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 종목 24] ‘육상의 꽃’ 마라톤

입력 2011.06.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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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2시간30분대 첫 돌파…세계기록 2시간3분대로 단축 



달리기 종목 중 가장 긴 거리를 소화하는 마라톤은 ’육상의 꽃’으로 불린다.



우승자가 쓰는 월계관이 상징하듯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42.195㎞의 마라톤 코스에 얽힌 얘기는 흥미롭다.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그리스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워 이긴 평원의 이름이다.



아테네군의 한 병사가 승전소식을 아테네 시민에게 빨리 전하고자 먼 길을 단숨에 달렸다가 숨을 거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경기가 바로 마라톤이다.



그러나 마라톤 전투 현장에서 아테네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1896년 제1회 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40㎞였고, 이후로도 한참 동안 40~42㎞ 사이에서 결정됐다.



그러다가 제4회 런던 올림픽 때부터 현재의 42.195㎞로 확정됐다.



당시에도 애초 코스는 왕가의 저택인 윈저궁을 출발해 주경기장으로 골인하는 42㎞였으나, 당시 왕비가 마라톤 출발 장면을 꼭 보고 싶다고 주장해 출발 지점이 옮겨지면서 42.195㎞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거리는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라톤의 역사에서 한국은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제1회 올림픽에서 처음 마라톤이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정체돼 있던 기록을 처음으로 2시간20분대로 끌어내린 주인공이 바로 고(故) 손기정 선생이었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해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기정이 우승하던 당시 남승룡이 2시간31분42초로 동메달을 딴 데서 드러나듯 일본 강점기 한국의 마라톤 수준은 매우 높았다.



1950년대까지도 강호로 자임하던 한국 육상은 1960년대 들어 마라톤이 ’스피드 혁명’을 맞으면서 급속히 침체했다.



아프리카의 철각들이 세계무대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2시간20분대에 머물던 마라톤 기록은 1967년에는 2시간10분대의 벽까지 깨졌다.



그 사이 여전히 지구력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던 한국 마라톤은 순식간에 상위권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황영조와 이봉주 등 불세출의 마라토너가 다시 등장하면서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따내 다시 강호의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라톤 한국 기록(2시간7분20초)은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가 2008년 작성한 2시간3분59초의 기록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스피드 혁명을 겪으면서 마라톤은 5,000m나 10,000m 등 장거리 트랙 경기와 비슷해졌다.



일류 선수들은 100m를 17초 내에 뛰는 속도를 레이스 내내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선수들은 35㎞를 넘어서면서 신체에 저장된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한계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래서 숙련된 선수들도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버리거나 탈락하는 일이 속출한다.



한계를 넘어서는 길은 혹독한 훈련밖엔 없다.



황영조와 이봉주 등 위대한 마라토너들조차 매일 반복되는 훈련을 두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마라톤 훈련이 ’지옥’에 비견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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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육상 종목 24] ‘육상의 꽃’ 마라톤
    • 입력 2011-06-11 07:05:51
    연합뉴스
손기정 2시간30분대 첫 돌파…세계기록 2시간3분대로 단축 

달리기 종목 중 가장 긴 거리를 소화하는 마라톤은 ’육상의 꽃’으로 불린다.

우승자가 쓰는 월계관이 상징하듯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42.195㎞의 마라톤 코스에 얽힌 얘기는 흥미롭다.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그리스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워 이긴 평원의 이름이다.

아테네군의 한 병사가 승전소식을 아테네 시민에게 빨리 전하고자 먼 길을 단숨에 달렸다가 숨을 거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경기가 바로 마라톤이다.

그러나 마라톤 전투 현장에서 아테네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1896년 제1회 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40㎞였고, 이후로도 한참 동안 40~42㎞ 사이에서 결정됐다.

그러다가 제4회 런던 올림픽 때부터 현재의 42.195㎞로 확정됐다.

당시에도 애초 코스는 왕가의 저택인 윈저궁을 출발해 주경기장으로 골인하는 42㎞였으나, 당시 왕비가 마라톤 출발 장면을 꼭 보고 싶다고 주장해 출발 지점이 옮겨지면서 42.195㎞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거리는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라톤의 역사에서 한국은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제1회 올림픽에서 처음 마라톤이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정체돼 있던 기록을 처음으로 2시간20분대로 끌어내린 주인공이 바로 고(故) 손기정 선생이었다.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해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기정이 우승하던 당시 남승룡이 2시간31분42초로 동메달을 딴 데서 드러나듯 일본 강점기 한국의 마라톤 수준은 매우 높았다.

1950년대까지도 강호로 자임하던 한국 육상은 1960년대 들어 마라톤이 ’스피드 혁명’을 맞으면서 급속히 침체했다.

아프리카의 철각들이 세계무대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2시간20분대에 머물던 마라톤 기록은 1967년에는 2시간10분대의 벽까지 깨졌다.

그 사이 여전히 지구력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던 한국 마라톤은 순식간에 상위권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황영조와 이봉주 등 불세출의 마라토너가 다시 등장하면서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따내 다시 강호의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라톤 한국 기록(2시간7분20초)은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가 2008년 작성한 2시간3분59초의 기록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스피드 혁명을 겪으면서 마라톤은 5,000m나 10,000m 등 장거리 트랙 경기와 비슷해졌다.

일류 선수들은 100m를 17초 내에 뛰는 속도를 레이스 내내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선수들은 35㎞를 넘어서면서 신체에 저장된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한계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래서 숙련된 선수들도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버리거나 탈락하는 일이 속출한다.

한계를 넘어서는 길은 혹독한 훈련밖엔 없다.

황영조와 이봉주 등 위대한 마라토너들조차 매일 반복되는 훈련을 두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마라톤 훈련이 ’지옥’에 비견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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