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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김덕현, ‘나만의 스타일’로 정상 등극
입력 2010.11.24 (20:51) 연합뉴스
울거나 웃지도 않던 아이. 짜증 섞인 직설적인 소감으로 잘 알려진 김덕현(25.광주광역시청)이 눈물을 흘렸다.

24일 중국 광저우 아오티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멀리뛰기 결선 5차 시기에서 8m11을 뛴 김덕현은 자신을 불과 6㎝ 차로 추격하던 중국의 수시옹펑이 6차 시기에서 실격을 당해 경기를 마치자 기쁨에 겨워 날뛰며 태극기를 몸에 둘렀다.

취재진은 물론 TV 카메라 앞에서도 우는 법이 없던 김덕현은 갑작스럽게 눈물을 쏟아내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오랫동안 김덕현을 봐온 문봉기 한국 대표팀 총감독조차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우는 것을 처음본다. 우승했어도 그냥 조용히 물러나지 저렇게 태극기를 펼쳐들고 뛸 애가 아니다"라며 놀라워했을 정도였다.

멀리뛰기(8m20)와 세단뛰기(17m10)에서 한국기록을 보유 중인 김덕현이 마침내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전남 벌교 삼광중학교 3학년이던 2000년 멀리뛰기에 입문한 지 10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중학교에서 단거리와 중장거리에서 만능 재주꾼으로 활약했던 김덕현은 중 3때 나간 전남 학생체전에서 멀리뛰기에 출전, 당시 전국 1등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낸 '될성부를 떡잎'이었다.

김덕현의 이름 석 자가 널리 알려진 건 2007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다.

김덕현은 예상을 깨고 세단 뛰기 결선에서 16m71을 뛰어 12명 중 9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트랙, 필드, 도로 레이스를 통틀어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톱 10에 든 건 높이뛰기 이진택 이후 김덕현이 8년 만이었다.

2006년에는 한국선수로는 마의 17m 벽을 넘어 세단뛰기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광주체고에 진학 후 본격적으로 멀리뛰기와 세단뛰기를 병행했던 김덕현은 오사카 세계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 육상의 보배로 평가받았고 그때부터 특별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기량 향상을 위해 2008년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아르메니아에서 초빙한 수렌 가자르얀 코치와 불화를 겪으면서 독특한 성격이 화제를 모았다.

김덕현은 "수렌 코치의 지도 방식이 자신의 훈련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며 배우기를 거부했고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연맹이 미국에서 데려온 랜들 헌팅턴 코치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안 배우겠다고 선을 그었다.

애를 쓰고 외국인 코치를 데려왔던 연맹이나 일선 지도자들은 김덕현의 이런 자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덕현은 대신 고교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쳐 스타일과 성격 등을 가장 잘 아는 김혁(33) 코치를 대표팀 은사로 모시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김덕현은 지난 1년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훈련에만 매진했고 태릉에서 흘린 구슬땀의 대가를 금메달로 제대로 보상받았다.

문봉기 총감독은 "덕현이가 워낙 입이 짧아 대회 직전 홍콩에서 치렀던 전지훈련에도 오지 않고 태릉선수촌에서만 훈련했다. 여기 와서도 따로 한국 음식만 골라 먹이는 등 특별 관리를 했고 오늘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덕현의 최고 장점은 발목 힘에 있다.

김덕현과 갈등관계였던 수렌 코치도 온몸을 힘있게 지탱해 내고 탄력까지 갖춘 김덕현의 발목을 칭찬했다.

또 스피드와 점프력은 내세울 게 없지만 워낙 리듬감이 좋아 도약에서는 천부적으로 타고났다는 게 문 총감독의 설명이다.

처음으로 종합대회 금메달을 따낸 김덕현은 상승세를 몰아 26일 열릴 세단뛰기 결승에서 2관왕에 도전한다.
  • 김덕현, ‘나만의 스타일’로 정상 등극
    • 입력 2010-11-24 20:51:40
    연합뉴스
울거나 웃지도 않던 아이. 짜증 섞인 직설적인 소감으로 잘 알려진 김덕현(25.광주광역시청)이 눈물을 흘렸다.

24일 중국 광저우 아오티 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멀리뛰기 결선 5차 시기에서 8m11을 뛴 김덕현은 자신을 불과 6㎝ 차로 추격하던 중국의 수시옹펑이 6차 시기에서 실격을 당해 경기를 마치자 기쁨에 겨워 날뛰며 태극기를 몸에 둘렀다.

취재진은 물론 TV 카메라 앞에서도 우는 법이 없던 김덕현은 갑작스럽게 눈물을 쏟아내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오랫동안 김덕현을 봐온 문봉기 한국 대표팀 총감독조차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우는 것을 처음본다. 우승했어도 그냥 조용히 물러나지 저렇게 태극기를 펼쳐들고 뛸 애가 아니다"라며 놀라워했을 정도였다.

멀리뛰기(8m20)와 세단뛰기(17m10)에서 한국기록을 보유 중인 김덕현이 마침내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전남 벌교 삼광중학교 3학년이던 2000년 멀리뛰기에 입문한 지 10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중학교에서 단거리와 중장거리에서 만능 재주꾼으로 활약했던 김덕현은 중 3때 나간 전남 학생체전에서 멀리뛰기에 출전, 당시 전국 1등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낸 '될성부를 떡잎'이었다.

김덕현의 이름 석 자가 널리 알려진 건 2007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다.

김덕현은 예상을 깨고 세단 뛰기 결선에서 16m71을 뛰어 12명 중 9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트랙, 필드, 도로 레이스를 통틀어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톱 10에 든 건 높이뛰기 이진택 이후 김덕현이 8년 만이었다.

2006년에는 한국선수로는 마의 17m 벽을 넘어 세단뛰기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광주체고에 진학 후 본격적으로 멀리뛰기와 세단뛰기를 병행했던 김덕현은 오사카 세계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 육상의 보배로 평가받았고 그때부터 특별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기량 향상을 위해 2008년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아르메니아에서 초빙한 수렌 가자르얀 코치와 불화를 겪으면서 독특한 성격이 화제를 모았다.

김덕현은 "수렌 코치의 지도 방식이 자신의 훈련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며 배우기를 거부했고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연맹이 미국에서 데려온 랜들 헌팅턴 코치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안 배우겠다고 선을 그었다.

애를 쓰고 외국인 코치를 데려왔던 연맹이나 일선 지도자들은 김덕현의 이런 자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김덕현은 대신 고교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쳐 스타일과 성격 등을 가장 잘 아는 김혁(33) 코치를 대표팀 은사로 모시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김덕현은 지난 1년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훈련에만 매진했고 태릉에서 흘린 구슬땀의 대가를 금메달로 제대로 보상받았다.

문봉기 총감독은 "덕현이가 워낙 입이 짧아 대회 직전 홍콩에서 치렀던 전지훈련에도 오지 않고 태릉선수촌에서만 훈련했다. 여기 와서도 따로 한국 음식만 골라 먹이는 등 특별 관리를 했고 오늘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덕현의 최고 장점은 발목 힘에 있다.

김덕현과 갈등관계였던 수렌 코치도 온몸을 힘있게 지탱해 내고 탄력까지 갖춘 김덕현의 발목을 칭찬했다.

또 스피드와 점프력은 내세울 게 없지만 워낙 리듬감이 좋아 도약에서는 천부적으로 타고났다는 게 문 총감독의 설명이다.

처음으로 종합대회 금메달을 따낸 김덕현은 상승세를 몰아 26일 열릴 세단뛰기 결승에서 2관왕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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