미국 국민들이 이 임무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할 때까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JPAC의 구호는 ’모두가 돌아올 때까지’입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갔다 숨진 군인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참전 군인의 뼈 한 조각을 찾아.. JPAC 요원들은 오늘도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 [6·25 특집] 유해발굴 부대 ‘JPAC’을 가다
    • 입력 2010-06-27 00:36:33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여러 행사가 열리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 언론 보도도 많았습니다.



오늘 저희 특파원현장보고도 6.25 60년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전쟁 당시 부상병을 치료해준 덴마크 병원선...남미 유일의 참전국 콜롬비아의 노병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6월 마지막주 특파원 현장보고, 시작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국에 남겨진 과제 중 하나가 전장에서 사망한 자국 군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가장 적극적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돌아오지 못한 약 7만명의 미군 유해를 찾는 데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이 일을 책임지고 있는 부대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유해발굴 전담 부대 JAPC을 정연욱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의 한 야산. 6.25 전쟁 당시 미국 전투기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유해 수색 작업이 한창입니다. 흙을 일일이 퍼담아 걸러내는 단순 작업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전사한 선배들의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서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습니다.



<인터뷰>스티브 바살롭(미공군 상사):"계속 이렇게 하다보면 흙이 체에서 걸러지죠. 그리고 체를 좀 더 흔들어 줍니다. 다시 한 번 체 위에 남은 것들을 흩어놓습니다. 이 다음부터가 아주 중요하죠. 이빨이나 뼈가 아주 작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이 소속된 곳은 세계 최초의 유해발굴 부대인 ’미국 전쟁 포로와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 JPAC입니다. 미국 하와이에 있는 JPAC은 지난 2003년 3개의 유해발굴 조직이 통합돼

공식 군사기관으로 출범했습니다. 2차 대전과 베트남전, 6.25전쟁 등에서 실종된 7만여명의 미군을 찾는 것이 임무입니다. 지금까지 500여구의 유해를 찾아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인터뷰>존 설리반(JPAC 부사령관):"우리의 임무 가운데 상당수는 아주 외딴 지역이나 고지대에서 진행됩니다. 그곳에 가는 것 자체가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며, 더위와 비 등 환경 때문에 큰 고난을 겪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헌신적으로 작업에 임하곤 합니다."



JPAC은 현재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는 데 가장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에서 실종된 미군 장병은 공식적으로 8천 백명. 남한에서만 2천3백 여명이 실종됐지만 지금까지 10분의 1도 채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한 해 평균 5차례 한국을 방문해 전국 곳곳을 샅샅이 뒤지다 보니, JPAC의 조사관들은 한국 사람보다 한국 지형을 더 잘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인터뷰>딜로이 미챔(6.25 조사팀장):"가장 힘든 부분은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5~6백 명을 만나 얘기해서 한가지 단서만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얻는 경우는 드물죠."



대부분의 경우 지형이 변하거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발굴 작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 5천여 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에서는 2005년 이후 발굴 작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JPAC은 내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를 찾는데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미국 땅에 묻혀 있는 전사자의 유해들도 JPAC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850여구가 매장돼 있습니다. JPAC은 이곳에 있는 유해들을 모두 꺼내 일일이 신원확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5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JPAC은 하루도 이 작업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6.25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굴 당시 관련 기록이 부족해 신원 확인이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JPAC은 지난해부터 분석 작업을 시작해 2구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터뷰>캐슬린 로이드(JPAC 연구원):"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자랑스러워요. 이들은 해외에서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는데,이것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죠. 날마다 여기서 일하다 보면 이들이 가깝게 느껴져요."



그렇다면 수십년 동안 묻혀 있던 유해의 신원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발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원 확인 작업은 JPAC의 핵심 부서인 ’중앙유해신원확인소’에서 이뤄집니다. 세계 각국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예외없이 이곳으로 옮겨져 분석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주로 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하게 되는데, 오래된 뼈 일수록 미토콘드리아 DNA가 잘 보존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캐리 브라운(JPAC 연구원):"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성 유전이기 때문에 모계를 따라 추적이 가능하죠. 실종 장병의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어머니나 이모의 DNA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요."



DNA 분석 기술을 이용하면 작은 뼛조각만 남아 있어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짐 포킨스(JPAC 연구원):"보시다시피 사람의 뼈 몇조각이 있죠. 뼈는 5개에 불과한데 주인은 4명인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뼈 한 조각만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요."



JPAC이 보유한 3D 프린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두개골 단층 촬영 정보를 이 프린터에 입력하면 샘플 두개골이 완성되고, 이 샘플을 통해 현장에서 발굴한 유골의 주인이 생전에 어떤 생김새였나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오드리 미햄(JPAC 연구원):"사진을 샘플 두개골 위에 겹쳐 씌워 이렇게 보는 거에요. 이 사진들을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유해들과 각각 비교해보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습니다. 이 자체만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작업을 위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죠."



때로는 치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신원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발굴되는 단 한개의 이빨에는 DNA 못지 않게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캘 시로마(JPAC 연구원):"치아 비교는 DNA, 지문과 더불어 유해의 신원을 식별할 수 있는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 방사선 사진이나 X-ray, 제대로 된 서면 기록 등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기록들이 치아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죠."



군 부대에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민간 연구원들이 활동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낯선 모습입니다. JPAC에 소속된 유일한 한국인 연구원 진주현씨... 월남한 조부모의 영향으로 6.25에 관심을 갖게 됐다가 이 곳까지 왔습니다. 진씨가 처음에 가장 놀란 것은 JPAC의 방대한 규모와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인터뷰>진주현(JPAC 연구원):"역사학자도 많이 있고 가서 지원해주는 지원병 규모도 굉장히 크고 컴퓨터, IT 지원하는 것도 크고, 인류학자들도 굉장히 수가 많아요. 30명 넘게 있고. 고고학자도 따로 있고 심지어는 물 밑에서 잠수 고고학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규모에 상당히 놀랐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연구원들이 모여있는 JPAC은, 여느 대학교나 연구소 못지 않은 학문적 성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오래된 유골로부터 세부적인 신체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분석 방식을 탐구해온 덕분입니다.



<인터뷰>존 버드(JPAC 과학부국장):"요즘 JPAC에서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것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찍은 X-RAY와 유해의 X-RAY로 방사능 조합을 찾아 체계적으로 비교하는 기술입니다."



JPAC의 연구 성과는 해당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첨단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과 끈기입니다. 한 사람의 유골도 이처럼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각 조각의 DNA를 일일이 분석해 분류해야 합니다. 이 작업만해도 10년 이상 걸릴 수 있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은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JPAC 요원들에게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은 필수적입니다.



<인터뷰>딜로이 미챔(조사팀장):"전투에 참여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병들을 찾는 것이 내게 가장 보람된 일이죠. 이것이 내가 남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입니다."



<인터뷰>존 버드(JPAC 과학부국장):"우리는 이 유해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엄청난 도전에 맞서는 이유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날마다 명심해야 합니다."



<인터뷰>짐 로즈(JPAC 연구원):"(신원이 확인된)유해가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집니다. 모든 고된 일이 다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JPAC의 성과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 묻혀있을 실종자들의 유해가 7만구 가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존 설리반(JPAC 부사령관):"JPAC은 실종 장병들을 다 찾을 때까지 이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혹은 미국 국민들이 이 임무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할 때까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JPAC의 구호는 ’모두가 돌아올 때까지’입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갔다 숨진 군인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참전 군인의 뼈 한 조각을 찾아.. JPAC 요원들은 오늘도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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