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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북한] 北 해안선이 바뀐다
입력 2011.07.02 (10:10) 수정 2011.07.02 (10:16)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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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을 추진하면서 해안선이 바뀌고 있습니다.

갯벌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이제 세계적으로 간척사업은 퇴조하고 있는데요.

이와 달리, 북한이 간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봅니다.

<리포트>

지난 달 초.

북한 황해남도, 서해안의 능금도 간척공사 현장에서 대규모 발파가 이뤄졌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7일) : "8만산 발파가 성과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능금도 간석지 건설을 앞당겨 끝낼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습니다. "

북한은 능금도와 쥐섬, 그리고 육지인 서해리를 잇는 5킬로미터짜리 방조제를 만든 뒤 내부에 농경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북한이 진행하고 있는 간척사업은 능금도를 비롯해 평안북도 곽산, 남포의 안석, 황해남도 분지만, 용매도까지 모두 5곳이다.

북한은 내년 말까지 5곳의 간척사업을 마무리해, 60 제곱킬로미터의 농경지를 추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해 6월.

북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간척공사라는 대계도 간척지 공사가 마무리됐다.

평안북도 염주와 철산 앞 바다의 대다사도, 가차도, 소연동도, 대계도를 잇는 13.6킬로미터짜리 초대형 방조제다.

방조제 안에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이르는 88제곱킬로미터짜리 간척지가 만들어졌다.

완공까지 거의 30년이 걸린 북한판 ‘새만금사업’이다.

새만금과 비교하면 방조제의 길이는 40%, 간척지 면적은 20%에 이른다.

김정일 위원장은 대계도 간척지 현장을 둘러보고 감격스러워 했다고 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7월 15일) :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날바다를 내가르며 뻗어간 수십 리의 제방들을 바라보시며 정말 대단하다고 간석지 건설자들은 온 세상에 선군조선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뚜렷이 보여줬다고 하셨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계도 간척지 공사를 맡은 책임자들과 일꾼 3천여 명에게 훈장과 명예칭호를 수여했다.

간석지는 강하천이 날아 온 진흙과 모래가 얕은 바닷가에서 밀물과 썰물을 만나 만들어진다.

얕은 바다인 한반도 서해에는 7000 제곱킬로미터의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3300 제곱킬로미터가 북한 땅이다.

지역별 면적은 황해남도 1210, 평안북도 1180.

평안남도 840 제곱킬로미터 순이다.

서해안의 간석지는 강하천 퇴적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북한은 국토 대부분이 산지여서 농경지 비율이 20%에 못 미친다.

분단 직후 북한의 대내적 당면 과제는 턱없이 부족한 농경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였다.

북한은 국토의 80%에 이르는 산간과 제주도 면적의 두 배에 육박하는 3300 제곱킬로미터의 간석지에 주목했다.

북한은 우선 산의 나무를 민 뒤 계단식으로 깎아 비탈밭과 다락밭을 집중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압록강 하구에서 첫 번째 대규모 간척 사업이 시작됐다.

압록강 하구의 섬인 마안도, 신도, 무명도 사이에 둑을 쌓고 흙을 메워 거대한 인공섬을 만들었다.

최근 북중 경협으로 주목받고 있는 황금평 바로 아래 위치한 비단섬으로, 면적은 여의도의 8배인 64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비단섬을 얻긴 했지만 간척은 대규모 자본과 고도의 기술, 그리고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에게 그리 매력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북한은 1960년 때까지 간척보다는 산간 개발을 통한 농경지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인터뷰> 이민부(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 "거의 전부 산간 지역으로 올라갔습니다. 북한의 농경지 개간 사업은...산림을 제거를 하고 그 지역 농경지를 확대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농경지로는 전체 식량 수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다 경사가 급한 산 지 쪽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산간 개발은 1970년대 들어 한계에 이르자 북한은 간척에 다시 눈을 돌렸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산을 보통 8부 능선까지 계단식으로 만든 것이 다락밭입니다. 다락밭을 많이 만드니까 토사가 흘러내려서 강을 하천에 수위를 높이고 그런 것으로부터 북한이 심한 자연의 공격을 받았고 이렇다 보니까 이제 바다로 나가서 서해안 지역에 간척지를 개발하 면 그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개발했습니다."

1980년 대 들어 북한은 당시 국가건설부문을 총괄한 김정일의 주도로 대규모 간척사업을 추진했다.

서해안 21곳 동해안 1곳 등 모두 22곳에서 간척사업을 벌여나갔다.

평안북도에서 대계도, 곽산 등 7곳.

평안남도에서 금성 등 5곳 황해남도에서 은율과 옹진 등 8곳에서 간척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좁은 내만에 소규모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만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대규모 방조제 건설이 추진됐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치기 전까지 대계도 지구와 곽산, 금성, 은율에서 공사가 준공되거나 부분 준공됐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 사망 때까지 간척으로 확보한 농경지의 면적은 적게는 500에서 많게는 1300제곱킬로미터로 추산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을 엄습한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은 간척지 개발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

건설 중인 방조제 공사와 농경지 개간이 모두 중단됐으며, 기존에 건설한 방조제와 간척지의 사후관리에도 손을 놓았다.

이로 인해 제방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북한에서 자랑하는 은율간척지와 금성간척지도 불모지로 변해버렸다.

북한의 ‘새만금’이라고 불리는 대계도 간척지 역시 1997년에 홍수로 방조제 4곳이 부분적으로 유실되면서 모두 물에 잠겼다.

북한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자 다시 간척사업에 팔을 걷어부쳤다.

우선 대계도 간척지 복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됐다.

특히 450미터가 유실된 3호 방조제의 복구는 그야말로 난관이었다.

방조제 안팎의 수위차가 4미터에 이르러 밀물 때마다 3억톤의 물이 밀려들어왔다.

<녹취> 조선중앙tv(2005년 7월 2일) : "큰 돌을 떨어뜨려도 순간에 다 밀려나갔고, 수 십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막돌을 쳐 넣어도 정말 소용이 없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2005년 6월 필사의 노력 끝에 간신히 물막이에 성공했다.

이어 5년간의 제방보수와 개간을 거쳐 지난 해 마침내 대계도 간척지 공사를 마무리했다.

프랑스 국제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아 은율간척지와 금성간척지 복구도 최근 성공적으로 마쳤다.

북한 당국은 지난 해 대계도 간척지가 준공되자 기적을 이뤘다면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7월 2일) : "가능을 모르는 선군 조선의 기상인양 서해의 날바다 위에 솟아나 후대들에게 물러줄 귀중한 재부…"

강성대국 건설 원년인 내년까지 5곳의 간척지 공사를 추가로 마치도록 건설 현장을 다그치고 있다.

북한이 최근 대규모 간척이라는 주체적인 방법으로 식량난을 돌파하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선 것은 3대 세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북한이 최근에 다시 간석지 개발 사업을 활발하게 강조하는 것은 이제 3대 세습 김정은 시대의 다시 강성대국 건설이니 하면서 식량생산을 해야하는데 내륙지방의 농토가 다 황폐화되고 그러다보니까 간석지 개간을 통해서 농토 확보, 식량증산 이것을 통해 치적을 세우려는 그런 목적이 있습니다."

또 경제난으로 많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된 데 따른 유휴노동력의 활용이라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층들을 간척공사 현장에 돌격대로 보냄으로써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세력으로 발전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20세기 들어 국토가 좁은 국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던 간척사업은 21세기 들어 매력을 잃고 있다.

갯벌의 생태환경적 가치가 워낙 높은데다 최근에는 태풍이나 해일을 방제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인터뷰> 유근배(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 "간척사업을 대규모로 하다 보면 해양 생태계나 어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죠. 게다가 서해안의 얕은 바다 그런 곳은 폭풍 해일 또는 태풍이 내습했을 때 파랑에 끌리면서 파랑 에너지가 소모되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래서 간척지를 지나온 태풍이나 또는 바 다 폭풍은 세력이 감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육지를 보호하게 되죠. 그래서 그런 부분이 말하자면 간척사업의 어두운 그림자다."

하지만 발등의 불인 식량난을 해결해 3대 세습을 마무리해야 하는 북한 정권은 갯벌의 가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식량난을 돌파할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는 북한으로선 앞으로도 대규모 간척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대규모 간척으로 사라지고 있는 서해안의 갯벌 역시 통일이 되면 우리의 소중한 영토이자 자산이 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뷰> 유근배(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 "사실은 간척사업보다는 내륙의 토양유실 문제 이런 것들을 해결하고, 토지의 질을 높이고 하는 것을 통해서 이른바 녹색혁명이라고 얘길하는 그런 면에서 생산 증산을 생각해야겠죠. 예견된 자연재해의 문제, 환경오염의 문제, 그 다음에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방조제 유실이나 해안 제방 유실같은 걸 생각한다면 미래는 밝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 [클로즈업 북한] 北 해안선이 바뀐다
    • 입력 2011-07-02 10:10:47
    • 수정2011-07-02 10:16:18
    남북의 창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을 추진하면서 해안선이 바뀌고 있습니다.

갯벌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이제 세계적으로 간척사업은 퇴조하고 있는데요.

이와 달리, 북한이 간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봅니다.

<리포트>

지난 달 초.

북한 황해남도, 서해안의 능금도 간척공사 현장에서 대규모 발파가 이뤄졌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7일) : "8만산 발파가 성과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능금도 간석지 건설을 앞당겨 끝낼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습니다. "

북한은 능금도와 쥐섬, 그리고 육지인 서해리를 잇는 5킬로미터짜리 방조제를 만든 뒤 내부에 농경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북한이 진행하고 있는 간척사업은 능금도를 비롯해 평안북도 곽산, 남포의 안석, 황해남도 분지만, 용매도까지 모두 5곳이다.

북한은 내년 말까지 5곳의 간척사업을 마무리해, 60 제곱킬로미터의 농경지를 추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해 6월.

북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간척공사라는 대계도 간척지 공사가 마무리됐다.

평안북도 염주와 철산 앞 바다의 대다사도, 가차도, 소연동도, 대계도를 잇는 13.6킬로미터짜리 초대형 방조제다.

방조제 안에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이르는 88제곱킬로미터짜리 간척지가 만들어졌다.

완공까지 거의 30년이 걸린 북한판 ‘새만금사업’이다.

새만금과 비교하면 방조제의 길이는 40%, 간척지 면적은 20%에 이른다.

김정일 위원장은 대계도 간척지 현장을 둘러보고 감격스러워 했다고 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7월 15일) :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날바다를 내가르며 뻗어간 수십 리의 제방들을 바라보시며 정말 대단하다고 간석지 건설자들은 온 세상에 선군조선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뚜렷이 보여줬다고 하셨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계도 간척지 공사를 맡은 책임자들과 일꾼 3천여 명에게 훈장과 명예칭호를 수여했다.

간석지는 강하천이 날아 온 진흙과 모래가 얕은 바닷가에서 밀물과 썰물을 만나 만들어진다.

얕은 바다인 한반도 서해에는 7000 제곱킬로미터의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3300 제곱킬로미터가 북한 땅이다.

지역별 면적은 황해남도 1210, 평안북도 1180.

평안남도 840 제곱킬로미터 순이다.

서해안의 간석지는 강하천 퇴적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북한은 국토 대부분이 산지여서 농경지 비율이 20%에 못 미친다.

분단 직후 북한의 대내적 당면 과제는 턱없이 부족한 농경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였다.

북한은 국토의 80%에 이르는 산간과 제주도 면적의 두 배에 육박하는 3300 제곱킬로미터의 간석지에 주목했다.

북한은 우선 산의 나무를 민 뒤 계단식으로 깎아 비탈밭과 다락밭을 집중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압록강 하구에서 첫 번째 대규모 간척 사업이 시작됐다.

압록강 하구의 섬인 마안도, 신도, 무명도 사이에 둑을 쌓고 흙을 메워 거대한 인공섬을 만들었다.

최근 북중 경협으로 주목받고 있는 황금평 바로 아래 위치한 비단섬으로, 면적은 여의도의 8배인 64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비단섬을 얻긴 했지만 간척은 대규모 자본과 고도의 기술, 그리고 철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에게 그리 매력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북한은 1960년 때까지 간척보다는 산간 개발을 통한 농경지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인터뷰> 이민부(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 "거의 전부 산간 지역으로 올라갔습니다. 북한의 농경지 개간 사업은...산림을 제거를 하고 그 지역 농경지를 확대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농경지로는 전체 식량 수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다 경사가 급한 산 지 쪽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산간 개발은 1970년대 들어 한계에 이르자 북한은 간척에 다시 눈을 돌렸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산을 보통 8부 능선까지 계단식으로 만든 것이 다락밭입니다. 다락밭을 많이 만드니까 토사가 흘러내려서 강을 하천에 수위를 높이고 그런 것으로부터 북한이 심한 자연의 공격을 받았고 이렇다 보니까 이제 바다로 나가서 서해안 지역에 간척지를 개발하 면 그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개발했습니다."

1980년 대 들어 북한은 당시 국가건설부문을 총괄한 김정일의 주도로 대규모 간척사업을 추진했다.

서해안 21곳 동해안 1곳 등 모두 22곳에서 간척사업을 벌여나갔다.

평안북도에서 대계도, 곽산 등 7곳.

평안남도에서 금성 등 5곳 황해남도에서 은율과 옹진 등 8곳에서 간척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좁은 내만에 소규모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만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대규모 방조제 건설이 추진됐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치기 전까지 대계도 지구와 곽산, 금성, 은율에서 공사가 준공되거나 부분 준공됐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 사망 때까지 간척으로 확보한 농경지의 면적은 적게는 500에서 많게는 1300제곱킬로미터로 추산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을 엄습한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은 간척지 개발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

건설 중인 방조제 공사와 농경지 개간이 모두 중단됐으며, 기존에 건설한 방조제와 간척지의 사후관리에도 손을 놓았다.

이로 인해 제방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북한에서 자랑하는 은율간척지와 금성간척지도 불모지로 변해버렸다.

북한의 ‘새만금’이라고 불리는 대계도 간척지 역시 1997년에 홍수로 방조제 4곳이 부분적으로 유실되면서 모두 물에 잠겼다.

북한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자 다시 간척사업에 팔을 걷어부쳤다.

우선 대계도 간척지 복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됐다.

특히 450미터가 유실된 3호 방조제의 복구는 그야말로 난관이었다.

방조제 안팎의 수위차가 4미터에 이르러 밀물 때마다 3억톤의 물이 밀려들어왔다.

<녹취> 조선중앙tv(2005년 7월 2일) : "큰 돌을 떨어뜨려도 순간에 다 밀려나갔고, 수 십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막돌을 쳐 넣어도 정말 소용이 없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2005년 6월 필사의 노력 끝에 간신히 물막이에 성공했다.

이어 5년간의 제방보수와 개간을 거쳐 지난 해 마침내 대계도 간척지 공사를 마무리했다.

프랑스 국제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아 은율간척지와 금성간척지 복구도 최근 성공적으로 마쳤다.

북한 당국은 지난 해 대계도 간척지가 준공되자 기적을 이뤘다면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7월 2일) : "가능을 모르는 선군 조선의 기상인양 서해의 날바다 위에 솟아나 후대들에게 물러줄 귀중한 재부…"

강성대국 건설 원년인 내년까지 5곳의 간척지 공사를 추가로 마치도록 건설 현장을 다그치고 있다.

북한이 최근 대규모 간척이라는 주체적인 방법으로 식량난을 돌파하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선 것은 3대 세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북한이 최근에 다시 간석지 개발 사업을 활발하게 강조하는 것은 이제 3대 세습 김정은 시대의 다시 강성대국 건설이니 하면서 식량생산을 해야하는데 내륙지방의 농토가 다 황폐화되고 그러다보니까 간석지 개간을 통해서 농토 확보, 식량증산 이것을 통해 치적을 세우려는 그런 목적이 있습니다."

또 경제난으로 많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된 데 따른 유휴노동력의 활용이라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층들을 간척공사 현장에 돌격대로 보냄으로써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세력으로 발전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20세기 들어 국토가 좁은 국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던 간척사업은 21세기 들어 매력을 잃고 있다.

갯벌의 생태환경적 가치가 워낙 높은데다 최근에는 태풍이나 해일을 방제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인터뷰> 유근배(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 "간척사업을 대규모로 하다 보면 해양 생태계나 어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죠. 게다가 서해안의 얕은 바다 그런 곳은 폭풍 해일 또는 태풍이 내습했을 때 파랑에 끌리면서 파랑 에너지가 소모되는 그런 지역입니다. 그래서 간척지를 지나온 태풍이나 또는 바 다 폭풍은 세력이 감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육지를 보호하게 되죠. 그래서 그런 부분이 말하자면 간척사업의 어두운 그림자다."

하지만 발등의 불인 식량난을 해결해 3대 세습을 마무리해야 하는 북한 정권은 갯벌의 가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식량난을 돌파할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는 북한으로선 앞으로도 대규모 간척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대규모 간척으로 사라지고 있는 서해안의 갯벌 역시 통일이 되면 우리의 소중한 영토이자 자산이 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뷰> 유근배(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 "사실은 간척사업보다는 내륙의 토양유실 문제 이런 것들을 해결하고, 토지의 질을 높이고 하는 것을 통해서 이른바 녹색혁명이라고 얘길하는 그런 면에서 생산 증산을 생각해야겠죠. 예견된 자연재해의 문제, 환경오염의 문제, 그 다음에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방조제 유실이나 해안 제방 유실같은 걸 생각한다면 미래는 밝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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