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챔프’ 김주희 “그랜드슬램 목표”

입력 2011.07.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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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는 정말 좋아서 한다"

"내년에 독일 진출 추진"


국내 여자 복싱의 '간판' 김주희(25·거인체육관)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얼짱 복서'. '효녀 복서', '작은 거인'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주먹을 쓴다는 사실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얼짱'이라는 말로 복싱의 공격성을 희석하고 '효녀'라는 말로 뇌출혈 이후 치매 증세까지 보이는 아버지의 간병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어쩔 수 없이 '싸움질'을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는 권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다. 시합 도중에 숨진 김득구 선수는 죽는 순간까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했다고 한다.

엄연한 세계 여자프로복싱 5대 기구 통합 챔피언임에도 사회적 금기와의 싸움에서는 여전히 도전자인 김주희를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거인체육관에서 만났다.

지난 9일 전남 완도에서 열린 파프라탄 룩사이콩딘(20·태국)과의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이후 보름여만이었지만 그의 왼쪽 눈은 아직도 피멍이 들어 있었고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부기 만큼이나 지난 시합에서의 아쉬움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김주희는 "매 시합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경기를 펼치고 싶다. 그래야 침체에 빠진 복싱의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파프라탄이 시종일관 수비로 일관한 탓에 답답한 경기내용을 보인 것에 대한 속상함이었다.

그는 "'상대 선수가 스타를 만들어준다'는 말이 진짜 맞는 것 같다"며 "지난해 9월 경기에서는 이번 시합에서 입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쳤지만 경기가 끝나고서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는 생각에 KO승을 거뒀을 때보다 훨씬 더 밝게 웃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주희가 언급한 상대는 작년 9월12일 판정승을 거둔 필리핀의 주제스 나가와(24)다.

당시 김주희는 눈 부상으로 인해 경기가 두 번이나 중단될 정도로 나가와를 맞아 남자 경기보다 더 처절한 혈전을 벌였다. 상대는 때려도 때려도 더 강하게 맞받아쳤다.

10라운드까지 가는 보기 드문 난타전 속에 당시 경기장 열기도 뜨거웠다. 관중은 매회 손뼉을 치며 김주희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고 "김주희!, 김주희!"를 연호했다.

그는 "권투를 하면서 희열이라는 걸 처음 느껴봤다"며 "판정을 기다리면서 혹시 지더라도 속상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죽기 살기로 전력을 기울여준 그 선수에게 지금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에게 복싱은 구세주나 다름없다. 어머니의 가출, 갈수록 심해지는 아버지의 치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은 복싱이었다.

김주희는 복싱하면서 웃기 시작했고 승부욕도 되찾았다.

김주희는 2002년 이인영과 한국 여자복싱 초대 플라이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유일하게 패했지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2004년 12월19일 멜리사 셰이퍼(미국)를 누르고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세계 최연소 챔피언에 오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통합 챔피언자리까지 올랐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김주희를 지도하는 정문호 거인체육관 관장이 "꼭 미친× 같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리만치 훈련에 매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9일 경기를 치른 이후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이틀 만에 체육관에서 몰래 훈련하다가 정 관장에게 혼도 많이 났다.

현재 김주희는 내년에 학업(중부대 인문산업대학원 교육학과)을 마치는 대로 여자 복싱의 강국인 독일에 진출해 넓은 무대에서 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선수는 링에 자주 올라가야지 실전 감각이 생기는데, 우리나라는 복싱 현실이 좋지 않다 보니까 1년에 한번씩 경기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독일에 가서 시합도 자주 갖고 실력도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이라 훈련은 한국에서 하고 경기만 독일에서 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희에게 '복싱 선수로서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복싱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고, 여자 권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라이언 위소우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회장은 "김주희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그가 권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진심으로 열정이 느껴졌다"고 말한 바 있다.

김주희는 이 말이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맘에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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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대 챔프’ 김주희 “그랜드슬램 목표”
    • 입력 2011-07-26 08:56:03
    연합뉴스
"권투는 정말 좋아서 한다"
"내년에 독일 진출 추진"
국내 여자 복싱의 '간판' 김주희(25·거인체육관)에게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얼짱 복서'. '효녀 복서', '작은 거인'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주먹을 쓴다는 사실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얼짱'이라는 말로 복싱의 공격성을 희석하고 '효녀'라는 말로 뇌출혈 이후 치매 증세까지 보이는 아버지의 간병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어쩔 수 없이 '싸움질'을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는 권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다. 시합 도중에 숨진 김득구 선수는 죽는 순간까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했다고 한다. 엄연한 세계 여자프로복싱 5대 기구 통합 챔피언임에도 사회적 금기와의 싸움에서는 여전히 도전자인 김주희를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거인체육관에서 만났다. 지난 9일 전남 완도에서 열린 파프라탄 룩사이콩딘(20·태국)과의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이후 보름여만이었지만 그의 왼쪽 눈은 아직도 피멍이 들어 있었고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부기 만큼이나 지난 시합에서의 아쉬움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김주희는 "매 시합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경기를 펼치고 싶다. 그래야 침체에 빠진 복싱의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파프라탄이 시종일관 수비로 일관한 탓에 답답한 경기내용을 보인 것에 대한 속상함이었다. 그는 "'상대 선수가 스타를 만들어준다'는 말이 진짜 맞는 것 같다"며 "지난해 9월 경기에서는 이번 시합에서 입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쳤지만 경기가 끝나고서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는 생각에 KO승을 거뒀을 때보다 훨씬 더 밝게 웃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주희가 언급한 상대는 작년 9월12일 판정승을 거둔 필리핀의 주제스 나가와(24)다. 당시 김주희는 눈 부상으로 인해 경기가 두 번이나 중단될 정도로 나가와를 맞아 남자 경기보다 더 처절한 혈전을 벌였다. 상대는 때려도 때려도 더 강하게 맞받아쳤다. 10라운드까지 가는 보기 드문 난타전 속에 당시 경기장 열기도 뜨거웠다. 관중은 매회 손뼉을 치며 김주희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고 "김주희!, 김주희!"를 연호했다. 그는 "권투를 하면서 희열이라는 걸 처음 느껴봤다"며 "판정을 기다리면서 혹시 지더라도 속상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죽기 살기로 전력을 기울여준 그 선수에게 지금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에게 복싱은 구세주나 다름없다. 어머니의 가출, 갈수록 심해지는 아버지의 치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은 복싱이었다. 김주희는 복싱하면서 웃기 시작했고 승부욕도 되찾았다. 김주희는 2002년 이인영과 한국 여자복싱 초대 플라이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유일하게 패했지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2004년 12월19일 멜리사 셰이퍼(미국)를 누르고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세계 최연소 챔피언에 오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통합 챔피언자리까지 올랐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김주희를 지도하는 정문호 거인체육관 관장이 "꼭 미친× 같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리만치 훈련에 매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9일 경기를 치른 이후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이틀 만에 체육관에서 몰래 훈련하다가 정 관장에게 혼도 많이 났다. 현재 김주희는 내년에 학업(중부대 인문산업대학원 교육학과)을 마치는 대로 여자 복싱의 강국인 독일에 진출해 넓은 무대에서 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선수는 링에 자주 올라가야지 실전 감각이 생기는데, 우리나라는 복싱 현실이 좋지 않다 보니까 1년에 한번씩 경기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독일에 가서 시합도 자주 갖고 실력도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이라 훈련은 한국에서 하고 경기만 독일에서 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희에게 '복싱 선수로서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복싱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고, 여자 권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라이언 위소우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회장은 "김주희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그가 권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진심으로 열정이 느껴졌다"고 말한 바 있다. 김주희는 이 말이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맘에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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