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주민들, 상처·분노·불신

입력 2010.12.06 (08:34) 수정 2010.12.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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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이 연평도를 기습 포격한지 오늘로 12일이 지났습니다.

섬으로 되돌아온 주민들은 힘겨운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지 불안한 가운데 아픈 상처를 하나 둘 싸메고 있습니다.

정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주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체험하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연평도 부두로 여객선이 들어옵니다.

배에서 내리는 주민들. 고향땅을 밟으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녹취> "(떠나고 난 뒤 다시 들어오셨는데 어떠세요? 기분이?) 어떠나마나 눈물만 나지요."

반가움과 기쁨도 잠시...마주한 현실은 폐허가 된 섬 마을 뿐입니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을 위해 준비했던 김장 김치. 돌아온 뒤 남은 건 썩어 있는 배추 뿐입니다.

<녹취> 이길숙(연평도 주민) : "이거(김장)해서 아들네 딸네 준다고 한건데...하나도 쓰지도 못하겠네. 이게 다 이렇게 썩은 것을 먹겠냐고...이걸..."

손님을 맞았던 음식점에는 쓰레기만 가득 쌓여있습니다.

벽면에는 포탄을 맞은 자국이 선명히 남았습니다.

치우고 닦아도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 김광춘(연평도 주민) : "지금 무슨 생각이 나요? 정이 다 떨어졌는데 이 평화로운 연평도를 이렇게 만들었는데...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가 없잖아요."

마을 곳곳에서는 복구 작업이 한창입니다.

파손된 전력 차단기를 새것으로 바꾸는 발전회사 직원,

<인터뷰> 신태근(연평발전소 직원) : "주민들이 들어오기 전에 바꿀 수 있는 건 바꿔놓고요. 이런 전소된 집들은 주민들이 들어와도 쓰지 못하니까...쓸 수 있는 집의 전기는 최대한 넣어드리려고..."

통신회사 직원은 전봇대 위에 올라 통신 설비를 점검합니다.

<인터뷰> 송영선(KT 협력업체 직원) : "고장이 난 거 봐서 전화 고장 수리하고, 미리 뭐 준비도 하고...점검도 하고..."

기반 시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돌아오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생업을 마냥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루 두 번 썰물에 모습을 드러내는 연평도의 청정 갯벌. 굴 양식장에는 손보는 사람이 없어 엉망이 된 그물만이 남았습니다.

<인터뷰> 이근우(연평도 주민) : "이 섬에서 바닷굴 따가지고 하루 먹기도 바쁘고 한데 여기서 소득원이 없지 않습니까."

겨울에 내다 팔 저장용 꽃게는 정전으로 제 값을 받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인터뷰> "꽃게도 냉장고가 안 돼서 다 썩고, 다 얼었어요. 운반선으로 못 내보내가지고..."

평생을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연평도 주민들. 올해는 생계마저 막막하게 됐습니다.

전투기 출격 서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연합훈련. 연평도에는 다연장 로켓포와 자주포가 추가 배치됐습니다.

섬 전체는 작전 구역이 되면서 통행도 통제 됐습니다.

북측 해안포에서는 북한군이 분주히 이동했다는 소식과 함께 포성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녹취> "신속하게 대피소로 이동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연평도에는 한 때 대피령까지 내려졌고,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은 방공호를 향해 내달렸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봐도 두려움과 공포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안 나간 게 죄지."

<인터뷰> "그러니까 이번 배로 나가요."

<인터뷰> "여기서 살 수 없다는 건 확실한데, 이주해야지. 이주."

서해 5도 선착장은 섬을 빠져나가려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인터뷰> 백령도 주민 : "훈련도 그렇고 그러니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상황이라는게..."

<인터뷰> "매진이에요. (판매한지) 3,40분만에 다 팔렸어요."

무단으로 여객선을 타려던 일부 주민들은 제지당했습니다.

<녹취> "내려와요! 당신 때문에 다 못가게 하지 말고..."

불안과 공포는 이내 불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군과 정부를 믿고 살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생활 터전을 버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 "1,2차 서해 교전과 천안함 사건때도 동요하지 않았아요. 국가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전 우리 주민이 그렇게 지금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안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뷰> 연평도 주민 : "한 번 쏜 사람들이 두 번, 세 번, 백번 천번은 못 쏘겠냐,. 난 불안해서 못 살아. 내 육지 나와서 거지가 되고 어디 노숙자 생활을 할 망정. 거기서 살기는 싫어."

주민들은 피란민이 돼 찜질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편한 하루 하루가 이어지는 생활. 누울 자리도 마땅치 않을 정도로 공간은 비좁습니다.

발을 뻣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녹취> 연평도 주민 : "머리가 띵하고 아무래도 공기 좋은데 있다 아무래도 사람 많으니까 막 열이 오르더라고..."

<녹취> 연평도 주민 : "들어보세요.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운가...그리고 잠자리, 사람이 자는 거 하고 조용한 게 제일 좋은데...너무 시끄럽잖아요."

끼니때가 되면 줄서기 전쟁도 되풀이 됩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한참을 서서 기다려야합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 "노인 양반들이 많이 계시는데 노인 양반들이 집에서 편하게 드시다가 이런 자리에서 불편하게 드시는 부분들이 아주 힘들지요."

벌써 이런 찜질방 생활만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만들어준 시설이라고는 찜질방 내 놀이방 뿐. 피란민 먹거리는 대부분 자원 봉사자가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 백용순(자원봉사자) : "(아침) 6시 정도에 나와서 저녁 9시정도 되야 들어가요. 그 동안 아침 준비해야지, 점심 준비해야지, 저녁 준비해야지. 여기 청소해야지."

선뜻 피란민을 받은 찜질방 주인역시 조금씩 지쳐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운규(찜질방 대표) : "전체 주민들이 이렇게 다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고 일부 피해 주민 몇 사람만 나와 있다가 다시 들아갈 거라고 그렇게 알고 쉽게 생각을 했었지요."

절실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인천시는 경기도 김포의 미분양 아파트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피란민들의 입주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예산을 놓고 인천시와 행안부 입장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인천시는 아파트에 들여놓을 가구와 전자제품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송영길(인천시장) : "인천시도 예비비를 투입해서 돕고 있지만 주된 비용은 국고 지원이 있어야 되고..."

행정안전부는 비용이 덜 드는 연수원 시설 등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안양호(행정안전부 2차관) : "수련원 시설이나 연수원 시설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인천시와 긴밀히 협의해서..."

주민들이 요구한 특별재난지역 선포 역시 겉돌고 있습니다.

태풍이나 홍수, 화재 등에 적용하는 성격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에 인천시가 긴급구호대책 등으로 정부에 요구한 3천 4백억원도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인터뷰> "종합 대책 수립을 약속했지만 우리 연평도에 대한 주민에 대한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말 한마디 언급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더 분노에 차 있습니다."

<인터뷰> 주민 : "살게끔 해준다는데 살게끔 여건만 갖춰주면 뭐하냐고... 그 무서운데를 누가 찾아 들어가겠냐고..경우가 있었습니까.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불시에 일어난 상황이라고..."

동심이 받은 상처는 더 큽니다.

영어마을에서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 아직도 포격 당시 공포를 잊지 못합니다.

<녹취> 장용탁(연평초 5학년) : "지금도 쾅쾅하고 그런 소기 나면요. 포탄 떨어지는 소리 같아요."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이 보고 싶고 또 걱정도 됩니다.

<인터뷰> "안 그래도 지금 밥 먹을때마다 엄마 생각나서 밥이 잘 안 넘어가요."

<인터뷰> 손보미(연평초 5학년) : "엄마는 여기 나와 있으니까 괜찮은데요. (연평도에 있는) 아빠가 (걱정되요."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심리치료.

<인터뷰> "(뭐 그려요?) 잠수함이요. 잠수함을 타고 가면 어느 곳이든 다 갈 수 있으니까요. 연평도에 가고 싶어요."

어린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심애경(심리치료사) :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불안함 이런 것들이 조금 점검되었고요. 그래서 하루 속히 안정적인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걸 바라는 그런 것들이 나왔습니다."

전체 학급의 일부만 운영되고 있는 영종도의 신설 초등학교.

이번 주부터 연평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에서 정규 수업을 받게 됩니다.

학생수가 적어 연평도에서는 초,중,고 학생들이 모두 한 학교에 다녔다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부 학부모들이 중,고등학생을 합치는 것에 대해 반발했습니다.

<녹취> OO초등학교 학부모 : "저희 엄마들 입장이 다 그래요. 다 학생 키우는 입장인데 누가 반대하나, 안 그래요? 받아는 들여아지, 그런데 단지 우려가 되는 것 뿐이지요. 중,고등학생이 같이 있는 것에 대해서..."

<녹취> OO초등학교 학부모 : "요즘 고등학생들도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고,. 중학생들도 남녀 서로 교제하면서 아무데서나 끌어안고, 아이들이 봤을 때 혹시 본받지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되지요."

학교는 결국 연평도 학생들만 따로 모아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학생들과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초등학교까지 반을 따로 편성하겠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인터뷰> 정한영(초등학교 교장) : "연평에 있는 교직원들이 그대로 와서 연평학생들은 초등, 중등, 고등 담당 선생님들이 그대로 교육이 진행되고, 저희는 저희대로 합니다."

포격 공포에 짓눌려 있었던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게 된 셈입니다.

정치인들의 실언도 주민들을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포격 다음날 연평도를 찾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검게 그을은 쇳덩이 두 개를 들어 보입니다.

<녹취> 안상수(한나라당 대표) :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여기에 바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인데...이 포탄을 보니까...민가에 이렇게 무자비하게 폭격을 할 수가 있겠냐...이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육군 중장 출신인 황진하 의원은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녹취> 황진하(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게 아마 76mm,... (아 이게 76mm, ,고사포구나. 그러니까...) 이건 아마 122mm 방사포..."

하지만 쇳덩이는 화염에 그을린 보온병이었습니다.

<녹취> 연평도 주민 : "포탄 아닌데...상표 붙은 거 보니까 이건 포탄 아니야. (포탄이라고 그러던데요?) 보온병."

송영길 인천시장의 발언도 주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불에 탄 상점 주변에 처참하게 깨진 소주병들을 보고 폭탄주 같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송영길(인천시장) : "완전히 폭탄주 구만..."

연평도를 찾은 정치인들은 보초를 서겠다, 자진 입대하겠다는 등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내뱉고 있습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은 잇따른 실언과 과장된 언행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 "3당 대표들 왔는데 그 사람들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 뭐 연평에 뭐 해줬어. 국회의원들 당선되고 포 떨어지기 전에 그 사람들 연평에 와봤어?"

북한 도발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고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평도 주민들이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지금, 군과 정부, 정치인들이 큰 의지가 되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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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주민들, 상처·분노·불신
    • 입력 2010-12-06 08:34:10
    • 수정2010-12-09 13:45:30
    취재파일K
<앵커 멘트> 북한이 연평도를 기습 포격한지 오늘로 12일이 지났습니다. 섬으로 되돌아온 주민들은 힘겨운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지 불안한 가운데 아픈 상처를 하나 둘 싸메고 있습니다. 정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주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체험하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연평도 부두로 여객선이 들어옵니다. 배에서 내리는 주민들. 고향땅을 밟으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녹취> "(떠나고 난 뒤 다시 들어오셨는데 어떠세요? 기분이?) 어떠나마나 눈물만 나지요." 반가움과 기쁨도 잠시...마주한 현실은 폐허가 된 섬 마을 뿐입니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을 위해 준비했던 김장 김치. 돌아온 뒤 남은 건 썩어 있는 배추 뿐입니다. <녹취> 이길숙(연평도 주민) : "이거(김장)해서 아들네 딸네 준다고 한건데...하나도 쓰지도 못하겠네. 이게 다 이렇게 썩은 것을 먹겠냐고...이걸..." 손님을 맞았던 음식점에는 쓰레기만 가득 쌓여있습니다. 벽면에는 포탄을 맞은 자국이 선명히 남았습니다. 치우고 닦아도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 김광춘(연평도 주민) : "지금 무슨 생각이 나요? 정이 다 떨어졌는데 이 평화로운 연평도를 이렇게 만들었는데...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가 없잖아요." 마을 곳곳에서는 복구 작업이 한창입니다. 파손된 전력 차단기를 새것으로 바꾸는 발전회사 직원, <인터뷰> 신태근(연평발전소 직원) : "주민들이 들어오기 전에 바꿀 수 있는 건 바꿔놓고요. 이런 전소된 집들은 주민들이 들어와도 쓰지 못하니까...쓸 수 있는 집의 전기는 최대한 넣어드리려고..." 통신회사 직원은 전봇대 위에 올라 통신 설비를 점검합니다. <인터뷰> 송영선(KT 협력업체 직원) : "고장이 난 거 봐서 전화 고장 수리하고, 미리 뭐 준비도 하고...점검도 하고..." 기반 시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돌아오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생업을 마냥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루 두 번 썰물에 모습을 드러내는 연평도의 청정 갯벌. 굴 양식장에는 손보는 사람이 없어 엉망이 된 그물만이 남았습니다. <인터뷰> 이근우(연평도 주민) : "이 섬에서 바닷굴 따가지고 하루 먹기도 바쁘고 한데 여기서 소득원이 없지 않습니까." 겨울에 내다 팔 저장용 꽃게는 정전으로 제 값을 받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인터뷰> "꽃게도 냉장고가 안 돼서 다 썩고, 다 얼었어요. 운반선으로 못 내보내가지고..." 평생을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연평도 주민들. 올해는 생계마저 막막하게 됐습니다. 전투기 출격 서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연합훈련. 연평도에는 다연장 로켓포와 자주포가 추가 배치됐습니다. 섬 전체는 작전 구역이 되면서 통행도 통제 됐습니다. 북측 해안포에서는 북한군이 분주히 이동했다는 소식과 함께 포성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녹취> "신속하게 대피소로 이동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연평도에는 한 때 대피령까지 내려졌고,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은 방공호를 향해 내달렸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봐도 두려움과 공포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안 나간 게 죄지." <인터뷰> "그러니까 이번 배로 나가요." <인터뷰> "여기서 살 수 없다는 건 확실한데, 이주해야지. 이주." 서해 5도 선착장은 섬을 빠져나가려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인터뷰> 백령도 주민 : "훈련도 그렇고 그러니까 혹시 모르는 거니까 상황이라는게..." <인터뷰> "매진이에요. (판매한지) 3,40분만에 다 팔렸어요." 무단으로 여객선을 타려던 일부 주민들은 제지당했습니다. <녹취> "내려와요! 당신 때문에 다 못가게 하지 말고..." 불안과 공포는 이내 불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군과 정부를 믿고 살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생활 터전을 버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 "1,2차 서해 교전과 천안함 사건때도 동요하지 않았아요. 국가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전 우리 주민이 그렇게 지금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안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뷰> 연평도 주민 : "한 번 쏜 사람들이 두 번, 세 번, 백번 천번은 못 쏘겠냐,. 난 불안해서 못 살아. 내 육지 나와서 거지가 되고 어디 노숙자 생활을 할 망정. 거기서 살기는 싫어." 주민들은 피란민이 돼 찜질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편한 하루 하루가 이어지는 생활. 누울 자리도 마땅치 않을 정도로 공간은 비좁습니다. 발을 뻣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녹취> 연평도 주민 : "머리가 띵하고 아무래도 공기 좋은데 있다 아무래도 사람 많으니까 막 열이 오르더라고..." <녹취> 연평도 주민 : "들어보세요.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운가...그리고 잠자리, 사람이 자는 거 하고 조용한 게 제일 좋은데...너무 시끄럽잖아요." 끼니때가 되면 줄서기 전쟁도 되풀이 됩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한참을 서서 기다려야합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 "노인 양반들이 많이 계시는데 노인 양반들이 집에서 편하게 드시다가 이런 자리에서 불편하게 드시는 부분들이 아주 힘들지요." 벌써 이런 찜질방 생활만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만들어준 시설이라고는 찜질방 내 놀이방 뿐. 피란민 먹거리는 대부분 자원 봉사자가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 백용순(자원봉사자) : "(아침) 6시 정도에 나와서 저녁 9시정도 되야 들어가요. 그 동안 아침 준비해야지, 점심 준비해야지, 저녁 준비해야지. 여기 청소해야지." 선뜻 피란민을 받은 찜질방 주인역시 조금씩 지쳐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운규(찜질방 대표) : "전체 주민들이 이렇게 다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고 일부 피해 주민 몇 사람만 나와 있다가 다시 들아갈 거라고 그렇게 알고 쉽게 생각을 했었지요." 절실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인천시는 경기도 김포의 미분양 아파트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피란민들의 입주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예산을 놓고 인천시와 행안부 입장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인천시는 아파트에 들여놓을 가구와 전자제품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송영길(인천시장) : "인천시도 예비비를 투입해서 돕고 있지만 주된 비용은 국고 지원이 있어야 되고..." 행정안전부는 비용이 덜 드는 연수원 시설 등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안양호(행정안전부 2차관) : "수련원 시설이나 연수원 시설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인천시와 긴밀히 협의해서..." 주민들이 요구한 특별재난지역 선포 역시 겉돌고 있습니다. 태풍이나 홍수, 화재 등에 적용하는 성격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에 인천시가 긴급구호대책 등으로 정부에 요구한 3천 4백억원도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인터뷰> "종합 대책 수립을 약속했지만 우리 연평도에 대한 주민에 대한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말 한마디 언급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더 분노에 차 있습니다." <인터뷰> 주민 : "살게끔 해준다는데 살게끔 여건만 갖춰주면 뭐하냐고... 그 무서운데를 누가 찾아 들어가겠냐고..경우가 있었습니까.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불시에 일어난 상황이라고..." 동심이 받은 상처는 더 큽니다. 영어마을에서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 아직도 포격 당시 공포를 잊지 못합니다. <녹취> 장용탁(연평초 5학년) : "지금도 쾅쾅하고 그런 소기 나면요. 포탄 떨어지는 소리 같아요."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이 보고 싶고 또 걱정도 됩니다. <인터뷰> "안 그래도 지금 밥 먹을때마다 엄마 생각나서 밥이 잘 안 넘어가요." <인터뷰> 손보미(연평초 5학년) : "엄마는 여기 나와 있으니까 괜찮은데요. (연평도에 있는) 아빠가 (걱정되요."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심리치료. <인터뷰> "(뭐 그려요?) 잠수함이요. 잠수함을 타고 가면 어느 곳이든 다 갈 수 있으니까요. 연평도에 가고 싶어요." 어린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심애경(심리치료사) :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불안함 이런 것들이 조금 점검되었고요. 그래서 하루 속히 안정적인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걸 바라는 그런 것들이 나왔습니다." 전체 학급의 일부만 운영되고 있는 영종도의 신설 초등학교. 이번 주부터 연평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에서 정규 수업을 받게 됩니다. 학생수가 적어 연평도에서는 초,중,고 학생들이 모두 한 학교에 다녔다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부 학부모들이 중,고등학생을 합치는 것에 대해 반발했습니다. <녹취> OO초등학교 학부모 : "저희 엄마들 입장이 다 그래요. 다 학생 키우는 입장인데 누가 반대하나, 안 그래요? 받아는 들여아지, 그런데 단지 우려가 되는 것 뿐이지요. 중,고등학생이 같이 있는 것에 대해서..." <녹취> OO초등학교 학부모 : "요즘 고등학생들도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고,. 중학생들도 남녀 서로 교제하면서 아무데서나 끌어안고, 아이들이 봤을 때 혹시 본받지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되지요." 학교는 결국 연평도 학생들만 따로 모아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학생들과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초등학교까지 반을 따로 편성하겠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인터뷰> 정한영(초등학교 교장) : "연평에 있는 교직원들이 그대로 와서 연평학생들은 초등, 중등, 고등 담당 선생님들이 그대로 교육이 진행되고, 저희는 저희대로 합니다." 포격 공포에 짓눌려 있었던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게 된 셈입니다. 정치인들의 실언도 주민들을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포격 다음날 연평도를 찾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검게 그을은 쇳덩이 두 개를 들어 보입니다. <녹취> 안상수(한나라당 대표) :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여기에 바로 떨어졌다는 이야기인데...이 포탄을 보니까...민가에 이렇게 무자비하게 폭격을 할 수가 있겠냐...이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육군 중장 출신인 황진하 의원은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녹취> 황진하(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게 아마 76mm,... (아 이게 76mm, ,고사포구나. 그러니까...) 이건 아마 122mm 방사포..." 하지만 쇳덩이는 화염에 그을린 보온병이었습니다. <녹취> 연평도 주민 : "포탄 아닌데...상표 붙은 거 보니까 이건 포탄 아니야. (포탄이라고 그러던데요?) 보온병." 송영길 인천시장의 발언도 주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불에 탄 상점 주변에 처참하게 깨진 소주병들을 보고 폭탄주 같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녹취> 송영길(인천시장) : "완전히 폭탄주 구만..." 연평도를 찾은 정치인들은 보초를 서겠다, 자진 입대하겠다는 등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내뱉고 있습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은 잇따른 실언과 과장된 언행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 "3당 대표들 왔는데 그 사람들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 뭐 연평에 뭐 해줬어. 국회의원들 당선되고 포 떨어지기 전에 그 사람들 연평에 와봤어?" 북한 도발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고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평도 주민들이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지금, 군과 정부, 정치인들이 큰 의지가 되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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