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최규진 “레슬링 금맥 잇겠다”

입력 2010.08.0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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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최경량급(현재 55㎏급)은 한국 선수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종목으로 꼽혀 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안한봉(현 삼성생명 감독)이 금메달을 따냈던 종목이 그레코로만형 57㎏급이었고, 심권호(현 LH 코치) 역시 1996년 애틀랜타 대회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각각 48㎏급, 54㎏급에 출전해 2대회 연속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신체 조건이 비슷한 선수들이 맞붙는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1986년 김영구가 48㎏급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4개 대회 연속으로 최경량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스타의 맥이 끊겼다. 2002년 부산과 2006년 카타르 대회 모두 한국은 55㎏급에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최규진(조폐공사)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에 최경량급 금메달을 따내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진 신예 태극전사다.

지난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새 얼굴'이지만, 최규진의 나이는 벌써 스물여섯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레슬링을 시작했으니 매트 위에서 뒹군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흔히 20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에 대표로 뽑힌 셈이다.

최규진은 "위에 선배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난 늘 3등만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최규진의 체급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레슬링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던 박은철(주택공사)과 동년배 1인자 이정백(삼성생명) 등이 버티고 있었다.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편이다 보니 20대 초반의 팔팔한 나이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항상 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다.

최규진은 "레슬링을 그만두겠다고 뛰쳐나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철없이 '내가 이거 안 해도 잘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했다"며 다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황하던 최규진을 이끌어준 건 방대두 현 레슬링대표팀 총감독이었다.

당시 상무 레슬링팀을 맡고 있던 방 감독은 대학교 3학년 때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다시 3등에 머물고 좌절해 있던 최규진에게 입대를 권했다.

최규진은 "당시 내 경기를 눈여겨보신 모양이다. 방 감독님으로부터 상무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방 감독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기술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스타일에 맞는 기술을 연구하고 또 계속 변형시키며 가장 적합한 기술을 찾아주셨다. 평소 생활까지 세심하게 관리해 주신 덕에 믿음을 가지고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항상 한 걸음씩 앞서갔던 동년배 이정백을 입대 후 처음으로 맞붙은 시합에서 꺾은 것이다.

최규진은 "이정백은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던 상대였다. 그런데 첫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돌이켰다.

2008년 제대한 최규진은 이듬에 대표선발전 결승에서 다시 이정백을 꺾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리고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 1차전에서 최규진은 유럽 챔피언 야니 하파마에키(핀란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1인자의 꿈도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최규진은 2라운드에서 로만 아모얀(아르메니아)에게 테크니컬 폴로 완패했다. 최규진은 경기가 끝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최규진은 "그때까지 국제 대회 경험이 3차례밖에 없었다. 체력 분배를 전혀 하지 못해 1차전에서 이미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아픔을 딛고 실력은 계속 성장했다.

최규진은 올해 5월 치러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55㎏급 우승을 차지하며 지난해 아쉬움을 씻어냈다. 아시안게임 대표는 당연히 그의 자리였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목표로 내건 방대두 총감독은 '가장 기대가 큰 선수'로도 주저없이 최규진을 꼽았다.

"상승세가 무섭다. 각오도 대단하다"며 칭찬하는 방 감독의 표정에도 제자를 향한 믿음이 짙게 뭍어나왔다.

최규진은 "체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 자꾸 괴롭혀서 체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나도 힘들지만 '상대가 나보다 더 지쳐 있을 것'이라고 계속 자기 암시를 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반면 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방어가 약해 이를 보강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최규진은 "이번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2002년 대회부터 내 체급에 메달이 없는데, 이번에 꼭 금메달을 되찾아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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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깎이 최규진 “레슬링 금맥 잇겠다”
    • 입력 2010-08-08 08:03:51
    연합뉴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최경량급(현재 55㎏급)은 한국 선수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종목으로 꼽혀 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안한봉(현 삼성생명 감독)이 금메달을 따냈던 종목이 그레코로만형 57㎏급이었고, 심권호(현 LH 코치) 역시 1996년 애틀랜타 대회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각각 48㎏급, 54㎏급에 출전해 2대회 연속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신체 조건이 비슷한 선수들이 맞붙는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1986년 김영구가 48㎏급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4개 대회 연속으로 최경량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스타의 맥이 끊겼다. 2002년 부산과 2006년 카타르 대회 모두 한국은 55㎏급에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최규진(조폐공사)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에 최경량급 금메달을 따내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진 신예 태극전사다. 지난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새 얼굴'이지만, 최규진의 나이는 벌써 스물여섯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레슬링을 시작했으니 매트 위에서 뒹군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흔히 20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에 대표로 뽑힌 셈이다. 최규진은 "위에 선배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난 늘 3등만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최규진의 체급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레슬링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던 박은철(주택공사)과 동년배 1인자 이정백(삼성생명) 등이 버티고 있었다.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편이다 보니 20대 초반의 팔팔한 나이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항상 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다. 최규진은 "레슬링을 그만두겠다고 뛰쳐나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철없이 '내가 이거 안 해도 잘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했다"며 다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황하던 최규진을 이끌어준 건 방대두 현 레슬링대표팀 총감독이었다. 당시 상무 레슬링팀을 맡고 있던 방 감독은 대학교 3학년 때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다시 3등에 머물고 좌절해 있던 최규진에게 입대를 권했다. 최규진은 "당시 내 경기를 눈여겨보신 모양이다. 방 감독님으로부터 상무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방 감독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기술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스타일에 맞는 기술을 연구하고 또 계속 변형시키며 가장 적합한 기술을 찾아주셨다. 평소 생활까지 세심하게 관리해 주신 덕에 믿음을 가지고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항상 한 걸음씩 앞서갔던 동년배 이정백을 입대 후 처음으로 맞붙은 시합에서 꺾은 것이다. 최규진은 "이정백은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던 상대였다. 그런데 첫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돌이켰다. 2008년 제대한 최규진은 이듬에 대표선발전 결승에서 다시 이정백을 꺾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리고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 1차전에서 최규진은 유럽 챔피언 야니 하파마에키(핀란드)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1인자의 꿈도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최규진은 2라운드에서 로만 아모얀(아르메니아)에게 테크니컬 폴로 완패했다. 최규진은 경기가 끝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최규진은 "그때까지 국제 대회 경험이 3차례밖에 없었다. 체력 분배를 전혀 하지 못해 1차전에서 이미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아픔을 딛고 실력은 계속 성장했다. 최규진은 올해 5월 치러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55㎏급 우승을 차지하며 지난해 아쉬움을 씻어냈다. 아시안게임 대표는 당연히 그의 자리였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목표로 내건 방대두 총감독은 '가장 기대가 큰 선수'로도 주저없이 최규진을 꼽았다. "상승세가 무섭다. 각오도 대단하다"며 칭찬하는 방 감독의 표정에도 제자를 향한 믿음이 짙게 뭍어나왔다. 최규진은 "체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 자꾸 괴롭혀서 체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나도 힘들지만 '상대가 나보다 더 지쳐 있을 것'이라고 계속 자기 암시를 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반면 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방어가 약해 이를 보강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최규진은 "이번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2002년 대회부터 내 체급에 메달이 없는데, 이번에 꼭 금메달을 되찾아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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