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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 고마워요 콜롬비아
입력 2010.06.27 (00:36)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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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때 남미에서는 유일하게 콜롬비아가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파병된 군인 4천 여명 가운데 2백 여명이 낯선 땅 한반도에서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당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무시못할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도 활발하게 콜롬비아를 지원하며 그 때 받은 도움을 갚고 있습니다.
60년을 이어온 한국과 콜롬비아의 인연..백진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남미 안데스 산맥의 북단에 위치한 황금의 전설 엘도라도의 나라, 콜롬비아! 해발 2,600 미터 높이에 자리 잡은 수도 보고타에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장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벽면에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가 새겨진 참전용 사회 사무실에 역전의 용사들이 모였습니다. 어느덧 60년이 흘러버린 6.25 전쟁을 회상합니다.

<인터뷰>디아스(6.25 참전용사):"신문에 한국전쟁에 대한 기사가 났어요. 한국에 파병할 군대를 만들기 위한 기사였죠."

색깔이 바랜 참전당시 신분증을 꺼내 젊음을 바친 전쟁을 되새겨봅니다.

<인터뷰>길레르모(6.25 참전용사):"한국에 간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보고 전우들이 죽는 모습을 봤죠. 그러나 우린 좋은 일을 위해 싸웠고 한국을 보호했습니다."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일일이 설명하며 잊지 않고 찾아온 취재진에게 양국의 기념배지를 달아줍니다.

<녹취>"대단히 감사합니다."

군 수뇌부가 모인 국방부 부지 안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콜롬비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조성돼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6.25 전쟁 당시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1953년 금성지구전투와 불모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콜롬비아 군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6.25에 참전한 콜롬비아 병사는 연 인원 4,300여 명! 이 가운데 2백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콜롬비아의 군은 6.25에 참전하면서 비로소 군 조직을 정비하고 무기를 사용할 줄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호드리게스 (공보담당 대위):"한국전쟁은 콜롬비아 군대가 강해지고 우수해지는 디딤돌이었습니다. 한국전에 참여하면서 군인들은 경험을 쌓았고 엄청난 힘을 기르게 됐습니다."

6.25 6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 대표단이 방문했습니다. 남미의 유일한 참전국가에 대해 대통령 특사가 감사를 표시하자. 참전용사들은 고마워합니다.

<인터뷰>고메즈(참전용사회장):"한국이 늘 우리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콜롬비아 독립의 상징인 볼리바르 광장! 국회의사당과 대성당, 시청사가 자리한 이곳엔 콜롬비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콜롬비아의 국내정치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보수당과 자유당이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10년 동안 무려 20만 명이 희생됐고 사회적 불안과 불만에 대한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UN의 요청에 따라 파병을 했지만 당시 콜롬비아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인터뷰>모라(세르지오대 전략문제연구소장, 전 주한대사):"그 당시 콜롬비아 정부는 보수당이었지만 군대를 보내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말 아직 잘 모릅니다. 왜 콜롬비아가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싸워야했는지 그 이유 말입니다."

보고타 외곽의 한 빈민가를 수소문한 끝에 최초의 한국인 이민자를 만났습니다. 6.25 전쟁고아로 참전 콜롬비아 군인의 배낭에 숨어 태평양을 건넌 뒤, 콜롬비아에 와서 살게 된 윤우철씨! 가욘이란 이름으로 콜롬비아 군대에서 사무원으로 일 해온 그에게 6.25는, 예순 다섯의 힘겨운 인생을 짊어지게 한 굴레입니다.

<인터뷰>가욘(한국명 윤우철/6.25 전쟁고아):"한국전쟁은 저에겐 세상을 완전히 바꾼 일입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 새 종교를 만나게 됐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10년 전 KBS를 통해 한국 땅을 밟아봤지만, 돌아가기 어려운 현실에다 이젠 병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엘리아나(이웃):"걱정이 많이 되요. 돌아가시지 않을까 겁나고요."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지 오래된 그에게 취재진의 방문은 작은 선물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사무실에 참전용사 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회사가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거나 6.25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방문의 기회를 얻게 된 참전용사의 자녀나 손자들입니다.

<인터뷰>또레스(6.25전쟁 참전용사):"정말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기쁩니다. 이것이 내가 한국에서 피 흘린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최익석(삼성전자 콜롬비아 법인장):"연 16명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는데 재단을 2배로 늘릴 예정.."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에르난도씨가 손녀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번에 한국 정부로부터 방문 연수의 기회를 얻은 손녀를 격려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마리아(참전용사 손녀):"할아버지가 참전한 전쟁과 한국의 모든 문화를 한 번에 배우고 싶습니다."

<인터뷰>에르난도(참전용사):"참전용사로서 한국이 50년 후 완벽한 문화와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이 너무 좋습니다."

올해는 20여 명의 대학생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전사한 참전 용사의 부인을 위해 지원 사업을 벌이는 독지가도 있습니다. 콜롬비아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도입해 '마에 스트로 리'로 불리는 이경득 관장! 한국전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들에게 선물과 장학금을 10년째 지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경득(태권도 관장/74세):"남편을 잃고 고생한 사람들이 선물 받고 기뻐하면 보람을 느낍니다."

보고타의 한 공립학교!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컴퓨터에 열심히 단어를 칩니다.

<인터뷰>파 울라(초등학교 2학년):“(오늘 무엇이 재밌었나요?)인터넷이 제일 재밌어요. (인터넷이요?)오늘 인터넷 처음 배웠거든요.”

해마다 10여 명씩 한국에 가서 IT 교육을 받고 교재 작성과 학습 방법을 익혀온 콜롬비아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한국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합니다.

<인터뷰>릴리안(한국연수 영어교사):"한국에 가서야 대단한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았죠. 저는 정말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남미 유일의 참전국에 대해 한국이 무료로 지원하는 IT 교육사업의 효과가, 점차 콜롬비아 교실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맺어진 양국 관계는 요즘 FTA 협상으로 급진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홍성화(주 콜롬비아 한국대사):"자원, 도로, 지능형 교통망 등 실질적 협력을 모색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6.25 전쟁을 통해 혈맹으로 맺어진 한국과 콜롬비아! 먼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콜롬비아 장병들은 헌신과 희생을 보여줬습니다. 그 60년 후... 폐허를 딛고 일어선 우리가 이제 콜롬비아 곳곳에서 보은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올해 6월 25일은 근년 들어 남북 관계가 가장 긴장된 가운데 지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천안함 사건이 가장 큰 요인이겠죠.

동족상잔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6.25 전쟁..그 60년을 지나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파원현장보고 오늘 순서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 [6·25 특집] 고마워요 콜롬비아
    • 입력 2010-06-27 00:36:3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6.25 전쟁 때 남미에서는 유일하게 콜롬비아가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파병된 군인 4천 여명 가운데 2백 여명이 낯선 땅 한반도에서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당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무시못할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고.. 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도 활발하게 콜롬비아를 지원하며 그 때 받은 도움을 갚고 있습니다.
60년을 이어온 한국과 콜롬비아의 인연..백진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남미 안데스 산맥의 북단에 위치한 황금의 전설 엘도라도의 나라, 콜롬비아! 해발 2,600 미터 높이에 자리 잡은 수도 보고타에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장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벽면에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가 새겨진 참전용 사회 사무실에 역전의 용사들이 모였습니다. 어느덧 60년이 흘러버린 6.25 전쟁을 회상합니다.

<인터뷰>디아스(6.25 참전용사):"신문에 한국전쟁에 대한 기사가 났어요. 한국에 파병할 군대를 만들기 위한 기사였죠."

색깔이 바랜 참전당시 신분증을 꺼내 젊음을 바친 전쟁을 되새겨봅니다.

<인터뷰>길레르모(6.25 참전용사):"한국에 간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보고 전우들이 죽는 모습을 봤죠. 그러나 우린 좋은 일을 위해 싸웠고 한국을 보호했습니다."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일일이 설명하며 잊지 않고 찾아온 취재진에게 양국의 기념배지를 달아줍니다.

<녹취>"대단히 감사합니다."

군 수뇌부가 모인 국방부 부지 안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콜롬비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조성돼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6.25 전쟁 당시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1953년 금성지구전투와 불모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콜롬비아 군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6.25에 참전한 콜롬비아 병사는 연 인원 4,300여 명! 이 가운데 2백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콜롬비아의 군은 6.25에 참전하면서 비로소 군 조직을 정비하고 무기를 사용할 줄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호드리게스 (공보담당 대위):"한국전쟁은 콜롬비아 군대가 강해지고 우수해지는 디딤돌이었습니다. 한국전에 참여하면서 군인들은 경험을 쌓았고 엄청난 힘을 기르게 됐습니다."

6.25 6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 대표단이 방문했습니다. 남미의 유일한 참전국가에 대해 대통령 특사가 감사를 표시하자. 참전용사들은 고마워합니다.

<인터뷰>고메즈(참전용사회장):"한국이 늘 우리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형제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콜롬비아 독립의 상징인 볼리바르 광장! 국회의사당과 대성당, 시청사가 자리한 이곳엔 콜롬비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콜롬비아의 국내정치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보수당과 자유당이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10년 동안 무려 20만 명이 희생됐고 사회적 불안과 불만에 대한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UN의 요청에 따라 파병을 했지만 당시 콜롬비아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인터뷰>모라(세르지오대 전략문제연구소장, 전 주한대사):"그 당시 콜롬비아 정부는 보수당이었지만 군대를 보내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말 아직 잘 모릅니다. 왜 콜롬비아가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싸워야했는지 그 이유 말입니다."

보고타 외곽의 한 빈민가를 수소문한 끝에 최초의 한국인 이민자를 만났습니다. 6.25 전쟁고아로 참전 콜롬비아 군인의 배낭에 숨어 태평양을 건넌 뒤, 콜롬비아에 와서 살게 된 윤우철씨! 가욘이란 이름으로 콜롬비아 군대에서 사무원으로 일 해온 그에게 6.25는, 예순 다섯의 힘겨운 인생을 짊어지게 한 굴레입니다.

<인터뷰>가욘(한국명 윤우철/6.25 전쟁고아):"한국전쟁은 저에겐 세상을 완전히 바꾼 일입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 새 종교를 만나게 됐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10년 전 KBS를 통해 한국 땅을 밟아봤지만, 돌아가기 어려운 현실에다 이젠 병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엘리아나(이웃):"걱정이 많이 되요. 돌아가시지 않을까 겁나고요."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지 오래된 그에게 취재진의 방문은 작은 선물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사무실에 참전용사 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회사가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거나 6.25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방문의 기회를 얻게 된 참전용사의 자녀나 손자들입니다.

<인터뷰>또레스(6.25전쟁 참전용사):"정말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기쁩니다. 이것이 내가 한국에서 피 흘린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최익석(삼성전자 콜롬비아 법인장):"연 16명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는데 재단을 2배로 늘릴 예정.."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에르난도씨가 손녀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번에 한국 정부로부터 방문 연수의 기회를 얻은 손녀를 격려하기 위해섭니다.

<인터뷰>마리아(참전용사 손녀):"할아버지가 참전한 전쟁과 한국의 모든 문화를 한 번에 배우고 싶습니다."

<인터뷰>에르난도(참전용사):"참전용사로서 한국이 50년 후 완벽한 문화와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이 너무 좋습니다."

올해는 20여 명의 대학생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전사한 참전 용사의 부인을 위해 지원 사업을 벌이는 독지가도 있습니다. 콜롬비아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도입해 '마에 스트로 리'로 불리는 이경득 관장! 한국전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들에게 선물과 장학금을 10년째 지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경득(태권도 관장/74세):"남편을 잃고 고생한 사람들이 선물 받고 기뻐하면 보람을 느낍니다."

보고타의 한 공립학교!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컴퓨터에 열심히 단어를 칩니다.

<인터뷰>파 울라(초등학교 2학년):“(오늘 무엇이 재밌었나요?)인터넷이 제일 재밌어요. (인터넷이요?)오늘 인터넷 처음 배웠거든요.”

해마다 10여 명씩 한국에 가서 IT 교육을 받고 교재 작성과 학습 방법을 익혀온 콜롬비아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한국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합니다.

<인터뷰>릴리안(한국연수 영어교사):"한국에 가서야 대단한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았죠. 저는 정말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남미 유일의 참전국에 대해 한국이 무료로 지원하는 IT 교육사업의 효과가, 점차 콜롬비아 교실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맺어진 양국 관계는 요즘 FTA 협상으로 급진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홍성화(주 콜롬비아 한국대사):"자원, 도로, 지능형 교통망 등 실질적 협력을 모색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6.25 전쟁을 통해 혈맹으로 맺어진 한국과 콜롬비아! 먼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콜롬비아 장병들은 헌신과 희생을 보여줬습니다. 그 60년 후... 폐허를 딛고 일어선 우리가 이제 콜롬비아 곳곳에서 보은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올해 6월 25일은 근년 들어 남북 관계가 가장 긴장된 가운데 지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천안함 사건이 가장 큰 요인이겠죠.

동족상잔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6.25 전쟁..그 60년을 지나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파원현장보고 오늘 순서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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