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후…‘주말의 악몽’…인천 버스추락 참사

입력 2010.12.23 (06:3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월3일 오후 1시17분께 인천시 중구 운서동 인천대교 요금소에서 인천국제공항 방향으로 약 500m 지난 지점에서 24명이 탑승한 고속버스가 도로 아래 공사현장으로 추락했다.

고장으로 도로에 멈춰선 마티즈 승용차를 달리던 화물차가 들이받았고, 뒤따라가던 버스가 이들 차량을 피하려다 생긴 사고였다. 평화롭던 토요일 오후 발생한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그로부터 5개월여. 그날의 참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혔지만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형제, 동료를 잃은 이들에게 당시의 충격과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족 단위 참변.."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 사고 버스는 경북 포항을 출발해 경주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차량이었다. 공항행 버스였기 때문인지 희생자 중에는 가족 단위로 이동하다 변을 당한 사람이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가족 5명 중 4명이 숨진 고(故) 임찬호(42) 경주대 교수의 가족이 대표적인 경우.

임 교수 가족은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고자 길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홀로 살아남은 둘째 아들(7)은 현재 서울에 사는 임 교수의 동생이 돌보고 있다. 임군은 숨진 가족들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는 등 마음의 상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실력있고 촉망받던 교수를 잃은 경주대도 침통한 분위기다. 고인의 따뜻한 성품과 연구 열정을 잊지 못하는 동료 교수와 제자들은 단체로 임 교수의 묘소를 찾아 그의 넋을 기리곤 한다. 학교 측에서도 조만간 임 교수를 추모하는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고(故) 이시형(45) 포스코 기술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외국출장길에 올랐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이씨는 연구원에서 연원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던 인물. 포스코는 지난 7월6일 이씨의 영결식을 회사장으로 치렀다.

이씨와 함께 버스에 탔던 직장 동료 서인국(53)씨는 다행히 부상에서 회복해 직장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처참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서씨의 말을 전했다.

이 밖에도 손자 돌잔치에 참석하러 가다 딸과 함께 숨진 설해용(69)씨,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했다가 공항으로 돌아가던 고은수(17)양, 휴식도 없이 일하다 오랜만에 절친한 동료끼리 휴가를 떠나려던 포스코건설 노정환(49) 이사보와 정흥수(48) 대리 등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등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부상자들도 대부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멀고 먼 합의..수사도 미완 = 사고 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경찰에 따르면 사망자 14명 중 8명의 가족만이 사고 버스의 보험기관인 전국버스공제조합과 보상금 문제에 합의했다.

반면 고(故) 임찬호 교수의 유족은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며, 고(故) 예규범(42)씨의 가족도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고를 낸 버스 운전기사 정모(53)씨가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로 머리와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정씨는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쳐 현재는 경북 포항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23일 "정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했으며 법의 심판도 달게 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회복되는 대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의 영장을 신청할 때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마티즈 운전자 김모(45.여)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김씨는 고장 차량을 도로 한복판에 세우면서 후방에 삼각대를 세워놓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김씨는 "그날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순간의 실수가 그렇게까지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마음의 상처가 무척 큰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재발을 막아라"..다양한 후속조치 = 참사 이후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후속조치가 취해졌다.

전라남도는 이 사고 직후부터 사고 위험이 큰 도로구간에 대해서는 2단 가드레일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 도로 설계과정에서부터 각종 안전시설 설치를 강화하고 있다.

사고 후 고속도로 요금소의 하이패스 통과 최고속도 제한 규정도 바뀌었다. 하이패스 부스를 시속 70∼80㎞로 통과한 사고버스 기사가 500m를 더 달리다 앞에 멈춰 선 차량을 뒤늦게 발견한 탓에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경찰청은 지난 9월1일 고속도로 요금소 50m 앞에서부터 하이패스 통과 최고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경찰청장 고시를 내 도로교통법상 제한속도의 명확한 근거를 마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요금소 주변에는 보행자도 간혹 있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최고속도를 시속 30㎞로 설정했다. 그 이상의 속도로 보행자와 부딪치면 치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사고의 큰 원인으로 지목됐던 삼각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차량이 고장 나 도로에 서게 되면 주간에는 후방 100m, 야간에는 후방 200m에 삼각대와 섬광신호 등을 세우게 되어 있지만, 인천 버스추락 참사 이전까지 이를 실천하는 운전자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시민교통안전협회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차량에 삼각대를 소지한 경우는 응답자의 63%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교통사고나 차량고장으로 정차했을 때 삼각대를 설치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운전자는 29%에 불과했다.

다행히 인천 버스추락 참사 이후 지난 7월 대형마트의 삼각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최대 33배까지 증가하는 등 삼각대 설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보다 확실한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삼각대 미소지와 미설치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각대를 소지하지 않은 것이 적발되면 범칙금 2만원, 비상시에 설치하지 않았을 때도 범칙금 4만원이 전부인 현행 도로교통법은 법적 강제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재영 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인천대교 사고 이후 도로교통법 개정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서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면허취득 과정 등에서 운전자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사건 그후…‘주말의 악몽’…인천 버스추락 참사
    • 입력 2010-12-23 06:35:56
    연합뉴스
지난 7월3일 오후 1시17분께 인천시 중구 운서동 인천대교 요금소에서 인천국제공항 방향으로 약 500m 지난 지점에서 24명이 탑승한 고속버스가 도로 아래 공사현장으로 추락했다. 고장으로 도로에 멈춰선 마티즈 승용차를 달리던 화물차가 들이받았고, 뒤따라가던 버스가 이들 차량을 피하려다 생긴 사고였다. 평화롭던 토요일 오후 발생한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그로부터 5개월여. 그날의 참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혔지만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형제, 동료를 잃은 이들에게 당시의 충격과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족 단위 참변.."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 사고 버스는 경북 포항을 출발해 경주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차량이었다. 공항행 버스였기 때문인지 희생자 중에는 가족 단위로 이동하다 변을 당한 사람이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가족 5명 중 4명이 숨진 고(故) 임찬호(42) 경주대 교수의 가족이 대표적인 경우. 임 교수 가족은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고자 길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홀로 살아남은 둘째 아들(7)은 현재 서울에 사는 임 교수의 동생이 돌보고 있다. 임군은 숨진 가족들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는 등 마음의 상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실력있고 촉망받던 교수를 잃은 경주대도 침통한 분위기다. 고인의 따뜻한 성품과 연구 열정을 잊지 못하는 동료 교수와 제자들은 단체로 임 교수의 묘소를 찾아 그의 넋을 기리곤 한다. 학교 측에서도 조만간 임 교수를 추모하는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고(故) 이시형(45) 포스코 기술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외국출장길에 올랐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이씨는 연구원에서 연원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던 인물. 포스코는 지난 7월6일 이씨의 영결식을 회사장으로 치렀다. 이씨와 함께 버스에 탔던 직장 동료 서인국(53)씨는 다행히 부상에서 회복해 직장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처참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서씨의 말을 전했다. 이 밖에도 손자 돌잔치에 참석하러 가다 딸과 함께 숨진 설해용(69)씨,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했다가 공항으로 돌아가던 고은수(17)양, 휴식도 없이 일하다 오랜만에 절친한 동료끼리 휴가를 떠나려던 포스코건설 노정환(49) 이사보와 정흥수(48) 대리 등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등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부상자들도 대부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멀고 먼 합의..수사도 미완 = 사고 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경찰에 따르면 사망자 14명 중 8명의 가족만이 사고 버스의 보험기관인 전국버스공제조합과 보상금 문제에 합의했다. 반면 고(故) 임찬호 교수의 유족은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며, 고(故) 예규범(42)씨의 가족도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고를 낸 버스 운전기사 정모(53)씨가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로 머리와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정씨는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쳐 현재는 경북 포항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23일 "정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했으며 법의 심판도 달게 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회복되는 대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의 영장을 신청할 때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마티즈 운전자 김모(45.여)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김씨는 고장 차량을 도로 한복판에 세우면서 후방에 삼각대를 세워놓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김씨는 "그날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순간의 실수가 그렇게까지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마음의 상처가 무척 큰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재발을 막아라"..다양한 후속조치 = 참사 이후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후속조치가 취해졌다. 전라남도는 이 사고 직후부터 사고 위험이 큰 도로구간에 대해서는 2단 가드레일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 도로 설계과정에서부터 각종 안전시설 설치를 강화하고 있다. 사고 후 고속도로 요금소의 하이패스 통과 최고속도 제한 규정도 바뀌었다. 하이패스 부스를 시속 70∼80㎞로 통과한 사고버스 기사가 500m를 더 달리다 앞에 멈춰 선 차량을 뒤늦게 발견한 탓에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경찰청은 지난 9월1일 고속도로 요금소 50m 앞에서부터 하이패스 통과 최고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경찰청장 고시를 내 도로교통법상 제한속도의 명확한 근거를 마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요금소 주변에는 보행자도 간혹 있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최고속도를 시속 30㎞로 설정했다. 그 이상의 속도로 보행자와 부딪치면 치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사고의 큰 원인으로 지목됐던 삼각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차량이 고장 나 도로에 서게 되면 주간에는 후방 100m, 야간에는 후방 200m에 삼각대와 섬광신호 등을 세우게 되어 있지만, 인천 버스추락 참사 이전까지 이를 실천하는 운전자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시민교통안전협회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차량에 삼각대를 소지한 경우는 응답자의 63%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교통사고나 차량고장으로 정차했을 때 삼각대를 설치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운전자는 29%에 불과했다. 다행히 인천 버스추락 참사 이후 지난 7월 대형마트의 삼각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최대 33배까지 증가하는 등 삼각대 설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보다 확실한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삼각대 미소지와 미설치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각대를 소지하지 않은 것이 적발되면 범칙금 2만원, 비상시에 설치하지 않았을 때도 범칙금 4만원이 전부인 현행 도로교통법은 법적 강제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재영 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인천대교 사고 이후 도로교통법 개정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서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면허취득 과정 등에서 운전자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