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日발표 부정확”

입력 2010.12.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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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와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1945년 해방 직후 귀국 한국인들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항해 도중 폭침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펴냈다고 밝혔습니다.

위원회는 우키시마호 '사몰자 명부' 분석과 생존자 면담, 문헌조사 등을 벌인 결과, 희생자가 500여 명이라는 기존 일본 정부의 발표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관계를 규명할 자료가 부족해 정확한 탑승 인원이나 희생자 규모 등 사건을 둘러싼 온갖 의문점을 밝히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배상 추진위원회는 한일 양국이 조사단을 구성해 바닷 속에 남아있는 배 밑창을 직접 확인하고 65년이 지나도록 수장된 채 버려진 5천여 명의 유골을 인양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광복 이후 1호 귀국선인 '우키시마호'는 한국인 수천 명을 태우고 지난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 쯤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를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오후 5시 쯤 교토 마이즈루만에서 선체 밑부분 폭발로 침몰했습니다.

생존자와 유족은 우키시마호 폭침이 일본의 고의적인 폭파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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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日발표 부정확”
    • 입력 2010-12-26 10:26:43
    사회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와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1945년 해방 직후 귀국 한국인들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항해 도중 폭침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펴냈다고 밝혔습니다. 위원회는 우키시마호 '사몰자 명부' 분석과 생존자 면담, 문헌조사 등을 벌인 결과, 희생자가 500여 명이라는 기존 일본 정부의 발표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관계를 규명할 자료가 부족해 정확한 탑승 인원이나 희생자 규모 등 사건을 둘러싼 온갖 의문점을 밝히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배상 추진위원회는 한일 양국이 조사단을 구성해 바닷 속에 남아있는 배 밑창을 직접 확인하고 65년이 지나도록 수장된 채 버려진 5천여 명의 유골을 인양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광복 이후 1호 귀국선인 '우키시마호'는 한국인 수천 명을 태우고 지난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 쯤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를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오후 5시 쯤 교토 마이즈루만에서 선체 밑부분 폭발로 침몰했습니다. 생존자와 유족은 우키시마호 폭침이 일본의 고의적인 폭파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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