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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쿠션 김경률 “기다려라! 세계 1위”
입력 2011.03.04 (16:09) 연합뉴스
16강 탈락 광저우아시안게임서 마음 비우는 법 깨달아

5월 멕시코월드컵 통해 ’당구황제’ 등극 도전



우리나라에서 당구 3쿠션 게임의 1인자인 김경률(31·서울당구연맹)이 기나긴 유럽 원정길을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김경률은 지난달 21일 끝난 터키월드컵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한국인 최초로 세계랭킹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제 목표는 오로지 세계 1위라예."



경남 양산 출신인 김경률의 사투리는 생각보다 훨씬 구수했다.



4일 강남구 역삼동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경률은 실내인데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피부 결도 고르지 않았다.



김경률은 터키월드컵을 마치고 곧장 프랑스로 날아가 초청경기에 참가했다.



대회 이름은 아지피 리그. 세계 톱 랭커들을 특별히 초청해 벌이는 이벤트 경기로 김경률은 초청 선수로 대접받을 만큼 세계 당구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 된 것 같다는 김경률은 조그맣게 찢어진 눈매를 연신 끔뻑거리고 하품을 쏟아내면서도 "내일부터는 훈련 들어갑니다"라며 기지개를 켰다.



김경률은 이번 월드컵에서 벨기에의 에디 먹스에게 일격을 당해 우승을 놓쳤지만 랭킹포인트 54점을 추가해 한국인 선수 최초로 세계랭킹 2위가 됐다.



우승했더라면 1위인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를 제치고 단숨에 세계랭킹 1위가 될 수 있었던 경기였다.



김경률은 결승전 시작을 앞두고 유럽연맹의 지인들이 "킴! 이번에 우승하면 세계 1위야!"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매 경기 세계 고수들을 만나 혈전을 치르느라 순위엔 신경을 못 썼지만, 김경률은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긴장이 돼 경기가 잘 안 풀렸다고 말했다.



김경률은 결국 경기는 그르쳤지만 그제야 ’아! 내가 벌써 세계 1위를 넘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귀띔했다.



김경률인 처음 큐를 집어든 것은 1994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마침 학생의 당구장 출입을 금하던 규제가 풀려 친구 따라 재미삼아 당구장에 발을 들였지만, 그날부터 김경률의 인생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김경률은 "큐질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며 굴러다니는 공이 너무나 신기했다"며 "밥 먹는 시간을 빼놓고는 매일 당구장에서 살았다"고 회상했다.



당구에 입문한 지 6개월 만에 무려 300~400점 고지에 오른 김경률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땐 양산 일대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김경률은 가방을 메고 부산으로 건너갔다. 부산에서 이름난 고수 최성원(34·부산당구연맹·세계랭킹 9위)과 맞대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었지만 김경률에게 그날의 기억만큼은 또렷했다.



최성원에게 완패를 당한 김경률은 "완전 깨졌죠, 다음에 두고 보자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요"라며 "그제야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걸 느꼈죠"라고 말했다.



이듬해 군에 입대해 스물두 살이 돼 2년 만에 다시 큐를 잡았지만, 3쿠션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김경률은 몸으로 큐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게 된 건 2002부산아시안게임 때였다.



김경률은 당시 황득희가 3쿠션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선수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과 함께 잘할 수 있는 거라곤 당구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선배의 추천으로 2003년 서울당구연맹에 둥지를 튼 김경률은 2004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치러진 월드컵에 참가했다.



첫 외국 경기였지만 김경률은 16강에서 야스퍼스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이름을 날렸고 이후 김경률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국내 랭킹 1위를 수년간 독차지했고 국제 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코드롱·야스퍼스·산체스·브롬달 등 세계 ’4대 천왕’을 차례로 제압했다.



김경률은 2010년 수원월드컵과 터키월드컵을 연달아 제패하며 지난해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원하는 것을 품에 안지 못했다. 바로 선수생활의 계기가 됐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김경률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당연히’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태릉선수촌에서 타 종목 선수들과 함께 아침 6시에 일어나 지옥훈련을 했다.



하지만 김경률이 받아든 성적표는 16강 탈락. ’금빛 스트로크’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김경률은 고개를 숙였다.



김경률은 "공격 제한 시간을 없애는 등 경기 운영이 아무리 상대편에 유리하게 이뤄졌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며 아쉬워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준비했던 아시안게임에서 실패하자 김경률은 한동안 큐를 손에서 놓았다.



그러나 김경률은 "광저우의 기억은 치욕이기도 하지만 당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며 "마음을 비우는 법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경률에겐 특별히 닮고 싶은 선수도, 존경하는 선배도 딱히 없었지만 목표만큼은 뚜렷했다.



오는 5월에 열리는 멕시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것이다.



1위 야스퍼스와 랭킹포인트는 단 7점 차이.



’양산 촌놈’ 김경률에게 세계 정상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에 가깝다.
  • 3쿠션 김경률 “기다려라! 세계 1위”
    • 입력 2011-03-04 16:09:53
    연합뉴스
16강 탈락 광저우아시안게임서 마음 비우는 법 깨달아

5월 멕시코월드컵 통해 ’당구황제’ 등극 도전



우리나라에서 당구 3쿠션 게임의 1인자인 김경률(31·서울당구연맹)이 기나긴 유럽 원정길을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김경률은 지난달 21일 끝난 터키월드컵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한국인 최초로 세계랭킹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제 목표는 오로지 세계 1위라예."



경남 양산 출신인 김경률의 사투리는 생각보다 훨씬 구수했다.



4일 강남구 역삼동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경률은 실내인데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피부 결도 고르지 않았다.



김경률은 터키월드컵을 마치고 곧장 프랑스로 날아가 초청경기에 참가했다.



대회 이름은 아지피 리그. 세계 톱 랭커들을 특별히 초청해 벌이는 이벤트 경기로 김경률은 초청 선수로 대접받을 만큼 세계 당구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 된 것 같다는 김경률은 조그맣게 찢어진 눈매를 연신 끔뻑거리고 하품을 쏟아내면서도 "내일부터는 훈련 들어갑니다"라며 기지개를 켰다.



김경률은 이번 월드컵에서 벨기에의 에디 먹스에게 일격을 당해 우승을 놓쳤지만 랭킹포인트 54점을 추가해 한국인 선수 최초로 세계랭킹 2위가 됐다.



우승했더라면 1위인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를 제치고 단숨에 세계랭킹 1위가 될 수 있었던 경기였다.



김경률은 결승전 시작을 앞두고 유럽연맹의 지인들이 "킴! 이번에 우승하면 세계 1위야!"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매 경기 세계 고수들을 만나 혈전을 치르느라 순위엔 신경을 못 썼지만, 김경률은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긴장이 돼 경기가 잘 안 풀렸다고 말했다.



김경률은 결국 경기는 그르쳤지만 그제야 ’아! 내가 벌써 세계 1위를 넘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귀띔했다.



김경률인 처음 큐를 집어든 것은 1994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마침 학생의 당구장 출입을 금하던 규제가 풀려 친구 따라 재미삼아 당구장에 발을 들였지만, 그날부터 김경률의 인생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김경률은 "큐질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며 굴러다니는 공이 너무나 신기했다"며 "밥 먹는 시간을 빼놓고는 매일 당구장에서 살았다"고 회상했다.



당구에 입문한 지 6개월 만에 무려 300~400점 고지에 오른 김경률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땐 양산 일대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김경률은 가방을 메고 부산으로 건너갔다. 부산에서 이름난 고수 최성원(34·부산당구연맹·세계랭킹 9위)과 맞대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었지만 김경률에게 그날의 기억만큼은 또렷했다.



최성원에게 완패를 당한 김경률은 "완전 깨졌죠, 다음에 두고 보자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요"라며 "그제야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걸 느꼈죠"라고 말했다.



이듬해 군에 입대해 스물두 살이 돼 2년 만에 다시 큐를 잡았지만, 3쿠션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김경률은 몸으로 큐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게 된 건 2002부산아시안게임 때였다.



김경률은 당시 황득희가 3쿠션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선수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과 함께 잘할 수 있는 거라곤 당구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선배의 추천으로 2003년 서울당구연맹에 둥지를 튼 김경률은 2004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치러진 월드컵에 참가했다.



첫 외국 경기였지만 김경률은 16강에서 야스퍼스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이름을 날렸고 이후 김경률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국내 랭킹 1위를 수년간 독차지했고 국제 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코드롱·야스퍼스·산체스·브롬달 등 세계 ’4대 천왕’을 차례로 제압했다.



김경률은 2010년 수원월드컵과 터키월드컵을 연달아 제패하며 지난해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원하는 것을 품에 안지 못했다. 바로 선수생활의 계기가 됐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김경률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당연히’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태릉선수촌에서 타 종목 선수들과 함께 아침 6시에 일어나 지옥훈련을 했다.



하지만 김경률이 받아든 성적표는 16강 탈락. ’금빛 스트로크’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김경률은 고개를 숙였다.



김경률은 "공격 제한 시간을 없애는 등 경기 운영이 아무리 상대편에 유리하게 이뤄졌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며 아쉬워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준비했던 아시안게임에서 실패하자 김경률은 한동안 큐를 손에서 놓았다.



그러나 김경률은 "광저우의 기억은 치욕이기도 하지만 당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며 "마음을 비우는 법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경률에겐 특별히 닮고 싶은 선수도, 존경하는 선배도 딱히 없었지만 목표만큼은 뚜렷했다.



오는 5월에 열리는 멕시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것이다.



1위 야스퍼스와 랭킹포인트는 단 7점 차이.



’양산 촌놈’ 김경률에게 세계 정상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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