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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사제’ 문규현 신부 은퇴…평신도로
입력 2011.01.23 (16:50) 연합뉴스
전주 평화동성당서 송별미사 집전
인권ㆍ평화ㆍ생명활동 의지 비쳐

'생명ㆍ평화ㆍ인권ㆍ통일의 사제'로 알려진 문규현(66) 신부가 23일 주임 신부로서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다.

문 신부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전주시 평화동성당에서 주임 신부로서 송별 미사를 집전하고 본당 사목에서 은퇴해 평신도로 돌아갔다.

문 신부는 2006년 8월26일부터 이날까지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주임신부로 활동해왔다.

이날 미사에는 친형인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친분이 있는 신부들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및 진보단체 관계자들, 용산참사 유가족, 신도 등 2천여명이 참석해 문 신부의 마지막 미사를 아쉬워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성당 내외부에는 '석별, 그래도 희망입니다', '사랑해요 문규현 신부님'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문 신부는 미사를 시작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달려오다 보니 신부로서 35년을 지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며 "그동안 도와주신 분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격려를 해준 분들께 감사한다"를 되뇌었다.

이어 사제생활 35년과 성당생활을 회고하고 "마지막 성당이 '평화'(평화동성당)라는 게 의미가 있다"면서 신부와 신도들에게 "성당은 열정과 헌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는 신앙과 영적 공동체다. 사랑과 자비, 정의, 평화가 넘치고 우정과 동지애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신부는 특히 "신앙인들은 과감하게 세상에 들어가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금은 '정의로운 투신'이 기다라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권과 통일을 위해 계속 행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참석자들은 문 신부가 목에 잠긴 목소리로 "이제 떠나야 할 때"라고 말하자 잔잔한 울음소리와 조용한 탄식을 쏟아냈다.

문 신부는 미사를 끝내며 "이 시간은 만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며 큰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쳐 큰 박수를 받았다.

문 신부는 이어진 송별식에서 성당 신자들로부터 십자가와 그간 활동을 적은 '영적예물'을 받았다.

1945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문 신부는 1976년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대표,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 등을 지내며 민주, 인권, 평화, 통일, 환경운동에 평생을 바쳐왔다.

특히 1989년 8월 방북한 임수경 씨를 데리고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걸어 내려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며 1998년에도 평양통일대축장에 참가해 귀환한 후 또 한번 '영어'의 몸이 되면서 '통일의 사제'로도 불렸다.

문 신부는 환경과 인권에 큰 관심을 보여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2003년)을 주도하고 새만금개발에 반대해 '삼보일보'와 새만금 갯벌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4대강사업에 반대해 '오체투지 순례'를 펼쳤으며 2009년에는 '용산참사 해결'을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다 의식불명에 빠졌다 사흘 만에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다.
  • ‘생명의 사제’ 문규현 신부 은퇴…평신도로
    • 입력 2011-01-23 16:50:34
    연합뉴스
전주 평화동성당서 송별미사 집전
인권ㆍ평화ㆍ생명활동 의지 비쳐

'생명ㆍ평화ㆍ인권ㆍ통일의 사제'로 알려진 문규현(66) 신부가 23일 주임 신부로서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다.

문 신부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전주시 평화동성당에서 주임 신부로서 송별 미사를 집전하고 본당 사목에서 은퇴해 평신도로 돌아갔다.

문 신부는 2006년 8월26일부터 이날까지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주임신부로 활동해왔다.

이날 미사에는 친형인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친분이 있는 신부들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및 진보단체 관계자들, 용산참사 유가족, 신도 등 2천여명이 참석해 문 신부의 마지막 미사를 아쉬워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성당 내외부에는 '석별, 그래도 희망입니다', '사랑해요 문규현 신부님'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문 신부는 미사를 시작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달려오다 보니 신부로서 35년을 지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며 "그동안 도와주신 분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격려를 해준 분들께 감사한다"를 되뇌었다.

이어 사제생활 35년과 성당생활을 회고하고 "마지막 성당이 '평화'(평화동성당)라는 게 의미가 있다"면서 신부와 신도들에게 "성당은 열정과 헌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일구는 신앙과 영적 공동체다. 사랑과 자비, 정의, 평화가 넘치고 우정과 동지애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신부는 특히 "신앙인들은 과감하게 세상에 들어가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금은 '정의로운 투신'이 기다라고 있다"며 앞으로도 인권과 통일을 위해 계속 행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참석자들은 문 신부가 목에 잠긴 목소리로 "이제 떠나야 할 때"라고 말하자 잔잔한 울음소리와 조용한 탄식을 쏟아냈다.

문 신부는 미사를 끝내며 "이 시간은 만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며 큰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쳐 큰 박수를 받았다.

문 신부는 이어진 송별식에서 성당 신자들로부터 십자가와 그간 활동을 적은 '영적예물'을 받았다.

1945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문 신부는 1976년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대표,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 등을 지내며 민주, 인권, 평화, 통일, 환경운동에 평생을 바쳐왔다.

특히 1989년 8월 방북한 임수경 씨를 데리고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걸어 내려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며 1998년에도 평양통일대축장에 참가해 귀환한 후 또 한번 '영어'의 몸이 되면서 '통일의 사제'로도 불렸다.

문 신부는 환경과 인권에 큰 관심을 보여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2003년)을 주도하고 새만금개발에 반대해 '삼보일보'와 새만금 갯벌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4대강사업에 반대해 '오체투지 순례'를 펼쳤으며 2009년에는 '용산참사 해결'을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다 의식불명에 빠졌다 사흘 만에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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