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불만’ 바둑 한국리그 어수선

입력 2011.04.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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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은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공지문을 게재했다. 양재호 사무총장 명의의 공지문은 바둑팬과 신안천일염팀에 사과하는 글이었다.



4월5일 열렸던 한국리그 선수선발 방식에 대한 이세돌의 이의제기에 한국기원의 실수를 인정한 조치로, 그 과정에서 ’바둑리그 운영위원’인 2명의 한국기원 직원은 문책을 받았고 바둑TV 담당팀장이 좌천되는 등 후폭풍이 몰아쳤다.



이세돌이 제기한 문제점은 무엇이고, 한국기원은 왜 사과를 해야 했을까.



◇한국리그는



 이번에 선수선발 방식이 문제가 된 한국리그는 바둑계의 유일한 팀 대항단체전이다.



2003년 ’드림리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국리그는 야구계를 벤치마킹해 개인전 일색이던 한국바둑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바둑의 체육화와 맞물려 감독제를 도입하고 지역연고도 만들었다.



유니폼을 차려입은 프로기사들은 ’사범’이 아닌 ’선수’로 불렸다.



이런 가운데 총예산 2억4천만원의 대회는 8년 만에 29억으로 몸집이 커졌다.



리그가 100억원이 조금 넘는 한국바둑대회 총예산의 30%에 육박하는 거대 대회로 성장한 것이다. ’바둑리거’가 되면 1년 농사는 다 지은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선수 구성은 



한국리그의 팀당 선수는 6명이다.



이 중 2명의 보호선수(전년도 보유 선수 중 드래프트 시장에 내놓지 않는 선수)와 1명의 자율지명선수(본선 시드를 받는 랭킹 24위 이외의 선수 중 팀당 1명씩 임의로 지명하는 선수)는 사전지명한다.



나머지 3명은 드래프트 시장에서 선발한다. 드래프트 순번은 추첨으로 정하는데 팀전력의 주요 변수가 되는 만큼 각 팀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5일의 사전지명식에서는 각팀의 보호선수, 자율지명선수와 함께 25일 개막식에서 열릴 드래프트 순번까지 결정됐다.



그러나 이세돌을 보호선수로 지명한 신안천일염 팀은 추첨 없이 1번으로 배정됐고, 이세돌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하며 대회불참까지 시사해 사태가 시작됐다.



◇이세돌과 신안팀 관계는 



신안팀의 1번 고정은 이세돌과 신안군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됐다. 신안은 이세돌을 보고 창단한 팀이다. 신안군 비금도 출신인 이세돌이 다른 팀에서 뛴다는 것은 신안군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격의 이세돌은 2009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안팀 소속으로 결정되자 이에 반발하며 대회불참을 선언했다. 대표기전이 1인자 없이 운영될 위기를 맞자 프로기사회는 총회를 열어 이세돌의 징계를 결의했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이라는 강수를 던지고 잠적했다.



강동윤을 주장으로 1년간 팀을 꾸려온 신안팀은 올해 복직한 이세돌을 고향팀에서 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국기원에 요청했다.



결국 한국기원은 올 3월 회의를 열어 다른 팀의 양해하에 이세돌을 신안에 양도하기로 했다.



이로써 신안은 보호선수 지명을 포기하고 드래프트 1번으로 고정되는 형식으로 이세돌을 품에 안게 됐다. 1인자를 데려갔으니 2∼3지명에서 선수를 가장 나중에 뽑는 1번 고정이 형평성에 맞다는 취지였다.



◇왜 문제가 불거졌나 



현행 규정에서 팀은 원하는 선수를 3년간 보호선수로 묶을 수 있다. 따라서 신안은 이세돌을 3년간 보유할 수 있다. 문제는 신안의 1번 고정에 대한 한국기원과 이세돌의 시각차다.



한국기원의 주장은 애초 다른 팀의 양보로 이세돌을 데리고 갔으니 보유기간인 3년 동안 1번 고정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세돌 자신은 지난해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만큼 올해는 다른 팀과 같은 자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명확히 규정지어야 했으나 한국기원은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는 실수를 범해 혼란을 자초했다.



한국기원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행정실수’를 공개사과했다. 이세돌도 사과문이 발표된 직후, 한국리그 참가 의사에 대한 질문에 "공식사과까지 했다면야…."라며 참가의 뜻을 밝혀 사태는 일단 봉합되는 단계다.



◇앞으로 전망은 



그러나 분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신안에 이세돌을 양보했던 다른 팀들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리그에 신안팀만 있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추첨 순번 갈등’이라는 사소한 다툼으로 보이는 이번 사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한국리그는 프로 스포츠를 표방하고 있지만 다른 스포츠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겉으로는 선수가 팀에 소속돼 있는 구단제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국수전이나 명인전 같은 국내대회를 단체전으로 만든 것뿐이다.



한국리그 선수들은 근본적으로 팀이 아닌 한국기원 소속이어서 팀 전지훈련을 갈 때도 한국기원의 일정을 피해야 한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기본인 연봉계약도 선수개별적으로 하지 않고 대회 주최사가 정한 상금 한도에서 지급한다.



팀은 수시로 리그참여를 포기해 리그의 안정적 유지도 어렵다. 올해도 충북&건국우유가 리그참여 포기를 선언해 리그를 벌이는 팀이 8개로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팬들은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데도 어떤 선수가 어떤 팀 소속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팀이 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최 측은 명확한 규정보다는 임시방편식의 일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처지가 되기도 한다.



선수와 팀, 그리고 한국기원과 바둑TV 등 관련단체들의 이해관계도 난마와 같이 얽혀 있다.



프로기사들의 발언권이 강한 바둑계가 구단의 선수장악력이 강력한 축구나 야구와 같은 구단제로 정착하기까지 많은 진통이 예상되는 이유다.



바둑계 전통방식을 고수할지, 아니면 ’구단제’로 대변되는 새 시대에 적응할지에 관한 한국기원의 고민은 이세돌의 불만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바둑 동네’의 분란을 풀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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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돌 불만’ 바둑 한국리그 어수선
    • 입력 2011-04-15 14:10:57
    연합뉴스
한국기원은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공지문을 게재했다. 양재호 사무총장 명의의 공지문은 바둑팬과 신안천일염팀에 사과하는 글이었다.

4월5일 열렸던 한국리그 선수선발 방식에 대한 이세돌의 이의제기에 한국기원의 실수를 인정한 조치로, 그 과정에서 ’바둑리그 운영위원’인 2명의 한국기원 직원은 문책을 받았고 바둑TV 담당팀장이 좌천되는 등 후폭풍이 몰아쳤다.

이세돌이 제기한 문제점은 무엇이고, 한국기원은 왜 사과를 해야 했을까.

◇한국리그는

 이번에 선수선발 방식이 문제가 된 한국리그는 바둑계의 유일한 팀 대항단체전이다.

2003년 ’드림리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국리그는 야구계를 벤치마킹해 개인전 일색이던 한국바둑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바둑의 체육화와 맞물려 감독제를 도입하고 지역연고도 만들었다.

유니폼을 차려입은 프로기사들은 ’사범’이 아닌 ’선수’로 불렸다.

이런 가운데 총예산 2억4천만원의 대회는 8년 만에 29억으로 몸집이 커졌다.

리그가 100억원이 조금 넘는 한국바둑대회 총예산의 30%에 육박하는 거대 대회로 성장한 것이다. ’바둑리거’가 되면 1년 농사는 다 지은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선수 구성은 

한국리그의 팀당 선수는 6명이다.

이 중 2명의 보호선수(전년도 보유 선수 중 드래프트 시장에 내놓지 않는 선수)와 1명의 자율지명선수(본선 시드를 받는 랭킹 24위 이외의 선수 중 팀당 1명씩 임의로 지명하는 선수)는 사전지명한다.

나머지 3명은 드래프트 시장에서 선발한다. 드래프트 순번은 추첨으로 정하는데 팀전력의 주요 변수가 되는 만큼 각 팀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5일의 사전지명식에서는 각팀의 보호선수, 자율지명선수와 함께 25일 개막식에서 열릴 드래프트 순번까지 결정됐다.

그러나 이세돌을 보호선수로 지명한 신안천일염 팀은 추첨 없이 1번으로 배정됐고, 이세돌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하며 대회불참까지 시사해 사태가 시작됐다.

◇이세돌과 신안팀 관계는 

신안팀의 1번 고정은 이세돌과 신안군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됐다. 신안은 이세돌을 보고 창단한 팀이다. 신안군 비금도 출신인 이세돌이 다른 팀에서 뛴다는 것은 신안군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격의 이세돌은 2009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안팀 소속으로 결정되자 이에 반발하며 대회불참을 선언했다. 대표기전이 1인자 없이 운영될 위기를 맞자 프로기사회는 총회를 열어 이세돌의 징계를 결의했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이라는 강수를 던지고 잠적했다.

강동윤을 주장으로 1년간 팀을 꾸려온 신안팀은 올해 복직한 이세돌을 고향팀에서 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국기원에 요청했다.

결국 한국기원은 올 3월 회의를 열어 다른 팀의 양해하에 이세돌을 신안에 양도하기로 했다.

이로써 신안은 보호선수 지명을 포기하고 드래프트 1번으로 고정되는 형식으로 이세돌을 품에 안게 됐다. 1인자를 데려갔으니 2∼3지명에서 선수를 가장 나중에 뽑는 1번 고정이 형평성에 맞다는 취지였다.

◇왜 문제가 불거졌나 

현행 규정에서 팀은 원하는 선수를 3년간 보호선수로 묶을 수 있다. 따라서 신안은 이세돌을 3년간 보유할 수 있다. 문제는 신안의 1번 고정에 대한 한국기원과 이세돌의 시각차다.

한국기원의 주장은 애초 다른 팀의 양보로 이세돌을 데리고 갔으니 보유기간인 3년 동안 1번 고정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세돌 자신은 지난해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만큼 올해는 다른 팀과 같은 자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명확히 규정지어야 했으나 한국기원은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는 실수를 범해 혼란을 자초했다.

한국기원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행정실수’를 공개사과했다. 이세돌도 사과문이 발표된 직후, 한국리그 참가 의사에 대한 질문에 "공식사과까지 했다면야…."라며 참가의 뜻을 밝혀 사태는 일단 봉합되는 단계다.

◇앞으로 전망은 

그러나 분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신안에 이세돌을 양보했던 다른 팀들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리그에 신안팀만 있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추첨 순번 갈등’이라는 사소한 다툼으로 보이는 이번 사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한국리그는 프로 스포츠를 표방하고 있지만 다른 스포츠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겉으로는 선수가 팀에 소속돼 있는 구단제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국수전이나 명인전 같은 국내대회를 단체전으로 만든 것뿐이다.

한국리그 선수들은 근본적으로 팀이 아닌 한국기원 소속이어서 팀 전지훈련을 갈 때도 한국기원의 일정을 피해야 한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기본인 연봉계약도 선수개별적으로 하지 않고 대회 주최사가 정한 상금 한도에서 지급한다.

팀은 수시로 리그참여를 포기해 리그의 안정적 유지도 어렵다. 올해도 충북&건국우유가 리그참여 포기를 선언해 리그를 벌이는 팀이 8개로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팬들은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데도 어떤 선수가 어떤 팀 소속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팀이 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최 측은 명확한 규정보다는 임시방편식의 일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난처한 처지가 되기도 한다.

선수와 팀, 그리고 한국기원과 바둑TV 등 관련단체들의 이해관계도 난마와 같이 얽혀 있다.

프로기사들의 발언권이 강한 바둑계가 구단의 선수장악력이 강력한 축구나 야구와 같은 구단제로 정착하기까지 많은 진통이 예상되는 이유다.

바둑계 전통방식을 고수할지, 아니면 ’구단제’로 대변되는 새 시대에 적응할지에 관한 한국기원의 고민은 이세돌의 불만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바둑 동네’의 분란을 풀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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