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마주해야 할 진실 ‘사라의 열쇠’

입력 2011.07.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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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는 학살과 폭력이 무자비하게 자행된 광기와 공포의 순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만행이 모두 낱낱이 드러나 단죄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행위를 방조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불편해 하고 애써 침묵하려 한다



프랑스 감독 질스 파겟-브레너의 영화 '사라의 열쇠'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건드렸다.



영화의 소재는 1942년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이야기다. 사실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간 많은 영화에서 다뤄져 온 탓에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나름의 풍부한 서사를 풀어놓으며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하고 묵직한 메시지로 가슴 한 구석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프랑스인과 결혼해 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인 기자 '줄리아'. 그녀는 남편의 시댁 식구들이 예전에 살았던 파리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하기에 앞서 잡지사의 기획 기사로 프랑스에서 있었던 유대인 대량 체포사건을 맡게 된다.



줄리아는 취재를 하던 중 자신이 이사하려는 집이 당시 사건의 희생자인 한 유대인 가족의 집이었다는 사실과 이 가족의 아이들 남매가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흔적을 좇는다.



영화는 2009년을 사는 줄리아의 이야기와 함께 다른 한 축으로 1942년 7월 '사라'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준다.



독일군의 기습적인 방문에 놀란 사라는 동생 미셸을 벽장 속에 숨긴 뒤 열쇠로 잠그고 군인들에게 끌려간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사라는 동생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탈출을 감행하지만, 역사는 이 어린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진실을 향한 줄리아의 집념이다.



줄리아의 시댁 식구들은 잊혀져 있던 진실이 드러날수록 자신들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남편은 '그래서 뭐가 나아졌냐'고 타박한다. 게다가 어렵게 만난 사라의 아들은 줄리아가 들려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짓이라며 외면한다.



그러나 결국 진실의 힘은 줄리아의 삶을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게 하고 사라의 아들이 40년 만에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사라의 남편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들에게 "우리는 모두 역사의 산물"이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왜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진실과 맞닥뜨려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영화는 특별한 클라이맥스나 반전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흘러가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풍부하게 보여주며 극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역사를 소재로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비장함은 없지만, 오히려 과장이나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영상과 대사가 이 영화의 미덕이다.



줄리아로 분한 연기파 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섬세한 연기와 사라의 아역을 맡은 12세 소녀 멜루신 메이얀스의 비범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도쿄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상영시간 111분. 8월 1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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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마주해야 할 진실 ‘사라의 열쇠’
    • 입력 2011-07-26 09:23:54
    연합뉴스
인류의 역사에는 학살과 폭력이 무자비하게 자행된 광기와 공포의 순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만행이 모두 낱낱이 드러나 단죄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행위를 방조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불편해 하고 애써 침묵하려 한다

프랑스 감독 질스 파겟-브레너의 영화 '사라의 열쇠'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건드렸다.

영화의 소재는 1942년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이야기다. 사실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간 많은 영화에서 다뤄져 온 탓에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나름의 풍부한 서사를 풀어놓으며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하고 묵직한 메시지로 가슴 한 구석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프랑스인과 결혼해 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인 기자 '줄리아'. 그녀는 남편의 시댁 식구들이 예전에 살았던 파리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하기에 앞서 잡지사의 기획 기사로 프랑스에서 있었던 유대인 대량 체포사건을 맡게 된다.

줄리아는 취재를 하던 중 자신이 이사하려는 집이 당시 사건의 희생자인 한 유대인 가족의 집이었다는 사실과 이 가족의 아이들 남매가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흔적을 좇는다.

영화는 2009년을 사는 줄리아의 이야기와 함께 다른 한 축으로 1942년 7월 '사라'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준다.

독일군의 기습적인 방문에 놀란 사라는 동생 미셸을 벽장 속에 숨긴 뒤 열쇠로 잠그고 군인들에게 끌려간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사라는 동생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탈출을 감행하지만, 역사는 이 어린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진실을 향한 줄리아의 집념이다.

줄리아의 시댁 식구들은 잊혀져 있던 진실이 드러날수록 자신들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남편은 '그래서 뭐가 나아졌냐'고 타박한다. 게다가 어렵게 만난 사라의 아들은 줄리아가 들려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짓이라며 외면한다.

그러나 결국 진실의 힘은 줄리아의 삶을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게 하고 사라의 아들이 40년 만에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사라의 남편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들에게 "우리는 모두 역사의 산물"이라고 충고하는 장면은 왜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진실과 맞닥뜨려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영화는 특별한 클라이맥스나 반전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흘러가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풍부하게 보여주며 극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역사를 소재로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비장함은 없지만, 오히려 과장이나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영상과 대사가 이 영화의 미덕이다.

줄리아로 분한 연기파 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섬세한 연기와 사라의 아역을 맡은 12세 소녀 멜루신 메이얀스의 비범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도쿄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상영시간 111분. 8월 1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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