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시련 딛고 ‘세계 홈런왕’ 등극

입력 2010.08.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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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이대호(28.롯데 자이언츠)는 투수에서 전향한 강타자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딛고 리그 전체를 뒤흔드는 최고의 스타가 됐다는 사실도 그가 작성한 신기록에 빛을 더하고 있다.



이대호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부산 수영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와도 헤어져 이대호는 할머니와 살았다.



그의 할머니는 부산 수영 팔도시장에서 된장장사를 하면서 이대호를 키웠으며 `우리 야구선수, 우리 야구선수’라며 이대호를 끔찍하게 아꼈다.



할머니는 이대호가 경남고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대호는 비시즌만 되면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연탄을 배달하거나 양로원을 방문한다.



그는 "주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보면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대동중학교 시절부터 기대주로 주목됐다.



당시 이대호를 가르쳤던 신종세 부산공고 감독은 "걸음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당시부터 덩치가 크고 몸이 매우 부드러워 잠재력이 충만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이대호를 초등학교에서 투수로 데려왔는데 어깨도, 팔꿈치도 좋지 않아서 중학교 시절에는 타자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중학 시절에 2년 6개월 동안 신 감독의 집에서 더부살이했다.



신 감독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성격이 쾌활하고 밝아서 아무도 부모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경남고로 진학하면서 투수로 전향했다. 키가 크고 힘이 있었기 때문에 지도자들로서는 승리를 책임져줄 투수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게 당연했다.



그는 1998년 청룡기와 봉황기 대회에서 경남고 우승의 주역이 됐고 2000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는 추신수(클리블랜드), 김태균(지바 롯데)과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대호는 고교 시절의 명성을 바탕으로 2001년 롯데에 고졸 우완투수로 입단했다. 192㎝의 큰 키와 92㎏의 좋은 체격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빠른 슬라이더가 주무기라는 게 당시 평가였다.



야구 인생이 꽃펴야 할 시기가 됐으나 이내 시련이 찾아왔다.



이대호는 2001년 동계 전지훈련에서 어깨를 다쳐 투구 스피드가 나오지 않으면서 한 번도 실전 마운드에 서보지 못한 채 그해 5월 타자로 전향하게 됐다.



그 해 5월 타자로 전향한 이대호는 2군에서 머무르며 타격훈련에 집중해 변신에 성공했고 대타로 8타수 4안타를 때리면서 자질을 인정받았다.



타자로 새 길을 걷는 찰나에 롯데 사령탑이 바뀌면서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롯데에 따르면 2002년 선임된 백인천 감독은 몸무게 100㎏이 넘는 이대호를 `개량’하려고 했다. 살빼기를 강요하면서 그라운드와 사직구장 관중석 계단에서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결국 강도 높은 훈련 탓에 왼쪽 무릎 연골이 파열돼 그 해 10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대에 올라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병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살이 더 찌기 시작했고 이는 곧 지금도 유지하는 괴력의 원천이 됐다. 그의 몸무게는 현재 130㎏에 이른다. 뱃살이 출렁출렁하지만 운동능력과 힘은 최고다.



이대호는 2003년에는 그저 그런 선수로 지냈으나 2004년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면서 믿음을 갖고 계속 기용하면서 기량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20홈런 고지를 밟았다.



드디어 2006년에는 리그 정상급 타자로 우뚝 섰다. 그해 타율과 홈런, 타점에서 1위를 기록해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두 번째로 타격 트리플크라운을 이뤘다.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오고 있으며 올 시즌에는 연속경기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데다 개인통산 두 번째 타격 트리플크라운을 노리고 있다.



이대호는 내년 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구단 안팎에서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대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본인의 자신감이다.



이대호는 "연속홈런 기록에만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며 "나는 야구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더 많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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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호, 시련 딛고 ‘세계 홈런왕’ 등극
    • 입력 2010-08-14 18:52:16
    연합뉴스
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이대호(28.롯데 자이언츠)는 투수에서 전향한 강타자다.

어려운 어린 시절을 딛고 리그 전체를 뒤흔드는 최고의 스타가 됐다는 사실도 그가 작성한 신기록에 빛을 더하고 있다.

이대호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부산 수영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와도 헤어져 이대호는 할머니와 살았다.

그의 할머니는 부산 수영 팔도시장에서 된장장사를 하면서 이대호를 키웠으며 `우리 야구선수, 우리 야구선수’라며 이대호를 끔찍하게 아꼈다.

할머니는 이대호가 경남고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대호는 비시즌만 되면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연탄을 배달하거나 양로원을 방문한다.

그는 "주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보면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대동중학교 시절부터 기대주로 주목됐다.

당시 이대호를 가르쳤던 신종세 부산공고 감독은 "걸음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당시부터 덩치가 크고 몸이 매우 부드러워 잠재력이 충만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이대호를 초등학교에서 투수로 데려왔는데 어깨도, 팔꿈치도 좋지 않아서 중학교 시절에는 타자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중학 시절에 2년 6개월 동안 신 감독의 집에서 더부살이했다.

신 감독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성격이 쾌활하고 밝아서 아무도 부모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경남고로 진학하면서 투수로 전향했다. 키가 크고 힘이 있었기 때문에 지도자들로서는 승리를 책임져줄 투수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게 당연했다.

그는 1998년 청룡기와 봉황기 대회에서 경남고 우승의 주역이 됐고 2000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는 추신수(클리블랜드), 김태균(지바 롯데)과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대호는 고교 시절의 명성을 바탕으로 2001년 롯데에 고졸 우완투수로 입단했다. 192㎝의 큰 키와 92㎏의 좋은 체격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빠른 슬라이더가 주무기라는 게 당시 평가였다.

야구 인생이 꽃펴야 할 시기가 됐으나 이내 시련이 찾아왔다.

이대호는 2001년 동계 전지훈련에서 어깨를 다쳐 투구 스피드가 나오지 않으면서 한 번도 실전 마운드에 서보지 못한 채 그해 5월 타자로 전향하게 됐다.

그 해 5월 타자로 전향한 이대호는 2군에서 머무르며 타격훈련에 집중해 변신에 성공했고 대타로 8타수 4안타를 때리면서 자질을 인정받았다.

타자로 새 길을 걷는 찰나에 롯데 사령탑이 바뀌면서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롯데에 따르면 2002년 선임된 백인천 감독은 몸무게 100㎏이 넘는 이대호를 `개량’하려고 했다. 살빼기를 강요하면서 그라운드와 사직구장 관중석 계단에서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결국 강도 높은 훈련 탓에 왼쪽 무릎 연골이 파열돼 그 해 10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대에 올라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병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살이 더 찌기 시작했고 이는 곧 지금도 유지하는 괴력의 원천이 됐다. 그의 몸무게는 현재 130㎏에 이른다. 뱃살이 출렁출렁하지만 운동능력과 힘은 최고다.

이대호는 2003년에는 그저 그런 선수로 지냈으나 2004년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면서 믿음을 갖고 계속 기용하면서 기량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2004년과 2005년 연속으로 20홈런 고지를 밟았다.

드디어 2006년에는 리그 정상급 타자로 우뚝 섰다. 그해 타율과 홈런, 타점에서 1위를 기록해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두 번째로 타격 트리플크라운을 이뤘다.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오고 있으며 올 시즌에는 연속경기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데다 개인통산 두 번째 타격 트리플크라운을 노리고 있다.

이대호는 내년 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구단 안팎에서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대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본인의 자신감이다.

이대호는 "연속홈런 기록에만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며 "나는 야구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더 많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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