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의 눈물

입력 2011.06.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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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만 시킨 자장면을 허겁지겁 비우는 손자와 물끄러미 바라보며 맹물만 들이켜는 할머니. 자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16년 전 바로 오늘, 허영호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는 세계에서 2번째로 북극해 도보 횡단에 성공했습니다. 그 때 먹고 싶었던 음식도 바로 자장면이었습니다.

<녹취>허영호(산악인/1995년 당시) :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그 다음에 삼겹살도 먹고 싶고, 아까 누구 말대로 자장면도 먹고 싶고.."

<앵커 멘트>

예전보다는 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자장면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음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동네 중국음식점들은 장사가 안 돼 야단이라고 합니다. 대표적 서민음식인 자장면을 통해 우리 주변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정지혁 사장의 하루는 오전 8시 반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국수를 뽑을 밀가루를 반죽합니다.

<녹취>정지혁(중국음식점 사장) : "밀가루는 작년 같은 경우 하루에 2포씩 썼는데 요즘에는 거의 한 포 써요. 수요가 많이 줄어서 준비를 조금씩 하는 거예요."

아침에 배달된 오징어며 홍합도 이 때 손질해야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배달 아르바이트로 처음 중국음식집에 발을 들인 지 벌써 20여 년. 설거지를 하던 막내 생활을 거쳐 면 뽑는 법을 배웠고 어렵사리 요리 칼도 잡았습니다. 사장이 재료를 손질하는 사이 주방장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습니다. 여기에 다진 양파를 넣고, 춘장을 풀면 자장이 완성됩니다.

<녹취>이효장(중국음식점 주방장) : "(자장면값을)엊그제까지 4천 원 받다가, 4천5백원으로 올렸는데요. 500원 때문에 안 드신다는 분도 있고, 먹을까 말까 망설일 정도로..."

배달이 몰리는 시간엔 정 사장이 직접 철가방을 들고 뜁니다. 배달을 가서는 단 몇 군데라도 꼭 전단지를 돌립니다.

<녹취>정지혁(중국음식점 사장) : "(냉면 전단지도 붙이시네요?) 네, 요즘 여름엔 중국 음식을 아무래도 덜 먹으니까. 냉면도 곁들여서 같이 하고 있어요. 하도 힘들어서.."

정 사장 부부는 3년 전, 3천만 원을 들여 지금의 가게를 인수했습니다. 열심히 뛴 덕에 단골이 많이 생겼지만, 요즘엔 주말에도 장사가 안 됩니다.

<녹취>정명희(부인) : "빨간 날이라고 그러죠, 쉬는 날. 그런 날은 직원들도 따로 배치할 정도로 항상 준비를 해놨거든요. 바쁘니까. 그런 게 지금은 없어요. 평일이랑 똑같아요."

배달 직원 3명에 주방보조, 주방장 인건비로 매달 천2백만 원이 나갑니다. 여기에 재료비와 임대료까지 내고 나면 정 씨 부부가 하루 종일 가게 일에 매달려도 수입은 신통치 않습니다.

<녹취>정지혁(중국음식점 사장) : "저희 같은 경우는 바깥사람 셋에 주방 둘이면 평균 하루 매출이 140만 원은 돼야 돼요. 매출이 많이 떨어져서 100만 원 팔기가 좀 힘들어졌고, 그걸 위해서는 사람을 줄여야 되고..."

18년 째 한 동네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문구 씨.

<녹취>정문구(중국음식점 사장) : "이게(자장) 한 30인 분 돼요. (오늘 다 팔 수 있을까요?) 이거야 팔아야죠. 이것도 못 팔면 진짜 가게 문 닫아야지."

일이 힘들었어도 자장면 장사로 네 식구 살림이 거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녹취>정문구(중국음식점 사장) : "IMF(외환위기) 지나고 나서 조금씩 수그러들었죠. 그 전엔 괜찮았어요. 재밌었어. 그래도 애들 엄마하고 나하고 인건비 떨어지니까."

하지만 요즘엔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녹취>정문구(중국음식점 사장) : "100가지면 100가지가 다 오른거야. 재료가. 우리 중국집이 보통 재료가 4, 50가지 되거든요. 그게 다 올랐다고 보면 돼요. 오징어도 많이 오르고 오징어 뿐이에요? 새우도 마찬가지고, 송이도 마찬가지고, 죽순도 그렇고..."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짬을 내 정 씨 가게에 들렀습니다. 만나자마자 푸념 반, 하소연 반의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녹취>박영미(순대국집 사장/7년 운영) : "오늘은 어떻게 됐냐고 (서로)물으면 인상부터 쓰기 시작해. 원래 폐점 시간이 9시인데, 7시 돼서 우리 문 닫을 때가 많아요. 사람이 전혀 없는 걸 뭐."

<녹취>서용주(이발소 사장/35년 운영) : "동네 상가 장사는 서로서로 이용을 하면서 서로서로 도와주고 이렇게 해서 다 장사해서 먹고 살거든요. 그런데 경기가 없고 잘 안 되고 주머니가 빠듯하면 그게 힘드니까."

건물 1층에 있는 치킨집 사장은 오늘도 2시간 밖에 못 잤습니다. 새벽 2시에 가게 문을 닫고 눈을 잠깐 붙인 뒤 새벽 4시부터는 다시 떡집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기요금이 연체될 정도로 하루하루가 어렵습니다.

<녹취>백길자(치킨집 사장/10년 운영) : "오죽하면 친구가 치킨 한 마리에 나보고 목숨 건다고 뭐라 그래요. 희망이 안 보여요. 아니 절망 뿐에요, 절망. 절박해요. 정말로 절박해요."

월요일 아침, 중국음식점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신영철 씨의 손놀림에 영 힘이 없습니다. 중국음식점들이 주말에 재료를 많이 써야 월요일에 배달할 것이 많은데 트럭 짐칸은 반도 안 찼습니다.

<녹취> 점원 : "여기 밑에 쌓고 여기 끝나면 여기까지 해서 전분 싣고 설탕 쌓고 했었는데, 요새 같은 경우는 장사가 너무 안되니까 물건이 나가는 게 없죠."

재료 값도 무섭게 뛰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 때 20킬로그램 한 포에 5만 원 하던 전분 가격은 6만 5천 원으로 뛰었고, 2만 7천 원 하던 18리터 짜리 식용유 가격도 3만 6천 원으로 올랐습니다. 재료 값이 오르고 장사마저 안 되다보니 외상 장부의 숫자만 늘어갑니다.

<녹취>신영철(식자재 공급상) : "이 외상은 많은 것도 아니에요. 많은 게 보통 300만 원 이상 깔렸고, 뭐 많은 데는 천만 원 이상까지 가는 곳도 있고...수금이 계속 밀리니까 저희도 힘들고...중국집이 잘 돼야지 저희도 잘 되는데.. 뭐, 돈이 회전이 안되니까, 아 정말 미치겠어요."

이러다보니 음식점을 그만두고 배달 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서 모 씨는 지난해 8월까지 이 곳에서 테이블 12개를 놓고 제법 큰 중국음식점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간판을 내렸습니다.

<녹취>서○○(前 중국음식점 사장) : "자장면 한 그릇에 천 원, 2천 원 할 때 같으면 모르지만 몇 천 원 씩 하니까 안 먹을려고 그래요, 힘들어서. 그러다 결국 내가 이걸 접어야겠다고..."

권리금도 없이 가게를 내 놔 봤지만, 인수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일당 8만 원 짜리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녹취>서○○(前 중국음식점 사장) : "돈이 없으니까 먹고도 살아야 되고, 또 애들 가르치려면 교육비도 있어야 되니까 이제 나가서 직장 생활하죠. 많아요. 그런 사람들, 지금."

동네 골목에서는 창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폐업한 중국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대기업에서 만든 대형 중식당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식당은 평일 점심 시간인데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돕니다.

<녹취>강성숙(서울 명일동) : "일단 여러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좋고, 집에서 못해 먹는 여러가지. 바(BAR)에도 좋아하는 것도 많고"

사무실 주변과 동네 골목에서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며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동네 중국음식점의 위기는 요리학원에서도 엿볼수 있습니다. 이 곳의 수강생 가운데 배달도 하는 중국음식점을 창업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인터뷰>김영민(요리학원 수강생) : "제일 큰 문제는 인건비와 사람 관리하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배달보다는 업장(홀)에서 유지되는 그런 음식 위주로 할 예정입니다."

지난 2000년 2만 7천곳에 달하던 중국음식점은 2005년에 2만 3천곳으로 줄었고, 2009년엔 2천 곳이 더 줄었습니다. 인천의 한 중국음식점. 식당 직원은 사장인 김갑연 씨와 부인, 단 두 사람 뿐입니다. 17년 째 장사를 해 온 김 씨 부부는 대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출은 반토막이 나고, 학비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올라 하루하루가 힘겹습니다.

<녹취>김경숙(부인) : "안 하면 못 먹고 살잖아요. 먹고 살아야 되는데 당장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고 기존에 들어가던 생활비도 다 있어야 되는데..."

자장면을 통해 살펴본 영세 자영업자들, 그들은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다른 일을 하다 실패한 뒤 자영업을 선택한 이들로서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셈입니다. 그들의 위기는 곧 서민 경제의 위기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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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장면의 눈물
    • 입력 2011-06-20 07:48:23
    취재파일K
한 그릇만 시킨 자장면을 허겁지겁 비우는 손자와 물끄러미 바라보며 맹물만 들이켜는 할머니. 자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16년 전 바로 오늘, 허영호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는 세계에서 2번째로 북극해 도보 횡단에 성공했습니다. 그 때 먹고 싶었던 음식도 바로 자장면이었습니다. <녹취>허영호(산악인/1995년 당시) :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그 다음에 삼겹살도 먹고 싶고, 아까 누구 말대로 자장면도 먹고 싶고.." <앵커 멘트> 예전보다는 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자장면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음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동네 중국음식점들은 장사가 안 돼 야단이라고 합니다. 대표적 서민음식인 자장면을 통해 우리 주변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정지혁 사장의 하루는 오전 8시 반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국수를 뽑을 밀가루를 반죽합니다. <녹취>정지혁(중국음식점 사장) : "밀가루는 작년 같은 경우 하루에 2포씩 썼는데 요즘에는 거의 한 포 써요. 수요가 많이 줄어서 준비를 조금씩 하는 거예요." 아침에 배달된 오징어며 홍합도 이 때 손질해야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배달 아르바이트로 처음 중국음식집에 발을 들인 지 벌써 20여 년. 설거지를 하던 막내 생활을 거쳐 면 뽑는 법을 배웠고 어렵사리 요리 칼도 잡았습니다. 사장이 재료를 손질하는 사이 주방장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습니다. 여기에 다진 양파를 넣고, 춘장을 풀면 자장이 완성됩니다. <녹취>이효장(중국음식점 주방장) : "(자장면값을)엊그제까지 4천 원 받다가, 4천5백원으로 올렸는데요. 500원 때문에 안 드신다는 분도 있고, 먹을까 말까 망설일 정도로..." 배달이 몰리는 시간엔 정 사장이 직접 철가방을 들고 뜁니다. 배달을 가서는 단 몇 군데라도 꼭 전단지를 돌립니다. <녹취>정지혁(중국음식점 사장) : "(냉면 전단지도 붙이시네요?) 네, 요즘 여름엔 중국 음식을 아무래도 덜 먹으니까. 냉면도 곁들여서 같이 하고 있어요. 하도 힘들어서.." 정 사장 부부는 3년 전, 3천만 원을 들여 지금의 가게를 인수했습니다. 열심히 뛴 덕에 단골이 많이 생겼지만, 요즘엔 주말에도 장사가 안 됩니다. <녹취>정명희(부인) : "빨간 날이라고 그러죠, 쉬는 날. 그런 날은 직원들도 따로 배치할 정도로 항상 준비를 해놨거든요. 바쁘니까. 그런 게 지금은 없어요. 평일이랑 똑같아요." 배달 직원 3명에 주방보조, 주방장 인건비로 매달 천2백만 원이 나갑니다. 여기에 재료비와 임대료까지 내고 나면 정 씨 부부가 하루 종일 가게 일에 매달려도 수입은 신통치 않습니다. <녹취>정지혁(중국음식점 사장) : "저희 같은 경우는 바깥사람 셋에 주방 둘이면 평균 하루 매출이 140만 원은 돼야 돼요. 매출이 많이 떨어져서 100만 원 팔기가 좀 힘들어졌고, 그걸 위해서는 사람을 줄여야 되고..." 18년 째 한 동네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문구 씨. <녹취>정문구(중국음식점 사장) : "이게(자장) 한 30인 분 돼요. (오늘 다 팔 수 있을까요?) 이거야 팔아야죠. 이것도 못 팔면 진짜 가게 문 닫아야지." 일이 힘들었어도 자장면 장사로 네 식구 살림이 거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녹취>정문구(중국음식점 사장) : "IMF(외환위기) 지나고 나서 조금씩 수그러들었죠. 그 전엔 괜찮았어요. 재밌었어. 그래도 애들 엄마하고 나하고 인건비 떨어지니까." 하지만 요즘엔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습니다. <녹취>정문구(중국음식점 사장) : "100가지면 100가지가 다 오른거야. 재료가. 우리 중국집이 보통 재료가 4, 50가지 되거든요. 그게 다 올랐다고 보면 돼요. 오징어도 많이 오르고 오징어 뿐이에요? 새우도 마찬가지고, 송이도 마찬가지고, 죽순도 그렇고..."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짬을 내 정 씨 가게에 들렀습니다. 만나자마자 푸념 반, 하소연 반의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녹취>박영미(순대국집 사장/7년 운영) : "오늘은 어떻게 됐냐고 (서로)물으면 인상부터 쓰기 시작해. 원래 폐점 시간이 9시인데, 7시 돼서 우리 문 닫을 때가 많아요. 사람이 전혀 없는 걸 뭐." <녹취>서용주(이발소 사장/35년 운영) : "동네 상가 장사는 서로서로 이용을 하면서 서로서로 도와주고 이렇게 해서 다 장사해서 먹고 살거든요. 그런데 경기가 없고 잘 안 되고 주머니가 빠듯하면 그게 힘드니까." 건물 1층에 있는 치킨집 사장은 오늘도 2시간 밖에 못 잤습니다. 새벽 2시에 가게 문을 닫고 눈을 잠깐 붙인 뒤 새벽 4시부터는 다시 떡집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기요금이 연체될 정도로 하루하루가 어렵습니다. <녹취>백길자(치킨집 사장/10년 운영) : "오죽하면 친구가 치킨 한 마리에 나보고 목숨 건다고 뭐라 그래요. 희망이 안 보여요. 아니 절망 뿐에요, 절망. 절박해요. 정말로 절박해요." 월요일 아침, 중국음식점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신영철 씨의 손놀림에 영 힘이 없습니다. 중국음식점들이 주말에 재료를 많이 써야 월요일에 배달할 것이 많은데 트럭 짐칸은 반도 안 찼습니다. <녹취> 점원 : "여기 밑에 쌓고 여기 끝나면 여기까지 해서 전분 싣고 설탕 쌓고 했었는데, 요새 같은 경우는 장사가 너무 안되니까 물건이 나가는 게 없죠." 재료 값도 무섭게 뛰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 때 20킬로그램 한 포에 5만 원 하던 전분 가격은 6만 5천 원으로 뛰었고, 2만 7천 원 하던 18리터 짜리 식용유 가격도 3만 6천 원으로 올랐습니다. 재료 값이 오르고 장사마저 안 되다보니 외상 장부의 숫자만 늘어갑니다. <녹취>신영철(식자재 공급상) : "이 외상은 많은 것도 아니에요. 많은 게 보통 300만 원 이상 깔렸고, 뭐 많은 데는 천만 원 이상까지 가는 곳도 있고...수금이 계속 밀리니까 저희도 힘들고...중국집이 잘 돼야지 저희도 잘 되는데.. 뭐, 돈이 회전이 안되니까, 아 정말 미치겠어요." 이러다보니 음식점을 그만두고 배달 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서 모 씨는 지난해 8월까지 이 곳에서 테이블 12개를 놓고 제법 큰 중국음식점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간판을 내렸습니다. <녹취>서○○(前 중국음식점 사장) : "자장면 한 그릇에 천 원, 2천 원 할 때 같으면 모르지만 몇 천 원 씩 하니까 안 먹을려고 그래요, 힘들어서. 그러다 결국 내가 이걸 접어야겠다고..." 권리금도 없이 가게를 내 놔 봤지만, 인수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일당 8만 원 짜리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녹취>서○○(前 중국음식점 사장) : "돈이 없으니까 먹고도 살아야 되고, 또 애들 가르치려면 교육비도 있어야 되니까 이제 나가서 직장 생활하죠. 많아요. 그런 사람들, 지금." 동네 골목에서는 창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폐업한 중국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대기업에서 만든 대형 중식당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식당은 평일 점심 시간인데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돕니다. <녹취>강성숙(서울 명일동) : "일단 여러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좋고, 집에서 못해 먹는 여러가지. 바(BAR)에도 좋아하는 것도 많고" 사무실 주변과 동네 골목에서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며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동네 중국음식점의 위기는 요리학원에서도 엿볼수 있습니다. 이 곳의 수강생 가운데 배달도 하는 중국음식점을 창업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인터뷰>김영민(요리학원 수강생) : "제일 큰 문제는 인건비와 사람 관리하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배달보다는 업장(홀)에서 유지되는 그런 음식 위주로 할 예정입니다." 지난 2000년 2만 7천곳에 달하던 중국음식점은 2005년에 2만 3천곳으로 줄었고, 2009년엔 2천 곳이 더 줄었습니다. 인천의 한 중국음식점. 식당 직원은 사장인 김갑연 씨와 부인, 단 두 사람 뿐입니다. 17년 째 장사를 해 온 김 씨 부부는 대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출은 반토막이 나고, 학비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올라 하루하루가 힘겹습니다. <녹취>김경숙(부인) : "안 하면 못 먹고 살잖아요. 먹고 살아야 되는데 당장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고 기존에 들어가던 생활비도 다 있어야 되는데..." 자장면을 통해 살펴본 영세 자영업자들, 그들은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다른 일을 하다 실패한 뒤 자영업을 선택한 이들로서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셈입니다. 그들의 위기는 곧 서민 경제의 위기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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