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성지로 우뚝 선 ‘타흐리르 광장’

입력 2011.02.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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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전격 퇴진을 발표한 11일밤 그동안 시위대의 해방공간이었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환호성과 환희의 눈물이 교차했다.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광장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서로 얼싸안고 감격에 젖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 덩실 덩실 일어나 춤을 추었고 주변에서는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시민들의 손에는 30년 독재정권의 퇴출을 기념하는 휴대전화 불빛이 반짝였고 폭죽소리도 울려퍼졌다.

지난 18일간 이집트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타흐리르 광장은 한마디로 민주화를 향한 성지였다.

독재정권의 강압에 맞서다 지친 몸을 추슬러 또 다시 민주화를 향해 걷도록 하는 든든한 쉼터이자 재충전 장소였다.

타흐리르 광장은 한국의 서울광장처럼 카이로 한 가운데에 위치한 카이로의 얼굴로 원래 이름은 왕의 이름을 딴 `이스마일리아 광장'이었다.

그러나 나세르 대통령이 1952년 왕정을 몰아낸뒤 해방(liberation)을 뜻하는 `타흐리르(Tahrir)'로 이름을 바꿨다.

광장 서쪽으로는 나일강이 흐르고 남쪽은 무감마 정부종합청사, 북쪽에는 이집트박물관이 있어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리고 아랍연맹 본부와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AUC)이 있어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이 광장은 그러나 지난달 28일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뒤 연일 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이 모여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집트의 민주주의의 메카로 떠올랐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이집트 박물관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지난 2~3일에는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로 최소 10여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밤이면 통행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밤을 지새며 민주화를 꿈꾸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시민들은 통금이 해제되면 손에 손에 음식물과 옷가지 등을 든 봉투를 들고 다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광장 곳곳을 자율적으로 청소하는 젊은이들도 생겨나 수많은 사람들이 18일간 숙식을 함께 한 곳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임시 진료소도 가동됐다.

음식물과 커피 등을 파는 노점상도 등장했고 시위대를 하객삼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까지 등장했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타흐리르 광장은 탱크와 장갑차 등이 집중 배치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서도 젊은이들은 노래와 춤, 즉석 공연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도 했다.

지난 18일간의 대장정을 끝으로 무바라크의 퇴진 소식이 울려퍼진 11일 밤 타흐리르 광장은 이제 바로 옆 수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이집트 박물관 못지 않은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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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 성지로 우뚝 선 ‘타흐리르 광장’
    • 입력 2011-02-12 08:21:20
    연합뉴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전격 퇴진을 발표한 11일밤 그동안 시위대의 해방공간이었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환호성과 환희의 눈물이 교차했다.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광장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서로 얼싸안고 감격에 젖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 덩실 덩실 일어나 춤을 추었고 주변에서는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시민들의 손에는 30년 독재정권의 퇴출을 기념하는 휴대전화 불빛이 반짝였고 폭죽소리도 울려퍼졌다. 지난 18일간 이집트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타흐리르 광장은 한마디로 민주화를 향한 성지였다. 독재정권의 강압에 맞서다 지친 몸을 추슬러 또 다시 민주화를 향해 걷도록 하는 든든한 쉼터이자 재충전 장소였다. 타흐리르 광장은 한국의 서울광장처럼 카이로 한 가운데에 위치한 카이로의 얼굴로 원래 이름은 왕의 이름을 딴 `이스마일리아 광장'이었다. 그러나 나세르 대통령이 1952년 왕정을 몰아낸뒤 해방(liberation)을 뜻하는 `타흐리르(Tahrir)'로 이름을 바꿨다. 광장 서쪽으로는 나일강이 흐르고 남쪽은 무감마 정부종합청사, 북쪽에는 이집트박물관이 있어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리고 아랍연맹 본부와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AUC)이 있어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이 광장은 그러나 지난달 28일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뒤 연일 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이 모여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집트의 민주주의의 메카로 떠올랐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이집트 박물관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지난 2~3일에는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로 최소 10여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밤이면 통행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밤을 지새며 민주화를 꿈꾸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시민들은 통금이 해제되면 손에 손에 음식물과 옷가지 등을 든 봉투를 들고 다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광장 곳곳을 자율적으로 청소하는 젊은이들도 생겨나 수많은 사람들이 18일간 숙식을 함께 한 곳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임시 진료소도 가동됐다. 음식물과 커피 등을 파는 노점상도 등장했고 시위대를 하객삼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까지 등장했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타흐리르 광장은 탱크와 장갑차 등이 집중 배치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서도 젊은이들은 노래와 춤, 즉석 공연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도 했다. 지난 18일간의 대장정을 끝으로 무바라크의 퇴진 소식이 울려퍼진 11일 밤 타흐리르 광장은 이제 바로 옆 수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이집트 박물관 못지 않은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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