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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장애 아들 둔 일용직, 자살 택한 사연
입력 2010.10.11 (09:17) 아침뉴스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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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떠날때까지 아들 걱정이 컸다죠?

몸이 불편한 아들이 정부보조금을 탈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서를 남겼는데요.

이민우 기자, 생활이 어려웠던 모양입니다만, 남겨진 12살 아들이 정말 걱정되네요.

<리포트>

밀린 월세도 내지 못하고 쌀 값도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일감까지 끊겨 괴로웠습니다.

아버지는 고민했겠죠.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곤 선택했습니다.

아들과의 추억이 깃든 공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꼭 저 방법 밖에 없었나, 안타깝기 그지없고, 우리 사회는 뭘 했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동사무소 직원여러분 제가 죽어야 우리 아들에게 혜택이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들 잘 부탁합니다. 12살 우리 아들 잘 봐주세요.

혼자되는 우리 아들 이 아비가 정말 사랑한다.

하늘에서 아비가 지켜보고 있을게.

꼬깃꼬깃한 종이에 써내려간 서툰 글씨.

52살 윤 모 씨가 남긴 여섯 장의 유서에는 구구절절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지인에게 그리고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윤씨.

윤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6일 아침 여의도의 한 공원에서였습니다.

<녹취> 청소반장 : “아침에 8시 조금 넘었을까 시민들이 새벽에 운동을 하니까 여기까지는 오지도 못하고, 저 밑에서 본 모양이에요. 사람이 매달린 것 같다.”

윤 씨의 주머니에서는 발견된 유서에는 아들을 위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한 아버지의 가슴아픈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녹취> 청소반장 : “감식반이 왔을 때는 주머니 뒤지니까 종이 몇 장 글씨 쓴 거 하고, 옆에 소주병 있고, 담배꽁초 몇 개 있고...”

고아로 자란 윤 씨는 절도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전과자였습니다.

94년 마지막으로 출소한 뒤에는 새 삶을 꿈꾸며 교도소에서 배운 용접기술로 취직을 했습니다.

<인터뷰> 송희숙(영등포 교도소 교화위원) : “착실했어요.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열심히 살았고...”

특히 99년에는 동거녀 사이에서 아들도 얻었습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얻은 아들.

고아로 자란 윤 씨의 유일한 피붙이였기에 그 사랑은 각별했다는데요.

<녹취> 동네주민 :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나요?) 아이고 그럼. 아들이 그거 하나인데, 아들. 어디 다니면 꼭 아들 데리고 다니고 그래요.”

<녹취> 윤 씨 아들 담임 : “'우리 00, 가정통신 회신서 같은 거 와도 우리 00 사랑해 달라고 그렇게 써 보내 주시고...”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윤 씨는 공사현장을 전전했습니다.

그나마도 쉬는 날이 많아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녹취> 윤 씨 전 동거인 : “수입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쉬는 날이 더 많아요. 하루 먹고 하루살고 그렇게 했거든요.”

3년 전에는 동거녀와도 헤어져 홀로 아들을 키워야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윤 씨는 행여 12살 난 어린 아들이 기가 죽지는 않을까 학교 급식비나 납부금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녹취> 윤 씨 아들 담임(00초등학교) : “현장 학습비 같은 그런 거 한번 갔다 왔지만 낼 때도 돈 문제로는 미납되어서 명단이 행정실에서 올라온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월세 조차 내기 힘든 처지였습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5만원을 주고 살았던 윤 씨와 아들의 보금자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월세도 계속 밀렸다고 하는데요.

<녹취> 윤 씨 집주인 : “처음에 일 다닐 때는 (월세) 좀 내고, 밀릴 때는 두 달씩 밀려있고, 요즘에 들어서는 두 달이나 석 달 치 밀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생활고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마저 뇌경색과 발작 증상으로 정기적인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건 돈이었습니다.

<녹취> 윤 씨 집주인 : “전에도 한번 (아들이) 쓰러져가지고, 병원에 실려갔지. 여기서...”

<인터뷰> 송희숙(영등포교도소 교화위원) :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발작 증세를 일으키고...애가 병원에 가고 그러면 돈도 많이 들어가고, 그거 때문에 찾아오고 그랬죠.”

윤 씨는 몸이 아픈 아들을 위해 주민센터에 ‘복지대상’ 신청을 하려고 했습니다.

집에서 발견된 신청서는 그러나 몇 줄 채우지 못한 채였는데요.

주민센터에 확인한 결과 윤 씨는 지원 상담을 받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 : “저희가 전산으로 상담이력을 다 관리하거든요. 그런데 그 분과는 상담한 이력이 전혀 없고요.”

결국 어디에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고, 혼자 감당하려 했던 윤씨. 무능력한 아버지와 사느니, 몸이 아픈 아들이 혼자가 되더라도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12살 아들은 이제 홀로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녹취> 윤00(윤 씨 아들) : “아빠랑 막 얘기하면서 웃던 거 (생각나요). (종이걸이) 만들었다고 얘기하니까 (아빠가) 잘했다고...(아빠랑 놀러간 적 있어요?) 여기에서 가까운 놀이터랑요, 여의도. 자전거 타고 (놀았어요.)”

무뚝뚝한 성격의 윤 씨지만, 아들 앞에서는 한 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일 뿐이었는데요.

<녹취> 윤00(윤 씨 아들) : “(아버지가 해준 음식 중에서 뭐가 제일 맛있어요?) 삼계탕이요.((요리하기) 힘든데 (아버지가) 직접 다 하셨어요?) 네...”

헤어진 지 3년 만에 윤 씨의 사망소식을 듣고 찾아온 윤 군의 어머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혼자서는 아들을 맡아 키울 힘이 없다고 털어놨는데요.

<녹취> 윤 씨 전 동거인 : “나는 키울 능력이 안 되거든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키우겠어요.”

아들과 행복한 추억이 있는 곳에서 윤 씨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부탁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녹취> 윤00(윤 씨 아들) :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우리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잘 가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해당 주민센터는 아들 윤군을 위해 국민기초생활수급과 생활생계비 지원 신청을 마친 상태이며, 빠른 시일 내 장애인 등록 절차를 도울 예정입니다.
  • [뉴스 따라잡기] 장애 아들 둔 일용직, 자살 택한 사연
    • 입력 2010-10-11 09:17:59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떠날때까지 아들 걱정이 컸다죠?

몸이 불편한 아들이 정부보조금을 탈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서를 남겼는데요.

이민우 기자, 생활이 어려웠던 모양입니다만, 남겨진 12살 아들이 정말 걱정되네요.

<리포트>

밀린 월세도 내지 못하고 쌀 값도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일감까지 끊겨 괴로웠습니다.

아버지는 고민했겠죠.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곤 선택했습니다.

아들과의 추억이 깃든 공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꼭 저 방법 밖에 없었나, 안타깝기 그지없고, 우리 사회는 뭘 했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동사무소 직원여러분 제가 죽어야 우리 아들에게 혜택이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들 잘 부탁합니다. 12살 우리 아들 잘 봐주세요.

혼자되는 우리 아들 이 아비가 정말 사랑한다.

하늘에서 아비가 지켜보고 있을게.

꼬깃꼬깃한 종이에 써내려간 서툰 글씨.

52살 윤 모 씨가 남긴 여섯 장의 유서에는 구구절절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지인에게 그리고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윤씨.

윤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6일 아침 여의도의 한 공원에서였습니다.

<녹취> 청소반장 : “아침에 8시 조금 넘었을까 시민들이 새벽에 운동을 하니까 여기까지는 오지도 못하고, 저 밑에서 본 모양이에요. 사람이 매달린 것 같다.”

윤 씨의 주머니에서는 발견된 유서에는 아들을 위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한 아버지의 가슴아픈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녹취> 청소반장 : “감식반이 왔을 때는 주머니 뒤지니까 종이 몇 장 글씨 쓴 거 하고, 옆에 소주병 있고, 담배꽁초 몇 개 있고...”

고아로 자란 윤 씨는 절도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전과자였습니다.

94년 마지막으로 출소한 뒤에는 새 삶을 꿈꾸며 교도소에서 배운 용접기술로 취직을 했습니다.

<인터뷰> 송희숙(영등포 교도소 교화위원) : “착실했어요.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열심히 살았고...”

특히 99년에는 동거녀 사이에서 아들도 얻었습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얻은 아들.

고아로 자란 윤 씨의 유일한 피붙이였기에 그 사랑은 각별했다는데요.

<녹취> 동네주민 :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나요?) 아이고 그럼. 아들이 그거 하나인데, 아들. 어디 다니면 꼭 아들 데리고 다니고 그래요.”

<녹취> 윤 씨 아들 담임 : “'우리 00, 가정통신 회신서 같은 거 와도 우리 00 사랑해 달라고 그렇게 써 보내 주시고...”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윤 씨는 공사현장을 전전했습니다.

그나마도 쉬는 날이 많아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녹취> 윤 씨 전 동거인 : “수입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쉬는 날이 더 많아요. 하루 먹고 하루살고 그렇게 했거든요.”

3년 전에는 동거녀와도 헤어져 홀로 아들을 키워야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윤 씨는 행여 12살 난 어린 아들이 기가 죽지는 않을까 학교 급식비나 납부금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녹취> 윤 씨 아들 담임(00초등학교) : “현장 학습비 같은 그런 거 한번 갔다 왔지만 낼 때도 돈 문제로는 미납되어서 명단이 행정실에서 올라온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월세 조차 내기 힘든 처지였습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5만원을 주고 살았던 윤 씨와 아들의 보금자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월세도 계속 밀렸다고 하는데요.

<녹취> 윤 씨 집주인 : “처음에 일 다닐 때는 (월세) 좀 내고, 밀릴 때는 두 달씩 밀려있고, 요즘에 들어서는 두 달이나 석 달 치 밀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생활고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마저 뇌경색과 발작 증상으로 정기적인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건 돈이었습니다.

<녹취> 윤 씨 집주인 : “전에도 한번 (아들이) 쓰러져가지고, 병원에 실려갔지. 여기서...”

<인터뷰> 송희숙(영등포교도소 교화위원) :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발작 증세를 일으키고...애가 병원에 가고 그러면 돈도 많이 들어가고, 그거 때문에 찾아오고 그랬죠.”

윤 씨는 몸이 아픈 아들을 위해 주민센터에 ‘복지대상’ 신청을 하려고 했습니다.

집에서 발견된 신청서는 그러나 몇 줄 채우지 못한 채였는데요.

주민센터에 확인한 결과 윤 씨는 지원 상담을 받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 : “저희가 전산으로 상담이력을 다 관리하거든요. 그런데 그 분과는 상담한 이력이 전혀 없고요.”

결국 어디에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고, 혼자 감당하려 했던 윤씨. 무능력한 아버지와 사느니, 몸이 아픈 아들이 혼자가 되더라도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12살 아들은 이제 홀로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녹취> 윤00(윤 씨 아들) : “아빠랑 막 얘기하면서 웃던 거 (생각나요). (종이걸이) 만들었다고 얘기하니까 (아빠가) 잘했다고...(아빠랑 놀러간 적 있어요?) 여기에서 가까운 놀이터랑요, 여의도. 자전거 타고 (놀았어요.)”

무뚝뚝한 성격의 윤 씨지만, 아들 앞에서는 한 없이 다정다감한 아버지일 뿐이었는데요.

<녹취> 윤00(윤 씨 아들) : “(아버지가 해준 음식 중에서 뭐가 제일 맛있어요?) 삼계탕이요.((요리하기) 힘든데 (아버지가) 직접 다 하셨어요?) 네...”

헤어진 지 3년 만에 윤 씨의 사망소식을 듣고 찾아온 윤 군의 어머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혼자서는 아들을 맡아 키울 힘이 없다고 털어놨는데요.

<녹취> 윤 씨 전 동거인 : “나는 키울 능력이 안 되거든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키우겠어요.”

아들과 행복한 추억이 있는 곳에서 윤 씨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부탁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녹취> 윤00(윤 씨 아들) :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우리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잘 가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해당 주민센터는 아들 윤군을 위해 국민기초생활수급과 생활생계비 지원 신청을 마친 상태이며, 빠른 시일 내 장애인 등록 절차를 도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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