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한 벤처 기업인의 ‘잃어버린 10년’
입력 2010.11.12 (15:56) 수정 2010.11.12 (16:15) 연합뉴스
"자의든 타의든, 주저앉은 뒤에는 국내에서 재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신기원을 열었던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42)씨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 등 국내 IT 업계에서 대기업 외에 신규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며 "개인적으로도 한 번 맛본 쓰라림을 극복하고 재기하기엔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고 토로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임을 자부해마지 않는 우리나라이지만, 실제 ICT 업계에서 벤처 창업의 기업가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우려 섞인 지적도 적지 않다.

한때 애플의 실패한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화려하게 복귀해 전 세계 모바일 생태계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김 씨가 지난 1999년 10월 본격 사업에 나선 아이러브스쿨은 최근 해외에서 역수입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사이트(SNS)의 원조격으로, 싸이월드와 함께 토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사이트였다.

김 씨의 엄청난 성공은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아이디어만으로 출발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내 벤처 성공 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돼온 `스토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씨가 아이러브스쿨을 떠난 2001년 2월 이후 지난 10년간 시절은 그에게 떨쳐 버리기 힘든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0년 8월 500억원을 제시한 야후의 인수 제안은 달콤했으나 김 씨는 경영권 보장을 약속한 국내의 한 중소기업을 택해 일부 지분을 넘기게 된다.

이후 김 씨는 당시 언론에도 일부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이러브스쿨 지분 매각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렸다.

지분매각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지분을 넘긴 김씨는 지분을 받아간 중소기업 대표가 아이러브스쿨 지분을 다른 회사에 넘기고 해외로 도피한 뒤부터 `급전직하'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에게 몰아닥친 더 큰 시련은 주식 매매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였다. 소득이 없으므로 과세를 피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만 순진하게 믿고 자진 신고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매매를 미리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마저 더해진 세금 총액은 13억5천만원. 이는 이후 5년간 이자를 포함, 총 24억여원으로 불었다.

남은 재산 6억여원은 통째로 압류당하고,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혔다. 국세청 관계자로부터는 "딱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차라리 야후에 팔았더라면.." 끝없는 분노, 회한에 자신을 용서할 길이 없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보며 책만 읽었습니다. 사람을 믿은 것뿐인데 이렇게 배신당하고 나니,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었죠."

그렇게 수년간을 칩거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2005년 3월 `아이티아'를 설립,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오랜 방황의 끝에 돌아온 시장 상황은 냉랭했다. 누구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가정내 아픔도 적지 않게 겪었다. 그러나 더 이상 좌절할 데도, 물러설 데도 없었다.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 장벽인 `리치(REACH)'에 주목, 자나깨나 매달린 끝에 환경부 발주 용역을 따내는 성과도 거뒀으나 리치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이어서 `밥벌이'는 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중국에서 새로운 인터넷 사업을 준비 중이다. 거액의 세금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 완장을 찬 채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주식매각 분쟁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재개됨에 따라 일시 귀국했다.

김 씨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사(아이러브스쿨)를 떠난 것은 아이를 낳고 버린 행동과 같았다"며 "개인적 시련도 시련이지만, 창업과 도전이 `머니게임'으로 변질돼 버블 붕괴로 이어진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랜 `숙성'과 해외경험을 거친 그가 국내 인터넷 시장에 갖는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는 "중국은 물론, 세계 시장 트렌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터넷 현실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진단했다.

김 씨는 "철저한 실명인증과 가입 시 고객동의를 통해 강제로 다른 서비스도 가입하게 하는 사업자 위주의 시장 환경에 길든 우리 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며 "`우리만의 리그'로 변질된 인터넷 시장도 `테스트베드'로서 장점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사 게재 이후 오전 네이버에서 `아이러브스쿨' 검색어가 1위에 오르는가 하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SNS) 사이트에서 김씨에 대한 격려글이 쇄도하는 등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 한 벤처 기업인의 ‘잃어버린 10년’
    • 입력 2010-11-12 15:56:59
    • 수정2010-11-12 16:15:57
    연합뉴스
"자의든 타의든, 주저앉은 뒤에는 국내에서 재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신기원을 열었던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42)씨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 등 국내 IT 업계에서 대기업 외에 신규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며 "개인적으로도 한 번 맛본 쓰라림을 극복하고 재기하기엔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고 토로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임을 자부해마지 않는 우리나라이지만, 실제 ICT 업계에서 벤처 창업의 기업가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우려 섞인 지적도 적지 않다.

한때 애플의 실패한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화려하게 복귀해 전 세계 모바일 생태계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김 씨가 지난 1999년 10월 본격 사업에 나선 아이러브스쿨은 최근 해외에서 역수입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사이트(SNS)의 원조격으로, 싸이월드와 함께 토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사이트였다.

김 씨의 엄청난 성공은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아이디어만으로 출발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내 벤처 성공 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돼온 `스토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씨가 아이러브스쿨을 떠난 2001년 2월 이후 지난 10년간 시절은 그에게 떨쳐 버리기 힘든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0년 8월 500억원을 제시한 야후의 인수 제안은 달콤했으나 김 씨는 경영권 보장을 약속한 국내의 한 중소기업을 택해 일부 지분을 넘기게 된다.

이후 김 씨는 당시 언론에도 일부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이러브스쿨 지분 매각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렸다.

지분매각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지분을 넘긴 김씨는 지분을 받아간 중소기업 대표가 아이러브스쿨 지분을 다른 회사에 넘기고 해외로 도피한 뒤부터 `급전직하'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에게 몰아닥친 더 큰 시련은 주식 매매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였다. 소득이 없으므로 과세를 피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만 순진하게 믿고 자진 신고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매매를 미리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마저 더해진 세금 총액은 13억5천만원. 이는 이후 5년간 이자를 포함, 총 24억여원으로 불었다.

남은 재산 6억여원은 통째로 압류당하고,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혔다. 국세청 관계자로부터는 "딱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차라리 야후에 팔았더라면.." 끝없는 분노, 회한에 자신을 용서할 길이 없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보며 책만 읽었습니다. 사람을 믿은 것뿐인데 이렇게 배신당하고 나니,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었죠."

그렇게 수년간을 칩거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2005년 3월 `아이티아'를 설립,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오랜 방황의 끝에 돌아온 시장 상황은 냉랭했다. 누구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가정내 아픔도 적지 않게 겪었다. 그러나 더 이상 좌절할 데도, 물러설 데도 없었다.

유럽의 화학물질 규제 장벽인 `리치(REACH)'에 주목, 자나깨나 매달린 끝에 환경부 발주 용역을 따내는 성과도 거뒀으나 리치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이어서 `밥벌이'는 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중국에서 새로운 인터넷 사업을 준비 중이다. 거액의 세금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 완장을 찬 채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주식매각 분쟁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재개됨에 따라 일시 귀국했다.

김 씨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사(아이러브스쿨)를 떠난 것은 아이를 낳고 버린 행동과 같았다"며 "개인적 시련도 시련이지만, 창업과 도전이 `머니게임'으로 변질돼 버블 붕괴로 이어진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랜 `숙성'과 해외경험을 거친 그가 국내 인터넷 시장에 갖는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는 "중국은 물론, 세계 시장 트렌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터넷 현실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진단했다.

김 씨는 "철저한 실명인증과 가입 시 고객동의를 통해 강제로 다른 서비스도 가입하게 하는 사업자 위주의 시장 환경에 길든 우리 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며 "`우리만의 리그'로 변질된 인터넷 시장도 `테스트베드'로서 장점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사 게재 이후 오전 네이버에서 `아이러브스쿨' 검색어가 1위에 오르는가 하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SNS) 사이트에서 김씨에 대한 격려글이 쇄도하는 등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