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거 박주성 “간신히 일본 탈출”

입력 2011.03.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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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방 흔들려"
"차분하게 차례 기다리는 일본인 모습 인상적"


"그래도 2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지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동료가 많은데 다들 무사한지…."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 뛰는 박주성(27·베갈타 센다이)이 전한 현지 상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박주성이 뛰는 베갈타 센다이는 지난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덮친 사상 최악의 강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센다이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다.

사지를 뚫고 14일 낮에 겨우 한국땅을 밟은 박주성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악몽 같았던 지진과 필사적인 탈출 과정을 전했다.

12일 주말 홈경기를 앞두고 오전 훈련을 마친 박주성은 J리그 진출 초기부터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아온 절친한 동료인 호소카와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오후 2시를 넘겼을 즈음에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생활도 만 2년을 넘긴 터라 어지간한 지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잘 정도로 이골이 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주성은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사방이 흔들렸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고 주변 건물의 유리창과 전기시설이 터져나갔다"고 끔찍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그는 "너무 무서워서 호소카와에게 전화했지만 먹통이었다. 일단 무작정 집을 향해 뛰었다"며 "집에 도착해서도 지진이 멈추지 않아 우왕좌왕했다. 계속 땅이 흔들렸지만, 집안에 있어야 할지 밖으로 나가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다른 일본인 친구가 박주성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와줬다.

전화는 불통이어도 문자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통역을 담당하는 권태호 씨와 접촉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차를 몰고 데리러 온 권 씨와 클럽하우스로 가보니 올해 초 성남 일화에서 센다이로 이적한 조병국(30)이 장모와 아내, 아이 둘을 데리고 먼저 와 있었고 다른 몇몇 동료도 뒤이어 도착했다.

박주성은 "클럽하우스도 안에는 벽체가 뜯겨나가는 등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며 "차 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일본 동료 말에 따라 근처 공터에 차를 모아놓고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마트와 주유소를 돌며 먹을거리와 차에 넣을 기름을 구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차분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박주성의 눈에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간신히 차에 연료를 채우고 요깃거리를 구해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박주성은 비교적 피해가 덜했던 자신의 집으로 동료를 데려가 12일 밤을 보냈지만, 여진이 계속돼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음날 아침 조병국과 함께 클럽하우스를 찾아가 가족만이라도 한국에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구단에 요청했다.

테구라모리 마코토 감독으로부터 "일단 한국 선수들은 귀국하고 브라질 등 멀리서 온 선수들도 각자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대피해 있으면서 연락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탈출도 쉽지 않았다.

조병국의 가족과 피지컬 코치, 통역 등과 함께 야마가타로 출발했으나 주요 도로는 센다이를 빠져나가려는 차량으로 꽉 막혀 주차장이 돼 있었다.

결국 이들은 샛길로 돌고 돌아 겨우 야마가타에 닿았다.

박주성은 "야마가타에서 오사카나 도쿄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어 니가타까지 가서야 14일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표 두 장을 구했다"며 "병국 형이 가족과 함께 움직이겠다고 양보해준 덕에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5일 귀국할 예정이던 조병국도 14일 저녁 출발하는 항공편의 표를 구해 가족과 함께 무사히 귀국했다.

고향인 경남 진해에 계신 부모님과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야 겨우 전화가 연결됐다.

이틀간 생사를 알 수 없어 걱정했던 동료 호소카와와도 연락이 닿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팀 동료는 어디로 어떻게 피신했는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에 다시 나설 때를 대비해 일단 훈련 장소를 알아보는 중이지만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박주성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두렵고 놀라긴 했어도 나는 살아서 나왔으니 다행이지만 다른 지인들은 무사한지 걱정"이라며 "상황이 더는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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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리거 박주성 “간신히 일본 탈출”
    • 입력 2011-03-15 19:48:45
    연합뉴스
"귀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방 흔들려" "차분하게 차례 기다리는 일본인 모습 인상적" "그래도 2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지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동료가 많은데 다들 무사한지…."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 뛰는 박주성(27·베갈타 센다이)이 전한 현지 상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박주성이 뛰는 베갈타 센다이는 지난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덮친 사상 최악의 강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센다이 지역을 연고로 하고 있다. 사지를 뚫고 14일 낮에 겨우 한국땅을 밟은 박주성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악몽 같았던 지진과 필사적인 탈출 과정을 전했다. 12일 주말 홈경기를 앞두고 오전 훈련을 마친 박주성은 J리그 진출 초기부터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아온 절친한 동료인 호소카와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오후 2시를 넘겼을 즈음에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생활도 만 2년을 넘긴 터라 어지간한 지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잘 정도로 이골이 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박주성은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사방이 흔들렸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고 주변 건물의 유리창과 전기시설이 터져나갔다"고 끔찍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그는 "너무 무서워서 호소카와에게 전화했지만 먹통이었다. 일단 무작정 집을 향해 뛰었다"며 "집에 도착해서도 지진이 멈추지 않아 우왕좌왕했다. 계속 땅이 흔들렸지만, 집안에 있어야 할지 밖으로 나가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다른 일본인 친구가 박주성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와줬다. 전화는 불통이어도 문자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통역을 담당하는 권태호 씨와 접촉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차를 몰고 데리러 온 권 씨와 클럽하우스로 가보니 올해 초 성남 일화에서 센다이로 이적한 조병국(30)이 장모와 아내, 아이 둘을 데리고 먼저 와 있었고 다른 몇몇 동료도 뒤이어 도착했다. 박주성은 "클럽하우스도 안에는 벽체가 뜯겨나가는 등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며 "차 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일본 동료 말에 따라 근처 공터에 차를 모아놓고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마트와 주유소를 돌며 먹을거리와 차에 넣을 기름을 구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차분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박주성의 눈에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간신히 차에 연료를 채우고 요깃거리를 구해 클럽하우스로 돌아온 박주성은 비교적 피해가 덜했던 자신의 집으로 동료를 데려가 12일 밤을 보냈지만, 여진이 계속돼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음날 아침 조병국과 함께 클럽하우스를 찾아가 가족만이라도 한국에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구단에 요청했다. 테구라모리 마코토 감독으로부터 "일단 한국 선수들은 귀국하고 브라질 등 멀리서 온 선수들도 각자 안전한 다른 지역으로 대피해 있으면서 연락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탈출도 쉽지 않았다. 조병국의 가족과 피지컬 코치, 통역 등과 함께 야마가타로 출발했으나 주요 도로는 센다이를 빠져나가려는 차량으로 꽉 막혀 주차장이 돼 있었다. 결국 이들은 샛길로 돌고 돌아 겨우 야마가타에 닿았다. 박주성은 "야마가타에서 오사카나 도쿄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어 니가타까지 가서야 14일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표 두 장을 구했다"며 "병국 형이 가족과 함께 움직이겠다고 양보해준 덕에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5일 귀국할 예정이던 조병국도 14일 저녁 출발하는 항공편의 표를 구해 가족과 함께 무사히 귀국했다. 고향인 경남 진해에 계신 부모님과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야 겨우 전화가 연결됐다. 이틀간 생사를 알 수 없어 걱정했던 동료 호소카와와도 연락이 닿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팀 동료는 어디로 어떻게 피신했는지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에 다시 나설 때를 대비해 일단 훈련 장소를 알아보는 중이지만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박주성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두렵고 놀라긴 했어도 나는 살아서 나왔으니 다행이지만 다른 지인들은 무사한지 걱정"이라며 "상황이 더는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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