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간문화재

입력 2010.10.1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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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탈춤이나 판소리와 같은 전통 예술능력이나 사라져가는 옛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부릅니다.

살아있는 문화재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이들이 놓인 환경은 문화재급이 아닙니다.

현대화 속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인간문화재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장단 소리에 맞춰 탈춤이 한판 벌어집니다.

마당에 둘러앉아 직접 보는 탈춤은 힘찬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와 더 흥겹습니다.

탈춤 가운데서도 봉산 탈춤은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탈춤입니다.

황해도 봉산, 지금의 사리원 지역에서 시작됐다 6.25 뒤 탈춤꾼들이 남쪽에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바람난 영감에게 맞아 죽은 미얄할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무당이 굿판을 벌이는 이 장면은 봉산 탈춤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무당 역을 맡은 이가 봉산탈춤 예능 보유자 김애선 선생입니다.

<인터뷰> 김애선(중요 무형문화재 제 17호 봉산탈춤 예능 보유자)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황해도 이북 사람이 소리를 할 수 있지, 여기 이남 사람들은 안 돼요, 소리가. 지금 그 전라도 창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지방 아니면 못하잖아요."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난 김애선 선생은 어릴 때부터 부친을 따라 탈춤 공연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봉산탈춤을 익혔습니다.

부친을 비롯해 봉산탈춤을 이 땅에 뿌리내렸던 원로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고, 지금은 김애선 선생이 봉산 출신으로는 유일한 봉산 탈춤 예능 보유자입니다.

김 선생은 전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승활동 외에도 일반인을 상대로 꾸준히 탈춤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봉산탈춤의 대중화를 위한 일이자, 생활을 유지하고 보존회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매달 주는 지원금 100만 원으로는 회원이 60여 명이나 되는 보존회의 운영은 커녕,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인터뷰> 김애선(중요 무형문화재 제 17호 봉산탈춤 예능 보유자) : "생활 보조비가 아니고 전승비죠. 그거 갖고...그것만 나오는 거에요. 별도로 나오는 건 없고. (공연에서 공연비나...?) 공연비는, 그건 정말 얼마 안되니까.."

전승을 위해 만들어진 보존회에도 장비구입비 명목으로 매달 300만 원씩 지급되고는 있지만, 보존회 운영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공연을 하고 공연비를 받지만 공연 준비 등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다 보니 보존회를 유지하는 일도 벅차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성기(봉산탈춤 보존회 사무국장) : "한정된 예산으로 40-50명의 의상을 만들어야 되는 게 저희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저희 모든 다른 수입들을 모두 의상 만드는 데 제일 많이 투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의상 한 벌에 40-50만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데 저희 공연 200-300만원 받아서 공연한다고 해도 의상 몇 벌 값 안 되지 않습니까?"

봉산탈춤은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다른 무형문화재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복원되는 숭례문 지붕에 올릴 기와 제작에 작업장이 분주합니다.

옛 방식 그대로 전통 기와를 만드는 제와장입니다.

손이 여러 번 가고 시간도 더디 걸리지만, 기계로 찍어낸 기와와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품질과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아직까지 이렇게 전통 기와의 제작이 가능한 것은 중요 무형문화재 91호 기능 보유자 한형준 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한형준(중요 무형문화재 제 91호 제와장 기능 보유자) : "모래가 있기 때문에 기와라는 것이 숨을 쉰단 것이에요. 도자기는 숨을 못 쉬지만, 이것은. 모래가 속에 있어서 사이가 조금씩 있거든요. 그래서 숨을 쉰다고...옛날부터 말이 그렇게 나오니까 알지, 우리도 확실히 과학적으로 그런지 아닌 건지는 몰라요."

기와를 만든 지 68년, 올해 여든넷의 고령인데다 최근엔 심장마저 안 좋아져 병원을 찾는 횟수도 부쩍 늘었습니다.

숭례문 지붕에 올리는 3만여 장의 기와를 만들어내느라 최근 들어 바빠졌을 뿐, 늘 이런 건 아닙니다.

새마을 운동 시절 슬레이트 지붕에 밀려나고, 이후엔 기계로 만드는 기와에 치여 전통 기와는 사양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탓에 한 옹과 함께 전통 기와를 배웠던 이들은 하나 둘 다른 일을 찾아 흩어졌고 한형준 옹만 남아 겨우 맥을 잇고 있습니다.

한 옹마저 그만 뒀더라면, 숭례문 같은 문화재가 소실됐을 때 전통 기와를 올릴 길이 영영 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인터뷰> 한형준(중요 무형문화재 제 91호 제와장 기능 보유자) : "(전승자들을) 빨리 배우게 해서 얼른 내 후손이 되게 해주는 것이 나는 임무에요. 솔직히, 내가 그것이 임무에요. 빨리 안 되니까, 조교까진 있지만 이수자 한 명 조교 한 명 그뿐이에요. 그러니까 한 명을, 얼른 누가 됐든 보유자를 하나 만들어 주고 또 이수자에서 조교를 만들어주고 그러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인데..."

수제자인 전수 조교 김창대 씨는 12년 째 한 옹 곁에서 이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와만으로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전수 활동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조교) : "많은 경험을 통해 가지고 매번 반복을 통해가지고 익혀야 되는 건데, 보시다시피 저희같은 경우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 10일이나 15일은 여기서 작업하고, 또 15일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서 여기 충당하다 보니까 연속성이 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른바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전국의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모두 180여 명. 한 달에 이들에게 지급되는 전승 지원비는 130만 원입니다.

전승에 도움을 준다는 명목일 뿐 생계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지는 못하는 수준입니다.

한해에 유형 문화재에 3400억여 원의 관리예산이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180억 원의 무형문화재 지원 예산은 초라하기만 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다수의 인간문화재들은 허울만 좋은 무형문화재 지정이라며 자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영기(중요 무형문화재 제 47호 궁시장 기능 보유자) : "지금 말은, 보유자들 전수생 이수생 다 있어요. 다 친척이고 다 자식들이야. 그럼 그 자식들이 다 팽개치고 여기에 전념하냐. 여기에 전념하면 밥을 못먹어요. 자식들 키워야 되고. 요즘 뭐 고등하교 중학교 초등학교도 그래요, 다 (돈이) 있어야 가르치지 않냐 이거에요."

정부는 인간문화재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무형문화재의 지원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삼기(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 : "전시회를 열어준다든지 판매망을 연결시켜준다든지 하는, 공연 쪽의 예능 종목같은 경우는 공연 기회를 확대해 준다든지 하는, 간접 적인 지원이 국민의 문화적 향유권도 확대할 수 있고요. 개인은 그걸 통해서 전승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간접 지원이 효과가 더 크다고 봅니다."

문제는 시장에서의 경쟁력인데, 장인이 만든 수공예품이라는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대량생산 제품에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문화재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13명의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생전에 남기고 간 것들입니다.

평생을 바쳐 집약한 장인의 기술이 그대로 녹아있는 이 작품들은 그 자체가 이제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문화재입니다.

이들 가운데 소반과, 명주, 전통북 등은 보유자들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인간문화재 없이 전수자들만이 그 명맥을 힘겹게 잇고 있습니다.

베틀에 들어가는 부품인 바디처럼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전수자마저 없어 맥이 끊겨 버리고 마는 무형문화재도 하나 둘 생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진영(문화재보호재단 공연전시팀장) : "백동연죽장이나 무슨 뭐 이런 정말 요즘에 담뱃대를 거의 안 쓰니까, 이런 분들 같은 경우는 전승자들이 없어서 아들들이 겨우겨우 후손을 잇고 있는데 과연 그런 현실들도 또 얼마까지 될지는 알 수가 없는거죠."

유영기 옹이 종합 건강 검진을 받는 날입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분류돼 그동안 몸이 불편할 때마다 치료비를 일부 지원받아 왔지만, 종합적으로 검진을 받아 보기는 처음입니다.

한 제약 회사가 고령의 인간문화재들에게 종합 건강검진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기회가 닿은 겁니다.

<인터뷰> 한경주(한독약품 대리) : "기업의 특성을 살려서 건강을 관리해 드림으로써 인간문화재 분들은 전수 활동에만 전념을 하실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리고 있는, '인간문화재 지킴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온몸 곳곳에 안 좋은 신호가 오면서 건강에 대한 근심이 늘던 차여서 이런 도움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인터뷰> 유영기(중요 무형문화재 제 47호 궁시장 기능 보유자) : "물론 이제 병원에 가끔 가서 그때그때 진찰은 받았지만 욕심은 그래도 뭐가 이러이러하길래, (종합 검진) 한 번 받았으면... 그걸 오늘 다 풀어버린 셈이에요, 이제..."

몸이 가장 큰 자산인 인간문화재들은 정부로부터 흔한 건강검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이처럼 간혹 민간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무형문화재를 직접 접하고 관심을 높일 수 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녹취> "재료가 여덟가지가 합쳐져야 이거 활이 된다니까요."

<녹취> "아 여덟가지..."

인간문화재로부터 직접 전통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손수 전통 공예를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겐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예술과 기술을 피부로 체험하고 그 가치의 중요성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국보나 보물 같은 유형 문화재를 소중히 아끼는 것 못지않게, 민족의 얼이 깃든 무형의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로 이어 나가는 것도 우리의 의무입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낮은 인식과 부족한 정부의 지원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재는 점점 그 설 땅이 좁아지고 또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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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인간문화재
    • 입력 2010-10-11 07:47:53
    취재파일K
<앵커 멘트> 탈춤이나 판소리와 같은 전통 예술능력이나 사라져가는 옛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흔히 '인간문화재'라고 부릅니다. 살아있는 문화재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이들이 놓인 환경은 문화재급이 아닙니다. 현대화 속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인간문화재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장단 소리에 맞춰 탈춤이 한판 벌어집니다. 마당에 둘러앉아 직접 보는 탈춤은 힘찬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와 더 흥겹습니다. 탈춤 가운데서도 봉산 탈춤은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탈춤입니다. 황해도 봉산, 지금의 사리원 지역에서 시작됐다 6.25 뒤 탈춤꾼들이 남쪽에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바람난 영감에게 맞아 죽은 미얄할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무당이 굿판을 벌이는 이 장면은 봉산 탈춤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무당 역을 맡은 이가 봉산탈춤 예능 보유자 김애선 선생입니다. <인터뷰> 김애선(중요 무형문화재 제 17호 봉산탈춤 예능 보유자)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황해도 이북 사람이 소리를 할 수 있지, 여기 이남 사람들은 안 돼요, 소리가. 지금 그 전라도 창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지방 아니면 못하잖아요."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난 김애선 선생은 어릴 때부터 부친을 따라 탈춤 공연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봉산탈춤을 익혔습니다. 부친을 비롯해 봉산탈춤을 이 땅에 뿌리내렸던 원로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고, 지금은 김애선 선생이 봉산 출신으로는 유일한 봉산 탈춤 예능 보유자입니다. 김 선생은 전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승활동 외에도 일반인을 상대로 꾸준히 탈춤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봉산탈춤의 대중화를 위한 일이자, 생활을 유지하고 보존회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매달 주는 지원금 100만 원으로는 회원이 60여 명이나 되는 보존회의 운영은 커녕,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인터뷰> 김애선(중요 무형문화재 제 17호 봉산탈춤 예능 보유자) : "생활 보조비가 아니고 전승비죠. 그거 갖고...그것만 나오는 거에요. 별도로 나오는 건 없고. (공연에서 공연비나...?) 공연비는, 그건 정말 얼마 안되니까.." 전승을 위해 만들어진 보존회에도 장비구입비 명목으로 매달 300만 원씩 지급되고는 있지만, 보존회 운영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공연을 하고 공연비를 받지만 공연 준비 등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다 보니 보존회를 유지하는 일도 벅차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성기(봉산탈춤 보존회 사무국장) : "한정된 예산으로 40-50명의 의상을 만들어야 되는 게 저희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저희 모든 다른 수입들을 모두 의상 만드는 데 제일 많이 투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의상 한 벌에 40-50만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데 저희 공연 200-300만원 받아서 공연한다고 해도 의상 몇 벌 값 안 되지 않습니까?" 봉산탈춤은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다른 무형문화재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복원되는 숭례문 지붕에 올릴 기와 제작에 작업장이 분주합니다. 옛 방식 그대로 전통 기와를 만드는 제와장입니다. 손이 여러 번 가고 시간도 더디 걸리지만, 기계로 찍어낸 기와와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품질과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아직까지 이렇게 전통 기와의 제작이 가능한 것은 중요 무형문화재 91호 기능 보유자 한형준 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한형준(중요 무형문화재 제 91호 제와장 기능 보유자) : "모래가 있기 때문에 기와라는 것이 숨을 쉰단 것이에요. 도자기는 숨을 못 쉬지만, 이것은. 모래가 속에 있어서 사이가 조금씩 있거든요. 그래서 숨을 쉰다고...옛날부터 말이 그렇게 나오니까 알지, 우리도 확실히 과학적으로 그런지 아닌 건지는 몰라요." 기와를 만든 지 68년, 올해 여든넷의 고령인데다 최근엔 심장마저 안 좋아져 병원을 찾는 횟수도 부쩍 늘었습니다. 숭례문 지붕에 올리는 3만여 장의 기와를 만들어내느라 최근 들어 바빠졌을 뿐, 늘 이런 건 아닙니다. 새마을 운동 시절 슬레이트 지붕에 밀려나고, 이후엔 기계로 만드는 기와에 치여 전통 기와는 사양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탓에 한 옹과 함께 전통 기와를 배웠던 이들은 하나 둘 다른 일을 찾아 흩어졌고 한형준 옹만 남아 겨우 맥을 잇고 있습니다. 한 옹마저 그만 뒀더라면, 숭례문 같은 문화재가 소실됐을 때 전통 기와를 올릴 길이 영영 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인터뷰> 한형준(중요 무형문화재 제 91호 제와장 기능 보유자) : "(전승자들을) 빨리 배우게 해서 얼른 내 후손이 되게 해주는 것이 나는 임무에요. 솔직히, 내가 그것이 임무에요. 빨리 안 되니까, 조교까진 있지만 이수자 한 명 조교 한 명 그뿐이에요. 그러니까 한 명을, 얼른 누가 됐든 보유자를 하나 만들어 주고 또 이수자에서 조교를 만들어주고 그러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인데..." 수제자인 전수 조교 김창대 씨는 12년 째 한 옹 곁에서 이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와만으로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전수 활동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조교) : "많은 경험을 통해 가지고 매번 반복을 통해가지고 익혀야 되는 건데, 보시다시피 저희같은 경우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 10일이나 15일은 여기서 작업하고, 또 15일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서 여기 충당하다 보니까 연속성이 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른바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전국의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모두 180여 명. 한 달에 이들에게 지급되는 전승 지원비는 130만 원입니다. 전승에 도움을 준다는 명목일 뿐 생계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지는 못하는 수준입니다. 한해에 유형 문화재에 3400억여 원의 관리예산이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180억 원의 무형문화재 지원 예산은 초라하기만 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다수의 인간문화재들은 허울만 좋은 무형문화재 지정이라며 자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영기(중요 무형문화재 제 47호 궁시장 기능 보유자) : "지금 말은, 보유자들 전수생 이수생 다 있어요. 다 친척이고 다 자식들이야. 그럼 그 자식들이 다 팽개치고 여기에 전념하냐. 여기에 전념하면 밥을 못먹어요. 자식들 키워야 되고. 요즘 뭐 고등하교 중학교 초등학교도 그래요, 다 (돈이) 있어야 가르치지 않냐 이거에요." 정부는 인간문화재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무형문화재의 지원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삼기(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 : "전시회를 열어준다든지 판매망을 연결시켜준다든지 하는, 공연 쪽의 예능 종목같은 경우는 공연 기회를 확대해 준다든지 하는, 간접 적인 지원이 국민의 문화적 향유권도 확대할 수 있고요. 개인은 그걸 통해서 전승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간접 지원이 효과가 더 크다고 봅니다." 문제는 시장에서의 경쟁력인데, 장인이 만든 수공예품이라는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대량생산 제품에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문화재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13명의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생전에 남기고 간 것들입니다. 평생을 바쳐 집약한 장인의 기술이 그대로 녹아있는 이 작품들은 그 자체가 이제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문화재입니다. 이들 가운데 소반과, 명주, 전통북 등은 보유자들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인간문화재 없이 전수자들만이 그 명맥을 힘겹게 잇고 있습니다. 베틀에 들어가는 부품인 바디처럼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전수자마저 없어 맥이 끊겨 버리고 마는 무형문화재도 하나 둘 생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진영(문화재보호재단 공연전시팀장) : "백동연죽장이나 무슨 뭐 이런 정말 요즘에 담뱃대를 거의 안 쓰니까, 이런 분들 같은 경우는 전승자들이 없어서 아들들이 겨우겨우 후손을 잇고 있는데 과연 그런 현실들도 또 얼마까지 될지는 알 수가 없는거죠." 유영기 옹이 종합 건강 검진을 받는 날입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분류돼 그동안 몸이 불편할 때마다 치료비를 일부 지원받아 왔지만, 종합적으로 검진을 받아 보기는 처음입니다. 한 제약 회사가 고령의 인간문화재들에게 종합 건강검진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기회가 닿은 겁니다. <인터뷰> 한경주(한독약품 대리) : "기업의 특성을 살려서 건강을 관리해 드림으로써 인간문화재 분들은 전수 활동에만 전념을 하실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리고 있는, '인간문화재 지킴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온몸 곳곳에 안 좋은 신호가 오면서 건강에 대한 근심이 늘던 차여서 이런 도움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인터뷰> 유영기(중요 무형문화재 제 47호 궁시장 기능 보유자) : "물론 이제 병원에 가끔 가서 그때그때 진찰은 받았지만 욕심은 그래도 뭐가 이러이러하길래, (종합 검진) 한 번 받았으면... 그걸 오늘 다 풀어버린 셈이에요, 이제..." 몸이 가장 큰 자산인 인간문화재들은 정부로부터 흔한 건강검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이처럼 간혹 민간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무형문화재를 직접 접하고 관심을 높일 수 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녹취> "재료가 여덟가지가 합쳐져야 이거 활이 된다니까요." <녹취> "아 여덟가지..." 인간문화재로부터 직접 전통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손수 전통 공예를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겐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예술과 기술을 피부로 체험하고 그 가치의 중요성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국보나 보물 같은 유형 문화재를 소중히 아끼는 것 못지않게, 민족의 얼이 깃든 무형의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로 이어 나가는 것도 우리의 의무입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낮은 인식과 부족한 정부의 지원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재는 점점 그 설 땅이 좁아지고 또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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