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아프지만 계속되는 삶 ‘두만강’

입력 2011.03.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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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6번째 장편 '두만강'은 햇살에 반짝이는 투명한 얼음만큼이나 맑고 시린 영화다. 단호하고 독한 이 영화는 인간의 잠재된 본성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스크린을 통해 느껴지는 냉기는 관객들에게 불쾌한 공허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리고 끈끈한 점액질 같은 불편한 잔상들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묵직한 바윗돌을 얹어놓을지언정 영화는 인간의 본성, 삶 그리고 사회에 대해 곱씹어 볼 단상을 제공한다. 단호하지만 끝내는 마음을 휘저을 이 영화는 영화 팬이라면 한번 시간을 내서 봐도 좋을 수작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댄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구. 할아버지와 언어장애우 누나 순희(윤란)와 함께 사는 12살 창호(최건)는 축구실력이 뛰어난 탈북자 정진(이경림)과 친구가 된다.



하지만, 식량을 구하려는 탈북자들 때문에 마을에 절도 사건이 기승을 부린다. 급기야 창호 가족에게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지자, 탈북자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증오는 걷잡을 수 없이 불붙는다.



결국, 마을에서는 대대적인 탈북자 검거 작전이 벌어지고 정진도 경찰에 연행되면서 비극의 씨앗은 잉태된다.



영화는 북에서 건너온 탈북자들의 힘든 현실을 담담한 화법으로 얘기한다. 끔찍한 일들이 어른의 세계에서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이를 그저 롱테이크로 담담하게 잡아낼 뿐이다.



아이들은 길을 걷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죽어도 "숨이 없다. 죽었다. 가자"라며 제 갈 길을 간다.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뜩하다. 동생을 챙기라며 쌀을 가져가라는 순희의 말에 정진은 "동생이 죽었다"며 짧게 대답할 뿐이다.



그렇다고 장률 감독은 탈북자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한계상황에 몰릴 때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뒤채인 탈북자들은 선의(善意)를 수탈로 되갚는다.



특히 순희의 호의를 배신하는 탈북자의 행위는 치를 떨게 할 정도다. "사람이 너무 굶다 보면 제 어미 아비도 팔아 먹는다"는 영화 속 대사는 탈북자들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연기를 하는 듯 안 하는 듯한 배우들의 연기는 극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장률 감독의 연출도 군더더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간결하다. 영화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큰 충돌없이 89분간 이어진다. 꽁꽁 언 두만강과 황량한 바람 소리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오프닝과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잡은 엔딩 장면은 저릿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황량한 바람 소리, 살을 에는 추운 밤길을 밝혀주는 달빛, 고통으로 마음은 끓지만 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노인의 표정, 별것 아닌 일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소년의 우정, 양을 도둑맞고도 "양 한마리가 뭐 대단하다고 사람을 그리 때리느냐"는 어느 중국인의 말 등이 기억에 남을 법하다.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포착한 '두만강'은 파리국제영화제 2관왕, 러시아 이스트웨스트 국제영화제 2관왕, 스페인 우렌세국제인디영화제에서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배급사는 관객들이 연변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점 고려, 화면 하단에 한국어 자막을 삽입했다.



3월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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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아프지만 계속되는 삶 ‘두만강’
    • 입력 2011-03-04 14:57:42
    연합뉴스
장률 감독의 6번째 장편 '두만강'은 햇살에 반짝이는 투명한 얼음만큼이나 맑고 시린 영화다. 단호하고 독한 이 영화는 인간의 잠재된 본성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스크린을 통해 느껴지는 냉기는 관객들에게 불쾌한 공허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리고 끈끈한 점액질 같은 불편한 잔상들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묵직한 바윗돌을 얹어놓을지언정 영화는 인간의 본성, 삶 그리고 사회에 대해 곱씹어 볼 단상을 제공한다. 단호하지만 끝내는 마음을 휘저을 이 영화는 영화 팬이라면 한번 시간을 내서 봐도 좋을 수작이다.

북한과 국경을 맞댄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구. 할아버지와 언어장애우 누나 순희(윤란)와 함께 사는 12살 창호(최건)는 축구실력이 뛰어난 탈북자 정진(이경림)과 친구가 된다.

하지만, 식량을 구하려는 탈북자들 때문에 마을에 절도 사건이 기승을 부린다. 급기야 창호 가족에게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지자, 탈북자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증오는 걷잡을 수 없이 불붙는다.

결국, 마을에서는 대대적인 탈북자 검거 작전이 벌어지고 정진도 경찰에 연행되면서 비극의 씨앗은 잉태된다.

영화는 북에서 건너온 탈북자들의 힘든 현실을 담담한 화법으로 얘기한다. 끔찍한 일들이 어른의 세계에서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이를 그저 롱테이크로 담담하게 잡아낼 뿐이다.

아이들은 길을 걷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죽어도 "숨이 없다. 죽었다. 가자"라며 제 갈 길을 간다.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뜩하다. 동생을 챙기라며 쌀을 가져가라는 순희의 말에 정진은 "동생이 죽었다"며 짧게 대답할 뿐이다.

그렇다고 장률 감독은 탈북자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한계상황에 몰릴 때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뒤채인 탈북자들은 선의(善意)를 수탈로 되갚는다.

특히 순희의 호의를 배신하는 탈북자의 행위는 치를 떨게 할 정도다. "사람이 너무 굶다 보면 제 어미 아비도 팔아 먹는다"는 영화 속 대사는 탈북자들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연기를 하는 듯 안 하는 듯한 배우들의 연기는 극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장률 감독의 연출도 군더더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간결하다. 영화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큰 충돌없이 89분간 이어진다. 꽁꽁 언 두만강과 황량한 바람 소리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오프닝과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잡은 엔딩 장면은 저릿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황량한 바람 소리, 살을 에는 추운 밤길을 밝혀주는 달빛, 고통으로 마음은 끓지만 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노인의 표정, 별것 아닌 일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소년의 우정, 양을 도둑맞고도 "양 한마리가 뭐 대단하다고 사람을 그리 때리느냐"는 어느 중국인의 말 등이 기억에 남을 법하다.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포착한 '두만강'은 파리국제영화제 2관왕, 러시아 이스트웨스트 국제영화제 2관왕, 스페인 우렌세국제인디영화제에서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배급사는 관객들이 연변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점 고려, 화면 하단에 한국어 자막을 삽입했다.

3월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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