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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북한] 北, 비날론에 왜 집착하나?
입력 2011.03.12 (11:22)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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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비날론’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비날론은 북한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합성섬유인데요.

경제난으로 생산이 중단됐던 비날론 공장이 16년 만에 재가동에 들어가면서, 이에 대한 보도가 매일같이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비날론 사업에 이렇게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알아봅니다.

지난 해 3월, 북한 함흥에선 10만 명이 모인 군중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김정일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호문제로 지방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던 그가 왜 10만 군중 앞에 나타난 것일까.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 섬유 ‘비날론’이 16년만에 다시 생산을 재개한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해 3월 6일) : "꿈결에도 그린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현대적인 비날론 공장 준공을
경축하게 된 것을..."

비날론은 석탄에서 뽑아내는 합성섬유로 일제 때인 1939년 국보급 학자였던 이승기 박사가 발명했다.

듀폰사의 나일론에 이은 세계 두 번 째 합성섬유였다.

서울대 교수였던 이승기 박사는 6.25 전쟁 때 월북해 비날론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화학공업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북한에는 석회석 1000억 톤, 석탄 200억톤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북한의 산업은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가 아니라 매장량이 풍부한 석탄을 기초로 발전했다.

당연히 비날론 공업은 북한에서 화학공업의 중추로 자리잡았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자체 연료, 자체 원료, 그리고 자체 인력, 그리고 기술.. 자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축으로 한다는 것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것의 첫 번째 사례가 비날론인 거죠."

김일성 주석은 1950년대 말 함흥에 대규모 비날론 공장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비날론 공장 건설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독려했고, 마침내 1961년 2.8 비날론 공장이 준공됐다.

연간 비날론 생산량이 2만톤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이었다.

북한은 여기에 카바이드 공장 등을 추가로 건설해 1973년에는 비날론연합기업소를 출범시켰다.

연간 생산량은 5만톤까지 늘었다.

주민 1인당 2킬로그램 이상 배급할 수 있는 막대한 생산량이었다.

이에 따라 면생산이 부족해 갈대 추출 섬유로 만든 조악한 품질의 옷을 입던 북한 주민들에게 70년대부터 비날론 옷이 본격적으로 배급되기 시작했다.

비날론옷은 면과 비슷해 보온성, 흡습성이 뛰어난데다 잘 헤지지 않아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염색이 잘 안 돼 색상이 단조로웠으며 덜 말린 상태에서 다리면 변색되는 게 단점이었다.

주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치던 김일성 주석은 주체적인 방법으로 입는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고 선전했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인민의 섬유라고 할 정도로 비날론을 기본 소재로 삼습니다. 제일 많이 생산 하는 게 비날론이었고요. 그 전에 보면 옷이 약간 칙칙하고 옛날 거 같은 느낌이 나는데 그게 비날론 때문이다라는 추측이 여러 나옵니다."

비날론은 폴리비닐알코올로 석탄과 석회석 물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아세틸렌, 아세트산과 같은 중간생성물과 부산물들이 나온다.

이것으로 세제, 농약, 비료, 공업용 도료, 초산, 알코올 등 420여종의 화학물질들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당시 비날론 생산은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천연섬유의 부족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일으켜세울 최적의 선택으로 믿었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과학기술 성과를 가지고 경제를 발전시켰고 그 성과에 기대어 자기들의 정치노선을 강 화시키려는 그런 흐름이 많았던 거죠. 그꽃 이 비날론 공업화였습니다. 그 내용 자체도 자기들이 주장하는 주체와 너무나 잘 맞았 고, 그 효과도 중공업을 우선시하고, 경공업, 농업, 일반 생활까지도 더 발전할 수 있다. 동시발전이 가능 하다고 하는 정치노선의 딱 부합하는 구체적 사례죠."

하지만 북한의 비날론 산업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비날론 생산과정에서 전기 먹는 하마라고 할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 경제성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에는 전력이 풍부했고, 사회주의 체제 특성상 경제성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날론 산업에 크게 고무된 김일성 주석은 1984년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생산량의 2배인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건설을 지시했다.

하지만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는 당초 계획의 절반밖에 건설되지 못했고, 2.8 비날론연합기업소도 시설 노후화로 점차적으로 생산량이 줄기 시작했다.

결국 김일성 주석 사후인 1994년에 경제난이 닥치면서 비날론 공장은 모두 멈춰섰다.

대홍수로 인한 석탄생산량 급감과 이에 따른 전력난이 주된 원인이었다.

<인터뷰> 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94년도에 고난의 행군을 맞이하면서 실제적으로 엄청난 전력과 석탄이 소모되기 때문에 북한 경제로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그런 상황에서 공장을 가동할 수 없었고 또한 시설 자체가 굉장히 노후화돼서 생산성이 제대로 안나왔습니다."

지난 2007년 김정일 위원장은 2.8 비날론연합기업소를 재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의 국가적 역량이 함흥에 투입됐고, 2년여 동안의 현대화 공사를 벌인 끝에 지난해 초 2.8 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재가동에 들어갔다.

비날론 공장이 16년만에 다시 돌아가자 북한 관영매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녹취>조선중앙TV(지난해 3월 6일) : "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며 사회주의의 대승리입니다."

김정일 위원장도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녹취>조선중앙TV(지난해 6월 3일)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 수령님께서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겠냐고 수령님의 평생 소원을 드디어 풀어드릴 수 있게 됐다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북한 당국은 비날론을 경제를 기사회생시키는 회심의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녹취>조선중앙TV(2월 25일) : "우리의 비날론 공업을 통해서 나온 이 제품들을 보니까 정말 흐뭇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구먼요?"

<녹취> 최진근(연구사 박사) : "그렇습니다. 우리 비날론 공업을 통해서 나오는 재부가 단순히 비날론 띠섬유나 비날론 솜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큰 경공업 공장들과 지방 산업 공장들을 도울 수 있는 무진장한 원료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은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를 재가동하면서 CNC, 컴퓨터수치조종 기술에 의한 현대화를 이뤘다고 강조한다.

북한의 선전처럼 비날론 공장이 정상가동된다면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최근에는 비날론이 기능성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총탄도 막을 수 있는 방탄복도 제작이 가능하다고 하고, 그 다음에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방화복도 가능하고, 그 다음에 이게 흡습성이 강한 것 뿐만 아니라 피부에 트러블 이 별로 없다 면처럼. 그래서 이걸 활용하게 되면 수술용 실.. 인체에서 녹아도 되는. 그 리고 비닐봉지를 만들면 그냥 자연에서 녹아 없어지는 분해되는 그런 비닐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비날론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심각한 전력난으로 밤만 되면 북한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는 현실에서 공장이 정상가동되는 것 자체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인터뷰>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비날론을 생산하는데 엄청난 전력과 석탄이 소비가 되고요. 응용할 수 있는 추가 기술이 필요하고 그걸 상업화할 수 있는 엄청난 시설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현재상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이 비날론에 집착하는 건 경제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내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큰소리쳐온 북한에게 ‘비날론’은 상징성이 매우 크다.

<인터뷰>이조원(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강성대국 건설에서 주민들의 먹는 문제, 입는 문제 해결은 중요한 것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 식 방식대로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의 개발된 섬유가 비날 론이고 그런 비날론을 재가동해서 입는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강성대국 건설에서 아주 중요한 문턱을 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그런 맥락에서 비날론에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재가동을 16년만에 다시 시작한 것이 그런 연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후계자 김정은의 치적쌓기다.

<인터뷰>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비날론 공장이 cnc 기술을 통해서 현대화됐다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김정은의 업적,"

김정은의 성과를 통해서 3대 세습을 공고히 하는 측면이 하나 있고. 권력의 3대 세습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북한 정권은 위기 돌파의 수단으로 국제사회가 요청하고 있는 개방과 개혁이 아닌 주체섬유 ‘비날론’을 선택한 것이다.

<인터뷰>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비날론 공장이 선전만큼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한테 혜택이 안 갔을 경우에는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북한 당국에 대한 신뢰가 더 깨어지고 이게 북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북한 경제 회생에도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 [클로즈업 북한] 北, 비날론에 왜 집착하나?
    • 입력 2011-03-12 11:22:51
    남북의 창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비날론’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비날론은 북한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합성섬유인데요.

경제난으로 생산이 중단됐던 비날론 공장이 16년 만에 재가동에 들어가면서, 이에 대한 보도가 매일같이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비날론 사업에 이렇게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알아봅니다.

지난 해 3월, 북한 함흥에선 10만 명이 모인 군중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김정일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호문제로 지방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던 그가 왜 10만 군중 앞에 나타난 것일까.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 섬유 ‘비날론’이 16년만에 다시 생산을 재개한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해 3월 6일) : "꿈결에도 그린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현대적인 비날론 공장 준공을
경축하게 된 것을..."

비날론은 석탄에서 뽑아내는 합성섬유로 일제 때인 1939년 국보급 학자였던 이승기 박사가 발명했다.

듀폰사의 나일론에 이은 세계 두 번 째 합성섬유였다.

서울대 교수였던 이승기 박사는 6.25 전쟁 때 월북해 비날론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화학공업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북한에는 석회석 1000억 톤, 석탄 200억톤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북한의 산업은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가 아니라 매장량이 풍부한 석탄을 기초로 발전했다.

당연히 비날론 공업은 북한에서 화학공업의 중추로 자리잡았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자체 연료, 자체 원료, 그리고 자체 인력, 그리고 기술.. 자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축으로 한다는 것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것의 첫 번째 사례가 비날론인 거죠."

김일성 주석은 1950년대 말 함흥에 대규모 비날론 공장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비날론 공장 건설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독려했고, 마침내 1961년 2.8 비날론 공장이 준공됐다.

연간 비날론 생산량이 2만톤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이었다.

북한은 여기에 카바이드 공장 등을 추가로 건설해 1973년에는 비날론연합기업소를 출범시켰다.

연간 생산량은 5만톤까지 늘었다.

주민 1인당 2킬로그램 이상 배급할 수 있는 막대한 생산량이었다.

이에 따라 면생산이 부족해 갈대 추출 섬유로 만든 조악한 품질의 옷을 입던 북한 주민들에게 70년대부터 비날론 옷이 본격적으로 배급되기 시작했다.

비날론옷은 면과 비슷해 보온성, 흡습성이 뛰어난데다 잘 헤지지 않아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염색이 잘 안 돼 색상이 단조로웠으며 덜 말린 상태에서 다리면 변색되는 게 단점이었다.

주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치던 김일성 주석은 주체적인 방법으로 입는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고 선전했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인민의 섬유라고 할 정도로 비날론을 기본 소재로 삼습니다. 제일 많이 생산 하는 게 비날론이었고요. 그 전에 보면 옷이 약간 칙칙하고 옛날 거 같은 느낌이 나는데 그게 비날론 때문이다라는 추측이 여러 나옵니다."

비날론은 폴리비닐알코올로 석탄과 석회석 물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아세틸렌, 아세트산과 같은 중간생성물과 부산물들이 나온다.

이것으로 세제, 농약, 비료, 공업용 도료, 초산, 알코올 등 420여종의 화학물질들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당시 비날론 생산은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천연섬유의 부족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일으켜세울 최적의 선택으로 믿었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과학기술 성과를 가지고 경제를 발전시켰고 그 성과에 기대어 자기들의 정치노선을 강 화시키려는 그런 흐름이 많았던 거죠. 그꽃 이 비날론 공업화였습니다. 그 내용 자체도 자기들이 주장하는 주체와 너무나 잘 맞았 고, 그 효과도 중공업을 우선시하고, 경공업, 농업, 일반 생활까지도 더 발전할 수 있다. 동시발전이 가능 하다고 하는 정치노선의 딱 부합하는 구체적 사례죠."

하지만 북한의 비날론 산업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비날론 생산과정에서 전기 먹는 하마라고 할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 경제성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에는 전력이 풍부했고, 사회주의 체제 특성상 경제성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날론 산업에 크게 고무된 김일성 주석은 1984년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생산량의 2배인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건설을 지시했다.

하지만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는 당초 계획의 절반밖에 건설되지 못했고, 2.8 비날론연합기업소도 시설 노후화로 점차적으로 생산량이 줄기 시작했다.

결국 김일성 주석 사후인 1994년에 경제난이 닥치면서 비날론 공장은 모두 멈춰섰다.

대홍수로 인한 석탄생산량 급감과 이에 따른 전력난이 주된 원인이었다.

<인터뷰> 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94년도에 고난의 행군을 맞이하면서 실제적으로 엄청난 전력과 석탄이 소모되기 때문에 북한 경제로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그런 상황에서 공장을 가동할 수 없었고 또한 시설 자체가 굉장히 노후화돼서 생산성이 제대로 안나왔습니다."

지난 2007년 김정일 위원장은 2.8 비날론연합기업소를 재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의 국가적 역량이 함흥에 투입됐고, 2년여 동안의 현대화 공사를 벌인 끝에 지난해 초 2.8 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재가동에 들어갔다.

비날론 공장이 16년만에 다시 돌아가자 북한 관영매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녹취>조선중앙TV(지난해 3월 6일) : "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며 사회주의의 대승리입니다."

김정일 위원장도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녹취>조선중앙TV(지난해 6월 3일)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 수령님께서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겠냐고 수령님의 평생 소원을 드디어 풀어드릴 수 있게 됐다고 뜨겁게 말씀하셨습니다."

북한 당국은 비날론을 경제를 기사회생시키는 회심의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녹취>조선중앙TV(2월 25일) : "우리의 비날론 공업을 통해서 나온 이 제품들을 보니까 정말 흐뭇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구먼요?"

<녹취> 최진근(연구사 박사) : "그렇습니다. 우리 비날론 공업을 통해서 나오는 재부가 단순히 비날론 띠섬유나 비날론 솜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큰 경공업 공장들과 지방 산업 공장들을 도울 수 있는 무진장한 원료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은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를 재가동하면서 CNC, 컴퓨터수치조종 기술에 의한 현대화를 이뤘다고 강조한다.

북한의 선전처럼 비날론 공장이 정상가동된다면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최근에는 비날론이 기능성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강호제(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이학박사) : "총탄도 막을 수 있는 방탄복도 제작이 가능하다고 하고, 그 다음에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방화복도 가능하고, 그 다음에 이게 흡습성이 강한 것 뿐만 아니라 피부에 트러블 이 별로 없다 면처럼. 그래서 이걸 활용하게 되면 수술용 실.. 인체에서 녹아도 되는. 그 리고 비닐봉지를 만들면 그냥 자연에서 녹아 없어지는 분해되는 그런 비닐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비날론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심각한 전력난으로 밤만 되면 북한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는 현실에서 공장이 정상가동되는 것 자체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인터뷰>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비날론을 생산하는데 엄청난 전력과 석탄이 소비가 되고요. 응용할 수 있는 추가 기술이 필요하고 그걸 상업화할 수 있는 엄청난 시설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현재상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이 비날론에 집착하는 건 경제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내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큰소리쳐온 북한에게 ‘비날론’은 상징성이 매우 크다.

<인터뷰>이조원(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강성대국 건설에서 주민들의 먹는 문제, 입는 문제 해결은 중요한 것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 식 방식대로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의 개발된 섬유가 비날 론이고 그런 비날론을 재가동해서 입는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강성대국 건설에서 아주 중요한 문턱을 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그런 맥락에서 비날론에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재가동을 16년만에 다시 시작한 것이 그런 연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후계자 김정은의 치적쌓기다.

<인터뷰>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비날론 공장이 cnc 기술을 통해서 현대화됐다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김정은의 업적,"

김정은의 성과를 통해서 3대 세습을 공고히 하는 측면이 하나 있고. 권력의 3대 세습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북한 정권은 위기 돌파의 수단으로 국제사회가 요청하고 있는 개방과 개혁이 아닌 주체섬유 ‘비날론’을 선택한 것이다.

<인터뷰>조봉현(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비날론 공장이 선전만큼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한테 혜택이 안 갔을 경우에는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북한 당국에 대한 신뢰가 더 깨어지고 이게 북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북한 경제 회생에도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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