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의미와 과제

입력 2010.11.1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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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도서 296권이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일인 12일 한-불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연장이 가능한 사실상의 영구 대여 방식으로 반환한다는 데 극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간 합의에 따라 이 도서가 내년 초에 반환된다면 강탈당한 지 145년 만에,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파리 국립도서관(BNF)에서 의궤를 처음으로 발견한 지 36년 만에 조국 땅을 밟게 된다.

비록 공식 반환이 아닌 '5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한 일반 대여'의 형식을 빌렸지만, 프랑스에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사실상의 영구대여'라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실리를 찾고 프랑스로서는 명분을 살린 '윈-윈' 협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3년 첫 협상이 시작된 이후 '국내 고문서와 등가교환 방식의 영구대여'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프랑스의 미지근한 대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가 식민지 약탈 문화재가 많은 상황에서 어느 한 나라에 문화재를 반환해준 선례를 남길 경우 다른 나라들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협상에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국내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파리행정법원에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 법원으로부터 약탈 사실은 인정받으면서도 반환 청구소송은 기각당하는 아이러니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협상에 물꼬가 트인 것은 박흥신 주불대사가 부임한 이후인 지난 8월 우리 측이 사실상의 반환이라 할 수 있는 '영구대여'라는 용어를 포기하고 '일반대여'라는 방식을 추진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가 문화재의 반출을 무조건 반대하는 국립도서관(BNF)의 입장을 고려해 자국법 상 공공재산 소유권은 물론 영구대여도 허용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명해온 점을 역이용, 일반대여를 추진하되 갱신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영구대여 방식을 적용키로 협상 전략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측이 국내 문화계의 반발을 의식해 사실상의 반환을 담보하기 위해 "자동으로 갱신된다" 또는 "대여 종료는 양국간 합의로 한다"는 조항을 합의문에 넣자고 요구하면서 다시 난항을 거듭했다.

양국 간 협상은 지난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프랑스 방문으로 시간에 쫓기면서 무산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이번 주 들어 박흥신 대사와 프랑스 외교부 폴 장-오르티즈 아주국장 간에 실무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박흥신 대사는 G20 정상회의 개회일인 11일 오전까지 머리를 맞대다 막판 쟁점을 합의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서울로 향해야 했다.

서울에서 박 대사는 장-다비드 레비트 프랑스 외교안보수석과 또다시 협상을 벌여 합의문에는 표현하지 않되 양국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측이 사실상 돌려받을 의사가 없다는 구두 표현을 하는 선에서 막판 쟁점을 마무리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협상에 깊숙이 관여해온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장관은 "두 나라가 법률적 형식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안을 찾았다는 데 의미가 크며 특히 한국 정부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판단했다"고 평가했다.

외규장각 도서가 사실상 반환되는 것으로 합의됨에 따라 한.불 양국은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G20 의장국을 수임한 프랑스로서는 G20 서울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로서도 G20 합의사항들의 이행 여부를 계속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반환키로 합의된 도서는 총 191종 296권으로, 양측간 세부 협상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양국은 BNF와 국립중앙박물관 간 협약 체결을 거치게 되는데, 한국에 도착하기까지는 6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것으로 기록된 349점 가운데 아직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42점(의궤 중 1권은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대여 형식으로 반환받음)도 되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게 됐다.

또 우리로서는 실리를 챙기기는 했지만 약탈당한 문화재를 공식사과도 받지 못한 채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데 대한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비난과 반발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이번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은 10만점(문화재청 파악)이 넘는 해외 유출 문화재들을 반환.환수하는 데에도 실리와 명분을 잘 조율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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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의미와 과제
    • 입력 2010-11-12 20:46:19
    연합뉴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도서 296권이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일인 12일 한-불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연장이 가능한 사실상의 영구 대여 방식으로 반환한다는 데 극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간 합의에 따라 이 도서가 내년 초에 반환된다면 강탈당한 지 145년 만에,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파리 국립도서관(BNF)에서 의궤를 처음으로 발견한 지 36년 만에 조국 땅을 밟게 된다. 비록 공식 반환이 아닌 '5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한 일반 대여'의 형식을 빌렸지만, 프랑스에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사실상의 영구대여'라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실리를 찾고 프랑스로서는 명분을 살린 '윈-윈' 협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3년 첫 협상이 시작된 이후 '국내 고문서와 등가교환 방식의 영구대여'로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프랑스의 미지근한 대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가 식민지 약탈 문화재가 많은 상황에서 어느 한 나라에 문화재를 반환해준 선례를 남길 경우 다른 나라들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협상에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국내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파리행정법원에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 법원으로부터 약탈 사실은 인정받으면서도 반환 청구소송은 기각당하는 아이러니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협상에 물꼬가 트인 것은 박흥신 주불대사가 부임한 이후인 지난 8월 우리 측이 사실상의 반환이라 할 수 있는 '영구대여'라는 용어를 포기하고 '일반대여'라는 방식을 추진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가 문화재의 반출을 무조건 반대하는 국립도서관(BNF)의 입장을 고려해 자국법 상 공공재산 소유권은 물론 영구대여도 허용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명해온 점을 역이용, 일반대여를 추진하되 갱신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영구대여 방식을 적용키로 협상 전략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측이 국내 문화계의 반발을 의식해 사실상의 반환을 담보하기 위해 "자동으로 갱신된다" 또는 "대여 종료는 양국간 합의로 한다"는 조항을 합의문에 넣자고 요구하면서 다시 난항을 거듭했다. 양국 간 협상은 지난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프랑스 방문으로 시간에 쫓기면서 무산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이번 주 들어 박흥신 대사와 프랑스 외교부 폴 장-오르티즈 아주국장 간에 실무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박흥신 대사는 G20 정상회의 개회일인 11일 오전까지 머리를 맞대다 막판 쟁점을 합의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서울로 향해야 했다. 서울에서 박 대사는 장-다비드 레비트 프랑스 외교안보수석과 또다시 협상을 벌여 합의문에는 표현하지 않되 양국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측이 사실상 돌려받을 의사가 없다는 구두 표현을 하는 선에서 막판 쟁점을 마무리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협상에 깊숙이 관여해온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장관은 "두 나라가 법률적 형식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안을 찾았다는 데 의미가 크며 특히 한국 정부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판단했다"고 평가했다. 외규장각 도서가 사실상 반환되는 것으로 합의됨에 따라 한.불 양국은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G20 의장국을 수임한 프랑스로서는 G20 서울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로서도 G20 합의사항들의 이행 여부를 계속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반환키로 합의된 도서는 총 191종 296권으로, 양측간 세부 협상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양국은 BNF와 국립중앙박물관 간 협약 체결을 거치게 되는데, 한국에 도착하기까지는 6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것으로 기록된 349점 가운데 아직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42점(의궤 중 1권은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대여 형식으로 반환받음)도 되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게 됐다. 또 우리로서는 실리를 챙기기는 했지만 약탈당한 문화재를 공식사과도 받지 못한 채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데 대한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비난과 반발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이번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은 10만점(문화재청 파악)이 넘는 해외 유출 문화재들을 반환.환수하는 데에도 실리와 명분을 잘 조율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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