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백화점’ 저축은행…금감원은 뭐했나?

입력 2011.05.02 (11:21) 수정 2011.05.0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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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불법과 편법의 백화점이었다.

대주주에게 한도를 넘는 대출을 해주기 위해 금융회사라고 생각될 수 없을 만큼 각종 편법을 동원했다.

이에 앞서 부산저축은행은 금융감독원 검사결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올리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을 일삼은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검찰이 영업정지 직전 임직원들의 불법예금인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금융기관으로서 부산저축은행은 `도덕적 해이'가 아닌 `도덕성 상실' 수준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행위가 최소한 수년동안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것.

대주주의 불법행위에 대한 경고가 오래전부터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불법행위도 각양각색 = 검찰은 부산계열 저축은행의 실체를 `전국 최대 규모의 시행사'로 정의했다.

그룹차원에서 임직원 지인들의 차명으로 120개에 달하는 시행사를 차려놓고 각종 투기적 개발사업을 벌인 뒤 저축은행 돈을 투자했다는 것.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6개월여간 부산계열저축은행이 대주주가 차려놓은 시행사에 대출한 돈은 4조5천942억원에 달했다.

부산계열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차린 시행사에 대한 채권이 부실화되자 차명으로 7천500억원 상당의 무담보 신용대출을 일으켜 연체이자를 상환하는 등 철저하게 대주주의 사금고 역할을 했다.

대주주들은 또 회계분식을 통해 BIS 비율을 높여 감독기관의 감시를 피하고, 이익을 부풀려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지난 2008년과 2009 회계연도에 부산계열저축은행의 분식회계 규모는 모두 2조4천533억원에 달한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6월말 BIS비율이 8.33%에 달했지만, 영업정지 이후 금감원이 장부를 들여다본 결과 -50.29%로 나타났다.

부산저축은행은 1조6천800억원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었지만 분식회계를 통해 지난 2008년과 2009년엔 장부상 흑자로 탈바꿈했다.

분식회계에는 연체 중인 대주주의 시행사에 신규대출을 해준 뒤 그 돈으로 이자를 갚아 부실을 감추는 등의 방법이 사용됐다. 이자수익을 과다계상하고, 대출채권의 자산건전성을 허위분류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각 계열 저축은행의 대표이사와 회계팀 임직원, 영업팀 임직원들이 총동원됐고, 감사들도 이 같은 행위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인 분식회계가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분식회계자료가 제공된 것은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수신고를 올리고 후순위채를 판매한 것도 모두 분식회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대주주들은 분식회계를 통해 거액의 배당금과 연봉을 챙겼다.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부산과 부산2저축은행은 모두 640억원을 배당했고, 이 가운데 박연호 회장 등 대주주들은 절반이 넘는 329억원을 챙겼다.

대주주의 개인채무 변제를 위한 횡령행위도 발견됐다. 부산과 부산2저축은행은 44억5천만원을 횡령해 박 회장의 개인채무 변제에 사용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박연호 회장을 비롯한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와 임원들이 영업정지 직전 부산1·2저축은행 등 계열은행에 개설한 자신의 차명계좌나 친인척, 지인 계좌에서 거액을 부정인출한 정황도 확인했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며칠전부터 배우자 명의 정기예금 1억7천100만원을 중도해지했다. 특히 박 회장은 영업정지 다음날 자신의 부동산에 친구 명의로 10억원의 근저당설정을 하는 등 재산을 은닉한 정황도 발견됐다.

◇"금감원은 여태껏 뭐했나" 비판도

이처럼 부산저축은행계열이 저지른 온갖 불법행위와 도덕성 상실의 심각성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면서 감독당국이 제때 관리·예방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비정상적으로 늘려 단기간에 연결자산 기준 업계 1위로 도약한 이면에 대주주 불법대출과 회계 조작 등이 숨어 있었지만, 금감원 검사에서는 이를 좀처럼 적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금감원은 검찰처럼 강제 수사권이나 계좌 추적권이 없는 데다 제한된 인력으로 저축은행이 마음먹고 저지르는 불법과 은폐를 통상적인 검사로 적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의 감시망이 촘촘하지 못했다는 게 검찰의 지적이다. 검찰은 이날 수사 브리핑에서 대주주가 지배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PF 사업장에 5조3천억원의 차명대출이 이뤄진 것과 관련해 "금감원이 PF 대출에 대해 제대로 검사만 했더라도 충분히 불법 대출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저축은행의 5개 계열 가운데 4개 계열사에 금감원 출신 직원이 감사로 내려갔는데도 이들은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감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는커녕 불법대출이나 분식회계에 가담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불법대출뿐 아니라 소수 우량고객에게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알리는 것 역시 저축은행 업계에 만연된 현상이었지만 금감원이 이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거액의 예금을 굴린다는 한 금융회사의 임원은 "금리가 높지만 위험할 것 같아 저축은행에 돈을 맡길지 말지 조금 망설였는데, 저축은행 쪽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미리 다 알려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2009년 말 영업정지된 전일저축은행에서 사전 정보 유출로 수십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검찰 수사를 의뢰했지만, 금감원이 그 이후로도 사전 정보유출 대비에는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17일 저축은행 불법행위의 처벌 수위를 높이고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책을 통해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금감원 출신의 한 금융권 인사는 "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쳐도 감독과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예전에도 규정이 없어서 비리를 못 잡아낸 게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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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5-02 11:21:56
    • 수정2011-05-02 11: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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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불법과 편법의 백화점이었다. 대주주에게 한도를 넘는 대출을 해주기 위해 금융회사라고 생각될 수 없을 만큼 각종 편법을 동원했다. 이에 앞서 부산저축은행은 금융감독원 검사결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올리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을 일삼은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검찰이 영업정지 직전 임직원들의 불법예금인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금융기관으로서 부산저축은행은 `도덕적 해이'가 아닌 `도덕성 상실' 수준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행위가 최소한 수년동안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것. 대주주의 불법행위에 대한 경고가 오래전부터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불법행위도 각양각색 = 검찰은 부산계열 저축은행의 실체를 `전국 최대 규모의 시행사'로 정의했다. 그룹차원에서 임직원 지인들의 차명으로 120개에 달하는 시행사를 차려놓고 각종 투기적 개발사업을 벌인 뒤 저축은행 돈을 투자했다는 것.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6개월여간 부산계열저축은행이 대주주가 차려놓은 시행사에 대출한 돈은 4조5천942억원에 달했다. 부산계열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차린 시행사에 대한 채권이 부실화되자 차명으로 7천500억원 상당의 무담보 신용대출을 일으켜 연체이자를 상환하는 등 철저하게 대주주의 사금고 역할을 했다. 대주주들은 또 회계분식을 통해 BIS 비율을 높여 감독기관의 감시를 피하고, 이익을 부풀려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지난 2008년과 2009 회계연도에 부산계열저축은행의 분식회계 규모는 모두 2조4천533억원에 달한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6월말 BIS비율이 8.33%에 달했지만, 영업정지 이후 금감원이 장부를 들여다본 결과 -50.29%로 나타났다. 부산저축은행은 1조6천800억원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었지만 분식회계를 통해 지난 2008년과 2009년엔 장부상 흑자로 탈바꿈했다. 분식회계에는 연체 중인 대주주의 시행사에 신규대출을 해준 뒤 그 돈으로 이자를 갚아 부실을 감추는 등의 방법이 사용됐다. 이자수익을 과다계상하고, 대출채권의 자산건전성을 허위분류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각 계열 저축은행의 대표이사와 회계팀 임직원, 영업팀 임직원들이 총동원됐고, 감사들도 이 같은 행위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인 분식회계가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분식회계자료가 제공된 것은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수신고를 올리고 후순위채를 판매한 것도 모두 분식회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대주주들은 분식회계를 통해 거액의 배당금과 연봉을 챙겼다.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부산과 부산2저축은행은 모두 640억원을 배당했고, 이 가운데 박연호 회장 등 대주주들은 절반이 넘는 329억원을 챙겼다. 대주주의 개인채무 변제를 위한 횡령행위도 발견됐다. 부산과 부산2저축은행은 44억5천만원을 횡령해 박 회장의 개인채무 변제에 사용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박연호 회장을 비롯한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와 임원들이 영업정지 직전 부산1·2저축은행 등 계열은행에 개설한 자신의 차명계좌나 친인척, 지인 계좌에서 거액을 부정인출한 정황도 확인했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며칠전부터 배우자 명의 정기예금 1억7천100만원을 중도해지했다. 특히 박 회장은 영업정지 다음날 자신의 부동산에 친구 명의로 10억원의 근저당설정을 하는 등 재산을 은닉한 정황도 발견됐다. ◇"금감원은 여태껏 뭐했나" 비판도 이처럼 부산저축은행계열이 저지른 온갖 불법행위와 도덕성 상실의 심각성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면서 감독당국이 제때 관리·예방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비정상적으로 늘려 단기간에 연결자산 기준 업계 1위로 도약한 이면에 대주주 불법대출과 회계 조작 등이 숨어 있었지만, 금감원 검사에서는 이를 좀처럼 적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금감원은 검찰처럼 강제 수사권이나 계좌 추적권이 없는 데다 제한된 인력으로 저축은행이 마음먹고 저지르는 불법과 은폐를 통상적인 검사로 적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의 감시망이 촘촘하지 못했다는 게 검찰의 지적이다. 검찰은 이날 수사 브리핑에서 대주주가 지배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PF 사업장에 5조3천억원의 차명대출이 이뤄진 것과 관련해 "금감원이 PF 대출에 대해 제대로 검사만 했더라도 충분히 불법 대출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저축은행의 5개 계열 가운데 4개 계열사에 금감원 출신 직원이 감사로 내려갔는데도 이들은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감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는커녕 불법대출이나 분식회계에 가담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불법대출뿐 아니라 소수 우량고객에게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알리는 것 역시 저축은행 업계에 만연된 현상이었지만 금감원이 이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거액의 예금을 굴린다는 한 금융회사의 임원은 "금리가 높지만 위험할 것 같아 저축은행에 돈을 맡길지 말지 조금 망설였는데, 저축은행 쪽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미리 다 알려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2009년 말 영업정지된 전일저축은행에서 사전 정보 유출로 수십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검찰 수사를 의뢰했지만, 금감원이 그 이후로도 사전 정보유출 대비에는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17일 저축은행 불법행위의 처벌 수위를 높이고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책을 통해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금감원 출신의 한 금융권 인사는 "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쳐도 감독과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예전에도 규정이 없어서 비리를 못 잡아낸 게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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