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진 감독 “힘있는 영화 하고 싶어”

입력 2011.05.1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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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진출..단편 황금종려상 도전



"제가 만드는 영화의 스타일들이 때때로 기존의 형식이나 문법을 파괴할지라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감독이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연출자가 되고 싶습니다."



’고스트’로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정진 감독(24)은 13일 칸 영화제가 열리는 칸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다시마(Dahci Ma)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벨기에 호주, 노르웨이, 일본 등에서 온 감독들과 단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당찬 여감독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평범치 않았다. 이 감독은 중학교 1년을 마치고 돌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제정신이냐"라며 다그쳤고 부녀 사이의 골은 깊어졌다. 그러나 "무난한 성격이 아니었다"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9살과 10살위의 오빠가 있던 그녀는 또래보다 조숙했다. 노엄 촘스키 등 진보적 사회과학자의 책을 어렸을 적부터 접했다. 급우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내밀한 생각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며 지시하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해진 룰에 따라 모든 걸 해야 했어요. 저의 내밀한 생각을 공유할 사람들도 없었어요. 숨이 턱턱 막혔어요. 숨을 못 쉬겠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관둬야죠."



그의 말대로 "어중이떠중이"로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자 진학을 종용하는 부모에게 이번에는 "영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였다.



17살 때 청소년단체의 지원금 300만원을 받아 12분짜리 단편 ’털장갑 속의 진짜 곰’을 만들었다.



"컨트롤할 게 많더라고요. 영화감독이라는 게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영화를 만드는 게 별 의미가 없어져서 포기하려고 했죠."



그러나 장난삼아 만든 영상에서 재미를 발견했다. "뚝딱뚝딱 만든 영상물이 영화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제 가족들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뭐냐’(2004.25분)도 찍었어요."



장애인 남성이 온라인 채팅을 통해 여성을 찾는 내용을 담은 3번째 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2005)와 4번째 단편 ’자연의 신비’(2008.10분)도 만들었다.



이 가운데 ’자연의 신비’는 뉴욕에서 열리는 제37회 ’댄스 온 카메라 페스티벌’(Dance on Camera Festival in New York.2009)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댄스 온 카메라 페스티벌은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춤을 소재로 한 영화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스 페스티벌 중 하나다. 심사위원상과 관객상 두 종류밖에 없는데, 이정진 감독이 대상격인 심사위원상을 차지한 것이다.



"댄스 필름의 전형성을 하나도 따르지 않은 작품이었어요. 다들 ’이상한 영화인데, 뭔가 힘이 있다’라는 평이었죠. 이 영화 덕택에 1년여간 해외에도 자주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영어도 배우고요."(웃음)



5번째 작품 ’고스트’는 재개발 지역의 빈집에 숨어 사는 소아성애 남자의 이야기다. 음산한 집에서 닭뼈를 빠는 소아성애자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버려진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숨결과 이미지가 크게 다가온다.



카메라를 사진처럼 활용해서 후락한 철거민촌의 풍경을 담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재개발지역으로 변모하는 ’집’에 열기 섞인 욕성과 차가운 위협이 기분 나쁜 사운드와 결합해 스크린을 관통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칭찬받는 게 저에게는 중요한 게 아녜요. 제 만족이 가장 중요하죠. 물론 장편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마인드로 찍어야죠. 남의 돈으로 하니까. 단편은 제 돈으로 하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찍을 수 있어서 좋아요."



아직도 카드빚이 700만원 남아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영화를 찍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는 "이 패턴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돌파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순응하는 게, 저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도권을 이탈했겠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성향적으로 반골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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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진 감독 “힘있는 영화 하고 싶어”
    • 입력 2011-05-13 22:41:26
    연합뉴스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진출..단편 황금종려상 도전

"제가 만드는 영화의 스타일들이 때때로 기존의 형식이나 문법을 파괴할지라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감독이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연출자가 되고 싶습니다."

’고스트’로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정진 감독(24)은 13일 칸 영화제가 열리는 칸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다시마(Dahci Ma)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벨기에 호주, 노르웨이, 일본 등에서 온 감독들과 단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당찬 여감독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평범치 않았다. 이 감독은 중학교 1년을 마치고 돌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제정신이냐"라며 다그쳤고 부녀 사이의 골은 깊어졌다. 그러나 "무난한 성격이 아니었다"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9살과 10살위의 오빠가 있던 그녀는 또래보다 조숙했다. 노엄 촘스키 등 진보적 사회과학자의 책을 어렸을 적부터 접했다. 급우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내밀한 생각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며 지시하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해진 룰에 따라 모든 걸 해야 했어요. 저의 내밀한 생각을 공유할 사람들도 없었어요. 숨이 턱턱 막혔어요. 숨을 못 쉬겠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관둬야죠."

그의 말대로 "어중이떠중이"로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자 진학을 종용하는 부모에게 이번에는 "영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였다.

17살 때 청소년단체의 지원금 300만원을 받아 12분짜리 단편 ’털장갑 속의 진짜 곰’을 만들었다.

"컨트롤할 게 많더라고요. 영화감독이라는 게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영화를 만드는 게 별 의미가 없어져서 포기하려고 했죠."

그러나 장난삼아 만든 영상에서 재미를 발견했다. "뚝딱뚝딱 만든 영상물이 영화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제 가족들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뭐냐’(2004.25분)도 찍었어요."

장애인 남성이 온라인 채팅을 통해 여성을 찾는 내용을 담은 3번째 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2005)와 4번째 단편 ’자연의 신비’(2008.10분)도 만들었다.

이 가운데 ’자연의 신비’는 뉴욕에서 열리는 제37회 ’댄스 온 카메라 페스티벌’(Dance on Camera Festival in New York.2009)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댄스 온 카메라 페스티벌은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춤을 소재로 한 영화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스 페스티벌 중 하나다. 심사위원상과 관객상 두 종류밖에 없는데, 이정진 감독이 대상격인 심사위원상을 차지한 것이다.

"댄스 필름의 전형성을 하나도 따르지 않은 작품이었어요. 다들 ’이상한 영화인데, 뭔가 힘이 있다’라는 평이었죠. 이 영화 덕택에 1년여간 해외에도 자주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영어도 배우고요."(웃음)

5번째 작품 ’고스트’는 재개발 지역의 빈집에 숨어 사는 소아성애 남자의 이야기다. 음산한 집에서 닭뼈를 빠는 소아성애자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버려진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숨결과 이미지가 크게 다가온다.

카메라를 사진처럼 활용해서 후락한 철거민촌의 풍경을 담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재개발지역으로 변모하는 ’집’에 열기 섞인 욕성과 차가운 위협이 기분 나쁜 사운드와 결합해 스크린을 관통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칭찬받는 게 저에게는 중요한 게 아녜요. 제 만족이 가장 중요하죠. 물론 장편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마인드로 찍어야죠. 남의 돈으로 하니까. 단편은 제 돈으로 하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찍을 수 있어서 좋아요."

아직도 카드빚이 700만원 남아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영화를 찍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는 "이 패턴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돌파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순응하는 게, 저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도권을 이탈했겠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성향적으로 반골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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