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섭 “故 김형칠 삼촌에 금 바친다”

입력 2010.10.21 (15:55) 수정 2010.10.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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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마장마술 부문 국가대표 김균섭(29.인천시체육회 / 사진 오른쪽)은 2002년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리스트다.



당시 한국 대표팀에는 김균섭의 삼촌인 김형칠(사진 왼쪽)도 함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말을 타던 삼촌과 조카는 가장 친한 동료이자 사제지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김균섭의 곁에는 그 소중한 삼촌이 없다. 김형칠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경기 도중 불의의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때 김균섭은 대표 선발전에서 삼촌에게 자리를 내주고 한국에서 사고 소식을 접했다. 3일이 지나 김형칠의 시신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영정 사진을 붙잡고 가장 크게 오열한 사람이 바로 조카 균섭이었다.



다음 달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과천 KRA 승마훈련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균섭은 "요즘 따라 큰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삼촌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이럴 때 삼촌과 할아버지가 옆에 계셨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김균섭의 할아버지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고 대한승마협회 경기력 향상 위원장으로도 활동한 고(故) 김철규 씨다. 할아버지와 삼촌에 이어 김균섭까지 3대째 승마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승마 가문’이다.



어릴 때부터 김균섭은 자신을 유난히도 예뻐했던 할아버지와 늘 함께 다니며 말과 가까워졌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승마를 시작했다.



자연스레 삼촌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 김균섭은 "사춘기 때는 삼촌이 너무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싫어 반항심에 운동도 안 하고 놀러다니곤 했다"면서 "하지만 3일만 지나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허전해져 말을 찾고 있더라. 승마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균섭은 "지금도 연습할 때 삼촌이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해주던 충고들이 떠오를 때가 많다"며 삼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드러냈다.

지난 7월 말 다시 태극마크를 단 뒤 김균섭의 컨디션은 매우 좋다. 올 5월부터 함께한 새로운 말과 호흡도 잘 맞다.



하지만 이달 전국체전에서는 마장마술 6위, 장애물 12위로 다소 부진했다. 김균섭은 이에 대해 "말도 긴장하고 나도 긴장했다. 선발전 끝나고 첫 대회였는데 자신이 있었던 만큼 당황했다"면서 "사실 내가 더 떨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균섭은 "그 때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교훈도 얻었다"면서 광저우에서 선전을 다짐했다.



8년 만에 밟는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김균섭은 삼촌이 못다 이룬 금메달의 꿈을 이루고 싶다. 김형칠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2002년에는 김균섭과 함께 은메달을 땄지만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김균섭은 "한국이 마장마술 강국이고 저도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금메달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꼭 따고 싶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승마 경기에서 메달리스트들은 경기장을 돌며 퍼레이드를 한다. 김균섭은 금메달을 따고서 하늘에 계신 삼촌과 할아버지를 향해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는 또 "언젠가는 유럽에 진출해 큰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겨뤄보는 게 목표"라면서 "삼촌과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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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균섭 “故 김형칠 삼촌에 금 바친다”
    • 입력 2010-10-21 15:55:14
    • 수정2010-10-21 15:57:27
    연합뉴스
승마 마장마술 부문 국가대표 김균섭(29.인천시체육회 / 사진 오른쪽)은 2002년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리스트다.

당시 한국 대표팀에는 김균섭의 삼촌인 김형칠(사진 왼쪽)도 함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말을 타던 삼촌과 조카는 가장 친한 동료이자 사제지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김균섭의 곁에는 그 소중한 삼촌이 없다. 김형칠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경기 도중 불의의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때 김균섭은 대표 선발전에서 삼촌에게 자리를 내주고 한국에서 사고 소식을 접했다. 3일이 지나 김형칠의 시신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영정 사진을 붙잡고 가장 크게 오열한 사람이 바로 조카 균섭이었다.

다음 달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과천 KRA 승마훈련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균섭은 "요즘 따라 큰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삼촌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이럴 때 삼촌과 할아버지가 옆에 계셨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김균섭의 할아버지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고 대한승마협회 경기력 향상 위원장으로도 활동한 고(故) 김철규 씨다. 할아버지와 삼촌에 이어 김균섭까지 3대째 승마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승마 가문’이다.

어릴 때부터 김균섭은 자신을 유난히도 예뻐했던 할아버지와 늘 함께 다니며 말과 가까워졌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승마를 시작했다.

자연스레 삼촌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 김균섭은 "사춘기 때는 삼촌이 너무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싫어 반항심에 운동도 안 하고 놀러다니곤 했다"면서 "하지만 3일만 지나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허전해져 말을 찾고 있더라. 승마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균섭은 "지금도 연습할 때 삼촌이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해주던 충고들이 떠오를 때가 많다"며 삼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드러냈다.
지난 7월 말 다시 태극마크를 단 뒤 김균섭의 컨디션은 매우 좋다. 올 5월부터 함께한 새로운 말과 호흡도 잘 맞다.

하지만 이달 전국체전에서는 마장마술 6위, 장애물 12위로 다소 부진했다. 김균섭은 이에 대해 "말도 긴장하고 나도 긴장했다. 선발전 끝나고 첫 대회였는데 자신이 있었던 만큼 당황했다"면서 "사실 내가 더 떨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균섭은 "그 때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교훈도 얻었다"면서 광저우에서 선전을 다짐했다.

8년 만에 밟는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김균섭은 삼촌이 못다 이룬 금메달의 꿈을 이루고 싶다. 김형칠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2002년에는 김균섭과 함께 은메달을 땄지만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김균섭은 "한국이 마장마술 강국이고 저도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금메달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꼭 따고 싶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승마 경기에서 메달리스트들은 경기장을 돌며 퍼레이드를 한다. 김균섭은 금메달을 따고서 하늘에 계신 삼촌과 할아버지를 향해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는 또 "언젠가는 유럽에 진출해 큰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겨뤄보는 게 목표"라면서 "삼촌과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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