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현장을 가다

입력 2011.02.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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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이런 눈은 처음이에요. 내가 지금 나이 70인데 지금 한 5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녹취> “나가지 못하니까 답답하지. 답답하고 또 여기가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데 얼었지. 얼어서 개울물 떠다 먹잖아”

<앵커 멘트>

영동지방에 내린 1미터가 넘는 눈은 그야말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길이 사라지고, 마을이 고립되고, 열차까지 멈춰서는 등 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기록적인 폭설이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취재파일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거센 눈발이 휘날립니다. 차량들은 도로에 그대로 멈춰 섰고, 도심은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인터뷰>김창기(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 “물건 싣고 이천 가야 되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오늘은 중단해야 겠어요.”

눈덩이에 푹 파묻힌 차량들은 빼내기는 커녕, 차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대중교통 수단도 발이 묶였습니다. 눈에 덮인 시외버스들은 언제 운행할 지 모른 채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인터뷰>김민기(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 “첫 차 타려고 왔는데, 눈이 너무 와서 지금 2시간째 기다리고 있어요.”

고속도로에서 눈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더 애를 먹었습니다.

기름 때문에 아예 시동을 꺼놓은 차가 많았고, 연료가 떨어진 일부 운전자는 폭설을 뚫고
주유소까지 걸어 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주기오(경북 울진군) : “일단 불안하니까 마지못해 지금 넣고 있는 거죠.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아직…”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하고, 아예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탈출하겠다는 승객까지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폭설에 제설작업은 엄두를 못 냈고, 농촌 곳곳에서 마을이 고립돼 갔습니다.

취재진은 날이 풀리자마자, 직접 고립된 마을을 찾아가 봤습니다. 그나마 눈이 좀 치워진 큰 길을 지나자, 좁고 거친 산길이 나타났고 이내 쌓인 눈이 차량을 막아섰습니다.

결국 취재진도 허리까지 덮힌 눈길을 헤치고서야 겨우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뒤 다행히 인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녹취> “안에 누구 계세요?”

닷새째 고립됐었다는 부부는 오랜만에 바깥 사람을 본다며 반겼습니다.

<인터뷰>한득호(고립마을 주민) : “개가 짖더라구.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개가 안 짖는데 누가 왔나 그러더라구..."

지하수가 얼어버린 상태에서 폭설까지 쏟아져 인근 계곡물을 떠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장만해 놓은 나무를 태워 난방을 했고, 끼니는 그나마 갖고 있던 여유분으로 거르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한득호(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 “나무 있고 쌀 있고 물만 있으면 사는 데는 탈(문제) 없다. 물, 나무, 전기 들어오면 됐지 뭐”

인근의 또 다른 고립마을, 이 곳에선 폭설 전날 무릎 수술을 받았다던 한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폭설로 길이 막혀 버려 수술 뒤 받아야 할 치료를 못 받게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인터뷰>김숙영(고립마을 주민) : “(나갈 엄두가 안 나셨던 거죠?) 네, 차도 없으니까. (병원에서) 차가 와요, 데리러 오는데 길이 막히니까 못 오죠”

폭설에 더욱 힘든 사람들은 제설작업에 나선 인부들입니다.

닷새째 밤낮없이 시골마을 길을 내고 있다는 이 사람들은 끼니도 아예 차에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영주(제설 인부) : “냄비하고 컵라면, 이거 식은 밥 해 가지고 끓여서 먹여가면서 했죠.”

날씨가 풀리면서 고립됐던 시골 마을도 조금씩 길이 뚫리긴 했지만 불편은 여전했습니다.

<인터뷰>최대규(고립마을 주민) : “(여기는 좀 제설작업 하시기 어려우시겠어요?) 여기 경사지가 제설작업 하긴 아주 나쁘죠. 평지 같은 경우는 어지간히 밀고 가는데 경사지라서 바퀴가 자꾸 헛도니까 아주 나쁘죠 뭐.”

집집마다 몇 마리씩 소를 키우는 이 마을은 그동안 구제역 때문에 걱정이 컸는데 이번에 폭설까지 겹치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저 쪽에 우리 소가 있어요. 소 여물 주러 다니느라 죽을 뻔 했지. (소 여물 어떻게 주셨어요?) 저 눈 파고 다녔지”

막혔던 길이 열리면서 오랜만에 집 밖에 나선 아낙네들의 표정에선 다소 여유가 보입니다.

<인터뷰> “(가져 가시는 건 뭐예요?) 이거요? 아까 제가 (남자분들) 일하시니까 전을 좀 부쳐 왔구요, 지금 옥수수 삶았다고 해서 얻어가는 거예요”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이런 엄청난 눈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송양화(고립마을 주민) : “처음에 내가 이렇게 나가니까 이런 데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구. 얼마나 많이 왔는지…”

주민들은 하룻밤새 얼마나 많은 눈이 쏟아졌는지 아침에 문을 열 수조차 없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여기가 이렇게 문이 안 열렸죠. 여기까지만 열렸어요. (눈 많이 왔을 때 문이 여기까지밖에 안 열렸어요?) 그렇죠”

눈이 녹고 있다고는 하지만 차량 진입이 힘든 시골 마을엔 결국 군 헬기와 장병들이 투입됐습니다. 눈 때문에 어디가 평지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상황, 헬기 착륙이 여의치 않습니다.

결국 장병들은 밧줄을 타고 헬기에서 내려 고립마을 주민들을 찾아갑니다.

먼저 주민들이 다닐 길을 내기 위해 분주히 눈을 퍼 냅니다.

<인터뷰>유윤희-김동윤(고립마을 주민) : “4일 만에 처음이예요. 바깥에 오늘 처음 나왔어요. 여기서만 왔다 갔다 했어요.”

군인들은 건빵과 식수 등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주민들의 건강도 살폈습니다.

<인터뷰>오희석(수색대 병장) : “눈을 치우는 모습을 어른들이 보시면서 참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건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 들으면서 하니까 더 힘이 나고…”

시골 고립마을에 대한 구조가 한창일 때, 영동지방에선 열차까지 발이 묶였습니다.

승강장은 물론 선로까지 뒤덮인 눈이 육중한 열차까지 가로막은 겁니다.
<인터뷰>안영흠(열차 승객) : "강릉까지 1시 25분에 도착하는 열차인데요. 4시간 반 넘게 이렇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직원들이 선로 옆 눈을 치워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매표소엔 환불을 요구하는 승객들이 밀려듭니다.

<녹취>“환불이세요? (네, 전액 환불이요)”

이번 폭설로 끊긴 철도 구간만 220 킬로미터, 강릉을 오가는 태백선과 영동선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습니다.

<인터뷰>김순미(정동진역 부역장) : “열차운행은 내일(15일)이 돼 봐야 알 것 같고 오늘은 눈이 워낙 많아서 운행이 어렵습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한 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이번엔 시장 지붕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렸습니다.

<녹취> “이 쪽도, 이 쪽도 파”

시장 부근에서 제설작업 중이던 군인들이 달려와 눈 속에 매몰됐던 40대 여성을 구조해 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다행히 40여 분만에 눈 속에 매몰됐던 9명 모두 구조됐지만
7명은 머리와 허리 등을 다쳤습니다.

<인터뷰> “뿌적 뿌적 소리가 났었어요. 뭐 깨진 차가 있었나 의심하고 있었는데 '쾅' 하고 무너졌어요”

추가 붕괴 우려는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축사 지붕들은 서서히 주저앉아 임시로 받침목을
세워놨지만 언제 무너질지 위태롭습니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는 식당들은
영업을 거의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정문순(강원도 동해시 북평동) : “불안해서 장사도 못 하고 손님들도 불안해서 먹지도 못하고 그냥 가고 그래요.”

비닐하우스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강릉과 동해 등 동해안 6개 시군에서 무너진
비닐하우스만 수백 동에 이릅니다. 날이 풀리는 대로 옮겨 심으려던 모종까지 눈에 파묻힌 농민들의 시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김병균(파프리카 재배 농민) : “3월 달에 2천 평에 심을 모종이 다 얼어가지고 올해 농사는 다 끝났다고 봐야죠”

눈이 그치면서부터는 전국에서 제설장비와 인력들이 속속 지원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안양에서 왔어요. (지금 얼마나 걸려서 오셨어요?) 3시간요”

중장비 6천여 대가 쉴새 없이 눈을 퍼 나르면서 도심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 마을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집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본래 길 대신 이렇게 성인 1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통로만 겨우 만들어 놓은 곳이 많습니다. 시골 주민들에겐 그나마 끊겼던 버스가 다시 운행되는 게 큰 위안이 됩니다.

<인터뷰>김미자(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 “눈에서 미끄러져 가지고 이래요. (제대로 병원도 못 가셨겠네요?) 못 갔죠. 못 갔다가 그저께부터 가요. (버스가 못 다녔죠?) 안 다녔는데 아프니까 아들이 차 끌고 나섰다가 죽을 뻔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도로에 쌓여 있는 눈 때문에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를 못 합니다.

<인터뷰>공종대(버스운전기사) : “이 쪽이 처음이라 동네 이름은 모르겠는데 하여간 여기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종점이 있어요. (그런데 눈 때문에 못 가시는 거군요?) 네.”

쌓인 눈을 치우고, 사라진 길을 내느라 강원 산간지역 주민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번 폭설로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만 지금까지 농업시설 420여 동과 주택 40여 채가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악된 피해액도 120억 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인력과 장비 대부분이 눈 치우는 데 매달려 있다 보니 시설물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어지고 있는 지원의 손길에 주민들은 조금씩 재기의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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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설현장을 가다
    • 입력 2011-02-21 07:59:06
    취재파일K
<녹취> “이런 눈은 처음이에요. 내가 지금 나이 70인데 지금 한 5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녹취> “나가지 못하니까 답답하지. 답답하고 또 여기가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데 얼었지. 얼어서 개울물 떠다 먹잖아” <앵커 멘트> 영동지방에 내린 1미터가 넘는 눈은 그야말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길이 사라지고, 마을이 고립되고, 열차까지 멈춰서는 등 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기록적인 폭설이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취재파일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거센 눈발이 휘날립니다. 차량들은 도로에 그대로 멈춰 섰고, 도심은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인터뷰>김창기(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 “물건 싣고 이천 가야 되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오늘은 중단해야 겠어요.” 눈덩이에 푹 파묻힌 차량들은 빼내기는 커녕, 차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대중교통 수단도 발이 묶였습니다. 눈에 덮인 시외버스들은 언제 운행할 지 모른 채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인터뷰>김민기(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 “첫 차 타려고 왔는데, 눈이 너무 와서 지금 2시간째 기다리고 있어요.” 고속도로에서 눈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더 애를 먹었습니다. 기름 때문에 아예 시동을 꺼놓은 차가 많았고, 연료가 떨어진 일부 운전자는 폭설을 뚫고 주유소까지 걸어 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주기오(경북 울진군) : “일단 불안하니까 마지못해 지금 넣고 있는 거죠.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아직…”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하고, 아예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탈출하겠다는 승객까지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폭설에 제설작업은 엄두를 못 냈고, 농촌 곳곳에서 마을이 고립돼 갔습니다. 취재진은 날이 풀리자마자, 직접 고립된 마을을 찾아가 봤습니다. 그나마 눈이 좀 치워진 큰 길을 지나자, 좁고 거친 산길이 나타났고 이내 쌓인 눈이 차량을 막아섰습니다. 결국 취재진도 허리까지 덮힌 눈길을 헤치고서야 겨우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뒤 다행히 인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녹취> “안에 누구 계세요?” 닷새째 고립됐었다는 부부는 오랜만에 바깥 사람을 본다며 반겼습니다. <인터뷰>한득호(고립마을 주민) : “개가 짖더라구.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개가 안 짖는데 누가 왔나 그러더라구..." 지하수가 얼어버린 상태에서 폭설까지 쏟아져 인근 계곡물을 떠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장만해 놓은 나무를 태워 난방을 했고, 끼니는 그나마 갖고 있던 여유분으로 거르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한득호(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 “나무 있고 쌀 있고 물만 있으면 사는 데는 탈(문제) 없다. 물, 나무, 전기 들어오면 됐지 뭐” 인근의 또 다른 고립마을, 이 곳에선 폭설 전날 무릎 수술을 받았다던 한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폭설로 길이 막혀 버려 수술 뒤 받아야 할 치료를 못 받게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인터뷰>김숙영(고립마을 주민) : “(나갈 엄두가 안 나셨던 거죠?) 네, 차도 없으니까. (병원에서) 차가 와요, 데리러 오는데 길이 막히니까 못 오죠” 폭설에 더욱 힘든 사람들은 제설작업에 나선 인부들입니다. 닷새째 밤낮없이 시골마을 길을 내고 있다는 이 사람들은 끼니도 아예 차에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영주(제설 인부) : “냄비하고 컵라면, 이거 식은 밥 해 가지고 끓여서 먹여가면서 했죠.” 날씨가 풀리면서 고립됐던 시골 마을도 조금씩 길이 뚫리긴 했지만 불편은 여전했습니다. <인터뷰>최대규(고립마을 주민) : “(여기는 좀 제설작업 하시기 어려우시겠어요?) 여기 경사지가 제설작업 하긴 아주 나쁘죠. 평지 같은 경우는 어지간히 밀고 가는데 경사지라서 바퀴가 자꾸 헛도니까 아주 나쁘죠 뭐.” 집집마다 몇 마리씩 소를 키우는 이 마을은 그동안 구제역 때문에 걱정이 컸는데 이번에 폭설까지 겹치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저 쪽에 우리 소가 있어요. 소 여물 주러 다니느라 죽을 뻔 했지. (소 여물 어떻게 주셨어요?) 저 눈 파고 다녔지” 막혔던 길이 열리면서 오랜만에 집 밖에 나선 아낙네들의 표정에선 다소 여유가 보입니다. <인터뷰> “(가져 가시는 건 뭐예요?) 이거요? 아까 제가 (남자분들) 일하시니까 전을 좀 부쳐 왔구요, 지금 옥수수 삶았다고 해서 얻어가는 거예요”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이런 엄청난 눈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송양화(고립마을 주민) : “처음에 내가 이렇게 나가니까 이런 데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구. 얼마나 많이 왔는지…” 주민들은 하룻밤새 얼마나 많은 눈이 쏟아졌는지 아침에 문을 열 수조차 없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여기가 이렇게 문이 안 열렸죠. 여기까지만 열렸어요. (눈 많이 왔을 때 문이 여기까지밖에 안 열렸어요?) 그렇죠” 눈이 녹고 있다고는 하지만 차량 진입이 힘든 시골 마을엔 결국 군 헬기와 장병들이 투입됐습니다. 눈 때문에 어디가 평지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상황, 헬기 착륙이 여의치 않습니다. 결국 장병들은 밧줄을 타고 헬기에서 내려 고립마을 주민들을 찾아갑니다. 먼저 주민들이 다닐 길을 내기 위해 분주히 눈을 퍼 냅니다. <인터뷰>유윤희-김동윤(고립마을 주민) : “4일 만에 처음이예요. 바깥에 오늘 처음 나왔어요. 여기서만 왔다 갔다 했어요.” 군인들은 건빵과 식수 등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주민들의 건강도 살폈습니다. <인터뷰>오희석(수색대 병장) : “눈을 치우는 모습을 어른들이 보시면서 참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건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 들으면서 하니까 더 힘이 나고…” 시골 고립마을에 대한 구조가 한창일 때, 영동지방에선 열차까지 발이 묶였습니다. 승강장은 물론 선로까지 뒤덮인 눈이 육중한 열차까지 가로막은 겁니다. <인터뷰>안영흠(열차 승객) : "강릉까지 1시 25분에 도착하는 열차인데요. 4시간 반 넘게 이렇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직원들이 선로 옆 눈을 치워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매표소엔 환불을 요구하는 승객들이 밀려듭니다. <녹취>“환불이세요? (네, 전액 환불이요)” 이번 폭설로 끊긴 철도 구간만 220 킬로미터, 강릉을 오가는 태백선과 영동선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습니다. <인터뷰>김순미(정동진역 부역장) : “열차운행은 내일(15일)이 돼 봐야 알 것 같고 오늘은 눈이 워낙 많아서 운행이 어렵습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한 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이번엔 시장 지붕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렸습니다. <녹취> “이 쪽도, 이 쪽도 파” 시장 부근에서 제설작업 중이던 군인들이 달려와 눈 속에 매몰됐던 40대 여성을 구조해 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다행히 40여 분만에 눈 속에 매몰됐던 9명 모두 구조됐지만 7명은 머리와 허리 등을 다쳤습니다. <인터뷰> “뿌적 뿌적 소리가 났었어요. 뭐 깨진 차가 있었나 의심하고 있었는데 '쾅' 하고 무너졌어요” 추가 붕괴 우려는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축사 지붕들은 서서히 주저앉아 임시로 받침목을 세워놨지만 언제 무너질지 위태롭습니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는 식당들은 영업을 거의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정문순(강원도 동해시 북평동) : “불안해서 장사도 못 하고 손님들도 불안해서 먹지도 못하고 그냥 가고 그래요.” 비닐하우스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강릉과 동해 등 동해안 6개 시군에서 무너진 비닐하우스만 수백 동에 이릅니다. 날이 풀리는 대로 옮겨 심으려던 모종까지 눈에 파묻힌 농민들의 시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김병균(파프리카 재배 농민) : “3월 달에 2천 평에 심을 모종이 다 얼어가지고 올해 농사는 다 끝났다고 봐야죠” 눈이 그치면서부터는 전국에서 제설장비와 인력들이 속속 지원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안양에서 왔어요. (지금 얼마나 걸려서 오셨어요?) 3시간요” 중장비 6천여 대가 쉴새 없이 눈을 퍼 나르면서 도심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 마을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집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본래 길 대신 이렇게 성인 1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통로만 겨우 만들어 놓은 곳이 많습니다. 시골 주민들에겐 그나마 끊겼던 버스가 다시 운행되는 게 큰 위안이 됩니다. <인터뷰>김미자(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 “눈에서 미끄러져 가지고 이래요. (제대로 병원도 못 가셨겠네요?) 못 갔죠. 못 갔다가 그저께부터 가요. (버스가 못 다녔죠?) 안 다녔는데 아프니까 아들이 차 끌고 나섰다가 죽을 뻔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도로에 쌓여 있는 눈 때문에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를 못 합니다. <인터뷰>공종대(버스운전기사) : “이 쪽이 처음이라 동네 이름은 모르겠는데 하여간 여기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종점이 있어요. (그런데 눈 때문에 못 가시는 거군요?) 네.” 쌓인 눈을 치우고, 사라진 길을 내느라 강원 산간지역 주민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번 폭설로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만 지금까지 농업시설 420여 동과 주택 40여 채가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악된 피해액도 120억 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인력과 장비 대부분이 눈 치우는 데 매달려 있다 보니 시설물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어지고 있는 지원의 손길에 주민들은 조금씩 재기의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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