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곡 채운 5집…25년 만에 해외 시장 재도전
1980년대를 주름잡은 록그룹 백두산(유현상, 김도균, 경호진, 박찬). 정작 백두산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백두산에서 공연하는 날을 꿈꾼다는 멤버들은 기개 하나만은 정말 백두산을 닮은 듯하다. 이들이 이런 기개를 앞세워 25년 만에 해외 시장 재도전에 나선다.
2년 만에 발표한 5집 ’러시 투 더 월드(Rush to the World)’는 한국 록을 해외 시장에 알리겠다는 목표를 담은 음반이다. 전곡이 영어곡으로 채워졌고 워너뮤직과 손잡고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백두산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25년 전 영어곡으로 채운 2집을 냈을 때 일본 등 해외에서 더 큰 박수를 보내줬다"며 "당시 수록곡 ’업 인 더 스카이(Up in the sky)’ 같은 곡은 지금도 해외에서 불린다. 그때 꿈을 다시 실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년 멤버인 리더 유현상과 김도균의 감회는 남다르다.
"25년 전은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을 외국에 수출할까’하고 막연히 꿈만 꾸던 시절이었어요. 그저 우리끼리 즐기고 감탄하는 게 아쉬웠죠. 그때 생각을 잊지 않았어요. 오페라도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자연스럽듯이 록도 본고장 언어인 영어로 부를 때 감칠맛이 날 것 같았죠."(유현상, 김도균)
5집은 탄탄한 록 사운드로 무장했다.
전곡을 작곡하고 노래한 유현상과 국내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실력파 김도균에 테크니컬한 사운드의 베이시스트인 경호진과 ’파워 스틱’으로 불리는 드러마 박찬이 ’젊은 피’로 가세해 신구 세대가 호흡을 맞췄다.
유현상은 "나와 김도균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1970년대 하드록의 정서를 지녔고, 경호진과 박찬은 요즘 세대의 테크니컬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를 갖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백두산 음악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헤비메탈, 블루스, 재즈, 펑크 등 다양한 장르가 혼재됐지만 ’날 것’ 같은 거친 사운드를 통해 음반의 10트랙은 통일성을 갖췄다.
첫 트랙 ’러시 투 더 월드’부터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유현상의 샤우팅 창법은 기타 리플과 드럼 비트를 타며 내달린다.
한글과 영어 버전으로 담은 두곡의 타이틀곡 ’소리쳐(Shout It Out)’와 ’저스트 포 유(Just For You)’는 강렬한 사운드에 세련된 멜로디 라인이 파고들어 대중적이다.
하드록의 정통성을 담은 ’싱 잇 아웃(Sing It Out)’, 2집 곡을 편곡한 ’위민 드라이빙 하이웨이(Women Driving Highway)’도 손꼽을 곡이다.
전곡의 영어 가사는 유현상의 고 3 아들인 유동균 군이 3일 만에 썼다.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가사를 쓴 덕에 시대에 발맞춘 젊은 사고가 담겼다는 게 유현상의 설명이다.
노랫말에는 자연재해와 경제 위기 속에 실의에 빠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 용기, 꿈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담겼다. 유현상은 1960-70년대 원년 멤버가 다져온 음악에 새 멤버들의 단단한 리듬, 아들의 가사가 더해지자 음악이 한층 싱싱해졌다고 자평했다.
유현상은 "백두산은 4집까지 사랑과 이별보다 미래적이고 진취적인 용기와 꿈을 표현했다"며 "아들에게도 ’네가 지금 느끼는 관심사를 담아보라’고 했는데 나와 생각이 맞닿았다. 아들이 이해하기 쉬운 노랫말로 써줬고 고마운 마음에 내 빨간 펜더 기타를 선물했다"고 웃었다.
이번 음반이 나오기까지 백두산의 역사에는 심한 부침이 있었다.
1982년 결성된 후 1986년 1집을 내고 1987년 2집을 끝으로 해체됐다. 1992년 유현상이 빠진 상태에서 김도균이 이끌며 3집을 냈지만 다시 공백기를 겪었다. 이어 2009년 원년 멤버들이 뭉쳐 4집을 냈지만 다시 드러머 한춘근과 베이시스트 김창식이 빠지고 5집에선 멤버를 재구성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때 유현상은 ’여자야’란 트로트 곡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다.
"백두산 시절 개런티가 형편없었죠. (전 수영스타 최윤희와) 결혼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커 힘들었어요. 그때 ’여자야’란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히트했죠. 이때 업소 사장이 개런티를 주는데 믿지 못할 금액이었어요. 이때도 무대에선 ’여자야’를 부르며 차에선 ’업 인 더 스카이’를 들었죠. 이 시간은 지금의 음악 여정을 가능하게 해준 휴식기였어요."(유현상)
그러나 당시보다 지금의 록 시장은 더욱 척박해졌다.
유현상과 김도균은 "우리를 비롯한 록 뮤지션들의 책임이 크다"며 "세계 록음악 팬들이 인정하는 소리의 기준이 있는데 그만큼 노력을 안 했으니 대우를 못 받는 것이다. 비 같은 젊은 후배들이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지금 사랑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백두산을 통해 후배들이 ’형님들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나’란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맏형들을 보며 씨엔블루 같은 아이돌 밴드, 발전 가능성 높은 인디 밴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30년 째 놓지 못한 록의 매력을 물었다.
"갱스터 힙합, 아이돌 댄스 음악도 백두산의 음악과 다를 바 없어요. 젊음이 흐르니까요. 록은 자유이고 젊음이거든요."
1980년대를 주름잡은 록그룹 백두산(유현상, 김도균, 경호진, 박찬). 정작 백두산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백두산에서 공연하는 날을 꿈꾼다는 멤버들은 기개 하나만은 정말 백두산을 닮은 듯하다. 이들이 이런 기개를 앞세워 25년 만에 해외 시장 재도전에 나선다.
2년 만에 발표한 5집 ’러시 투 더 월드(Rush to the World)’는 한국 록을 해외 시장에 알리겠다는 목표를 담은 음반이다. 전곡이 영어곡으로 채워졌고 워너뮤직과 손잡고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백두산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25년 전 영어곡으로 채운 2집을 냈을 때 일본 등 해외에서 더 큰 박수를 보내줬다"며 "당시 수록곡 ’업 인 더 스카이(Up in the sky)’ 같은 곡은 지금도 해외에서 불린다. 그때 꿈을 다시 실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년 멤버인 리더 유현상과 김도균의 감회는 남다르다.
"25년 전은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을 외국에 수출할까’하고 막연히 꿈만 꾸던 시절이었어요. 그저 우리끼리 즐기고 감탄하는 게 아쉬웠죠. 그때 생각을 잊지 않았어요. 오페라도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자연스럽듯이 록도 본고장 언어인 영어로 부를 때 감칠맛이 날 것 같았죠."(유현상, 김도균)
5집은 탄탄한 록 사운드로 무장했다.
전곡을 작곡하고 노래한 유현상과 국내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실력파 김도균에 테크니컬한 사운드의 베이시스트인 경호진과 ’파워 스틱’으로 불리는 드러마 박찬이 ’젊은 피’로 가세해 신구 세대가 호흡을 맞췄다.
유현상은 "나와 김도균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1970년대 하드록의 정서를 지녔고, 경호진과 박찬은 요즘 세대의 테크니컬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를 갖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백두산 음악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헤비메탈, 블루스, 재즈, 펑크 등 다양한 장르가 혼재됐지만 ’날 것’ 같은 거친 사운드를 통해 음반의 10트랙은 통일성을 갖췄다.
첫 트랙 ’러시 투 더 월드’부터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유현상의 샤우팅 창법은 기타 리플과 드럼 비트를 타며 내달린다.
한글과 영어 버전으로 담은 두곡의 타이틀곡 ’소리쳐(Shout It Out)’와 ’저스트 포 유(Just For You)’는 강렬한 사운드에 세련된 멜로디 라인이 파고들어 대중적이다.
하드록의 정통성을 담은 ’싱 잇 아웃(Sing It Out)’, 2집 곡을 편곡한 ’위민 드라이빙 하이웨이(Women Driving Highway)’도 손꼽을 곡이다.
전곡의 영어 가사는 유현상의 고 3 아들인 유동균 군이 3일 만에 썼다.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가사를 쓴 덕에 시대에 발맞춘 젊은 사고가 담겼다는 게 유현상의 설명이다.
노랫말에는 자연재해와 경제 위기 속에 실의에 빠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 용기, 꿈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담겼다. 유현상은 1960-70년대 원년 멤버가 다져온 음악에 새 멤버들의 단단한 리듬, 아들의 가사가 더해지자 음악이 한층 싱싱해졌다고 자평했다.
유현상은 "백두산은 4집까지 사랑과 이별보다 미래적이고 진취적인 용기와 꿈을 표현했다"며 "아들에게도 ’네가 지금 느끼는 관심사를 담아보라’고 했는데 나와 생각이 맞닿았다. 아들이 이해하기 쉬운 노랫말로 써줬고 고마운 마음에 내 빨간 펜더 기타를 선물했다"고 웃었다.
이번 음반이 나오기까지 백두산의 역사에는 심한 부침이 있었다.
1982년 결성된 후 1986년 1집을 내고 1987년 2집을 끝으로 해체됐다. 1992년 유현상이 빠진 상태에서 김도균이 이끌며 3집을 냈지만 다시 공백기를 겪었다. 이어 2009년 원년 멤버들이 뭉쳐 4집을 냈지만 다시 드러머 한춘근과 베이시스트 김창식이 빠지고 5집에선 멤버를 재구성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때 유현상은 ’여자야’란 트로트 곡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다.
"백두산 시절 개런티가 형편없었죠. (전 수영스타 최윤희와) 결혼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커 힘들었어요. 그때 ’여자야’란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히트했죠. 이때 업소 사장이 개런티를 주는데 믿지 못할 금액이었어요. 이때도 무대에선 ’여자야’를 부르며 차에선 ’업 인 더 스카이’를 들었죠. 이 시간은 지금의 음악 여정을 가능하게 해준 휴식기였어요."(유현상)
그러나 당시보다 지금의 록 시장은 더욱 척박해졌다.
유현상과 김도균은 "우리를 비롯한 록 뮤지션들의 책임이 크다"며 "세계 록음악 팬들이 인정하는 소리의 기준이 있는데 그만큼 노력을 안 했으니 대우를 못 받는 것이다. 비 같은 젊은 후배들이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지금 사랑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백두산을 통해 후배들이 ’형님들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나’란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맏형들을 보며 씨엔블루 같은 아이돌 밴드, 발전 가능성 높은 인디 밴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30년 째 놓지 못한 록의 매력을 물었다.
"갱스터 힙합, 아이돌 댄스 음악도 백두산의 음악과 다를 바 없어요. 젊음이 흐르니까요. 록은 자유이고 젊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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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록은 자유·젊음…해외에 한국록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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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4-14 14:30:37

영어곡 채운 5집…25년 만에 해외 시장 재도전
1980년대를 주름잡은 록그룹 백두산(유현상, 김도균, 경호진, 박찬). 정작 백두산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백두산에서 공연하는 날을 꿈꾼다는 멤버들은 기개 하나만은 정말 백두산을 닮은 듯하다. 이들이 이런 기개를 앞세워 25년 만에 해외 시장 재도전에 나선다.
2년 만에 발표한 5집 ’러시 투 더 월드(Rush to the World)’는 한국 록을 해외 시장에 알리겠다는 목표를 담은 음반이다. 전곡이 영어곡으로 채워졌고 워너뮤직과 손잡고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백두산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25년 전 영어곡으로 채운 2집을 냈을 때 일본 등 해외에서 더 큰 박수를 보내줬다"며 "당시 수록곡 ’업 인 더 스카이(Up in the sky)’ 같은 곡은 지금도 해외에서 불린다. 그때 꿈을 다시 실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년 멤버인 리더 유현상과 김도균의 감회는 남다르다.
"25년 전은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을 외국에 수출할까’하고 막연히 꿈만 꾸던 시절이었어요. 그저 우리끼리 즐기고 감탄하는 게 아쉬웠죠. 그때 생각을 잊지 않았어요. 오페라도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자연스럽듯이 록도 본고장 언어인 영어로 부를 때 감칠맛이 날 것 같았죠."(유현상, 김도균)
5집은 탄탄한 록 사운드로 무장했다.
전곡을 작곡하고 노래한 유현상과 국내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실력파 김도균에 테크니컬한 사운드의 베이시스트인 경호진과 ’파워 스틱’으로 불리는 드러마 박찬이 ’젊은 피’로 가세해 신구 세대가 호흡을 맞췄다.
유현상은 "나와 김도균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1970년대 하드록의 정서를 지녔고, 경호진과 박찬은 요즘 세대의 테크니컬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를 갖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백두산 음악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헤비메탈, 블루스, 재즈, 펑크 등 다양한 장르가 혼재됐지만 ’날 것’ 같은 거친 사운드를 통해 음반의 10트랙은 통일성을 갖췄다.
첫 트랙 ’러시 투 더 월드’부터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유현상의 샤우팅 창법은 기타 리플과 드럼 비트를 타며 내달린다.
한글과 영어 버전으로 담은 두곡의 타이틀곡 ’소리쳐(Shout It Out)’와 ’저스트 포 유(Just For You)’는 강렬한 사운드에 세련된 멜로디 라인이 파고들어 대중적이다.
하드록의 정통성을 담은 ’싱 잇 아웃(Sing It Out)’, 2집 곡을 편곡한 ’위민 드라이빙 하이웨이(Women Driving Highway)’도 손꼽을 곡이다.
전곡의 영어 가사는 유현상의 고 3 아들인 유동균 군이 3일 만에 썼다.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가사를 쓴 덕에 시대에 발맞춘 젊은 사고가 담겼다는 게 유현상의 설명이다.
노랫말에는 자연재해와 경제 위기 속에 실의에 빠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 용기, 꿈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담겼다. 유현상은 1960-70년대 원년 멤버가 다져온 음악에 새 멤버들의 단단한 리듬, 아들의 가사가 더해지자 음악이 한층 싱싱해졌다고 자평했다.
유현상은 "백두산은 4집까지 사랑과 이별보다 미래적이고 진취적인 용기와 꿈을 표현했다"며 "아들에게도 ’네가 지금 느끼는 관심사를 담아보라’고 했는데 나와 생각이 맞닿았다. 아들이 이해하기 쉬운 노랫말로 써줬고 고마운 마음에 내 빨간 펜더 기타를 선물했다"고 웃었다.
이번 음반이 나오기까지 백두산의 역사에는 심한 부침이 있었다.
1982년 결성된 후 1986년 1집을 내고 1987년 2집을 끝으로 해체됐다. 1992년 유현상이 빠진 상태에서 김도균이 이끌며 3집을 냈지만 다시 공백기를 겪었다. 이어 2009년 원년 멤버들이 뭉쳐 4집을 냈지만 다시 드러머 한춘근과 베이시스트 김창식이 빠지고 5집에선 멤버를 재구성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때 유현상은 ’여자야’란 트로트 곡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다.
"백두산 시절 개런티가 형편없었죠. (전 수영스타 최윤희와) 결혼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커 힘들었어요. 그때 ’여자야’란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히트했죠. 이때 업소 사장이 개런티를 주는데 믿지 못할 금액이었어요. 이때도 무대에선 ’여자야’를 부르며 차에선 ’업 인 더 스카이’를 들었죠. 이 시간은 지금의 음악 여정을 가능하게 해준 휴식기였어요."(유현상)
그러나 당시보다 지금의 록 시장은 더욱 척박해졌다.
유현상과 김도균은 "우리를 비롯한 록 뮤지션들의 책임이 크다"며 "세계 록음악 팬들이 인정하는 소리의 기준이 있는데 그만큼 노력을 안 했으니 대우를 못 받는 것이다. 비 같은 젊은 후배들이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지금 사랑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백두산을 통해 후배들이 ’형님들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나’란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맏형들을 보며 씨엔블루 같은 아이돌 밴드, 발전 가능성 높은 인디 밴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30년 째 놓지 못한 록의 매력을 물었다.
"갱스터 힙합, 아이돌 댄스 음악도 백두산의 음악과 다를 바 없어요. 젊음이 흐르니까요. 록은 자유이고 젊음이거든요."
1980년대를 주름잡은 록그룹 백두산(유현상, 김도균, 경호진, 박찬). 정작 백두산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백두산에서 공연하는 날을 꿈꾼다는 멤버들은 기개 하나만은 정말 백두산을 닮은 듯하다. 이들이 이런 기개를 앞세워 25년 만에 해외 시장 재도전에 나선다.
2년 만에 발표한 5집 ’러시 투 더 월드(Rush to the World)’는 한국 록을 해외 시장에 알리겠다는 목표를 담은 음반이다. 전곡이 영어곡으로 채워졌고 워너뮤직과 손잡고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백두산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25년 전 영어곡으로 채운 2집을 냈을 때 일본 등 해외에서 더 큰 박수를 보내줬다"며 "당시 수록곡 ’업 인 더 스카이(Up in the sky)’ 같은 곡은 지금도 해외에서 불린다. 그때 꿈을 다시 실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년 멤버인 리더 유현상과 김도균의 감회는 남다르다.
"25년 전은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을 외국에 수출할까’하고 막연히 꿈만 꾸던 시절이었어요. 그저 우리끼리 즐기고 감탄하는 게 아쉬웠죠. 그때 생각을 잊지 않았어요. 오페라도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자연스럽듯이 록도 본고장 언어인 영어로 부를 때 감칠맛이 날 것 같았죠."(유현상, 김도균)
5집은 탄탄한 록 사운드로 무장했다.
전곡을 작곡하고 노래한 유현상과 국내 3대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실력파 김도균에 테크니컬한 사운드의 베이시스트인 경호진과 ’파워 스틱’으로 불리는 드러마 박찬이 ’젊은 피’로 가세해 신구 세대가 호흡을 맞췄다.
유현상은 "나와 김도균은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1970년대 하드록의 정서를 지녔고, 경호진과 박찬은 요즘 세대의 테크니컬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를 갖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백두산 음악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헤비메탈, 블루스, 재즈, 펑크 등 다양한 장르가 혼재됐지만 ’날 것’ 같은 거친 사운드를 통해 음반의 10트랙은 통일성을 갖췄다.
첫 트랙 ’러시 투 더 월드’부터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유현상의 샤우팅 창법은 기타 리플과 드럼 비트를 타며 내달린다.
한글과 영어 버전으로 담은 두곡의 타이틀곡 ’소리쳐(Shout It Out)’와 ’저스트 포 유(Just For You)’는 강렬한 사운드에 세련된 멜로디 라인이 파고들어 대중적이다.
하드록의 정통성을 담은 ’싱 잇 아웃(Sing It Out)’, 2집 곡을 편곡한 ’위민 드라이빙 하이웨이(Women Driving Highway)’도 손꼽을 곡이다.
전곡의 영어 가사는 유현상의 고 3 아들인 유동균 군이 3일 만에 썼다.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가사를 쓴 덕에 시대에 발맞춘 젊은 사고가 담겼다는 게 유현상의 설명이다.
노랫말에는 자연재해와 경제 위기 속에 실의에 빠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 용기, 꿈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담겼다. 유현상은 1960-70년대 원년 멤버가 다져온 음악에 새 멤버들의 단단한 리듬, 아들의 가사가 더해지자 음악이 한층 싱싱해졌다고 자평했다.
유현상은 "백두산은 4집까지 사랑과 이별보다 미래적이고 진취적인 용기와 꿈을 표현했다"며 "아들에게도 ’네가 지금 느끼는 관심사를 담아보라’고 했는데 나와 생각이 맞닿았다. 아들이 이해하기 쉬운 노랫말로 써줬고 고마운 마음에 내 빨간 펜더 기타를 선물했다"고 웃었다.
이번 음반이 나오기까지 백두산의 역사에는 심한 부침이 있었다.
1982년 결성된 후 1986년 1집을 내고 1987년 2집을 끝으로 해체됐다. 1992년 유현상이 빠진 상태에서 김도균이 이끌며 3집을 냈지만 다시 공백기를 겪었다. 이어 2009년 원년 멤버들이 뭉쳐 4집을 냈지만 다시 드러머 한춘근과 베이시스트 김창식이 빠지고 5집에선 멤버를 재구성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때 유현상은 ’여자야’란 트로트 곡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다.
"백두산 시절 개런티가 형편없었죠. (전 수영스타 최윤희와) 결혼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커 힘들었어요. 그때 ’여자야’란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히트했죠. 이때 업소 사장이 개런티를 주는데 믿지 못할 금액이었어요. 이때도 무대에선 ’여자야’를 부르며 차에선 ’업 인 더 스카이’를 들었죠. 이 시간은 지금의 음악 여정을 가능하게 해준 휴식기였어요."(유현상)
그러나 당시보다 지금의 록 시장은 더욱 척박해졌다.
유현상과 김도균은 "우리를 비롯한 록 뮤지션들의 책임이 크다"며 "세계 록음악 팬들이 인정하는 소리의 기준이 있는데 그만큼 노력을 안 했으니 대우를 못 받는 것이다. 비 같은 젊은 후배들이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지금 사랑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백두산을 통해 후배들이 ’형님들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나’란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맏형들을 보며 씨엔블루 같은 아이돌 밴드, 발전 가능성 높은 인디 밴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30년 째 놓지 못한 록의 매력을 물었다.
"갱스터 힙합, 아이돌 댄스 음악도 백두산의 음악과 다를 바 없어요. 젊음이 흐르니까요. 록은 자유이고 젊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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