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이창수 “아들이 금빛 한풀이”

입력 2010.08.13 (13:08) 수정 2010.08.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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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꼭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내려온 지 20년째인 이창수씨(43)는 아직 북한 억양이 그대로였다.

12일 펼쳐진 소년체전 유도 남자중학부 73㎏ 이하급 결승에서 이문진(15.서울 보성중)은 업어치기 유효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거머쥔 채 아버지에게 달려가 엉엉 울었다.

둘째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 이창수씨는 기쁨의 눈물과 함께 오래 삭여야 했던 아픔을 되새겨야 했다.

그는 전 북한 유도국가대표선수로 지난 1991년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독일에서 돌연 한국으로 귀순한 새터민이다.

당시 이 `깜짝 망명'은 남북 간 체육회담을 무산시키는 등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창수씨는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북한 유도의 기대주로 올라섰지만 정작 올림픽에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1984년 LA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북한 국기를 달고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귀순한 지 1년 만에 결혼을 했다.
"각종 국제대회를 다니면서 지금 와이프에게 반해 구애를 했다"는 그는 예전 기억을 회상하며 잠시 웃었다.

이창수씨의 부인 역시 대만 국가대표로 활약한 유도선수였다. 그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이듬해 한국에 귀화했다.

아들 셋을 둔 이 새터민 다섯 가족은 말 그대로 '유도 집안'이다.

이창수씨는 세 아들이 모두 유도가 하고 싶다고 졸라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너무 힘들다는 걸 잘 알아 반대했지만 녀석들이 타고난 건지 힘도 세고 역량도 출중하다"며 못내 뿌듯해했다.

둘째 이문진과 셋째 이리진(13)군을 모두 지도하고 있는 권성세 보성중 유도 감독은 "문진이는 지금 유도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이건 정말 놀랄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테네올림픽 남자 유도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권 감독은 "막내아들 리진이 역시 유도를 배운 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힘이 형 문진이를 능가할 만큼 엄청나다.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첫 째 이호진(17)군도 10년간 태권도를 하다 1년 전 결국 유도로 돌아섰다.

이 세 아들에게 유도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숙명'이었다.

이창수씨는 "다만 다른 선수들보다 세 녀석이 늦게 유도를 시작해서 걱정이 된다. 그만큼 연구를 많이 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이왕 유도를 시작한 만큼 나를 대신해 아들들이 꼭 올림픽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2000년부터 한국마사회에서 코치생활을 하다 지금은 마사회 총무팀에서 일하는 그는 "아이들과 함께 어디 시원한 데라도 가고 싶지만 일이 너무 쌓여 있어 불가능할 것 같다"며 "당분간 아이들만큼은 신나게 놀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이 유도 삼형제가 올림픽에서 멋진 한판승으로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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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순 이창수 “아들이 금빛 한풀이”
    • 입력 2010-08-13 13:08:19
    • 수정2010-08-13 15:31:53
    연합뉴스
"내 아들은 꼭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내려온 지 20년째인 이창수씨(43)는 아직 북한 억양이 그대로였다. 12일 펼쳐진 소년체전 유도 남자중학부 73㎏ 이하급 결승에서 이문진(15.서울 보성중)은 업어치기 유효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거머쥔 채 아버지에게 달려가 엉엉 울었다. 둘째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 이창수씨는 기쁨의 눈물과 함께 오래 삭여야 했던 아픔을 되새겨야 했다. 그는 전 북한 유도국가대표선수로 지난 1991년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독일에서 돌연 한국으로 귀순한 새터민이다. 당시 이 `깜짝 망명'은 남북 간 체육회담을 무산시키는 등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창수씨는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북한 유도의 기대주로 올라섰지만 정작 올림픽에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1984년 LA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북한 국기를 달고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귀순한 지 1년 만에 결혼을 했다. "각종 국제대회를 다니면서 지금 와이프에게 반해 구애를 했다"는 그는 예전 기억을 회상하며 잠시 웃었다. 이창수씨의 부인 역시 대만 국가대표로 활약한 유도선수였다. 그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이듬해 한국에 귀화했다. 아들 셋을 둔 이 새터민 다섯 가족은 말 그대로 '유도 집안'이다. 이창수씨는 세 아들이 모두 유도가 하고 싶다고 졸라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너무 힘들다는 걸 잘 알아 반대했지만 녀석들이 타고난 건지 힘도 세고 역량도 출중하다"며 못내 뿌듯해했다. 둘째 이문진과 셋째 이리진(13)군을 모두 지도하고 있는 권성세 보성중 유도 감독은 "문진이는 지금 유도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이건 정말 놀랄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테네올림픽 남자 유도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권 감독은 "막내아들 리진이 역시 유도를 배운 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힘이 형 문진이를 능가할 만큼 엄청나다.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첫 째 이호진(17)군도 10년간 태권도를 하다 1년 전 결국 유도로 돌아섰다. 이 세 아들에게 유도는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숙명'이었다. 이창수씨는 "다만 다른 선수들보다 세 녀석이 늦게 유도를 시작해서 걱정이 된다. 그만큼 연구를 많이 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이왕 유도를 시작한 만큼 나를 대신해 아들들이 꼭 올림픽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2000년부터 한국마사회에서 코치생활을 하다 지금은 마사회 총무팀에서 일하는 그는 "아이들과 함께 어디 시원한 데라도 가고 싶지만 일이 너무 쌓여 있어 불가능할 것 같다"며 "당분간 아이들만큼은 신나게 놀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이 유도 삼형제가 올림픽에서 멋진 한판승으로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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