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무원 비협조에 맥 빠진 ‘특별대피훈련’

입력 2010.12.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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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경보에도 운전자들 대피 거부…학생들은 장난질
정부청사 공무원들은 복도·계단서 서성대거나 잡담

15일 북한의 연평도 폭격을 계기로 전 국민을 상대로 실전상황에 대비한 민방공 특별훈련이 시행됐으나 상당수 시민의 비협조로 맥 빠진 모습을 보였다.

15일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광화문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점멸되고 경찰이 차도에 내려가 안전봉으로 차량을 정지시켰다.

2분여만에 사거리가 텅 비고 차량은 갓길 등에 멈춰 섰으나 일부 택시는 정지 지시를 거부한 채 지나가려다 경찰의 강력한 제지를 받고서야 차를 세웠다.

소방방재청은 이날 훈련에는 차량 이용자도 대피소로 대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일부 버스에서 기사와 승객이 내려 세종문화회관 지하 등으로 대피했지만, 자가용 운전자들은 대부분 하차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광화문역으로 대피한 버스 승객 강영하(39.여)씨는 "버스에서 내려 대피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내리라는 안내가 없었다. 그냥 기사를 따라 하차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특별 훈련이라고 해도 평소와 다를 바 없어 긴급 피난요령을 익히는 데 별반 도움이 안 됐다고 평가했다.

아현역에 대피한 백모(25.여)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야 대피해야 하는 것을 알게 돼 버스에서 내렸다. 이런 훈련이 오히려 더 시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상가가 밀집해 유동인구가 많은 명동은 그야말로 민방공 훈련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명동의 한 상인은 "판촉용 음악 소리 때문에 훈련 사이렌이 울렸는지도 몰랐다. 대피하는 행인도 없었고 평소와 전혀 다름 없이 장사했다"고 말해 번화가는 이번 훈련의 사각지대였음을 전했다.

학교에서 벌어진 대피훈련에서도 긴박하고 진지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포구 아현동 아현중학교에서는 수업을 20분 정도 일찍 마치고 훈련 준비를 했으나 학생들의 장난기를 제어하지는 못했다.

오후 2시 사이렌이 울리자 학생들은 복도로 나와 두 줄로 서서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일부 학생이 소리를 지르면서 뛰자 다른 학생들도 줄줄이 뛰다가 출구에서 인파가 몰려 혼란을 겪었다.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을 따라 대피소인 아현역 승강장으로 이동했지만, 일부 학생은 교사의 지시를 어기고 매표소가 있는 지하 1층에서 뛰어다니며 장난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와 교육과학기술부, 통일부 등이 모여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훈련에 건성으로 참여했다.

공습경보가 내려져 지하 1층 복도로 대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일부 공무원은 복도에서 서성거리거나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가며 잡담을 나눴다.

공무원들이 신속히 움직이지 않아 청사 중앙계단의 행렬은 대피 훈련이 끝난 오후 2시15분에도 지상 3층까지 이어져 상당수 공무원은 계단에서 대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번 훈련을 주관한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민방위 훈련의 대피 명령 등은 국민이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훈련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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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공무원 비협조에 맥 빠진 ‘특별대피훈련’
    • 입력 2010-12-15 16:04:16
    연합뉴스
공습경보에도 운전자들 대피 거부…학생들은 장난질 정부청사 공무원들은 복도·계단서 서성대거나 잡담 15일 북한의 연평도 폭격을 계기로 전 국민을 상대로 실전상황에 대비한 민방공 특별훈련이 시행됐으나 상당수 시민의 비협조로 맥 빠진 모습을 보였다. 15일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광화문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점멸되고 경찰이 차도에 내려가 안전봉으로 차량을 정지시켰다. 2분여만에 사거리가 텅 비고 차량은 갓길 등에 멈춰 섰으나 일부 택시는 정지 지시를 거부한 채 지나가려다 경찰의 강력한 제지를 받고서야 차를 세웠다. 소방방재청은 이날 훈련에는 차량 이용자도 대피소로 대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일부 버스에서 기사와 승객이 내려 세종문화회관 지하 등으로 대피했지만, 자가용 운전자들은 대부분 하차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광화문역으로 대피한 버스 승객 강영하(39.여)씨는 "버스에서 내려 대피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내리라는 안내가 없었다. 그냥 기사를 따라 하차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특별 훈련이라고 해도 평소와 다를 바 없어 긴급 피난요령을 익히는 데 별반 도움이 안 됐다고 평가했다. 아현역에 대피한 백모(25.여)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야 대피해야 하는 것을 알게 돼 버스에서 내렸다. 이런 훈련이 오히려 더 시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상가가 밀집해 유동인구가 많은 명동은 그야말로 민방공 훈련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명동의 한 상인은 "판촉용 음악 소리 때문에 훈련 사이렌이 울렸는지도 몰랐다. 대피하는 행인도 없었고 평소와 전혀 다름 없이 장사했다"고 말해 번화가는 이번 훈련의 사각지대였음을 전했다. 학교에서 벌어진 대피훈련에서도 긴박하고 진지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포구 아현동 아현중학교에서는 수업을 20분 정도 일찍 마치고 훈련 준비를 했으나 학생들의 장난기를 제어하지는 못했다. 오후 2시 사이렌이 울리자 학생들은 복도로 나와 두 줄로 서서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일부 학생이 소리를 지르면서 뛰자 다른 학생들도 줄줄이 뛰다가 출구에서 인파가 몰려 혼란을 겪었다.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을 따라 대피소인 아현역 승강장으로 이동했지만, 일부 학생은 교사의 지시를 어기고 매표소가 있는 지하 1층에서 뛰어다니며 장난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와 교육과학기술부, 통일부 등이 모여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훈련에 건성으로 참여했다. 공습경보가 내려져 지하 1층 복도로 대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일부 공무원은 복도에서 서성거리거나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가며 잡담을 나눴다. 공무원들이 신속히 움직이지 않아 청사 중앙계단의 행렬은 대피 훈련이 끝난 오후 2시15분에도 지상 3층까지 이어져 상당수 공무원은 계단에서 대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번 훈련을 주관한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민방위 훈련의 대피 명령 등은 국민이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훈련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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